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제주
4.3 특별기획 다큐멘터리영화
목소리들
...목소리
...
사진 김기삼
의 증언
; <
>
恨
2021. 7
- 2 -
그림 강요배
겁간
; <
>
아 번은 난데어시
)
,
아니 저냑 먹언덜 다 이제누어신디
여덟 명쯤 완예
)
.
,
다 일어낭 얼굴들러 얼굴들러
막 헙디다게
“
!
!
”
.
다 일어낭 얼굴들르난 자기네 보기에 젊고예,
애기라도 없고 그런 사람덜 그런 사람덜을예
,
.
일주일 저냑을 하여튼 매날 저냑에
,
와그넹에 데령 나강 강간을 하는 거라마씀.
그놈들 여덟이.
홍난선
년생 당시 조천면 대흘리 거주
-
, 1929
.
- 3 -
▅ 기획의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제 차 세계대전 중 백만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지만 그들 중 그
2
,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 회고담에
.
서 그렇게 배제되어온 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동명의 책을 펴냈다 이후 이 문장
.
은 사회가 전쟁을 기록할 때 여성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상징 문장이 되었다.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이다 그러나 바로 그
.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는 전면화되지 못한다
에서도 이러
. 4.3
한 현상은 동일했다
년 제주
특별법이 제정되고
년
사건 진상조사보
. 2000
4.3
2003
4.3
고서가 만들어진 이후 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되어왔으나 여성들이 겪은
을 조명
,
4.3
하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여성의 희생은 남성들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주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제주
사건으로
4.3
‘
4.3
인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장애가 남은 사람 또는 수형자 를
희생자
,
’
4.3
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은 국가가
.
4.3
규정한 희생의 범위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 어머니며 아내며 딸이었던 여성의 희생은 당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
와 맞물려 남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남성들보다 더
,
깊은 고통과 상처로 남았다 무차별 학살되기도 했지만 남편 대신 대살되기도 했고
.
,
부모와 남편과 자식의 죽음을 목도하고 고문과 성폭행 강제결혼의 대상이 되기도
,
했다 이런 일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은 생존 여성들이 증언을 두려워했고
.
많은 연구자들이 여성의 기억에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다
여성사는 단지 피해의 역사만이 아니다 여성은 당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
4.3
.
이었으나 대량학살의 비극을 거치면서 그들은 동시에 가장 강인한 집단으로 자리잡
았다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대거 사라진 폐허 속에서 생계를
.
위한 노동과 재건의 책임을 져야 했다 제주 역사의 한 축은 여성들이 일구어온 것
.
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역사를 주목하고 복원하는 것은 개인사를 넘어 가족사와 마을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며
의 역사 자체를 온전하게 복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
4.3
.
- 4 -
한 소외되었던 젠더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은 제주를 넘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일이
기도 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속의 여성들 그 숨죽인 목소리에 귀기울이려 하는
.
4.3
,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로그라인
숨죽인 속삭임을 들었다.
그 오랜 세월 속에서도 파도소리처럼 바람소리처럼 지워지지 않은 목소리들
,
.
그 거대한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4.3,
.
▅ 출연자 소개
주요인물
왼쪽부터 이승례 김연심 추계추 정봉영 홍춘호
<
,
,
,
,
>
이승례
년생 당시
세 조천면 북촌리 거주
(1934
.
14 .
)
사건 통틀어 단일 사건으로 최대 희생자를 낸 북촌리 주민 집단학살에서 아버
4.3
지 큰아버지 할아버지가 숨졌다 남은 어머니는 고생만 하다 병이 들었고 이승례가
,
,
.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물질을 하며 세 동생을 돌봤고 결혼해서도 육
.
,
지로 원정 물질을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다 평생을 먹고 살 궁리 만 하다 아이들
.
‘
’
큰 공부를 못시킨 것을 가슴아파한다.
김연심
년생 당시
세 제주읍 도두리 거주
(1937
.
11 .
)
김연심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남매를 키웠다
년 봄에
5
5
. 1948
오빠가 경찰에 잡혀갔고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다음해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면
.
- 5 -
서 돔박웃흠 대학살에서 어머니와 큰언니 큰언니가 업고 갔던 조카까지 총살되었
,
다 어린 연심이 동네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의 시신을 찾아 묻었다 고아로
.
.
친척 집을 전전하다 부산 영도로 나가 통조림공장 양장점 시다로 일했고 제주로
,
돌아와 결혼했다 시댁도 찢어지게 가난했으나 아들을 낳으려 남매를 낳았고 대식
.
6
구가 살기 위해 허리가 휘었다.
채계추
년생 당시
세 구좌면 송당리 가시남동 거
(1927
.
21 .
주)
당시 채계추는 결혼 년차였다 리 서기를 하던 둘째 오빠가 똑똑하여 무장대에
4.3
1
.
서 찾아와도 절대 거기 이름을 올리지 말라고 하여 밤마다 산사람들을 피해 남편과
들에서 잤다 그런데 그 오빠가 정작 토벌대 손에 죽었다 토벌대에서 트집잡아 아
.
.
버지와 큰아버지를 잡아가서 취조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둘째 오빠를 데려갔
다 그런데 계엄령이 떨어졌고 조사받던 전원이 총살되었다 큰아버지는 무장대에게
.
.
죽고 아버지도 취조받은 맷독으로 죽었다 소개지인 평대에서 성담도 쌓고 보초도
.
섰다 토벌대들의 처녀 강간을 목격했다
.
.
정봉영
년생 당시
세 제주읍 도두리 거주
(1934
.
14 .
)
정봉영 가족은 일본에서 살다 해방 후 제주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 집을 지은 지
.
한 해도 안돼
이 터지고 아버지는 경찰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고 수감되었다
4.3
.
직전에 풀려났으나 바로 사흘 후 예비검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버지 때문에
6.25
.
잡혀가 고문을 당한 어머니는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를 못써 봉영이 소녀 가장이 되
었다 봇짐장사 식모살이 공장을 전전하다 아버지의 빨간 줄 을 지우기 위해 여군
.
,
,
‘
’
에 자원입대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에게서도 빨갱이 종내기 라는 구박을 받자
.
‘
’
집을 나왔다.
홍춘호
년생 당시
세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거주
(1938
.
10 .
)
홍춘호의 집은
남매의 대가족이었다 초토화작전 당시 군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10
.
죽이고 집을 다 불태워버리면서 일가족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긴 도피생활에 들어
갔다 앞작지 구석밧작지 숨비나리 중퉁굴 뒷빌레굴 고구량 원물오름 미오름 큰
.
,
,
,
,
,
,
,
,
넓궤 왕성이구석 거세왓을 전전했다 그 도피생활 중에 남동생 명이 차례차례 굶
,
,
.
3
어서 죽었다
대 독자인 아버지가 세 아들을 묻었다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삐라를
. 4
.
보고 손들고 나가 서귀포 단추공장에 집단수용되었다 석방 후 부모님이 연이어 돌
.
아가시고 마침 결혼했던 춘호가 살난 동생을 데리고 눈칫밥 시집살이를 했다 아
9
.
무것도 없어 입은 옷 그대로 짚으로 싸서 아버지를 묻은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맺
혔다.
- 6 -
보조증언자
홍난선
년생 대흘리
(1929
,
)
한정선
년생 삼양동
(1930
,
)
채길두
년생
당시 제주도립병원 총무과 직원 등
(1916
, 4.3
)
전문가
권귀숙 제주대학교 교수
(
)
허영선
연구소 소장
(4.3
)
김종민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전 제주
중앙위원회 전문위원
(
.
4.3
)
주진오 상명대학교 교수
(
)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등
(
)
▅ 기획의 차별화
소재의 차별화
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며 아직도 다 풀지 못한 거대한 과제다 오랫동안
-4.3
,
.
어둠에 갇혀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이 사건은
년 이후 민주화운동과 함
1987
께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년 제주
특별법이 제정되고
년
. 2000
4.3
200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만들어졌으며 그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권력에
4.3
의한 주민들의 희생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
뿐이다
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과업이며
. 4.3
,
그 과정에서 여성의 희생에 대한 조사연구는 아직도 미진한 상황이다.
을 다룬 영화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여성의 문제에 초
4.3
,
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는 더욱이 없었다 때문에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비쳐보는
.
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4.3
.
관점의 차별화
제주는 여성성이 두드러진 섬이다 제주도 창조설화의 주인공 설문대 할망부터 제
-
.
주바다의 수호신 영등 할망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다 설화만이 아니다 삼다의 섬이
.
.
라 일컬어지는 제주는 돌 바람과 함께 여자로 대표되어왔다
,
.
현대사에 있어서도 제주 여성들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판단된다
에 있어서도 마
. 4.3
찬가지다 그러나 그 여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관건이다
.
.
- 7 -
기획을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관점의 차별화에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
4.3
여성사를 단지 희생자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가장 큰 희생자였으나 동시
.
에 여성들은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노동의 주역이었으며 그럼으로써 해체된
,
가족과 마을을 재건해낸 주역이었다 지금까지
콘텐츠가 주로 학살의 비극에만
.
4.3
초점을 맞추어왔다면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이후 그들이 이겨내온 시간의 역사
,
4.3
를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인식의 확장과 보편화
다큐멘터리가 미시사에 빠질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은 그 개인의 상황이 전개된 배
-
경이 상실되는 데 있다
처럼 우리 국민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사전 지식을 갖
. 6.25
고 있는 경우 구태여 전체 배경을 모두 설명할 필요없이 국지적 사건만으로도 충
,
분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은
와 같지 않다 연구가 진행되어온 지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
4.3
6.25
.
30
진상은 보편적 사실이 되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제주 주민들이 학살당한 사건
.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이 많고 한쪽에선 아직도 공공연히 당시 희생자들을
,
폭도라 부르는 시각조차 엄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 제작되는 영화는 그 소재가 무엇이든
전체의 진상이라는
4.3
맥락을 놓지 않고 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한 사람을 대상으
.
로 하는 개인사 휴먼 다큐 방식으로 제작되기보다 다수의 주인공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여성사이면서 동시에
의 진상에 대한
.
4.3
4.3
전국민적 인식의 확장에 기여하고자 한다.
▅ 제작방식의 특장점
복수의 여성 서사와 그들의 시선
을 관통해온
명의 여성들의 인생을 조명한다 학살 도피 성폭력 굶주림 노
-4.3
4~5
.
,
,
,
,
동 재건 빨갱이의 낙인 등등
으로부터 여성들에게 가해진 주요한 고통들을 이
,
,
4.3
들의 기억으로부터 환기한다 각 장면에서 다른 여성들의 비슷한 경험들이 보조증
.
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의 원인으로
년
절 사건으로부터 연대기적 서술을 하는 일반적 방식을 벗
4.3
47
3.1
어나 당시 사건을 경험한 여성들의 인식의 순서로 진행한다 당시 어린이였던 그들
.
은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비로소 이 사건의 역사적 성격을 개관하게 된다.
개인적인 기억과 공적 기록의 교차
개인의 역사는 공적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 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문
-
. 4.3
- 8 -
제였는지 핵심적인 경과를 개인사와 교직함으로써 거시의 공적 역사 속에 이들을
존재하게 한다.
구술의 메인스트림
이 다큐멘터리는
연구소의 피해여성 구술 텍스트를 저본으로 삼아 그 기억들을
-
4.3
,
스토리의 메인스트림으로 잡는다 녹음된 오디오 그 자체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
.
를 저본 삼아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를 보완 확보할 예정이다 실제작시 보다 실증
.
적인 인터뷰이가 발굴될 수도 있다.
공적 역사를 개관하기 위해 경험자들의 증언 뿐만 아니라 필요한 지점에 전문 연구
자들의 인터뷰를 포함한다.
영화적 시적 이미지 구현
지금까지 방송을 포함한
다큐멘터리는 다분히 설명적인 방식을 택했다 무엇보
-
4.3
.
다
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우선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설명적 방식
4.3
.
에만 의존하는 다큐는 영화로서의 생명력을 갖는 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 영화
.
는 보다 영화적인 미장센을 구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제주의 풍경 인물 사물 등을
,
,
활용한 영화적 시적 이미지를 적극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미장센은 살아남은 여성들의 보이스와 결합하여 과거의 기억들이 관객들의
감정 속에 입체적 양감을 갖도록 해줄 것이다.
보이스와 현장과 사물의 협주
과거는 카메라로 붙잡기 어렵다 기억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물
-
.
.
은 관객의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하여 그 기억을 생생하게 촉감하게 할지가 관건이
다 이를 위해 주요인물들을 현장에 배치하거나 혹은 현장 그 자체를 효과적으로
.
조명함으로써 기억에 최대한 현장성을 부여한다 당시의 사진과 문헌도 적극 활용
.
한다
년의 세월을 건너왔으나 당시의 기억을 안고 있는 사물들도 최대한 발굴하
. 70
여 활용한다.
필요할 경우 현대작가들의 그림 사진 또는 재연 이미지도 활용할 것이나 드라마적
,
재연은 오히려 사실성의 감각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배제한다.
계절 이미지 활용
주요인물들이 경험한 과거의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계절을 활용한다 시간은
-
.
흘러갔어도 겨울의 눈과 얼음 한여름의 녹음 등 계절의 풍광이 주는 이미지는 당
,
대의 감정을 환기시키는 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 9 -
▅ 기대효과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각인되는 것은 좋은 명분 때문이 아니라 서사의 흥미
-
‘
’
‘
로움 이나 정보의 새로움 이미지의 인상 때문이다 거기서 오는 각성효과 가 메시
’
‘
’,
‘
’
.
‘
’
지를 흡수하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여성을 통해
을 조명하는 첫 번째 영화가 될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
-
4.3
.
에 담긴 정보와 이미지 살아남은 여성들의 서사와 증언은 충격적이고 강렬할 수밖
,
에 없다 그 감정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의 진상을 전달하고자 한다
.
4.3
.
따라서 이 영화는
의 진상과 그 역사적 의미를 모든 국민들에게 확산하고 대한
-
4.3
,
민국의 역사 속에 그 합당한 위치를 찾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늘 역사의 이면에 그림자처럼 가리워졌던 여성 서사를 전면화함으로써 역사
-
적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해 재인식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자료출처
기획안의 출연자와 인용된 문구는 제주
연구소 의
과 여성 그 살아낸 날의
-
‘
4.3
’
<4.3
,
기록
과 여성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 에서 발췌한 것이다
>, <4.3
2,
>
- 10 -
▅ 트리트먼트
프롤로그
1.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다
안개 사방 천지가 안개 속이다
.
.
그 안개를 뚫고 나아가면 안개 속에서 밀려오는 파도 파도소리인 듯 바람 소리인
.
듯 그 안개에 섞여 웅성웅성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서로 겹쳐지고 갈라지며 뭉개져
.
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워도 그건 여자들의 목소리다 자신의 역사를 읊조리
.
는 제주 할망들의 목소리.
아들 내놔라 아들 내놔라 하며 어머닐 막 때렸어 죽게 맞은 거야
“..
.
. .”
그때 집에 있는 사람은 다 죽었어 산 사람은 없었어 다 죽었지
“..
.
.
...”
아들을 소낭에 목매달아 논거라
“..
...”
아이 울면 다 죽는다고 입을 틀어막았는데
“..
. .”
안개가 바람에 불려가면 안개 속으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제주의 돌과 나무들 폐허
.
가 된 마을들 다시 안개가 몰려왔다 불려가면 안개 속으로 드러나는
기념관 내
.
4.3
수많은 위패들.
백발의 할망이 손을 들어 그 위패를 어루만진다 계곡처럼 깊은 주름으로 아로새겨
.
진 손 그 주름의 골짜기들을 지우며 다시 안개가 밀려온다
.
.
그 위에 점점 더 소란스러우지는 여자들의 목소리.
손에 전깃줄을 감고 스위치 누르면 이리로 나뒹굴고 저리로 나뒹굴고
“..
. .”
애 낳는 데 들이닥쳐서 발길질을
“..
.. ”
젊고 예쁜 여자들만 데리고 가서 놀다가 나중에 다 총살
“..
. ..”
우리 어떵 살거 하고 우니 살암시라 살아진다 살아진다
“..
.. ”
전면을 가득 채우며 몰려오는 짙은 안개와 함께 그 목소리들이 어우러져 점점 커지
다가 거대한 북소리처럼 하나의 굉음이 되고 일순 딱 멈춘다
,
.
그 안개 위에 타이틀 인
- 11 -
타이틀
2.
목소리들
...
..
북촌리 앞바다
<
>
죽음 죽음들
3.
,
제주 북촌리 앞바다 일찍 겨울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
.
밤이 깊었는데 마을에는 아직도 불밝힌 집들이 있다 섣달 열여드레 어느 집 불켜
.
.
진 부엌에서 아낙네들의 부지런한 손이 음식을 담는다 안방으로 올라간 제수가 제
.
상에 진설된다 또 다른 집 제상에 술잔을 올린다 건너건너 이웃의 또다른 집 식
.
.
.
.
구들이 엎드려 절한다.
그 제사 풍경 위로 이승례의 목소리가 보이스오버된다.
북촌은 섣달 음력 열아흐렛날 마을이 싹 불타니까 열여드렛날 식게 제사 가 많아
“
(
)
.
그 다음에 스무날 스무하룻날 줄줄이 있어 사람들이 계속 죽었으니까
,
.
.”
이승례
세 의 주름진 얼굴이 창문을 향한다
(87 )
.
- 12 -
오전 시
시가 됐는가 군인들이 집집마다 들이닥쳐 학교로 모이라고 닦달햇어
“
7 , 8
.
.
동네 올레에 나타난 군인들이 나와 나와 하는 고함소리가 들렸어 내몰려 가다보니
!
!
.
잠잘 때 입었던 옷 그대로 입고 맨발로 나갔어 사람들이 집을 나서면서 군인들이
.
그대로 집에 불을 붙였어 돌아보니 마을이 온통 불바다야
.
.”
아침 싸락눈이 흩날린다 그 위로 북촌초등학교
년 월
일 자막
.
.
‘
1949
1
17 ’
.
내몰려가는 사람들의 걸음으로 카메라 북촌초등학교에 진입한다 텅 빈 운동장 휘
.
.
날리는 싸락눈발.
군인들이 그 자리서 총을 쐈어
명씩
명씩 줄을 끊으면서 이쪽으로 데려가 죽
“
. 30
50
이고 저쪽으로 데려가 죽이고
나는 총소리가 무서워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꼭 감
...
아서 사람 죽이는 장면을 못봤어 나중에 고개를 들고보면 사람이 죽어있고 죽어있
.
고 하는거야 거짓말처럼 싸락눈은 흩날리는데 운동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어
.
.
.”
이날 북촌 주민
여명 중
여명이 총살되었다 굴속에 숨어있던 아버지는 군
1000
300
.
인들에게 발각되어 잡혀갔다 남은 주민들은 함덕으로 소개되었다 사흘 후 북촌에
.
.
서 함덕 가는 길에 승례가 아버지를 발견했다.
큰 길가 밭에서 아버지가 엎어져서 죽어있었어 아버지 갈중이 적삼으로 알아봤지
“
.
.
그게 스무하룻날이야 끌려가서 이틀만에 돌아가신 거지 굴 속에 숨어있던 사람들
.
.
은 남자고 여자고 다 죽었어 그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
. ”
북촌 사람들은 다 정신이 나갔어 사방에 시체가 널려있어도 무서운 줄도 몰랐어
“
.
.”
그 겨울 죽음은 도처에서 찾아왔다 도두리 가는 길 위에 김연심 목소리
.
.
우리집은 오빠가 잡혀가고 대문에 빨간 딱지가 붙었어 큰언니와 어머니가 경찰서
“
.
에 잡혀간 것도 그때문이었을 거야 다음날 밥해가려고 물떠오는데 사람들이 막 웅
.
성대더라고 돔방굴 트멍에 데려가 다 죽였다고
.
.”
김연심
세 비통한 얼굴 그때 김연심은 열한살이었다
(84 )
.
.
그날밤은 비가 억수로 왔어 다음날은 시체를 치워내라고 명령이 떨어진 거야 그
“
.
.
장소를 치워야 또 죽일 거니까 가보니 시체가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고 모두
.
친척들이 몰려와 묶으며 처리를 하는데 나만 혼자였어 울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
.
다 시체를 찾았어 어머니는 어디 총맞은 곳도 없고 보기 싫게 안죽었는데 큰언니
.
- 13 -
생각을 하면 정말로 철창으로 몸을 이리저리 찢어버렸더라고 업은 아기도 같이 죽
,
.
고 동네 여자들이 시체를 마주잡아주어서 남의 밭에 줄줄이 공동묘지하듯 묻었어
.
.”
그날 시신들이 이리 저리 쓰러져 있던 그곳 그 위로 도두리 돔박웃흠
년 월
.
‘
1949
1
일 자막
3 ’
.
왼쪽 초토화작전 당시의 토벌대의 모습 오른쪽 처형을 기다리는 주민들
<
;
/
;
>
채계추는 그때 스물한살 송당리 가시남동에 살았다 갓 결혼했을 때였고 마침 임신
.
.
중이었다.
산에서 밤마다 집에 찾아와 아들 내노라고 했어 자기네 이름 올리려고 그래서 그
“
.
.
놈들 피하느라 남편하고 나하고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들에서 잤어 리 서
.
기하던 우리 셋오빠가 거기 절대 이름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든.”
그러다 토벌대에서 중산간지대 마을에 모두 소개령이 떨어졌다 계추네 가족들도
.
모두 평대로 내려왔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식량 때문에 송당 집에 가서 돼지 다리
.
한쪽 가지고 오다가 토벌대에게 걸렸다.
세화지서에서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폭도로 몰라 잡아갔어 그런데 취조해도 뭐가
“
.
안나오니까 둘을 내보내고 셋오빠를 잡아갔어 그때 계엄령이 내렸어 그래서 죽었
.
.
어 아이고 폭도로 다니다가 죽었으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아버지가 너무 원통해
.
,
.
했어 그것도 총으로라도 쏴죽이주 월정리 모래밭에 가서 조사하겠다고 잡아온 멀
.
,
쩡한 사람들을 모두 찔려죽어분거라.”
월정리 해안 모래밭 수형자들의 걸음으로 비틀거리며 바다를 향해 가는 카메라
.
.
그 위에 자막 월정리
년 월 일
‘
1949
2
1 ’
카메라의 동선이 바다를 앞에 두고 멈춘다 고요한 수평선
.
.
- 14 -
나중에 그 모래밭에서 오빠 시체를 찾았어 아버지 호상하려고 만들어둔 명주옷을
“
.
아버지 본인 손으로 직접 셋아들에게 입혀서 묻은 거라.“
산사람들에게 이름 올리지 못하게 했던 셋오빠는 경찰의 손에 죽고 경찰에 폭도로
,
몰렸던 큰아버지는 산에 풀어놓은 말을 보러 갔다가 산사람들에게 죽었다 아버지
.
는 그렇게 아들 묻은 뒤 결국 취조받은 맷독으로 세상을 떴다.
정봉영
세
(87 );
낮에는 순경들이 쳐들어와가지고 그냥 늙은이고 젊은이고 애고 어른이고 다 죽이
“
고 밤에는 산에서 내려와서 사람을 끌고 가서는 총이 없으니 돌멩이로 쳐서 죽이
고...”
홍춘호
세
(83 );
우리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어 사람 죽일줄은 모르고 나오라해서 나갔는데 무조건
“
.
죽여버리니까 그다음부터는 무서워서 숨어다녔어 우리는 몰랐어 사람들이 왜 죽는
.
.
지 왜 죽였는지 나중에 시국 시국 하니까 아 이런 것이 시국 이구나 했지
,
.
‘
’ ‘
’
‘
’
.”
그 시국 은 전시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
’
.
년
월
일 제주 주재 연대장은 해안선에서
이상 지역에 통행을 금지
1948
10
17
9
5km
하고 이를 어길 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한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토벌
.
대는
월
일 애월면 하가리 집들을 불태우고 주민
명을 집단총살한 뒤 소길
11
13
25
리 원동마을에서 주민
명을 집단총살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이후 약 개월간
50~60
.
4
중산간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집단살해하는 이른바 초토화작전이 전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
제 호 대통령령 계엄령 포고문
31
.
이로부터 무차별 초토화작전이
전개되었다>
처음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첫 대통령 이승만은
월
일 대통령령 제
11
17
31
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해안은 봉쇄되었고 제주도 사람들은 섬 안에 갇혀 산에서 내려오는 무장대의 공격
으로도 죽고 토벌대의 공격으로도 죽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거대한 감옥이거나 처형장이었다.
- 15 -
깊고 깊은 한
4.
-누군가의 아내거나 어머니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달아났고 숨었다 그 와중에 여자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었
.
다 단지 누군가의 어머니거나 아내거나 형제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사라진 남자를
.
.
내놓으라며 여자들을 고문했고 아들 대신 남편 대신 여자들을 처형했다 혹은 아들
,
.
이나 남편과 한데 묶어 처형했다 그 형장에서 아이들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
.
이승례;
작은어머니는 잡혀서 생후 개월 된 딸을 데리고 함덕 수용소로 가게 됐는데 음력
“
7
섣달 스무이렛날 함덕 평사동 모래밭에서 총살됐어 그 아기는 일곱달 만에 낳아서
.
일곱달둥이 일곱달둥이 하고 불렀는데 일곱달 만에 낳고 일곱달 만에 죽은 거지.
그 어린 게 무슨 죄가 있어?”
도피 중에 죽은 아기도 많았다 아기 우는 소리에 은신처가 들킬까봐 입을 막았다
.
질식해 죽기도 했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기도 했다
,
.
왼쪽 희생자 시신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
;
가족 오른쪽 너븐숭이 아기무덤터
/
;
>
홍춘호
세 의 집은 당시 동광리 무등이왓에 있었다 그때 나이 열 살이었다 그의
(83 )
.
.
기억 속에 그 시절은 끝없이 숨는 일의 연속이었다.
군인들이 집을 다 불태워버리고 그다음부터는 밤이고 낮이고 자왈에서만 산 거지
“
.
앞작지에도 가서 숨고 구석밧작지에도 숨고 숨비나리에도 숨고 중퉁굴에도 숨고
,
뒷빌레굴에도 가서 숨고 고구량에도 숨었어 원물오름이나 미오름에도 숨고 큰넓궤
,
.
에도 숨고 왕성이구석에도 가서 숨었었지 마지막에는 거세왓까지 갔어 구석밧작지
,
.
...
에서 둘째 남동생이 죽었어 배고파서 굶어죽은 거야
앞작지에서는 막내 남동생이
.
. ...
죽어버렸어 다음에는 첫째 남동생이 죽었어 모두 굶어죽었어 지금 텔레비전에 나
.
.
.
오는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아이들과 똑같았어. ”
- 16 -
대 독자인 아버지가 세 아들을 갖다 묻었다
4
.
북촌리 너븐숭이에는 북촌 대학살 당시 어린아이와 무연고자들을 임시매장한 무덤
터가 아직 남아있다 여기에
여기가 넘는 아기 무덤이 모여있다 그러나 흔적 없
.
20
.
는 죽음들이 더 많았다.
지난해
월까지 제주도에 신고된
희생자는 만
명 이중 세 이하는
(2020) 6
4.3
1 4533 .
9
명
세는
명이다 전체 희생자의
명 가 아동 청소년이다
세
818 , 10~19
2535
.
23%(3353 )
.
. 3
까지의 영아는
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것은 유가족이 직접 신고한 수치일 뿐이
300
,
다 당시 영유아는 미처 호적에 올리지 못한 채 희생되었거나 온가족이 몰살당해
.
희생자 신고조차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실제 피해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 죽음들이 남긴 것은 제주 어멍들의 깊고 깊은 한이다.
홍춘호;
세 아들 잃고 어머니는 우리도 아무 때건 죽어도 죽을 거니까 죽는 거야 어쩔 수
“
‘
없지만 죽어갈 때 좁쌀물이라도 한번 입에 놩 죽어져시민
하고 원통해했어 그게
...’
.
어머니 한이 되어서 어머니는 그후에는 다른 집 아이들 눈을 바라보지 않았어.”
살아남은 자의 슬픔
5.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삶은 때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사는 터전을 잃
.
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소개지에서의 삶이나 도피처에서의 삶이나 굶주림과 공포와
불안과 싸우는 삶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정봉영의 나이 열네살 가족이 일본에서 돌아와 도두리에 정착한 지 한 해가
.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으니 조센진이라 차별받던 일본땅을
.
떠나 이제야말로 떳떳이 잘 살아보겠다고 돌아온 고향이었다 그러나 벅찬 희망을
.
가지고 새로 지었던 집은 년도 못살고 불타버렸다 아버지는 토벌대에 두드려맞고
1
.
경찰서로 끌려갔다.
정봉영;
어머니도 지서로 끌려가 총개머리판으로 마구 맞았어 이유가 뭔지는 몰라 살아서
“
.
.
나오긴 했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어
남매 맏이라는 이유로
. 6
내 나이 열일곱에 결국 일곱식구 가장이 되어버렸지.”
- 17 -
불타버린 집터에 돼지 움막 같은 거 하나 지어서 살았어 폭도 놈들이 버리고 간
“
.
칼을 주워서 무도 썰고 감저도 썰고 사람 죽여난 그 칼로 밥을 지어먹을 정도로 막
막하게 살았어 년 동안 제대로 농사도 못지었으니까
. 3
.”
그 시절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막살이는 기본이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제주
.
도처에 남아있다.
홍춘호;
어욱밭 틈에 땅을 조금 파서 나무 막대기를 세워 그 다음에는 억새를 끊어다가 나
“
.
뭇가지 위를 덮어서 움막집처럼 만드는 거야 사람은 땅밑으로 기어다니고 안에 들
.
어가서도 서있지는 못하고 앉아있어야 해
총소리가 팡팡 나면 아이고 오늘 죽는
. ...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숨어있으면 토벌대 말 소리가 들리거든 그러면 우리는 우
.
.
리보고 오는가 우리가 들켰나 하면서 가만히 숨소리도 내지않아 그러다 해가지기
?
?
.
시작하면 아 오늘은 살았구나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거야 해가 서녘 하늘로 넘
.
어가기 시작하면 총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그러면 아 오늘은 살아졌구나 하고 어
린 마음에도 안심이 돼.”
당시 제주 주민들이 억새풀과 소나무로 만들어 거처한 움막
<
>
오름에 흔한 동굴도 그들의 거처가 되었다.
채계추;
우리동네 가시남동 굴에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서 숨어 살았어 가시남동에 소나 말
“
.
- 18 -
을 놓았던 사람들이니까 굴이 있다는 걸 훤히 알았지 해변에서 죽어질 것 같으니
.
까 거기까지 올라와 숨은 거라 밤에만 나다니고 낮에는 굴에 기어들어 살았어 우
.
.
리 동네 맷돌에 곡식을 갈아먹으면서.”
정봉영;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보리껍데기 있잖아 보리 방아 찧으면 껍데기 벗겨진 거
“
?
.
.
그 보리채를 사다가 사카린 넣고 소금 조금 넣고 물 넣고 오래 끓여 오래 끓이면
.
달큰하거든 돼지나 먹는 보리채 끓인 물을 먹는 거야 바다에 가서 넙패도 뜯어먹
.
.
고 산에 가서 고사리 꺾어다 삶아먹고 쑥같은 거 뜯어다 죽쒀서 먹고 그땐 뭘 제대
로 먹고 산 게 아니지 그냥 굶어죽지 않은 거 뿐이야
.
...”
김연심;
식구 다 죽고 아무도 없는 집에 큰언니 죽고 혼자 남은 살 조카 수길이 데리고
“
4
버티었어 그러다 동네 동냥바치 할머니를 모셔왔어 어머니 일복을 입혀서 그 할머
.
.
니가 발자리에 누워 있으니 한결 낫더라고 오늘 밝아질까 하면 새벽이 오고 오늘
.
은 밝아질까 하면 그날 넘어가고 하면서 그렇게 스무날을 산 거야 너무도 외롭고
.
무서울 때는 통시에 가서 돼지에게 말을 걸었어.”
나중에 수길이 할머니가 와서 수길이 데리고 가고 나서야 누우면 눈물도 흐르기
“
시작하더라.“
홍춘호;
그러니까 우리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이제도록 살아있는 것이 참 용하주
“
.”
이승례 가슴을 친다.
김연심 가슴을 친다.
채계추 가슴을 친다.
정봉영 가슴을 친다.
홍춘호 가슴을 친다.
년이 지났는데 주름진 그들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넘쳐 흐른다
70
.
제주는 왜 죽음의 섬이 되었나
6.
?
오늘의 제주시가 활기찬 모습들 카메라는 관덕정 앞에서 멈추며 관덕정은
년
.
1940
의 흑백 모습으로 바뀐다 그 위에 자막
년 월 일
.
‘1947
3
1 ’.
년 월 일 관덕정 부근에는 응원경찰이 포진하고 있었다 제
주년
절 기
1947
3
1
.
28
3.1
념대회에 몰린 만여 군중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시 식을 마친 군중들은
3
.
2 ,
- 19 -
가두시위에 나섰을 때 한 기마경찰이 탄 말에 어린애가 채였다 경관이 이를 무시
,
.
하고 그대로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부근의 무장경찰이
,
군중을 향해 발포했다 이 총격으로 명의 주민이 숨졌고 명이 중상을 입었다
.
6
8
.
이 사건으로 제주도 전역은 걷잡을 수 없이 들끓어올랐다
월
일 진상규명을 요
. 3
10
구하며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도내 거의 모든 행정기관과 학교를 망라한
개 기관
166
과 제주 직장인의
가 민관총파업에 돌입했다
95%
.
년 월
일 미군정보고서는 이를 남로당이 대중을 선동하고 있는 것 이며
1947
3
19
“
”
제주도민의
가 좌익단체 동조자이며 제주도는 좌익의 근거지 라고 보고한다
“
70%
”
.
이것이 시발점이었다.
왼쪽
주한미육군사령부 정보참
<
; 1947.3.19.
모부 정기보고 제주도민의
가 좌익의
“
70%
동조자
위 오른쪽 강요배 그림 피살
” /
;
‘
’-3.1
절 경찰 발포로 사망한 도두리 여성 박재옥
을 그린 것으로 추정
>
이듬해 월 일 오전 시 한라산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올랐다 남로당 제주위원
4
3
2 .
.
회가 주도한 무장봉기 신호탄이었다 무장대는 제주도내
개 지서와 우익단체 요
.
12
인의 집을 습격했다.
당시 한반도는 남북 통일정부냐 단독정부냐 하는 갈림길에 서있었고 제주도의 민
,
심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극히 부정적이었다 최종 선거등록 결과 제주도는
.
64.9%
만이 등록해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남로당은 이런 민심을 업고 전면 무장
.(4.14)
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월
일 한국군 연대와 무장대 사이 평화
4
28
9
협상이 전격 성사되었다
시간 내 전투 중지에 합의한 것이다
. 72
.
그 사흘 후
월 일 오라리가 습격을 받았다 평화협상은 파기되었다 경찰은 이를
, 5
1
.
.
- 20 -
무장대의 방화로 몰고 갔으나 실은 우익청년단들이 벌인 일이었다 미군 촬영반은
.
이오라리 방화사건을 입체적으로 촬영하여 이것이 무장대의 소행인 것처럼 편집했
다 이는 미군이 강경 진압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사건을 교묘히 조작한 것으로
.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월 일 미군은 경비대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린다
5
3
.
미군이 촬영한 제주도의 메이데이 영상 중 장면
<
‘
’
.
불타고 있는 오라리를 상공에서 비행기로 찍고 마을로 진입하는 경비대의 모습을 지상에서
함께 찍었다 미국립문서보관소 소장
. -
>
그러나 이때까지도 대부분의 제주 주민들은 이런 사태의 정확한 전말을 알지 못했
다 영문도 모른 채 어느날 갑자기 지옥에 떨어진 것이었다 폭도 빨갱이 라는 이름
.
. ‘
’‘
’
과 함께.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될 이 사건은 이후
이라 불리게 된다
4.3
.
불타는 마을들 그 위로 자막
.
.
중산간 마을
소각
‘
95%
’
가옥 만 천여동 전소
‘
3
9
’
피해액
억원 추산
‘
200
’
인명피해
명
명
‘
25000 ~30000 ’
제주 인구의
가 사망
‘
10%
’
희생자 중 어린이 노인 여성 등의 비율이
‘
33%’
․
․
자막 모두 아웃되고 그위에 한 줄의 자막이 새로 뜬다.
인명피해의
가 토벌대에 의한 것
‘
90%
’
잿더미 폐허의 영상 위에 보이스 오버.
김연심;
- 21 -
어머니 큰언니 묻고 나서도 친척집에 가있고 싶다는 말을 못했어 괜히 그랬다가
“
.
우리 때문에 피해볼까봐 우리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으니까
.
.”
홍춘호;
다시 앞작지로 내려와 숨어있을 때 토벌대들이 와서 우리 아버지하고 이웃 어른이
“
막대기에 한복을 졸라매가지고 손들고 나갔어 항복하고 내려오면 죽이지 않는다는
.
삐라를 보고 안그래도 내려가자고들 이야기하던 중이었거든 다들 너무 지쳤지 토
.
.
벌대들은 우리를 모두 덕수파견소로 끌고갔는데 덕수리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
는 우리한테 돌멩이질을 하기 시작하는 거라 물도 막 끼얹고 말도 못했어 폭도새
.
.
끼들 보라며 우리는 죽어질까봐 숨어만 살다보니 폭도가 되어버린 거라
.
.”
살아가야 하는 일의 책임을 지고
7.
그러나 이 거대한 비극 한가운데서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당장 먹을 것 입을
.
,
것 덮을 이불 하나 없는 처지에서 생존이 가장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살해되거나
,
.
투옥되어 남자들이 대거 사라진 마을에서 생존의 책임은 여자들의 어깨에 지워졌
다 당시 십대의 어린 나이에 지나지 않았던 소녀들도 이 짐을 피할 수는 없었다
.
.
특히 이승례의 고향마을 북촌리는
최대의 학살 피해자를 낸 곳으로 남자들이
4.3
거의 죽임을 당해 이후 무남촌 이라 불리웠다
‘
’
.
이승례;
나는 어려서 배를 타지 못해서 어머니와 함께 걸어서 북촌 해안가까지 와서 미역
“
을 채취했어 그걸 등짐 지고 다시 함덕까지 가서 널어 말려 팔았지 그걸 팔아야
.
.
쌀 한되라도 받고 와서 연명할 수 있었어.”
북촌리 바다 해녀들의 물질
.
.
지금은 고무옷 입고 하니까 겨울에 물질해도 춥지 않은데 그때는 속곳 하나 달랑
“
입고 물안경 끼고 했어 그렇게 물질하다가 나와 불 쬐러 불턱에 모여앉으면 다리
.
도 벌겋고 가슴도 벌겋게 변해 그러면 우리끼리 가슴을 보면서 꽃피었져 곱다고
.
,
웃어 불턱에서는
일어난 때라도
사건 이야기는 그다지 안했던 것 같아 서
.
4.3
4.3
.
로 다같은 일을 당했고 슬픈 일인데 말해서 뭣해.”
무장대의 습격을 막기 위해 돌을 이고지고 와 마을의 성담을 쌓는 일 보초를 서는
,
일도 여자와 노인들의 몫이 되었다.
이승례;
- 22 -
어머니는 함덕 살 때도 성담 쌓으러 다녔는데 북촌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성담을
“
쌓는데 나갔어.”
북촌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나도 보초를 섰어 보초서다가 노랑개 온다 검은개 온
“
.
‘
’ ‘
다 알리는 거야 보초 서러 나오라 할 때는 앉을 때 덮을 웃옷을 둘러메고 가서 밤
’
.
새고 돌아와 그걸 몇 년을 했어
.
.”
위 당시 제주 전역에서 무장대의
< ;
습격을 막기 위해 쌓았던 돌담 젊
.
은 남성들이 대거 희생되어 마을
을 둘러싼 성담을 쌓고 지키는 것
은 여자들과 노인들의 몫이었다
.
아래 당시 여자들이 보초를 서는
;
모습
>
그 치욕에는 입이 없다
8.
여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채계추;
평대에서 소개생활 할 때 군인들이 고운 처녀들을 데려다달라고 해서 하룻밤 데리
“
고 잠잤다가 보내고 그랬어 그때 처녀들 많이 당했주 남편이 있거나 아기를 데리
.
.
- 23 -
고 있는 여자들은 괜찮았는데 처녀들은 막 괴로웠어 그래도 나중에 그 처녀들이
.
시집도 가고 그러니까 모두 비밀이지.”
홍난선
년생 대흘리
년 채록
(1929
,
2005
);
한번은 난데없이 저녁먹고 다들 누웠는데
시쯤 되어서 군인들이 한 여덟명 왔
“
10
어 다 일어나 얼굴 들어 얼굴 들어 해서 얼굴 드니 자기네 보기에 젊고 아기라도
.
!
!
없고 그런 사람들을 일주일 저녁을 하여튼 매일 저녁 와서 데려나가 강간을 하는
거라 그러면 여자들이 맨날 밥도 안먹고 울고 있기만 했어
.
.”
그러다 하루는 사람들 다 나오라 해서 남자들 젊은 여자들 한쪽에 세워서 조사할
“
,
거 있다고 데려가 그때 우리 시누이도 열아홉 그 나이니 거기 들어갔지 그런데 산
.
.
으로 올라가선 와다다다 와다다다 막 볶는 소리가 나 시누이는 시신도 못찾았어
.
.
그 강간당한 사람들이 다 죽은 거지.”
한정선
년생 삼양동
년 채록
(1930
,
, 2004
);
동서는 아기를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한 사람이 저 도피자 가족들 살리지 말라 고
“
.
‘
해서 옷을 다 벗기고 때리고 겁탈하고 그때 임신 예닐곱달 되었는데 하도 맞아서
...
죽어버렸어 이제도 동서 생각하면 기가 막혀.”
채계추;
그놈들 육지에서 온 토벌대들이지 제주도 사람들은 아니야
“
.”
곳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 서북청년단이 있었다
년
월
일
.
. 1948
10
28
미군보고서는 은밀한 모병을 통해 서북청년단원들을 제주로 파견했다 고 보고하고
“
‘
있다 그해
월
일 이들 중
명이 정식 경찰로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약
.
12
13
620
여명으로 추정되는 이들 대부분이 경찰과 군으로 흡수되었다 이들은 사라진
1000
.
남자 대신 그 아내를 대살하고 성폭행하고 윤간하고 그 대상들을 모두 죽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가족 약혼자 배우자 남성들의 목숨을 빌미로 강제결혼을 하기도 했다
.
,
,
.
실제로 국방부가 발행한 한국전쟁사 에서는 한국전쟁 전후로 제주도에 파견된
<
1>
‘
남성의 결혼이 증가했다 고 쓰고 있다
’
.
책상 위에 녹음테잎이 돌아간다 오래전 채록된 구술 증언의 목소리다
.
.
채길두
년생
당시 제주도립병원 총무과 직원
년 채록
(1916
, 4.3
, 1996
);
내가 아는 양아무개는 죽을 거였는데 서청단장 김재능이 그의 누나를 빼앗는 조건
“
으로 목숨을 살려주었어 서청 출신 김묵도 성산포에서 맘에 드는 여자를 빼앗아
.
살았고.”
- 24 -
가장 악독한 것은 연대 정보참모 탁성록이란 인간이야 탁성록은 인간이라고 할
“
9
.
수 없는 놈이었어 예쁜 여자들만 여러 번 바꿔가며 살았는데 나중에 제주를 떠나
.
게 되자 동거하던 여자를 사라봉에서 죽이고 갔어.”
위 왼쪽 제주로 파견된 서북청년단 위 오른쪽 서북청년단 학살의 현장
<
;
/
아래 왼쪽 당시 악명 높았던 서북청년단 출신 연대 정보창모 탁성록
;
9
/
아래 오른쪽
당시 서북청년단 제주도본부 옛터
; 4.3
>
오랜 세월 이 치욕들은 봉인되었다.
당사자들은 죽어서 말을 못하고 살아서도 수치스러워 말을 못했다 미군정과 이승
.
만 정부가 찍은 붉은 섬 이란 낙인이 모든 악행을 묻어주었다
‘
’
.
빨갱이라는 꼬리표
9.
경찰에 끌려갔던 정봉영의 아버지는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모범수로 잘
.
있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직전에 거짓말처럼 돌아왔다 그런데 전쟁이 나고 일
6.25
.
3
만에 다시 잡혀갔다 한번이라도 관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모두 잡아간다고 했다
.
.
다시 관덕정 그 위로 자막
년
.
‘1950 ’
관덕정 앞에서 정봉영이 거리를 돌아본다.
- 25 -
위 강요배 그림 관덕정 광장
< ;
-
아래 당시 수형인 명부
;
>
처음 경찰에 잡혔을 때도 여기 갇혔는데 이번에도 관덕정 마당에 갇혔어 여기여
“
.
기 면회 갔던 어머니가 갖고 온 아버지 옷에서 냄새가 진동을 했어 땀에 쩌들어
.
.
썩다 못해 송장냄새가 나더라고 그리곤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버지 친구가
.
,
딱 한마디 전해줬어 봉영이 아방 월 초나흗날 죽었수다라고
.
7
.”
언제 어디에서 돌아가셨는지 돌아가신 게 맞기나 한지 정말 월 일날 돌아가신
“
7
4
겐지 아무것도 몰라. ”
년
가 발발하자 치안국은 전국적으로 불순분자 들에 대한 예비검속을 지시
1950
6.25
‘
’
한다.
월
일 토벌대는 예비검속으로 제주읍 주정공장에 수감했던 사람들을 사라봉 앞
7
27
바다에 수장시켰다.
월
일 서귀포경찰서 관내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명이 끌려나가 바다에
7
29
150
- 26 -
수장되었다.
월 일 제주경찰서 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수백명이 제주항 앞
8
4
,
바다에 수장되었다.
월
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수
8
19
,
백명이 제주비행장에 총살된 후 암매장되었다.
월
일 모슬포 경찰서 관내 한림면 대정면 안덕면 예비검속자
명 중
명
8
20
,
,
344
252
이 군에 송치되어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총살되었다.
위 왼쪽
도두봉에서 내려본 현 제주
<
;
공항 과거 정뜨르 비행장이라 불렸던 이
.
곳에
년 처형된
명과 한국전쟁
1949
249
,
발발 직후 예비검속 연행자
여명이 집
500
단학살되어 암매장되었다 위 오른쪽
이
/
;
곳에서 발굴된
희생자 유골
4.3
/
아래 백조일손지지
년 월
일 섯
;
. 1950
8
20
알오름에서 처형된 모슬포 경찰서 관내
예비검속자
명 유골을 유족들이 발굴
132
했으나 흙탕물 속에 뒤엉킨 유골을 구별
하기 어려워 큰 뼈를 대충 맞추어 이장
조성한 묘역
>
정봉영;
뉴스에서 그 발표를 보고나서였나 꿈에 자꾸 아버지가 나타나는 거야 내가 아버
“
?
.
지랑 택시를 타고 있는 거야 나는 앞에 타고 아버지는 뒤에 타고 택시는 동문 로
.
타리를 지나 동부두 쪽으로 달리고 있었어 택시가 여객선 타는 곳을 지나서 부두
.
제일 동쪽 끝으로 들어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사라진
,
거야 급하게 택시를 세워서 내려보니 순간 저 동촌에서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오고
.
,
아버지는 벌써 파도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어 내가 달려가서 아버지를 붙잡으려
.
고 안간힘을 쓰는데 잡을 수가 있나 깨어보니 꿈이더라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
바다에서 죽었다고만 생각이 돼.”
- 27 -
파도가 친다 제주 앞바다에서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
.
한라산 인적 없는 깊은 숲 속 이끼낀 나무들을 흔들며 바람이 분다
,
.
년 월 일 당국은 비로소 산간부락 주민의 마을 복귀를 허용했다
1954
4
1
.
월
일 비로소 한라산 전역에 대한 금족구역이 해제되었다 외형적으로
사태
9
21
.
4.3
는 종식된 것이었다.
한라산
<
>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으로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고 반공이념으로
.
무장한 정부는 이후에도 오래동안 제주도민을 불온시하고 연좌제로 가족들의 미래
를 묶었다 많은 주민들이 빨갱이의 낙인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 낙인을 지
.
.
우기 위해 군이나 경찰에 자원입대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여자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영원히 사라졌으므로 정봉영이 빨갱이 의 자
.
‘
’
식이라는 낙인을 벗을 길이 없었다 열아홉살 정봉영이 여군에 자원한 것도 그때문
.
이었다.
아버지가 잡혀가서 매맞고 형무소로 보내지고 바다에 내던져졌던 바로 이곳 관덕
“
,
정 마당에서 도지사와 주민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출정식을 가졌어 솔직히 나
.
라 사랑이 뭔지 나는 그런 거 몰라 일본에서도 조센진이라고 무시만 당했지 죽이
.
- 28 -
진 않았거든 어른도 죽이고 아기도 죽이고 총쏘아 죽이고 죽창으로 칼로 찔러 죽
.
이고 돌로 쳐서 죽이는데 나라사랑이란 게 있을 수 있어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
아버지 빨간 줄 때문에 이미 우리 가족은 폭도가족이 되어버린 거야 나는 내가 군
.
인으로 가서 빨갱이 누명을 벗어야지 그 생각 뿐이었어.”
군 복무 시절의 정봉영
<
.
뒷줄 맨 왼쪽
>
그녀들의 눈물로 삶을 복원하다
10.
은 오래동안 입밖으로 꺼내 말해져서는 안되는 무엇이었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
4.3
.
,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했던 것은 풍비박산된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이
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사라진 공백을 여자들의 땀과 눈물로 채웠다
.
.
다시 또 봄이 오고 동백꽃이 피고 진다
,
,
.
그 동백꽃 아래서 이승례가 우리를 본다.
이승례는 병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남편과 시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묻고 고생만 하
.
다가 세상을 떴다 언니 둘이 시집가버리자 승례가 세 오누이 어머니 역할을 했다
.
.
사는 일이 급해 어머니를 그리워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
원정 물질을 갔다 울산 삼척 거제도 전주 여수 등을 몇 년씩이나 떠돌았다 여동
.
,
,
,
.
생을 먼저 시집 보내고
살 되어서야 아무 것도 없는 집에 시집가서 남 녀를
21
1
2
낳았다.
육지 갈 때는 배가 먼바다로 나가려고 하면 우리 배가 잘 간다 너네 배가 잘 간다
“
,
하면서 시합해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오게 되지 보통 음력 월에 가면 월
.
.
3
8
추석 전에 와야 돼 노래 중에 언제면 동동 월 돌아오리 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
‘
8
’
- 29 -
노래만 나오면 해녀들이 모두 울어 아기들 떼어두고 물질 가면 그렇게 아기들 생
.
각만 나.”
이런 노래야 이승례가 노래 부른다
.
.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요 넬 젓엉 어딜 가리 진도 바당 한골로 가
“
/
/
세 한착 손엔 빗창 심어 한 질 두 질 들어가보난 저싕도가 분명하다 이어도사나 우
/
/
/
리 어멍 날 날 적에 가시나무 몽고지에 손에 괭이 배길려고 날 낳던가
/
.. ”
그 동백꽃 아래서 김연심이 우리를 본다.
처형된 홀어머니와 큰언니를 열한살 소녀의 손으로 묻고난 뒤 김연심은 고아가 되
었다
년 봄에 잡혀간 오빠는 대구형무소로 갔다는 소식 이후에 영영 다시 만
. 1948
날 수 없었다 큰아버지집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다 돈을 벌러 부산 영도에 가서
.
통조림 공장 양재점 등에서 일했다 별 보며 출근하고 별 보며 퇴근했다 그녀는 지
,
.
.
금도 문닫으면 앞이 안보이던 그 깜깜한 하꼬방 꿈을 꾼다
년 후 제주로 돌아와
. 5
찢어지게 가난한 집 남자와 결혼을 했다.
시댁은 아홉 식구에 일을 해도 일을 해도 먹을 게 없었어 여름철 임신한 몸으로
“
.
볕이 과랑과랑하는 더위에 메밀밭에 뿌릴 불치 거름을 져나르려니 죽을 지경이었
지 그 와중에 첫아이를 낳았어 그런데 먹은 게 없으니 젖이 안나왔어 친정부모 없
.
.
.
는 삶은 울타리가 없는 삶이라는 것은 발자국을 뗄 때마다 느꼈지만 이때처럼 어
,
멍 생각에 복받친 적이 없었어 긴긴 겨울밤 같이 울던 첫애는 아마 평생 울어야
.
할 울음을 그때 다 울었을 거야 배고파 그렇게 울었던 거지
.
.”
그 동백꽃 아래서 채계추가 우리를 본다.
채계추는
당시에 첫 아기를 낳았다 세화장에서 밀가루 배급을 준다고 해서 받
4.3
.
으러가다가 길에서 진통이 와서 겨우겨우 움막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아기를 낳았
다 시댁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식구는 아홉에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손 귀
.
.
한 집이라 시어머니가 아이 많기 낳기를 원해서 그녀는 줄줄이 일곱 아이를 낳았
다 그 아이들 다 키우려 하다보니 아기가 울어대도 밭에서 일만 해야 했다
.
.
옛날에는 아기 낳고 사흘이 되면 꼭 바닷고기 국을 끓여먹어야 피가 삭는다고 했
“
거든 첫 아기때 그 난리통에 그걸 어떻게 먹을 수 있었겠어 고기가 어디 있어 거
.
.
?
의 스무날이 되어갈 때쯤 자리 한 사발 사서 그걸 잘라서 국 끓여먹었어 그게 잊
.
혀지지가 않아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움막에서 난 첫 아기는 결국 죽어버렸어
살
.
. 4
나던 해에 그때 남편은 물론 남자들은 모두 군인으로 쓸어갈 때라 아기가 아파도
.
...
- 30 -
약 한첩을 못써보고 그냥 아파서 죽었어.”
동백꽃
<
>
그 동백꽃 아래서 정봉영이 우리를 본다.
정봉영은 봇짐장사 식모살이 장공장 일꾼을 거쳐 여군에 입대했고
년에 제대
,
,
1960
했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이면 노처녀라 총각한테 시집을 갈 수 없었다 아이 둘 딸
.
.
린 홀아방이라 해서 결혼했는데 가보니 전처에서 이미 다섯 오누이가 있었다 남편
.
일이 잘못돼 수입이 없어 친정에서 쌀을 빌어 오남매를 거두어먹였는데 그렇게 살
,
았어도 남편은 빨갱이 종내기 라고 그녀를 구박했다 그 소리를 듣고 살 수는 없어
‘
’
.
임신한 몸으로 집을 나왔고 아들 하나 데리고 홀로 장사를 하다 년 후에야 남편
,
9
과 다시 합쳤다.
결혼 전에야 호적 같은 거는 안들러보니까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아버지 일을
“
알게 된 거지 빨갱이 종내기 라고 밥도 한 상에서 못먹게 했어 그러다 임신 개월
. ‘
’
.
7
에 밥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구둣발로 엉치를 차버리더라고 너무 서러워서 그 길
.
로 일어나서 친정집으로 와버렸어 빨갱이 종내기 소리 들으면서 살 수는 없잖아
.
.”
그 동백꽃 아래서 홍춘호가 우리를 본다.
홍춘호 가족은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화순리에서 소
.
똥말똥 쌓아두는 남의 집 움막을 빌려 자리잡았다 움막에는 이불도 없어 땅을 파
.
고 불을 피워서 그 불 하나에 의지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병원 한번 가보
.
.
지 못하고 엿새간 앓다가 세상을 떴다 봉영의 남동생이 태어난 지 딱 석 달만이었
.
다 가진 게 없어 장례도 제대로 못치르고 입은 옷 그대로 짚에 싸서 땅에 묻었다
.
.
아버지가 없으니 나날이 사는 게 전쟁이었다 좁쌀죽 한 술이라도 뜨면 다행인 삶
.
- 31 -
이었다.
내가 스물한 살 때 누가 소개를 해서 시집을 갔어 내가 시집간 뒤에도 어머니는
“
.
돌아가실 때까지 그 막살이에서 살았어 내가 어머니 임종을 지켰지 죽어가는 어머
.
.
니를 붙잡고 우리 동생 하나 있는 거 잘 보살펴달라고 오뉴월 장마여서 안개가 자
.
욱하게 낀 날 화순리 막살이에서 내가 울면서 빌었어 그리고는 오갈 데 없는 살
,
.
9
남동생을 데리고 시집에서 살았으니 오죽 천대를 받았겠어?”
화순리 재남밭동네 막살이 돌담 쌓았던 흔적은 아직도 그 공터에 남아있다.
채계추와 홍춘호는 끝내 고향 마을에 돌아가지 못했다 가시남동과 무등이왓은 폐
.
허로 남아 영원히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마을이 제주 전역에
.
여곳에 이른다
100
.
붉은 동백꽃들이 그들이 삼킨 눈물처럼 툭툭툭 떨어진다.
오솔길 따라 자우룩하게 낙화한 꽃잎들이 쌓인다.
다 이루었다
11.
이승례는 북촌으로 돌아와
세까지 물질을 했다 큰딸이 열댓살 되면서 그녀와 같
84
.
이 물질을 했다 공부는 많이 시키지 못했지만 물질은 잘해서 딸도 어멍과 같이 상
.
군이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딸이 주고 시집을 갔다
.
.
제주 여자들의 일터
<
>
돈이 없어서 아이들 큰 공부 시키지 못한 게 마음 아프지만 이제는 나 큰부자라
“
,
,
.
이제는 증손자까지 봤으니 나만큼 편안하게 잘 사는 사람도 없을 게라.”
김연심은 오라리 시집을 나와 제주 남문통에 따로 살게 되었다 뜨개질 발미싱 온
.
,
갖 부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고 아이들이 그나마 큰 병 없이 커주어서 살림을
- 32 -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어쩌면 일찍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보살펴준 음덕
.
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남문통 동네에서 큰 일 있을 때 서로 빌려주기 위해 놋그
.
릇 친목계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신기한 일을 겪으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되었다.
어머니는 시국 가까울 때 한라산 왕벚나무로 사오기궤를 두 개 만들었어 도두리
“
.
집 불탈 때 그 궤는 꺼냈는데 큰어머니가 돈 몇 푼 받고 그 궤를 팔아버렸지 그런
.
데 수십년 지나 남문통 친목계에서 놋그릇을 담아둘 궤를 사왔는데 세상에 그 궤가
친정어머니 궤였어 나중에 스텐레스 그릇이 나와 놋그릇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
친목어른이 그 궤를 내게 주었어 세상이 돌고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 거라 그때 심
.
.
정은 뭐라 말할 수가 없어 어멍 얼굴 보듯이 저 궤를 봐
.
.“
정봉영은 장사를 하고 구내식당을 하고 하숙을 치면서 돈을 모았다 덕분에 아들
,
,
.
공부 뒷바라지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 내가 영특하다며 나중에 서울대학교 시켜줄게 노래를 불렀어 그 난리
”
.
통에 대학은커녕 초등학교도 못가봤지만 그래도 내 속으로 낳은 아들이 서울대학교
를 갔으니 아버지 소원 풀이는 한 건가 우리 아들 처음 미국 회사갈 때 조사를 얼
?
마나 많이 받았는지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건 우리 아버지 빨간 줄을 내가 지
웠기 때문이겠지.“
채계추도 그랬다
끝나고 살림 밑천이 된 것은 소 한 마리였다 그 소를 키워서
. 4.3
.
밭을 샀고 밭 팔아서 아들 육지 대학을 시켰다 그 아들이 결혼을 해서 남편과 그
.
녀를 효도관광으로 모셨다.
아이고 우리 살아온 역사는 볼꼴 아니볼 꼴을 다 보고 고생고생하면서 살았주
그
“
..
러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어 겨우 일어나 조금씩 말을 해갈 때 큰아들내외가
.
우리를 모시고 불국사 여행을 갔어 남편하고 호텔방에 둘이 누우니까 남편이 내
.
손목을 푹 잡으면서 이렇게 좋을 수가 어서 그렇게 말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처
‘
’
.
음 행복한 순간이었주
,
.”
홍춘호는 시집에 동생까지 데려와 사느라 부모 제사도 제대로 지내지 못했다 어두
.
울 때까지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저녁 준비해서 식구들 먹이고 그러고 난 다음이
야 먹는 밥 한그릇 떠놓고 절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이 없을 때는 이웃에서 산듸
.
쌀 한 사발 빌려 죽을 쒀서 올렸다 그런데 그녀도 이제 허리 펴고 살고 있다
.
.
이제는 나도 동생도 이만큼 잘 살고 있으니까 이제는 떳떳하게 웃으면서 살고 있
“
어 화순 목장에 아버지 묘를 이장해온 지가 한
년 되는 거 같아 아버지 돌아가
.
15
.
- 33 -
셨을 때 아무 것도 못해드린 게 너무 마음에 걸려서 이장할 때 옷도 새로 해놓고
원칙대로 다했어 이불 한번 못덮어보고 돌아가셔서 이불도 하나 해서 넣었어 이제
.
.
야 할 일 했다 싶어.”
북촌리 골목골목을 돌아가면 이승례의 집 집 마루에 앉아 그녀는 멀리 바다를 바
.
라본다.
바람센 날은 밭에 가서 일하고 물질 때가 되면 물에 들고 그렇게 살았어 지금도
”
.
마찬가지야 북촌리 여자들은 물질하다가 조팟에 가서 검질 매고 하면서 다리가 다
.
휘어졌어 이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은 여자들이야
.
...“
에필로그
12.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목소리들
-
의 광풍 속에서 여성들의 희생은 컸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또 가족의 생계를 위
4.3
.
해 온 생애를 노동에 바쳤고 폐허가 된 마을을 재건하는 데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녀들의 이름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제주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선
희생자를 이렇게
4.3
4.3
규정하고 있다 제주
사건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장애가 남
. ‘
4.3
,
은 사람 또는 수형자 라고
당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은 국가가
에
’
. 4.3
4.3
대해 규정한 희생의 범위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천읍에 세워진 제주
희생자 북촌리 원혼영위 위령비에는
년 군인들에게
‘
4.3
’
1949
학살당한 주민들 명단이 새겨져 있다 김
모
한
처
이
녀
. ‘
( )’ ‘
( )’ ‘
( )’
母
妻
女
○○
○○
○○
홍
자
희생자는 모두 남성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문 모씨는 희생된 딸
‘
( )’...
.
子
○○
이 둘이라 문
여
가 두 번 되풀이되었다 여성은 그저 남성인 호주의 부속
‘
( )’
.
女
○○
적 존재일 뿐인 것이다 어머니건 아내건 딸이건 여성은 역사의 희생자로서도 제
.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이 비는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
.
왼쪽 북촌리
희생자 위령비 오른쪽 봉안된 원혼영위에는 호주의 이름만 기록되었다
<
;
4.3
/
;
.>
- 34 -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들은 역사의 실재로 존재했다
.
.
제주 밭에서 바다에서 일하는 여자들
,
.
밭에서 호미질하는 풀을 뽑는 쇠죽을 끓이는 그녀들의 투박하고 주름진 손 손
,
,
,
,
,
손 바다 속에서 미역을 따는 테왁을 잡는 불턱에서 불을 쬐는 그녀들의 투박하고
.
,
,
,
주름진 손 손 손
, , ...
그녀들의 주름살처럼 핏줄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제주 산야의 길들 그 길 위로
,
.
다시 안개가 밀려온다 안개 속에 웅성거리며 흩어지고 겹치며 뭉개지는 여자들의
.
목소리가 밀려온다.
강요배 그림 팽나무와 까마귀
<
-
>
아버지는 죽어불고 어머니는 골골대고 집은 불타불고
”...
.. “
남동생 셋이 굶어서 죽었어
”...
. .“
평생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수시로 까무러치고
”...
. .“
아무한테도 아무한테도 말을 못했어
”...
. .“
- 35 -
안개 사이로 마을의 팽나무들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 오랜 가지들 위로 목소리들
.
이 흩어진다 안개 속으로
기념관의 수많은 위패들이 드러나고 다시 묻힌다
.
4.3
,
.
그 위로 파도처럼 안개가 목소리들이 몰려온다
,
.
이 안개는 언제 걷힐 것인가.
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