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위령제에서
대기고등학교 2학년 강민영
사회자의 제례 거행 선언으로 음악이 흐르는 동안
무얼 생각하셨나요?
침묵이 음악을 따라 우리 곁을 맴도는 동안
무얼 떠올리셨나요?
저기 검은 한복을 입고 눈시울을 붉히시는 할머니를 보세요.
끔직한 고문에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던 시간들
그 속에서 발버둥 치다 아무나 가리킨 손이
무고한 동네어른을 가리키고 끌려가는 어른을 바라만보고
할머니의 손은 저주받은 손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 커다란 고목 옆에서 지팡이를 짚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세요.
학교에 모아둔 농민들을 살상 훈련용으로 쓰라는 학살명령에
학교는 붉은 피가 넘치는 피바다가 되고 비명으로 가득찬 지옥이 되고
할아버지의 귀는 저주받은 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잊고 싶으나 잊어선 안 되는 기억 속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깊은 늪에 빠져계십니다.
우리는 깨우쳐야 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저주를 치료해줄 수 있는 건
흘러가는 세월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과 사랑의 속삭임임을
타오르는 향 사이로 보이는 저들도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며 하늘로 날아갑니다.
침묵이 우리 곁을 맴도는 동안
무얼 떠올리셨나요?
침묵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동안
무얼 생각하셨나요?
사회자의 선언으로 식은 끝나지만
우리의 눈은 언제나 그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영복삼촌의 기억
서대전여자고등학교 3학년 김규영
제주 산자락 조그만 마을
금이 쩍쩍 갈라진 할아버지네
초인종 소리에 땅에 질질 끌린
할아버지의 목발이 대문을 연다
유채꽃이 만발하던 60년 전의 오늘,
두 명의 군인을 대동하고 찾아온 마을 영복 삼촌.
이유도 모른 채 한 순간에 빨갱이가 된 할아버지는
그렇게 군부대에 끌려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발을 샀다
그 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영복 삼촌은
늙은 낯빛으로 빛바랜 대문 밖에 서 있었다
산 입구에 들어서지도 못해 잡히던 그 날,
무작정 동조자를 대라는 군인의 고함 속에서
그의 머릿속엔 이제껏 부르던 이름들 중
할아버지를 부르게 되었다는 영복삼촌은
한 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 간 흘러가버린 세월들이
영복 삼촌의 얼굴에는
나무껍질 같은 주름과 검버섯이 새겨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어깨 언저리 붉은 총알의 흉터는
옷 너머로도 감추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영복 삼촌 사이로 젖어드는
그 날의 기억들은 긴 침묵이 되고
할아버지 마당에 피어난 유채꽃들도
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집으로 가는 길
성보고등학교 2학년 김정민
집으로 가는 길섶에 뿌리를 내린 동백나무
이제 막 잎을 틔운 우듬지마다
발갛게 물들어가는 4月이
제주 해풍에 잠시 두 뺨을 스치고
옷깃을 여미는 손끝에서
한 땀, 지난 날이 묻어난다
마을 입구에 자리를 잡은 아낙들에게서
더 이상 수다스러운 향이 묻어나지 않을 때면
짙게 드리운 그늘 아래서
조심스레 꺼내놓는 지난 날,
허전한 가슴께를 어루만지며
이따금씩 불러보던 아들의 이름
돌아오지 않는 대답처럼
긴 시간을 제자리에서 가만히
허리춤까지 차오른 그리움을 헤아린다
64년이라는 긴 세월도 앗아가지 못한 기억이
첫 번째 정낭 밑으로
점점 새어들고 있을 때면
작은 그림자 하나 두 눈에 선하다
새 봄, 여느 때처럼
마을 어귀마다 뿌리를 내리고 선 아낙들의
발자국이 집으로 가는 길을 수놓는 하루
동백꽃만 한창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을의 숨결을 어루만지고 있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4월, 잃어버린 아픔
문정여자고등학교 3학년 심현지
4월 하늘빛이 바다에 물질을 하던
제주 북촌마을
탄피 같은 햇볕이 쏟아진 그날
동굴보다도 깊고 어둔 바다에
몸을 숨긴 바람도 있었다 한다
망서리에는 숨죽인 이들의
순한 눈빛이 담겨 있었고
지붕마다 불꽃이 얹어졌다는데
멘보선창으로 나온 어멍을
잃어버린 이웃집 남매
흰 맨발로 어디를 갔을까
열다섯 치마폭에 붉은 동백이 뚝뚝 지고
나는 아니우다, 아니우다,
부르짖던 청춘들 한 데 묻힌 자리에
또 한라바람꽃 피는데
폭낭에 난 생채기마냥 아픈 노을은
여전히 못난 감자밭 엎드려 일구며
전복 해삼 따서 살아라, 살아야 한다
그렇게 일가를 다시 일구며 견뎌온 섬
반 백년 동안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
흙과 바다가 덮은 이름들
어김없이 4월은 오고
멍든 하늘과 바다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이름 찾아줄 날 언제인가
이름도 없이 묻힌 애기무덤을
등 구부린 유채꽃들이 품는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애기 무덤
광주숭일고등학교 2학년 유하린
울음이 피워 올렸을까
애기 발 같은 푸른 새싹
봄바람이 가만 안아보다 가는
애기무덤 돌 틈 사이로
울먹울먹 울음소리 그치고
돌멩이 하나 애기 주먹 닮았다
잠들어있을 애기는
죄명이 빨갱이다
말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애기는 봄이면 유채꽃밭을 꽃신 신고
향기 맡아보지도
뛰어보지도 못하고
돌무덤 속에 웃음까지 묻은 채
엄마의 머리칼 닮은
잡초를 피워내고 있다
겨울이면 차가운 눈이 앉았다 가는 자리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잠꼬대 하는 애기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주 섬에 두른 바다는
그대로 푸른데
육지 향하는 카페리호가
하얗게 상흔처럼
길을 그리며 간다
꼭 아기 신발 한 짝 같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위령탑 앞에서
성문고등학교 3학년 윤승아
탑을 세운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이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진실을 말하는
탑을 세운다
탑에는 쓰리게 떨어진 동백꽃이 산다
가슴 속 눈물이 마르지 않은 사람들이
꽃물 붉게 물든 손으로
떨리는 어깨로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탑을 세운다
탑에는 우는 눈이 산다
눈은 텅 비어 있지만 그 눈은 운다
그의 흐느낌이 꽃물 든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도
웅크린 그의 목소리를 내며 그러나 그를 다독이며
탑을 세운다
그리고
마침내 꿋꿋한 탑에는
멈추지 않는 바람이 분다
바람은 동백나무에 새 꽃을 피우고
우는 눈의 끓는 소리를 보듬어준다
꽃물 든 손으로 탑을 만지는 가슴에도
바람이 불어 고인 물이 마른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장려상
봄이 찾아온 제주
대평중학교 1학년 황예빈
힘든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 어느 길목
여느 해와 똑같은 포근한 바람이 있던 어느 날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맴돌고 있을 슬픈 추억의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조그만 발걸음들이 모여서 커다란 발걸음이 되고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찾아온 그날 자정의 폭풍
그리고 제주의 거센 바람과 함께
푸른 파도 속으로 그들은 슬프게 떠났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들의 떠남으로 인해서
우리의 겨울은 더욱 추워졌고 길어졌다.
높고 커다란 그리고 무서운 바위들은
우리들의 봄은 언제 올까라는 기다림조차 빼앗아 갔다.
그러나 용기 있는 작은 물결들이 모이고 모여
조그만 파도가 되고 또 다시 커다란 파도가 되어
따뜻하고 희망을 주는 그들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깨질 것 같지 않은 바위들을 향해서 끝없이 나아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제주의 바다에는 파도들이 그 날의 아픔을 잊지 못한 체
굳센 바위들과 부딪히면서
커다란 파도 소리와 함께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며 울고 있다.
변해가는 바위의 모습과 함께
제주에는 그렇게 봄이 조금씩 조금씩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