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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념식 현장] 4‧3을 위로하는 일흔세 번째 봄
  • 작성자 : 4·3평화재단 작성일 : 2021-04-12 조회수 : 961

제주43을 위로하는 일흔세 번째 봄이 왔다코로나19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 43평화공원에는 많은 유족들이 모일 수 없었다. 매년 43일이면 1만여명이 모인 43희생자추념식은 이미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모두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26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희소식에 이어 모두의 예상밖으로 다시 43추념식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추모의례가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비바람속에 찾아낸 이름들대통령 내외의 방문

밤새 몰아치던 비바람은 추념식 당일까지 이어졌다. 우산은 피기조차 힘들었고 비옷마저 움켜쥐며 걸어가야 했던 날씨, 하지만 억울한 이들의 명복을 빌어줘야겠다는 마음까지 꺾을 순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제주43평화공원에 삼삼오오 단위로 모여든 43유족들이다. 43이 발생한지 73, 야속한 세월은 지나고 지났다. 악천후 속 겨우 43평화공원에 당도한 이들은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바닥에 과일과 생선, 제주(祭酒)를 꺼내며 절을 올린다.

43행불인묘역에서 만난 현말옥 할머니(75)이제 아버진 죄 어수다, 편안히 쉽서, 편안히 쉽서라고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현상구’, ‘제주읍 오등리 주소로 19507월경 영남지역에서 행불이란 사연만 짤막하게 남았다. 어렸을 때 현말옥 할머니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은 알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잡혀가는 모습, 이후 대구형무소에서 금방 돌아오겠다는 엽서만 받은 채 영영 이별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316일 제주지방법원이 무죄 선고한 43행방불명인과 수형인 335명 이름에 아버지가 포함되면서 조금이나마 한을 풀었다. 추념식 당일 위패봉안실, 각명비, 유해봉안관에도 유족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이들은 비에 젖은 고인의 이름을 닦고 절을 올리며 영령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올해 행정안전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한 제73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은 43일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엄수됐다.

올해는 비바람 날씨로 실내에서 진행됐으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참석 인원이 역대 최소 규모인 70명 이내로 축소됐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용 국민의힘 원내대표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 박범계 법무부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정근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 주요인사,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오임종 43희생자유족회장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 43기관단체 관계자 및 유족들이 참석했다.

이번 추념식에서도 가장 주목을 이끈 점은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이다.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격년마다 추념식에 참석하겠다고 언급했고 지난해 72주년 추념식에도 참석해 43특별법 개정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22621년 만에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다시 추념식에 참석, 43당시 희생된 이들과 유족들에게 예우를 갖췄다. 이와 함께 올해는 제주43이 발생한지 73년만에 군경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국방부장관(서 욱)과 경찰청장(김창룡)이 처음으로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추념식은 오전 101분간 제주도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린 후 오프닝 영상 상영, 국민의례(묵념사), 추모영상 기록의 흔적들상영,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유족사연 소개, 추모 공연 등 순으로 진행됐다.

#“43특별법 개정 후속 조치에 만전

   유족 치유에 힘써준 재단트라우마센터에 감사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 "43생존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이 오늘 내리는 비와 함께 씻겨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오늘 '4·3특별법'의 개정을 보고드릴 수 있게 돼 매우 다행이라며 추가진상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 지원 방안을 담은 특별법 개정으로 이제 4·3은 자기 모습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개정된 특별법은 4·3이라는 역사의 집을 짓는 설계도라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정부는 4·3영령들과 생존희생자, 유가족과 국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설계도를 섬세하게 다듬고, 성실하게 이행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도내외 각계각층에서 힘을 모아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도, 제주도의회, 제주도교육청을 포함한 124개 기관과 단체, 종교계, 학생, 정당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제주도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4·3특별법 개정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을 출범시켜 힘을 모았고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 협의회',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가 특별법 개정에 한 목소리를 냈다전국 곳곳의 시도의회에서도 각각 촉구결의안을 채택하고 국회도 여야 없이 힘을 모았다.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올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유족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있어 43평화재단과 43트라우마센터의 노력도 언급했다. 특히 지난해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3평화재단이 발간한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의 목차를 열거하면서 의미를 되새겼고 43트라우마센터의 설립과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부터 '4·3트라우마센터'가 시범 운영되고 있고, 개소 9개월 만에 12천여분이 트라우마센터를 다녀갔다상처 입은 분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애써준 제주4·3평화재단과 4·3트라우마센터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부는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대로 국립 트라우마센터로 승격하고, 많은 분들의 아픔이 온전히 치유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묵념사에서는 제주출신 김수열 시인이 집필한 우리의 4·3이 따뜻한 봄으로 기억되는 그날까지라는 추모글을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이 낭독했다. 이어 추모영상과 함께 허영선 4·3연구소장의 글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을 제주출신 배우 고두심씨가 낭송했다.

유족 사연은 4·3당시 부모와 오빠를 잃은 손민규 어르신(87)의 외손녀 고가형 학생(17대정여자고등학교 1학년)이 읽었다. 손민규 어르신의 오빠는 군사재판을 받고 복역 중 행방불명되었는데, 지난 31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할머니 이제 가슴속 응어리가 풀린다고 하셨죠? 이제는 제가 할머니의 상처를 낫게 해드릴게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심리치료사의 꿈을 이뤄서 할머니처럼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저 할머니를 생각하며 열심히 할게요. 그래서 꼭 할머니의 응어리를 다 풀수 있게 해드릴게요. 할머니 그때까지 꼭 건강하셔야 돼요. 사랑해요. 할머니.

유족사연이 낭독되는 동안 손민규 어르신은 눈물을 흘리며 눈가를 훔쳤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손민규 어르신과 고가형 학생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어 스윗소로우’(인호진, 김영우, 송우진)'푸르른 날'(송창식 원곡)을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추념식 공식 일정이 마무리됐다.

 

#21년전 연상케한 대통령의 서명식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식을 마친 뒤 김정숙 여사와 함께 4·3평화공원 위령제단으로 이동해 국방부 의장대의 지원을 받으며 4·3영령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제주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헌화하고 분향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헌화·분향하는 동안 싱어송라이터 하림씨가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이하은 학생(제주동중학교 1학년)제주의 봄을 불렀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위패봉안관으로 이동해 서욱 국방부 장관, 박범계 법무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임종 4·3유족회장,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4·3특별법 개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서명식을 진행했다. 이 서명식은 그간 7차례 개정된 4·3특별법과 시행령을 묶어 책자를 만들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 책자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43특별법 제정 서명식에 이어 올해 서명식에도 참석한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지난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서명은 어두운 역사이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제주43에 희망을 불어넣었고 이번 특별법 개정도 그때처럼 여야 합의로 의결돼 큰 의미가 있다앞으로 제주43이 희생자 명예회복과 유족의 아픔 치유로 발걸음을 내딛고 과거사 해결의 모범적인 사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는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한 유족과 도민, 국민들을 위해 제주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온라인 추모관을 운영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제주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