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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심사평

예심 위원회가 본심에 올린 추천작은 모두 80편(8명)이었다. 본심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논의하

기 위해 원탁 위에 올려놓은 작품은 5편(5명)이었다. <도령마루 꽃무릇> <북받친밭> <목시물굴의

별>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 <백비>(이상 접수 순). 심사 기준에 대한 본심 위원들의

이견은 이내 좁혀졌다. 작품의 완성도를 외면하지 않되, 작품에 내재된 문제의식과 파급력에 주목

하자는 것이었다. ‘제주4․3평화문학상’이 올해로 9회에 접어들었고 이제 새로운 10년을 바라보는

만큼 이번 수상작이 문학상의 위상을 새로 정립하는데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보자는

것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추천작 대부분이 70여 년 전 비극을 서정적 언어로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추천작은 저마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많은 작품이 소재(현장)주의, 선/악 이

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약자의 편에 선 분노와 진혼은 정당한 것이다. 발굴과 폭로 또한

문학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경도된다면 그것은 문학성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인류의 보편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

은 문학작품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문학상 공모 취지를 떠올린다면 더더욱 그렇다. 4․3문학이 ‘애

도의 시간’을 넘어, 제주와 한반도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창조적 시간’으로 성숙해야 할

때다. 수렴에서 확산으로, 특수에서 보편으로,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최종 후보작 중에 위와 같은 기준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도령마루 꽃

무릇>과 <북받친밭> <목시물굴의 별>은 당시 현장을 재현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고 <백비>는

70여 년 세월을 반추하지만 미래로 열린 상상력이 부족했다(이번 심사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다면

최종심에 오른 이 작품들은 저마다 빼어난 작품이다. 일반 문예지나 시집에 발표되었다면 독자들

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가 남았는데 앞에 거론한 후보작과 크게 달랐다. 제목이

환기하듯이 제주 4․3과 제주 설화를 다리(橋) 삼아 ‘한라’와 ‘백두’의 만남을 주선하는 ‘통일 서

사’의 전개가 활달했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도 시야가 넓었다. 4․3의 야만성을 에둘러 표현하면

서 위안부, 세월호 문제까지 관심사가 폭넓었다. 심사위원들은 <천지 말간 얼굴...>이 심사 기준을

온전하게 충족시키지는 않지만 여타 응모작과 견줄 때 주제 의식과 상상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

이고 있으며 이와 같은 미덕이 향후 ‘제주4․3평화문학상’은 물론 4․3문학의 지평을 확대하는데 기

여할 바가 적지 않으리란 판단에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장 이하석, 심사위원 김광렬,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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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최씨네 종말기>는 종말론에 얽힌 한 가

족의 소동극을 그려내는 가운데 서로 반목하고 외면하던 가족 간의 끈을 새로이 확인해가는이야기

다. 상황의 황당함을 서사적 활력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평가할 만하나, 여덟 살 아이의 시선과 목

소리를 소설의 아이러니로 충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느낌이다. <전옥주는 전진한다>는 영화

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개성적인 실감의 언어로 전하면서 흥미 있는 성장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소설의 힘을 유기적으로 모아내지 못하고 작은 이야

기에 그치고 만 듯하다. <고만례상회>는 상상력의 신선함과 주제를 향한 섬세한 사유의 집적이 돋

보이는 작품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이 서려 있는 어촌 마을의 동굴과 자그마한 슈퍼를 배경으

로, 치유의 시간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만찮은 설득력을 가지고 읽는 이

를 붙잡는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 맞춤하게 도착하는 그 치유와 자기 긍정의 시간이 갈등하는

소설의 서사적 사건의 전개를 통해서라기보다는 반전을 숨긴 준비된 설정, 주인공의 사유의 진술

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얼마간 힘을 잃고 있다.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꿈과 환상의 활용에도 좀

더 세심한 자기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까지 남아 토의를 이어가게 한 것은 <총소리를 들었어>와 <그들은 모른다>, 두 작품이다.

두 작품 공히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질곡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성실한 천착을 배경으로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인물들의 분투를 세심하게 전한다. 역사적 안목과 함께 문제의 현재성, 당

대성에 대한 감각도 예민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4·3평화문학상이 지향하는 주제 의식의 측면이나

소설적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총소리를 들었어>는 폭력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인물

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층위에서 모아내면서도 전체적인 서사의 힘을 잃지 않는다. 미국에서 일어

난 총기 폭력 사건과 입양아 노아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연결시키며 진행되는 소설 초반부의

전개에는 섬세한 인간 이해의 이야기가 있다. 다만 보도연맹 사건과 연관된 가족사의 증언이 본격

적으로 나오는 소설 후반부에서 좀더 밀도 있고 설득력 있는 서사적 구성이 가능했으리라는 아쉬

움을 갖게 된다. 너무 올바르고 모범적인 서사적 결말에 대한 부담은 사안의 복잡성과 착잡함에

대한 소설의 가능한 접근을 막을 수도 있다.

<그들은 모른다>는 내전과 인종청소의 참혹한 시간을 통과해온 발칸반도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

의 국가 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와 세심하게 공명시키면서 국가 폭력에 대한 질문을

좀더 넓은 시야로 성공적으로 옮겨낸다. 무엇보다 지성과 사유의 힘이 느껴지는 세련된 문장, 발칸

의 땅을 떠도는 한 여인의 우수와 고독을 전하는 깊은 감수성의 언어가 돋보인다. 쉽지 않은 소설

적 구도임에도 이음매를 잘 다독이고 간추렸다는 평가도 있었다. 일부 이야기의 디테일에 대한 아

쉬움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큰 무리 없이 폭력에 대한 탄식과 분노의 이야기를 치유와

화해를 향한 섬세하고 고독한 내면의 분투로 잘 감싸고 있다는 데 심사위원 전원은 흔쾌히 동의했

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한다.

심사위원장 임철우, 심사위원 방현석, 정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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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부문 심사평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에는 모두 13편이 응모됐는데 공모 기준을 벗어난 1편을

제외하고 12편이 심사위원에게 넘어왔다. 특별히 논픽션 부문의 공모는 지난해에 이어 2회째에 불

과한 탓인지 응모편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에 따라 ‘응모편수가 적을 때에는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심사를 단심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심사지침에 따라 예비심사와 본심사를 함께 진행

하였다.

응모작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모두 12편의 작품들 중 글쓴이 스스로가 체험했던 바를 서술한 작

품이 4편이었던 반면에 취재나 자료조사, 인터뷰 등을 통해 기술한 작품이 8편에 달했다. 내용별

로는 제주4․3을 다룬 작품이 6편, 한국전쟁 전후에 벌어졌던 일들을 글감으로 삼은 작품이 3편, 기

타 3편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해방공간에 발생한 ‘4․3’과 ‘여순’, 그리고 한국전쟁

을 전후하여 일어났던 보도연맹사건 등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내용이 대체적이었다. 이를 놓고

볼 때 제주4․3평화문학상에서 논픽션 부문을 추가로 설정한 것은 고무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회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성과를 축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응모작들을 살펴보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장르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픽션’과의 경계를 무심

히 넘나듦으로써 논픽션의 생명인 리얼리티를 견지하는 데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고, 이미 발표된

자료들을 과도하게 인용하다보니 정작 신선감이 반감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여러 내용들을

두서없이 나열하며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4․3으로 인한 여성 수난사(「제주 4․3여성운동가의 생애」), 4․3으로 촉발된 디아

스포라 현상(「와류」), 일제시대 해녀항쟁과 호적문제(「어떵 잊으크니」) 등을 소재로 삼음으로써 조

명 대상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삽화를 곁들여서 가족참사의 전말

을 담담하게 기록한 「제주4․3에 타다 남은 한 뿌리 민초인생」, 여순항쟁 당시 토벌대에 차출되어

종군했던 조산원 출신 필자의 수기 「이런 일이 있었다 - 니년이 빨치산 도왔지?」 등도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들이다.

무엇보다도 4․3당시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격변기 분단조국의 연표를 온몸으로 살아낸 김진언 할

머니의 삶을 세상에 드러낸 「제주4․3 여성운동가의 생애」는 논픽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4․3을 드

러내놓고 언급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기부터 집요하게 취재를 진행하여 작품을 갈무리했다는 점에

서 당선작으로 올리기에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제주4․3과 한국전쟁이 일흔 해를 넘기는 동안 그 참혹했던 아픔의 역사가 차츰 기억에서 멀어져

화석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절감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직접 체험한 세대의 기록이나 증언을 접할 기회는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특별히 이 체험세대가

침묵의 트라우마를 깨고 용기 있게 증언하고 기록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미 체험 세대의

‘진실 찾기’ 노력 또한 부단히 이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 양쪽의 노력이 합해질 때 진실과 정의,

평화와 인권을 추구하고자 하는 제주4․3평화문학상에서 논픽션 부문을 제정한 취지도 연면히 발현

돼 나아갈 것으로 믿는다.

심사위원장 이상락, 심사위원 강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