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학생4.3문예백일장
중등부 최우수상 ‘산문부문’
오늘은 제가 죽었습니다
안덕중학교
2학년 강지훈
1948년 4월 3일 토요일. 오늘은 날씨가 좋은지 알 수 없어요. 저는 학교도 빠지고 어
딘가로 급히 가고 있어요. 학교를 가지 못해서 슬프지만 오늘은 어머니, 아버지가 일
을 나가시지 않아서 함께 있어요. 저는 차갑고 어두운 새벽을 싫어하지만 어머니, 아
버지와 형이 있으니까 무섭지도 차갑지도 않아요. 요즘들어 군인아저씨와 경찰아저씨
들이 많이 보이던데 혹시 싸우기라도 하셨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어
른들이 싸우면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 안되
는 걸까요? 어라? 여기는 제가 자주놀던 바닷가입니다. 여름이 되면 언제나 아랫동네
순이랑 기철이와 함께 놀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순이와 기철이도 보이지 않아요. 나는
바닷가에 놀러왔을 거라 생각했어요. 바람이 조금 차지만 바닷물은 차지 않았거든요.
저는 어머니께 바닷가에 왜 왔냐고 물어봤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을 하면
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쓸려오는 바닷물이 싫은 것 같아요. 형은 아버
지 손을, 저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고서는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를
가길래 이렇게 바삐가는지 모르겠답니다.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가 아픕니다.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도 힘드신데 제가 업어달라고 하면 안돼요. 저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
니까요. 그렇게 계속 걸었어요. 날이 밝아도 해가 하늘 높이 떠있어도 그 수많은 사람
들은 개미떼처럼 줄곧 걸어왔어요. 저희는 한라산에 도착했어요. 한라산은 멀어서 잘
오지 않았어요. 작년에 오고 안 왔는데 왜 한라산에 온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
들 마음을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라산에있는 작은 동굴에 많은 사람들이 앉
아있어요. 벌써 해가 저물었는데 아침에 먹고 온 지슬이 오늘 먹은 전부에요. 어머니
에게 배고프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말 대신 저를 꼭 안아주었어요. 왠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었어요. 어제 새벽은 가족들이 있어 따뜻했어요. 오늘도 아침에 지슬
반개와 물로 배를 채웠어요. 맛있는 밥도 먹고 싶었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어머니
가 울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이 동굴에 온지 3일이 됐어요. 저는 언제나 동굴
속 바위에 그림도 그리고 제 또래 애들과 함께 놀기도 했어요. 한라산 동굴에서 5일
째 갑자기 밖에서 사람들 비명소리가 들려요 근데 더 무서운 건 사람들 비명소리보다
더 큰 총소리에요. 총소리에 저는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요. 오늘은 아버지와 아저씨들
이 함께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어요. 무사해야 할텐데 괜찮겠지요? 날이 지니까 총소
리가 들리지 않아요.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사람들은 안심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
버지와 아저씨들이 돌아오지 않자 저는 걱정이 돼요. 어머니와 형도 걱정하는 것 같
았어요. 다음날, 아침은 밝았는데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아버지 지슬도 남겨
놓고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어요. 어제 제가 아버지 지슬을 조금 뜯어 먹어서 오지 않
는 걸까요? 그런거라면 내 지슬 조금 줄 수 있는데 아버지는 왜 오지 않을까요?
이 동굴에서 생활한지 2주 가까이 흘렀어요 중간에 총소리도 나고 비명소리도 들렸지
만 우리는 아직 걸리지 않았어요. 이제 남은 음식들도 다 떨어졌어요. 그리고 아버지
도 돌아가셨어요. 어제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가신 아저씨 2분이 오셨어요. 자기들은
도망쳐왔고 다른 사람은 죽었대요. 저희 아버지도요. 어머니는 울다가 쓰러지셨어요.
저는 울지 않았어요. 저까지 울면 어머니는 더 슬플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오
늘은 한라산을 내려가서 다른 동굴로 가기로 했어요. 이제는 그 동굴도 위험할 것 같
아서요. 그 동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저는 죽지 않고 어머니를 지켜줄거에
요. 한라산을 내려가는데 앞에 사람들이 땅에 쓰러져 있었어요. 어머니는 저와 형의
눈을 감싸주셨지요. 그때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어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
어요. 너무 늦게 나와서일까요?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어요. 제 눈앞에
서 한 명씩 한 명씩 피를 흘리며 앞으로 쓰러졌어요. 저는 겁을 먹고 어머니와 형의
손을 잡고 잽싸게 뛰었어요. 총을 든 남자 3명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어요 그때 총
소리가 제 옆에서 났어요 어머니를 봤더니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저는 울면서 빨리
가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저와 형에게 빨리 가라고 하셨어요. 형은 제 손을 잡고 냅다
뛰었어요. 한라산을 내려와서도 뛰었어요. 힘들고 다리가 아팠지만 무서워서 계속 뛰
었어요. 그렇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잃었어요. 형마저 잃으면 저는 살 수 없을 거에요.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일주일이 지났어요. 사람들은 병에 걸렸고 저희도 위험했어요.
형과 저는 전염병에 걸렸고 말라가기 시작했죠. 그렇게 형까지 잃었어요. 저는 이제
살 수 없어요. 마지막까지 어머니와 아버지, 형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리고 제 꿈도
지키지 못했어요. 저는 다시 태어나면 저희 어머니, 아버지, 형과 행복하게 살 거고
어른이 되면 선생님이 돼서 제가 배우지 못한 것들을 가르쳐 줄거예요. 그렇게 저의
짧고 긴 9년의 시간이 끝났습니다.
제1회 학생4.3문예백일장
중등부 우수상 ‘산문부문’
이제는
아라중학교
3학년 이예림
이른 새벽, 발소리를 줄이고 숨을 죽이고 가슴을 졸이며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이
숲을 지나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어린아이,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인, 노인, 건장한
사내 등 여러 사람들이 있다. 이미 수 시간동안 걸었음에도 긴장감 속에서 발이 아픈
느낌조차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안전하게 그 곳에 도착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해는 서서히 떠오르고 있고 아직 갈 길이 먼 사람들이다. 평화롭던 그
시절에는 해가 아름다고 도달하고 싶은 곳이 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 해가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때 한 여인이 안고있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불안한 침
묵 속에서 그 침묵을 깨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인
이 아이를 어르고 달래도 울음이 그치지 않자 주변 사람들이 여인에게 타박하기 시작
했다.
“기 아이 좀 얼른 달래보소. 그러다가 들키면 책임 질 것이야?”
“아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동길아 왜 그러니 응?”
그 여인은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면서 아이를 달래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느껴지는 위협적인 움직임에 여인은 얼른 아이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막
았다. 그 움직임이 사라질 동안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고 여인도 아이도 마
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다시 조용해지자 여인은 아이의 얼굴에 있던 자신의 손을 걷
어냈지만 아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다시 울지 않는 모습에 아이의 코
에 손을 갖다대어 봤지만 하늘이 원망스럽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고 동순아 왜 그러니? 응? 왜그래.... 숨을 쉬어라... 제발 ...아이고 아이고 내가
내아이를 죽였구나... 아이고... 이죄를 어찌 갚아야 할꼬...아이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아이의 죽음에 안타까워 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거..... 참... 그래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소. 미안하오.”
사람들은 모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음으로 더욱 빨리 걷
기 시작했고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굴이었는데 그들의 은신처였다. 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쪽은 위아래로 뾰족한 돌들이 튀어나와 살이 벗겨지기 일수였
다. 굴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
자 이제까지 그들을 휘감아왔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앉아서 쉬고
있자 다른 사람이 와서 말했다.
“여기서는 당번을 정해서 생활해야 하오. 경찰, 음식 구해오기, 간단한 음식 조리하기,
빨래 등 자신이 자신있는 것을 맡아서 생활하시오”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그들에게 기간을
정해주었다. 굴에서의 생활은 어둡고 춥고 매일 불안함에 떨며 살아야 했지만 옆에
사람들이 있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 갈 수 있었다.
언제 군인들에게 적발되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있다가도 얼른 이 시
련이 끝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의지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 굴에서의
생활도 이제 거의 두 달이 다되어 갈 때쯤 군인들이 굴을 발견해서 굴 안으로 총을
쏘아댔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다가도 금세 정신을 차려 모든 이불을 모아놓고 고춧
가루를 위에 뿌린 후 이불에 불을 지펴 군인들에게 연기가 가게끔 손부채질을 열심히
했다. 군인들은 그 연기를 못이겨서 도망갔다. 사람들은 위기를 피했지만 더 이상 굴
에 있다가는 내일 당장 죽을 것 같아 오늘 새벽, 이굴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사람들은 빠져나갈 준비를 다 마치자 굴 안에서 항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단 사람이 말을 꺼냈다.
“비록 우리 여기서 흩어지지만 우리가 다시 웃으며 만날 날이 올 때를 기다리며 살아
갑시다”
사람들은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서서히 굴을 빠져나가 흩어졌다.
-4·3사건이 끝난 후 몇 년 뒤-
한 남자가 이제는 4·3사건의 유적지가 된 큰 넓궤굴 앞에 서있었다. 그 남자는 이제
는 늙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가 한참을
아무말 없이 서있는데 멀리서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듯한 표
정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걸어왔다. 그 역시 이젠 늙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네 혹시 여기서 생활했었나?”
먼저 굴에 왔었던 남자 소리를 듣고 깜짝놀라며 돌아섰다. 그러고선 대답했다.
“아. 그렇네. 자네... 석이 맞제?”
“그렇소.. 허허 여긴 와 있었구려”
“다시는 와보고 싶지 않았지만 무척 그립더군... 여긴 변한게 하나 없어.”
“여기는 변한게 없지만 우리는 변했구려”
이제는 늙어버린 두 남자가 지금 굴 앞에서 웃고 있다.
제1회 학생4.3문예백일장
중등부 우수상 ‘산문부문’
두 할머니의 화해
제주서중학교
1학년 송예영
나에게는 두 할머니가 있다. 증조할머니와 외증조할머니. 증조할머니는 내가 2학년이
었을 때 돌아가셨고 외증조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까지 잊지 못했던 것, 외증조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잊지 못
하는 것, 그것이 제주4·3이다. 제주4·3, 그 전쟁같은 시간 속 두 할머니는 남편을 잃
었고, 남편을 잃은 이유는 두 분을 원수지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에게 두 할머니의 화해를 말해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화해로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말해주고 싶다.
1948년. 제주4·3이 일어났다. 증조할머니의 남편, 즉 증조할아버지는 경찰과 군인들을
피해 산에 숨으셨다. 하지만 발각되어 할아버지는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반대
로 외증조할아버지는 경찰이셨고, 산에 숨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그
렇다면 두 분은 원수지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들을 잃은
이유, 그것은 할머니들을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원수사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
만 두 분은 그렇지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듯이, 원수지간인 사람들끼리는
사돈은 절대로 맺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죽이려고 한다. 원래 이런게 정상이
다. 하지만 두 할머니는 화해하셨다. 어떠한 악감정도 남기지 않고, 1995년 12월 25
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날에 우리 부모님이 결혼하시면서 할머니들은 사진 속에서
다정하게 웃고 계셨다. 두 분은 4·3 이후 우리가 외치는 화해를 먼저 실천하셨 던 것
이다.
제주4·3 이후, 유가족들이, 우리가, 제주 도민들 뿐만 아닌 모두가 외치고 있는 평화,
화해, 상생 등 이 모든 것들을 수십년 전에 실천한 사람들이 그 누구도 아닌 4·3 피
해자들이다. 우리는 4·3으로 인해 상처만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상처들이
남았다. 하지만 그 상처 속에서 두 할머니의, 제주도민들의 화해라는 싹이 생겨났다.
우리는 제주4·3을 통해 수많은 상처들을 알고, 그 상처 속에서 생겨난 화해를 기억해
야한다.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알아야 한다. 4·3이라는 무시무시한 광풍
속에서 살기위해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했던 제주사람들의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할
머니들처럼 알고 기억하며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증조할머니와 외증
조할머니를 포함한 제주도민들의 화해와 상생을 말이다. 우리가, 제주사람들이 먼저
알고 실천해야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