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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평

심사  구분

본심

심사  장르

 우리는 제주 4‧3의 역사적 비극과 현재적 삶의 현실을 수용하면서 민중 일반이 지니는 삶

의 역동성을 살려내는 작품을 주목하기로 하였다. 또한 4‧3의 구체적 사실의 엄정함을 놓치

지 않으면서 동시에 전지구적 삶의 요구인 생태문명 중심의 사고를 시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그점에서 먼저 거론된 작품은 음력 12월 18일 밤외 9편이었다.

「음력 12월 18일 밤」 외 9편의 장점은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되 감정의 

절제를 유지함으로써 언어적 울림의 힘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학적 증언의 당위

성을 앞세운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사건의 객관적인 고증이나 주관적인 감정의 고양을 강조

하는 것과 달리 「음력 12월 18일 밤」 외 9편은 이러한 문제점에서 벗어남으로써 문학적 

수월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시적 자아를 역사적 현실에 투사하면서도 동

시에 그와 역사적 현실 사이에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개입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시적 효과처

럼 보인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다랑쉬굴의 고백」,「천 개의 눈」, 「빙떡」 등의 

수준은 매우 뛰어나다. 이 작품들은 시적 울림의 크기가 목소리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만 응모작의 수준이 일정하지 못한 점, 어법의 신성함에 비

해 시적 대상 자체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점 등이 아쉬웠다. 

 그런 점을 말끔히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금번 4‧3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으로 ‘현

무암의 폐활량’외 9편을 응모한 시인의 작품 중 ‘현무암의 폐활량’을 선정하였다. 시인

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 뚫린 현무암에 생명을 부여하여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

체로 살려내는 시의 묘법을 터득하고 있다. 제주 어느곳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이야

말로 ‘섬을 붙드는 마지막 부력’임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또한 ‘이것은 돌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은 누군가의 폐’라고 동시에 말하면서 지

금 오늘의 제주도에 흩어져 있는 죽은 현무암들이 살아 병존하고 있음을 밝혀 오늘의 현실

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하다. 

 또한 시인은 빛을 본다는 관광(觀光)의 의미를 환기하면서 평상에 앉은 할머니라는 화자를 

통해 “속솜허라, 이 구멍에 네 가시아방 담뱃대 소리가 있다”며 그 육성을 생생하게 들려

준다. 지금 여기 살아있는 사는 모든 이들에게 ‘문고리를 흔들며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가시아방’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시인은  또한  시의  직능을  ‘돌의  입술을  열어젖’히는  일임을  과감하게  선포하면서  같이 

응모한 「동백, 붉은 낙법」 「평화는 동사다」등의 작품을 통해 시가 지닌 지성적 육성의 

운동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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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그러한 과감한 운동성의 배후에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관념성의 미혹에 대한 경계

도 없지 않았다는 의견도 같이 제시함으로써 당선자가 앞으로 작품활동을 하며 지켜갈 관념

적 미망을 벗어나 생생한 시의 경지를 늘 염두에 두는 시적 긴장미를 환기하기로 하였다.

 다시 한 번 당선자의 작품이 지니는 위용에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드린다. 

 2026년  3월   12일

심사위원장 강형철   심사위원 고봉준 고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