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적지현황.hwp
제주4․3사건 대표 유적지 현황
유적지 현황 : 591곳
주요 유적지 : 19곳
동부지역 주요 유적지
유적지명 |
주요내용 |
유 형 |
비고 |
제주4·3평화공원 및 기념관 |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해 있으며, 4·3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여 4·3정신과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 기념관 및 위령제단, 추념광장, 위령탑, 상징조형물, 봉안관, 행방불명희생자 표석 등이 조성되어 있다. |
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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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 |
제주시 화북1동에 위치해 있으며 제주4·3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마을이다. 제주 해안마을의 주요 생활 형태인 반농반어로 생계를 꾸리던 이곳 주민들은 1949년 1월 4일 불시에 들어닥친 토벌대에 의해 가옥이 전소되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
잃어버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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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너븐숭이 일대 |
북촌학살사건은 1949년 1월 17일 함덕주둔 2연대 군인들이 4백여명의 북촌리 주민들을 한날한시에 학살한 사건으로 4·3희생의 무고함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 기념관, 위령비, 북촌초등학교에 참살비가 세워져있다. |
기념관, 학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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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동 4·3성 |
1948년 11월 20일 선흘리 마을이 초토화작전으로 불타버리자 마을주민들은 인근야산에서 생활하거나 해변마을로 소개했다. 이후 1949년 봄이 되자 낙선동에 성을 쌓고 함바집을 지어 집단 거주했던 곳이다. 이곳을 일부 복원하여 당시 주민들의 애환을 보여주고 있다. |
4·3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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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시물굴 및 주변은신처 |
선흘리 초토화 이후 선흘리민들이 은신했다가 희생당한 곳이다.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 일대가 토벌대에 의해 불탄 이후 선흘리민들은 선흘곶 일대의 곶자왈과 동굴을 은신처로 삼았다. 하지만 토벌대에 굴이 발각되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
학살터 및 은신처 |
서부지역 주요 유적지
유적지명 |
주요내용 |
유 형 |
비고 |
큰넓궤 |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해 있으며 동광리 무등이왓과 삼밧구석의 주민 120여명이 1948년 11월 하순경부터 1948년 1월 중순까지 약 50일 동안 숨어 살았던 용암동굴이다. |
은신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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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이왓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있는 마을, 제주 4·3사건으로 파괴된 자연마을 터이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지금까지 북구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로 약300년 전에 관의 침탈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궈 살아가기 시작 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
잃어버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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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묘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육거리 동쪽에 있으며 4·3사건 당시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임씨 가족 9명의 묘로 시신을 못 찾아 봉분 7기를 조성한 것이다.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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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 학살터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4·3유적지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당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다. 이때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도 820명의 주민을 검속했다. 당시 모슬포 경찰서 관내 한림·한경·대정·안덕 등지에서도 374명이 검속됐는데, 이들 중 149명을 대정상모리 절간 고구마 창고에 수감하였다가 1950년 8월 20일 새벽 4~5시경 집단학살하였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새벽 2시경 한림지서에 검속되었던 63명도 계엄당국에 의해 집단총살 당하여 이곳에서의 희생자는 212명에 이른다. |
학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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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일손지묘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으며 1950년 8월 20일,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희생된 민간인의 집단묘역이다. 이들의 희생자들의 시신은 6년 후인 1956년 5월에 수습할 수 있었는데 모두 132구였다. 그러나 시신의 신원을 구별할 수 없어 132개의 칠성판에 큰 뼈를 대충 수습하여 현재의 묘지에 이장했다. “서로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 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지의 묘라 함. |
묘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