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문서보도자료 - 제주4.3평화상 수상자 선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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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도 자 료

제주4‧3평화재단

담 당

사무처장 고 수 남

723-4304

2015. 2. 5(목)일 부터 보도 바랍니다(총7P)

문 의

총무팀차장 오 승 국

723-4330

제주시 명림로 430(봉개동), http://www.jeju43peace.or.kr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 선정

제주4・3평화상 : 김석범(金石範. 일본)

제주4・3평화상 특별상 : 무하마드 이맘 아지즈(인도네시아)

제주4・3평화재단이 제정한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가 최종 선정되었다.

제주4・3평화상위원회(위원장 : 강우일 천주교제주교구 주교)는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金石範. 89)씨와 특별상에 인도네시아 나들라툴 울라마(NU. Nahdlatul Ulama) 전국이사회 의장인 무하마드 이맘 아지즈(Muhammad Imam Aziz. 54)씨를 선정, 지난 3일 수상 승낙을 받아 최종 확정했다.

4・3평화상 수상자인 김석범씨는 4・3 대하소설 화산도의 작가로 일본에서 4・3진상규명과 평화 인권 운동에 젊음을 바쳤다. 1957년 최초의 4・3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하여 일본 사회에 제주4・3진상을 알리고 1976년 소설 화산도를 일본 문예 춘추사문학계연재하기 시작하여, 1997년 원고지 3만매 분량의 원고를 탈고, 새로운 문학사조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창작 활동으로 일본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상(1984년)과 마이니치 예술상(1998년)을 수상했다.

1987년 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 도쿄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 오사카결성을 주도하여 4・3진상규명 운동과 제주국제공항 유해 발굴 필요성의 제기, 일본 과거사 청산 등에 대한 소신을 일본의 주요 일간지 등에 컬럼으로 발표하여 재일 동포사회의 평화, 인권, 생명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특별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이맘 아지즈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50만 여명을 학살한 ‘1966년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화해운동에 앞장서 국민통합에 기여했다.

이맘 아지즈는 2000년 학살사건의 가해집단인 NU(Nahdlatul Ulama : 나들라툴 울라마)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가해 단체를 설득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여 사회통합을 이루어냈다.

특히 압둘라 라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NU 의장 자격으로 피해자들에게 과거 NU회원들의 만행을 사과했다.

수상자는 청정한 물 프로젝트’ ‘피해자 무료 검진’ ‘피해여성 트라우마 치료’ ‘피해자 생업지원’ ‘협동조합 결성 지원운동을 통해 학살 피해자 구제에 힘썼다.

학살사건의 진상 규명과 화해운동을 수록 편집한 격월간지루아스(RUAS) 발행하여 사회통합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으며 NU 전국 이사회 의장으로서 화해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제주4・3평화상위원회는 지난해 7월부터 4・3해결에 공헌하거나 세계 평화 인권운동에 헌신한 유공자 25명을 선정 6개월 동안 검증을 거치고 지난달 수상자를 선정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수상자의 공적을 현지 확인하고 수상 수락을 받음으로써 수상자를 확정했다.

제1회 제주4・3평화상 시상식은 오는 4월 1일, 4・3 67주년을 앞두고 갖게 되며 시상식에서는 수상자의 수상 연설과 합동기자회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4・3평화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만불,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만불을 수여하게 되며 수상자 부부를 초청한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해 6월 어둠의 역사로 묻혀젔던 4・3사건의 진실을 전국화, 세계화하기 위해 4・3사건의 진상 규명과 평화인권의 신장, 민주발전, 사회통합에 공헌한 국내외 인사(단체)를 선정 시상하는 제주4・3평화상을 제정했다.

4・3평화상은 4・3평화상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하고 시상한다.

제주4・3평화상위원회 위원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강우일(천주교 제주교구장, 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위 원: 강금실(법무법인 원 고문변호사, 전 법무부장관)

김한욱(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전 행정자치부4・3처리지원단장)

문성윤(변호사, 전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

문정인(연세대학교 교수, 전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정구도(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

허향진(제주대학교 총장)

붙임 1 : 수상자 공적 요약

보도자료 원문은 공보관실 웹하드 기자실 폴더와,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붙임 1)

제주4・3평화상 수상자 공적요약

제주4・3평화상 : 김석범(金石範. 1925년생)

수상자 김석범은 4・3이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기인 1957년 최초의 4・3소설을 쓴 이후 20여 년에 걸쳐 4・3 대하소설 󰡔화산도󰡕를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에 4・3을 알리고, 4・3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전 생애를 바쳐 4・3진실 규명에 혼을 불어넣고, 국제적인 평화연대를 주장하는 등 인권의 존엄과 정신을 문학과 행동으로 구현하여 일본사회의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받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 4・3대하소설 <화산도> 4・3 국제 공론화, 진실규명 물꼬

4・3을 문학적 화두로 삼고 재일동포로 살고 있는 수상자는 4・3이 침묵과 금기의 시대였던 1957년 최초로 4・3소설<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한 이후, 1976년부터 20여년 연재한 대하소설 <화산도>로 4・3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며 4・3논의를 부각시켰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가치를 그려내고 있다는, 일본 문단의 평가를 받는 이 소설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상과 마이니치예술상을 수상, 일본 사회에 4・3의 참상을 알렸다.

또한 문학적으로는 일본 사회에 새로운 문학 사조를 이뤄놓았다는 평가와 함께 4・3학을 통해서 재일동포의 인권과 평화운동에도 기여했다.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 등 4・3진상규명 제기

1988년 40년만의 제주 방문시 비행장 활주로 밑의 억울한 4・3희생자 유해를 밟으며 제주땅에 선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4・3의 회한에 대한 첫 발언을 했다.

이후 제주 방문때 마다 제주4・3의 유해가 매장돼 있는 제주국제공항 유해 발굴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등 4・3의 진실을 규명할 것을 선도적으로 제기했다.

이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이 이뤄지자 유해 발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희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굽힘 없는 인권운동

국제적으로 제주4・3운동의 발원이 됐던 1988년 4・3 40주년 동경 추모행사는 김석범과 그의 문학이 큰 원동력이 되었으며, 1987년 탄생한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도쿄'를 주도하는 이론적 리더로 이 모임을 발전시켜오고 있으며, 이어서 ‘4・3생각하는 모임. 오사카의 결성과 이들 단체를 통한 4・3과 세계 평화, 인권에 관한 문제를 확산시켜 왔다.

평화 인권의 정신 구현

일본과 한국에서 개최된 강연과 세미나, 일본 주요 신문의 컬럼, 인터뷰 등을 통해 기억이 멸실된 민족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며 일본에 대한 과거사 사죄, 한국에서의 친일문제 등 과거사 청산을 굽힘없이 제기해 왔다,

또한 한국의 독재정권 시절인 1978년에도 도쿄에서 김지하 시인 석방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으로 장외 투쟁을 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김명식 시인 등과 함께 재일동포 지문 철폐 운동을 주도했다.

2012년에는 70년대 한국에서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배경이 된 소설 <과거로부터의 행진>을 출간하여 재일동포 사회의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 영향력있는 신문에 칼럼, 인터뷰 등을 통해 용기 있는 시대적 발언과 행동으로 재일동포의 권익, 생명과 인간의 가치, 민주, 인권의 존엄성을 발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재일동포의 정신적 지주

내년 졸수(卒壽) 90세를 앞둔 수상자는 일본 국적 취득에 대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이란 신분으로 일본에서 영구 거주하며, 결코 안온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그의 분명한 입장은 분단 이전의, 원래 조국인 조선의 자손으로 살겠다는 신념으로 조국통일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미래에 다가올 통일 조국을 기다리는 것이며, 동시에 험난했던 그의 시대를 증명하는 이름이며, 남북을 연결하는 완충지대로서의 의미이며,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 기호가 되고 있다.

수상자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재일동포 사회의 거대한 버팀목이자 삶의 지표로, 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하고 있다.

제주4・3평화상 수상자 공적요약

특별상 : 무하마드 이맘 아지즈

(Muhammad Imam Aziz. 1962년생)

무하마드 이맘 아지즈는 ‘20세기 최대 집단학살 사건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1966년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화해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수상자는 정치적 탄압으로 50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되는 인도네시아 ‘1966년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이 사건과 무관하면서도가해집단인 NU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가해자 측을 설득해 피해자 측과의 화해를 이끌어 냈다. 인도네시아는 ‘1966년 학살사건으로 철저히 인간 존엄성의 유린되고 화해상생의 공동체가 와해되어 사회발전이 지체되어 왔으나 수상자의 노력으로 인도네시아가 평화인권 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을 다졌다.

이맘 아지즈는 1965년~1966년에 인도네시아 군부와 이슬람단체 등에 의해, 그 당시 합법 정당이었던 공산당(PKI)의 당원들과 동조자 50만 여명(학계 추정)을 살해한 ‘1966년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가해-피해자들 간의 화해, 그리고 와해된 공동체의 복구를 사명으로 하는 인권단체 샤리깟(Syarikat)을 2000년에 창설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 ‘1966년 학살사건을 주도한 군부의 핵심인물이었던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이 1998년 퇴진하자, 수상자는 샤리깟(Syarikat)을 통해 ‘1966년 학살의 진상조사를 벌여 도네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학살 사건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해 검증하고 산당원과 키아이(kyai. 이슬람 학자공동체 지도자)의 서명을 받으면서 화해운동을 전개했다.

수상자는 가해 집단인 이슬람단체 NU(Nahdlatul Ulama)를 설득해 함께 화해 프로세스를 전개했다.

화해 프로세스에서는 학살에 가담했던 NU 회원들과 학살 피해자들 사이의 회합을 여러 도시와 지방에서 열고, 이 회합에서는 종일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한 후 회합을 마칠 때 가해자들, 특히 NU의 가해 청년들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특히 압둘라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당시 NU 의장 자격으로 피해자들에게 과거 NU 회원들의 만행을 공식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화해 프로세스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행됨.

- ‘1966년 학살희생자들과 가족들은 차별법(discriminatory law)으로 인해 취업이 허용되지 않았고, 낙후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극빈 생활을 하고 있었다. NU 회원들은 이들 건조 지역에 수도관을 보수매설하는 청정한 물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 ‘1966년 학살피해자들에게 무료 건강 검진을 비롯해, 침술 및 마사지요법 등 대안의학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가 하면, 특히 피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카운슬링을 통해 트라우마(trauma)를 치료했다.

- 학살피해자들이 기계 정비소와 같은 소기업을 세울 수 있도록 자본을 지원해 주고, 여러 형태의 협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대출을 알선해주었다.

-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하여 연극과 다양한 예술 행사를 마련해 화합 환경을 조성해나갔다.

수상자는 ‘1966년 학살사건의 진상조사와 화해 활동을 수록한 루아스(RUAS)라는 격월간지를 발행해 국회를 비롯한 주요 기관과 전국에 배포하여 참상의 실상을 알리고 화해운동의 성과를 높였다.

또한 메네무칸 켐벌리 인도네시아’(진실규명보고서)를 주도적으로 발행하여 ‘1966년 학살사건 진실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