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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중등부 대상

제주의 기억

신성여자중학교

3학년 김다미

작은 섬을 맴도는 죽음을

한라산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작은 마을을 뒤흔든 총소리를

돌하르방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어미잃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돌담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집을 잃은 가족의 허탈함을

바다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 날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그 날 강자와 약자의 사이에서 그 날 오해와 진실의 사이에서

일어났었던 모든 일 하나하나를

제주도는 조용히 기억하고 있다.

시부문 고등부 대상

돌담

서귀포여고 2학년 현윤주

혼자서는

오롯이 삼켜내지 못할 고통

쏟아낼 수밖에 없어

당신은 현무암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살갗을 깊숙이 파고드는

뜨거운 총구에

북촌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어

그렇게 식어 굳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당신들은

봄에 흩날리는

유채꽃이 되지 못한 채

쓸리는 돌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돌담을 쌓습니다.

무너져버린 당신의 삶을

그날의 기억을

쌓습니다.

매서운 바람

쓸리는 돌멩이로 남지 않게

탑을 쌓습니다.

당신들의 넋 위에

손을 얹습니다.

메워질 수 없는

당신의 그 아린 구멍 속에

유채꽃이 분분히

내려앉습니다.

산문부문 중등부 대상

허물어진 돌담

서귀포중학교 3학년 6반 김도훈

봄보다 겨울에 가까운 3월과는 달리 팝콘 같은 벚꽃과 눈에 보이는 곳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을 보면 4월이야 말로 진짜 봄임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포근하고 정겨운 4월에 숨겨진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부모님을 따라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 우연히 허물어진 돌담을 보게 되면서였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곳에서 우연찮게 보게 된 허물어지고 칡덩굴로 뒤덮인 돌담, 마치 공포영화에 나올만한 광경에 무섭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었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억 저편에 있었던 허물어진 돌담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느 해 벌초 날이었다. 무더운 여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온통 땀에 젖은 채로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억새풀을 헤치면서 걷는 것도 싫지만 한 곳도 아니고 여러 묘 자리를 찾아 오랜 시간 걷고 다시 풀을 베고 제를 지내고 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곤 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루해하는 날 위해서인지 걷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공부가 힘들지는 않니?” “잘 먹고 잘 자야 키가 큰다.등 이런 사소한 이야기에서부터 할아버지가 참전했던 월남전에 관한 이야기 등 매 번 비슷한 이야기여서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에도 마을의 흔적이 있었는데 이젠 흔적도 찾기가 어렵구나돌담만 약간 남았네.라는 말씀에 평소에 안하던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제주도는 용천수를 따라 해안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배웠는데 물이 없어서 옮긴 거 아니에요?" 라는 내 질문에 아버지는 너는 책 좀 읽고 공부 좀 하라는 꾸지람과 그런 건 나중에 알아도 돼 라는 말씀을 하셨다. 항상 내 편인 할아버지께서는 그렇잖아도 아버지와 견해가 조금은 다르셔서 아버지와 가끔 언쟁을 하시곤 하시는데 알 것은 알아야지라면서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제주에는 중산간 마을이 많았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4ㆍ3때 경찰과 토벌대들의 초토화 작전으로 대부분의 마을이 사라졌단다.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요?라는 질문에는 많이 죽었지……” 이 말씀 뿐이셨다.

할아버지는 당시에 너무 어려서…… 큰할아버지가 잘 알고 계시지, 살기 위해서 군에 들어갔으니까.마을이 사라졌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살기위해 군대를 갔다 이런 말들이 너무나도 낯설기만 했다.

벌초가 끝날 무렵 친척들이 한 곳에 모였고 가장 큰 어르신인 큰할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신선 같은 외모의 큰할아버지, 80세를 오래전에 넘기셨지만 그런 모진 세월을 살아오셨던 분 같지는 않았다. 4ㆍ3에 대해 여쭈어 볼까말까 망설임 중에 일본에 살고 계신 큰 고모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가족의 4ㆍ3이야기가 나왔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큰고모할머니가 오지는 못하지만 매 해 돈을 보낸다고 하면서 계속 적립 하고 있으니 나중에 쓸 곳을 생각해 보자고 ……. 그런데 나를 당황하게 하는 말이 또 나왔다. 밀항, 한날한시 제사, 연좌제 그리고 너무 많이 배워서 그렇게 되었다 등의 말이었다.

서귀포로 넘어 오는 차안에서 아버지에게 무슨 이야기에요? 라면서 이것저것 묻는 나의 말에 다 도착할 무렵에야 아빠도 4ㆍ3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만 알고 있고 겪어보지 않았기에 너처럼 어른들에게서 흘려들은 이야기나 가끔 신문기사로 밖에 알 수가 없지만 내 생각에는 2차 대전 후의 프랑스에서처럼 과거를 청산 못한 것이 4ㆍ3의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방 의자에 앉자마자 4ㆍ3을 키워드로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짧지 않은 시간 후에 내게 찾아 온 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굳이 단어로 표현한다면 깊은 슬픔과 실망감 그리고 죄스러움 이었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순사들이 해방 후에도 제복만 갈아입고 경찰을 하도록 놔둔 이승만 정부에 대한 실망, 그토록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재판 없이 학살을 당하고 내 또래의 아이들도 그 광기어린 학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고 지금껏 그러한 일을 몰랐던 나의 무지에 대한 실망, 무엇보다도 정부에 의한 조사가 끝나고 공식적인 결과가 나왔음에도 4ㆍ3은 빨갱이에 의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였다.

아침 등굣길에 본 4ㆍ3추모 현수막 앞에 붙어있는 화해와 상생이라는 문구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답답하기도 하고 내 스스로 4ㆍ3에 대해 정리가 안돼서 아버지께 드린 "4ㆍ3 뒤에 사건, 폭동, 항쟁 뭐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을 통해 비극이 가장 맞을 것 같다는 답을 얻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한민국 건국기에 생긴 비극, 이 말이 맞을 것 같다. 각자의 다른 이념과 신념으로 인해 생긴 충돌이지만 중요한건 그 속에서 희생되어진 수많은 평범한 제주도민들이 아닐까?

우리는 아픔을 너무 쉽게 잘 잊어버린다. 아니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나쁜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어야 할 일이 있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용서는 하되 결코 잊지는 않는다.유대민족의 유명한 격언이다. 4ㆍ3을 겪은 제주도의 어른들도 얼마 있지 않아 점차 주위에서 보이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라고 숨기고 싶은 역사라고 해서 잘 알려주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토벌대의 잔혹한 만행은 지금도 왜 4ㆍ3의 희생자들을 폭도로 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끔 해주었다. 지금껏 일본정부가 자신들의 만행을 줄곧 부인하듯이 말이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았을 정방폭포와 소낭머리 무더운 여름에 따가운 태양을 피하고 멱 감기 좋은 곳으로만 알고 있던 그 곳이 많은 사람들이 한스럽게 쓰러져간 학살터라는 걸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세워진 서복박물관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 잠시 가두어 두었던 수용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소낭머리에서 서복박물관을 거쳐 정방폭포에 이르는 길에는 4ㆍ3의 슬픈 진실을 알려주는 아무런 것도 없다 낯선 중국식 건물과 조각들이 길 옆에 있을 뿐이다. 알려고 노력해야만 알 수 있도록 돼버린 4ㆍ3의 진실, 한라산 허리 턱에 있던 허물어진 돌담처럼 많은 이들이 애써 잊으려하고 과거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진 게 4ㆍ3을 폭동으로 폄훼하는 이들과의 지루한 공방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화해와 상생은 결코 부인 할 수 없는 사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된 사실 아래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동안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그 진실이 밝혀져 국가추념일이 되었지만 갈 길은 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걸음씩 가다보면 될 듯 싶다. 그 진실을 증언해줄 수 있는 흔적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보전하는게 그 길 중에서 중요한 발자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제주도만이 가지고 있었던 4월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이젠 4월이 마냥 따스하고 포근한 봄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제주도의 이름 모를 산과 들, 동굴 그리고 해안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죄 없는 영령들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철부지 어린 중학생이지만 정말로 진실의 힘을 믿고 싶다. 왜곡되지 않은 4ㆍ3의 진실을 어느 누구나 어디에서나 알 수 있게끔 된다면 그 것이 비록 아픈 역사이지만 화해와 상생의 첫걸음이자 억울한 영령들을 달래고 4월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문부분 고등부 대상

동백의 눈물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2학년 고한솔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 갓 제주로 내려온 현도로서는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주먹을 쥐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집도, 땅도 빼앗기고 결국은 목숨도 빼앗겨 버린 어머니가 떠올랐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연설 소리에 잡생각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서북청년단의 일원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각 소대장들은 신입 대원들과 임무에 응한다!"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약속한 듯이 각자 무리를 지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현도는 두리번거리다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뱀처럼 징그러운 인상을 가진 그는 현도에게 다가와 팔을 툭 치며 싱긋 웃었다.

"자넨 나와 함께 가지."

그 남자의 이름은 태혈이었다. 그는 사회주의자를 '그놈' 이라 부르며 증오심을 표출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지? 사실 별거 아니야. 특히 그놈들은 말이지, 죽어 마땅한 놈들이거든."

현도는 그의 말을 무시하는 듯 보였지만 내심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태혈은 킬킬거리며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리켰다. 바닷가와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우린 저기로 갈 거야. 이곳 남자들은 죄다 그놈들이니까 모두 죽여. 빌어먹을 그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마을에 들어서자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나며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현도는 어느 새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비벼댔다.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춤대고 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현도는 홀린 듯 달려가 손에 쥐고 있는 죽창을 그에게 내리꽂았다. 공포에 어린 눈빛과 함께 죽창에 흘러내리는, 끈적하고 아직 온기가 남은 피가 손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흠칫하며 현도가 손을 떼자 신음소리를 내며 그 남자가 쓰러졌다. 첫 살인이었다. 그는 공포와 함께 희열을 느꼈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았다는 생각이 어느 새 자신의 머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다시 창을 뽑아든 그는 고개를 돌리다 태혈과 눈이 마주쳤다. 태혈은 다 안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도는 그제야 몸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며 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밤이 되자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현도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뜬 무수한 별들이 반짝였다.

"잠이 안 오나 보지?"

재현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소대장 중 하나인 그는 태혈과 함께 다녔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재현은 항상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들이 제정신이라고 생각하나?"

현도는 얼굴을 설핏 구겼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이었다. 재현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따라오라며 고갯짓을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넓은 공터가 나왔다. 현도의 얼굴을 더욱 구겨져 있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재현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죽인 사람들일세. 남자, 여자, 어린아이, 노인까지... 전부 우리가 죽였네."

현도는 불빛을 들고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도저히 '그놈들' 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5살짜리 어린아이 위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또래처럼 보이는 여자를 보자 자신이 희열을 느꼈던 것이 가증스러웠다. 저의 어머니를 짓밟았던 자들과 지금의 자신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문득 치솟는 역겨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공포에 어린 눈빛이 다시금 생각났다.

"우엑, 우에엑...!"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구역질을 해댔다. 자신이 상상해온 것과 달랐다. 그가 몸담은 조직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후회와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져 나와 땅을 적셨다.

"자네가 느낀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게. 자네가 죽기를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니니."

재현이 먼저 자리를 떴고, 이윽고 눈물을 멈춘 현도도 자취를 감췄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나간 아침은 아이러니하게도 화창했다. 또다시 학살의 시작이었다.

"오늘은 산으로 갈 거야. 동굴을 보면 그 자리에서 연기를 피워. 그놈들은 항상 동굴에 숨어 있거든. 연기를 피우면 뛰쳐나오던가, 그냥 거기서 죽겠지."

태혈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현도를 쳐다보았다. 그는 소름이 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도는 대원들이 아무도 없는 곳을 선택했다. 허둥지둥 올라갔을 사람들의 흔적들을 하늘이 덮어주었는지, 깨끗한 눈이 그를 맞이했다. 무릎까지 오는 눈을 헤치며 얼마쯤 갔을까,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이 보였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천천히, 깊숙이 걸어 들어가자 한 여자가 입을 틀어막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현도는 조용히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여자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공포에 찬 눈동자와 마주하자 현도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미안합니다."

여자의 눈에서 의아함과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현도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쌓였던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들썩이자 그는 탄식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여자의 울음소리가 차츰 줄어들자 그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잠시 후에 나오십시오. 아직은 위험할 겁니다."

그는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 태혈이 한가득 웃음을 머금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너도 '그놈' 이지. 더러운 것."

탕 하며 총 소리가 울렸다. 현도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헉 하고 숨을 내뱉었다. 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태혈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무릎이 푹 꺾이고 새하얀 눈밭 위로 붉은빛이 번졌다. 때마침 세찬 바람이 지나갔다. 우수수 하고 동백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도의 눈앞에 동백이 툭, 툭 떨어졌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본 것은 꽃이 아니었다. 눈물이었고, 죽임당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