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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재단

보 도 자 료

문 의

기념사업팀장

723-4350

담당 송지은

2013.2.18(월)

723-4350

‘43평화의 길성안 길 걷기 행사

제주시 4․3관련 주요유적지 연결, 당시 경험과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길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김영훈)이 43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현장과 잃어버린 마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43평화의 길을 구축, 그 두 번째 걸음을 시작합니다. 43 주요사건이 벌어졌던 제주시 43관련 주요유적지를 연결 한 길을 걷습니다.

길 걷기 행사는 43 50주년을 상징하는 신산공원 해원방사탑에서 시작해 수많은 주민들이 수감되었다가 육지형무소로 떠나거나 형무소로 끌려갔던 주정공장까지, 생존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43의 광풍이 휩쓸고 갔던 그날을 더듬어 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번 43평화의 걷기에는 당시 북초등학교 출신으로 제주여중 선무공작대 활동을 했었던 문정열 선생님과 수형생존자이면서 43후유장애를 겪고 있는 양일화 어르신이 동행하여 그날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입니다.

도내외에 거주하고 있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고 18일부터 21일까지 선착순 50명을 전화로 모집 합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도시락 방한복을 지참 해야 합니다.

단, 집결지인 신산공원 해원방사탑과 해산지인 주정공장터 사이에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습니다.(당일 대중버스 노선 및 시간표를 제공합니다.)

한편, 이번 길 걷기 행사는 제주도 전역에 산재한 43유적지와 잃어버린 마을을 결해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43평화의 길구축을 위한 단초를 마련하고자 지난 2012년 12월 처음 시도되었고, 이번에는 제주시내 길을 개발, 두 번째 걸음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참가접수 기타문의 : 기념사업팀( 064-723-4350, 4307. FAX 064-723-4303)

‘43평화의 길성안 길 걷기 행사

제주시(당시 성 안) 4․3관련 주요유적지 연결, 주요 사건을 들으며 걷는 길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김영훈)이 43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현장과 잃어버린 마을 이야기를 바탕으로 ‘43평화의 길을 구축, 그 두 번째 걸음을 시작합니다.

당시 주요 관공서가 있었고 43의 주요사건이 벌어졌던 제주시(당시 성 안)의 43관련 주요유적지를 연결 한 길을 걷습니다. 길 걷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43 50주년을 상징하는 신산공원 해원방사탑에서 시작해 43의 끝머리인 예비검속 희생자를 낳은 주정공장까지, 생존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43의 광풍이 휩쓸고 갔던 그날을 더듬어 가게 될 것입니다.

제 목 : 43평화의 길걷기(제주시 성안 길)

행사일시 : 2013년 2월 23일(토) 오전 10시 ~ 오후 3시

코 스 : 해원방사탑(신산공원) - 삼성혈 - 광양옛길(광양성당길) - 농업학교 터(삼성로) - 성조기게양대 터(전농로) - 오현중학원 터(남수각로) - 가라쿳물 터(남수각로) - 도립병원 터(구 제주대학병원길) - 관덕정광장 - 신보사 터(칠성로) - 서북청년단본부 터(칠성로) - 인민위원회사무실 터(칠성로) - 9연대헌병대 터(칠성로) - 동문로타리 - 산지천 - 동자복(건입동로) - 주정공장(동부두길)

집결장소 및 시간 : 신산공원 해원방사탑 앞(9시 50분)

해 산 : 주정공장 터(3시)

모 집 : 2013년 2월 18일부터 21일(목) 18시 까지 선착순 50명(전화접수)

참가비 : 무료(차량 및 음료, 우비 등 비상물품 제공)

준비물 : 도시락 및 방한복

문의 : 기념사업팀( 064-723-4350, 4307. FAX 064-723-4303)

세부 일정

일시

시 간

장 소

내 용

2.23

10:00~10:30

신산공원

개요 설명

10:30~12:00

-4․3해원방사탑

-삼성혈, 광양옛길

-농업학교터

-성조기게양대터

-오현중학원터

-가라콧물터

-도립병원터

-조일구락부옛터

-관덕정광장

(법원,경찰서)

-4·3의 개괄적 공유

-스토리 텔링

-정뜨르비행장 학살

-해방과 교육·자치 열기

- 3.1대회

-문정열 선생님 증언

12:00~12:40

점심식사(장소 : 북초등학교)

12:50~14:50

-제주북교

-경찰감찰청터

-제주신보사터

-서북청년단본부터

-인민위원회사무실터

-9연대헌병대터

-동문로타리(해병혼탑)

-산지물, 동자복

-주정공장

- 스토리 텔링

-공연: 노래 (4.3관련노래)

시낭송(한라산이여)

-산지천이야기

-주정공장

(예비검속희생, 연좌제)

-양일화 어르신 증언

코스 : 해원방사탑(신산공원) - 삼성혈 - 광양옛길(광양성당길) - 농업학교 터(삼성로) - 성조기게양대 터(전농로) - 오현중학원 터(남수각로) - 가라콧물 터(남수각로) - 도립병원 터(구 제주대학병원길) - 관덕정광장 - 제주신보사 터(칠성로) - 서북청년단본부 터(칠성로) - 인민위원회사무실 터(칠성로) - 9연대헌병대 터(칠성로) - 동문로타리 - 산지천 - 동자복(건입동로) - 주정공장(동부두길)

제주시 내 성안 길 지도

유적지 관련 자료

해원방사탑

1998년 4월 3일. 4·3 50주년을 맞아 제50주년 제주4·3학술·문화 사업추진위원회에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다. 제주도의 문화풍속에 따라 추진위에서는 4·3로 인한 대규모 인명 및 물적 피해 그리고 공동체 파괴 등 무형의 피해를 재앙으로 간주해 해원방사탑을 쌓았다.

농업학교 터

4·3당시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으로 9연대 본부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일제 시대에는 일제에 항거한 학생운동이 있었고 해방 이후엔 미국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거세었던 곳이다. 47년 3.1시위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농업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경우가 많았다.

오현중학원 터

1947년 3월 1일 당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3·1기념집회를 가졌던 곳이다. 즉 농업학교, 제주여중, 오현중학원 등 학생들을 주축으로 제28주년 3.1기념집회를 개최했었고, 이 집회는 당시 북국민학교에서 집회를 주도했던 3.1기념투쟁위원회와는 별도로, 1947년 2월 24일 결성된 각 급 학교 3.1기념 준비위원회가 주도한 것이다.

도립병원 옛터

도립병원은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부상당한 사람들이 실려 왔던 곳이다. 발포 당시 4명은 관덕정 앞에서 즉사 했고, 병원에 실려 온 부상자 중 2명도 끝내 숨지고 말았다. 당시 병원에 부상당한 경찰이 입원해 있었는데 이문규 순경 등 경찰들이 부상당한 주민들을 부축해 오는 사람들에게 발포해 행인 2명이 중상을 당하는 사건으로 이어 졌다. 도립병원은 제주의료원, 제주대병원으로도 활용됐다.

조일구락부옛 터

당시 유일의 극장시설. 1947년 3.1절 기념행사 관계로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인 1947년 2월 23일 이곳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됐다. 또 4·3전개과정에서 도민들을 탄압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었던 서북청년단은 1947년 11월 2일 이곳에서 서북청년회제주도본부를 결성했다.

관덕정광장, 제주경찰서 옛터, 제주지방법원 옛터, 세무서 옛터

관덕정은 1448년(세종 30년) 목사 신숙청 때 군사훈련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후 관민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거나 때로는 죄인을 다스리는 곳으로 쓰여 졌다. 1947년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 군중들이 빠져나오다 경찰의 발포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사상 초유의 민관총파업으로 이어졌고, 끝내 4·3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1949년 6월 6일 무장대사령관 이덕구가 교전 중 사망하자 그의 시신을 전시해 주민들에게 관람토록 했었다.

제주신보사 옛터

4·3당시 서북청년단에게 경영권을 빼앗겼던 언론매체다. 제주신보해방이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매체로 1945년 10월 1일 전국최초로 지방에서 창간된 신문이다. 1948년 4·3발발 이후 제주읍내에 살포된 전단지가 제주신보사에서 인쇄된 것이 빌미가 되어 편집국장 김초진이 군수사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다가 1948년 10월 31일 처형됐다.

서북청년단본부 옛터

서북청년회는 월남한 청년들의 조직이다. 1947년 11월 2일 제주극장에서 서북청년회제주도본부가 결성되어 위원장에 장동춘 부위원장에 박병준이 선출되었다. 서북청년단회는 1947년 3월 총파업 직후 사퇴한 박경훈 도지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유해진 지사를 경호 할 목적으로 10여명이 입도하면서 제주도에 발을 들여 놓았고, 1947년 3월 총파업 이후 민간인 신분 혹은 군경토벌대의 신분으로 속속 입도하여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렸고 1948년 10월 이후 대규모 희생기에는 대부분 서북청년이 제 1선에 있으면서 학살을 주도적으로 자행했다.

인민위원회사무실 터

1945년 9월 10일 결성한 건국준비위원회는 중앙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 인민위원회로 변경되는데, 인민위원회는 미군 진주 이전 제주도의 치안공백 등에 자체적으로 대응했고, 일제하 항일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미군정시기 미군정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전국의 인민위원회에 대한 해산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도 제주도인민위원회는 해산하지 않을 만큼 도민들로부터 유일한 행정기구로 인식되기도 했다.

9연대헌병대 터

9연대 헌병대는 정보과와 마찬가지로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이들까지 연행해서 고문하거나 즉결처형하기도 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14연대사건 이후 많은 사병과 장교들이 헌병대에 붙들려 혹독한 취조를 받았고 특히 제주 출신 사병들이 많이 총살됐다. 1949년 봄 피난 입산 했던 중산간 주민들을 귀순시키기 위한 작업에 헌병대 정보원들이 활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