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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장미 한 송이

신성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나영

어두운 동굴 안에서 피어난
어여쁜 붉은 장미 한 송이
동굴 안에서 처참히 죽어간
제주 주민들의 피를 먹고 자라
붉다 못해 검붉어 보인다

그 꽃의 이름은 장미
한 생명이 죽으면서 새롭게 살아난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그 꽃은 장미
빛이 없이도 피어나 숭고하게 피어낫다.

한 생명이 죽으면 다른 생명이 나타나고
민중들의 정의에 대한 열정은
넘어져도 넘어져도
새로운 열정이 다시 올라온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피어났지만
그래서 더욱 더 붉어 보이는
아름다운 장미는 붉다 못해 검붉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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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진실을 찾다

등촌고등학교 1학년 양윤서

겨울이 오고 탐라는 차갑다
그러나 그 속은 삶이 어려 뜨겁다

뜨거운 영혼들의
절절한 눈물마저 진주알마냥 빛난다
그날을 잊을 수 없네

아직 그 혈향이 가시지 않아
저어 머언 곳으로 떨쳐 보낼까
저어 깊은 곳으로 묻어 잊을까
오늘 밤에도 묵혀진다

동이 틀 즈음
그네 눈동자엔 한 움큼 삶이 어려
잃어버린 반백년 세월
마음의 소리로 달래면서
한 맺힌 가슴에
포근한 온기가 감도는데

진실을 볼 수 있다면
그날을 밝혀 줄 수 있다면
불변의 녹나무처럼 푸르게 설 수 있다는 것을

종결이 다한 뒤에
푸른 바다 새 숨결로 적셔오고
그대들과 우리 마주볼 수 있는
진실의 땅을 밟을 수 있다면
63년 세월의 짐
더 이상 힘들지 않으리라

메마른 장벽(腸壁)에 뜨거운 찻잎물이 내린다

한 맺힌 섯알오름이여
가련한 다랑쉬 동굴이여
차마 소중한 이들이여

인제는 저 푸르런 바다에 흩어지고
더러는 새봄 하늘에 묻혀
부디 한 영혼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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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관음사

광주경신여자고등학교 3학년 이 을

제주시 아라동 387번지
할머니는 여생을 세 듯 염주를 돌린다
외진 업보를 겉옷처럼 입고서
피비린내에 두눈 희뜩이던 사천왕 앞에
오래된 죽음 하나를 굴리고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환생하였어도 이 섬엔 발도 붙이지 마소
대웅전 고목, 매일 외는 염불은
무릎 꿇은 방사탑에 조심히 올려지고
60여년전 시작된 불면은
양분이라곤 남지 않은 몸에 더부살고 있다
까마귀떼가 흉조를 노래하던 날
할아버지의 혈흔은 탱화처럼 얼룩져 있었다
뻥 뚫린 가슴은 한숨이 드나들기 쉬웠고
찢긴 과거를 고무신 밑창 해진 불공으로
한 땀씩 꿰매어 보는 할머니
현무암 불상들은 구멍마다 가득한
비명들을 극락왕생 기원하고 있다
쭈그린 그림자가 수령의 뿌리처럼
대웅전 불당을 꽉 그러쥔다
어느새 벌겋게 충혈된 하늘
관음사 고목이 지난 날 통곡을 양분삼아
열반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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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탐라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한명오

천년의 활력,
바다의 과녁이 되어
뿌리 박힌 섬 하나 있다

부서지는 파도의 상흔으로
단청빛 신열이
돌담을 핥고 내려온다
천고의 등허리, 귓바퀴 가득
바람 옷이 날리면
여문 바다가 벗어놓은
지층의 수액으로
아린 靑향을 튕긴다
바다의 모서리가 할퀸
몇 군데의 반흔과
햇볕에 그을린 모래알 들이
만들어 놓은, 유적들을 위로하며
언어로의 망명을 꿈꾸었으리라

돌아갈 자리, 그 섬에서는
귀가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기우는 섬 나무들의
발목 근처를 돌다가
물푸레나무 집게 속
남겨진 흔적 너머
어부의 여로에
갇힌 언어들이 풀려나올때
자맥질 하며 눈물 한 줌 떨구는
섬 하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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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묻힌 길을 걸으며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황희정

오름에 올라 땀이 맺혀
산담을 돌아 내려오는 길
길 옆 풀숲이 무성하다
길까지 내려온 비석 하나
나는 그제서야 풀숲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모른 척 지났겠지
차가 지나고 사람이 걷는 길 옆에
무덤이 있다니
나는 걸음을 멈추고
무덤에 웃자란 풀들을 눈으로 파헤친다
갓 난 아이를 등에 업고
혼신을 다해 피신하던 젊은 여자
씨앗대신 밭에 심어진 빈 신발들
동굴에 숨어 뚝뚝 떨어지는 물로
목숨을 연명하던 사람
처절한 신음소리가 묻혀 있을까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단단하게 무덤을 다진다

길가에 봉분처럼 피어난 수국
구천을 떠돌던 바람이 불자
겹잎의 함성들이 온몸을 떤다
제 안으로 찢긴 상처 빨아들인 물길로
견디고 있는 것일까
바람이 내 이마의 땀을 쓸고
나는 풀 몇 포기 뜯어
그들 앞에 놓인 길을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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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봄날을 앓다

서귀포대신중학교 3학년 오현지

봄볕도 가슴을 도려 낼 수있다.
샛노란 유채꽃망울에 머문 선한 바람도
독화살이 되어 꽂힐 수 있다.
동백꽃 붉은 미소도 때론 잔인한
고통으로 떨어져 내릴 수 있다.

육십여년전...
제주의 4월은
시인의 설레이는 찬양대신
비명소리로 얼룩진 자리.
이념의 칼날과 이데올로기의 총부리 끝에
수 많은 청춘이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피지도 못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고
한 줌 재가된 영혼들을 껴안고
절규의 고통으로
핏빛눈물을
흘려야 했던 계절

봄바다도 시리고
봄바람도 차갑고
봄꽃도 시들고
봄볕도 움츠려들던
무자년의 봄날.

그 아픈 날들을 지우려
육십여년을 슬픔의 세월로
살아온 제주의 한맺힌
사람... 사람들...

또 다시 찾아드는
4.3의 아픔을 들고
평화와 화해를
노래하지만
가슴은 먹먹히 아린다.

긴세월,
계속 찾아오는
봄을 앓지만
치유는 아득하기만 할 뿐...

언제면 따스함을 느낄까?
포근히 풀린 봄과 마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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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아가, 우리아가

귀일중학교 2학년 채진아

이 어미의 손은 따뜻하기만 한데
손에 꼭 쥔 우리 아가 손은
어찌 이리도 차가운지.

아가야, 왜 일어나지 않으니.
더 이상 총소리도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아가야, 왜 일어나지 않으니.

아가야, 왜 일어나지 않으니.
어미가 자장가도 불러주고
젖도 물려주어야 하는데.
아가야, 왜 일어나지 않으니.

아가야, 왜 일어나지 않으니.
네가 울면 내가 없어서
달래줘야 하는데.
저어기 대문에서 저녁 놀 때 돌아오시는
아버지도 함께 기다려야 하는데.
아가야, 왜 일어나지 않으니.

이 어미의 손은 따뜻하기만 한데
손에 꼭 쥔 우리 아가 손은
어찌 이리도 차가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