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문서시 부문 심사평.hwp

닫기

제20회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 시 부문 심사평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가 어느덧 20회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는 청소년들에게 4·3에 대한 이해와 평화 정신을 갖게 하는 일에 그 역할이 컸습니다.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해마다 나왔고, 청소년들의 신선한 작품들은 4·3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기성 문학에서 찾기 어려운 가능성의 작품들입니다.

그러한 성과에 비해 이번 대회에서 시 부문이 주는 전체적인 느낌에서 심사위원 모두 다소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20년 축적된 수상작들을 통해 약관의 나이에 접어든 대회의 역사는 앞선 작품들이 다음 작품들에 영향을 주어 거듭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했으나 우리의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는 작품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학교에서 응모하지 않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응모 편수는 많았지만 특정 몇몇 학교에서 대거 응모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일단 입상권에 들어선 작품들을 고르는 건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두세 명의 학생 작품은 시적인 시선이 놀라웠으나 주제와 거리가 너무 멀어 선외로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를 계속 쓴다면 공모에서 주제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입상권에 든 작품 중에서 심사위원 세 명은 집중해서 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좋은 작품들이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하마터면 놓칠 뻔 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화려한 표현보다 내적인 진지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밤소리」(윤서영, 대원국제중 3)는 중학생이 갖기 힘든 슬픈 어조를 지니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그런 시선을 지니게 된 건 대상에 대한 진지한 생각에 의한 것으로 보여 미더웠습니다. 하지만 4·3이라는 주제를 지나치게 상징화해서 장려상에 머물렀습니다.

」(곽혜빈, 대원국제중 3), 상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함현중 1)는 운율이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읽는 맛이 났습니다. 주제와 운율이 같이 움직이는 게 쉬워 보이지만 효과를 보는 작품은 드물어서 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늦은 사과(함현중 1)는 어린 나이 같지 않은 역사 인식이 기특했습니다. 세 작품 모두 운율 속에서 시를 끌고 가는 힘이 좋았습니다.

진혼곡」(박성현, 안덕중 3)은 대상 작품으로도 논의가 되었으나 시가 지닌 무게감이 찬반으로 나뉘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동시에 안정적인 문장으로 전개하는 모습에서 중학생 같지 않은 문체의 힘이 돋보였습니다. 장르를 정하지 않고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꽃은 진다」(정희숙, 함덕중 3), 동백나무 시들기 전」(임우림, 제주사대부중 2)은 주제와도 적합하고, 완성도도 눈에 띄는 우수작이었습니다. 꽃은 진다는 평범해 보이는 제재로 썼지만 꽃은 진다/ 눈물 흘릴 새 없이 진다라는 표현이 시적 감성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동백나무 시들기 전은 동백나무의 생태 속에 역사를 함축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도 대상 작품과 최종적으로 남았으나 새로움에서 약해 최우수상으로 정했습니다.

대상으로 정한 작품은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별과 제주도를 배치해 별을 제주도를 보살피듯 바라보는 설정이 따뜻하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러한 별이 울게 되면 별똥별이 되어 떨어진다고 표현한 건 정말 근사한 부분입니다. 4·3은 저 별처럼 여전히 제주도 하늘 위에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현재형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별로 인식해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잘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이런 까닭에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 」(황희준, 대원국제중 3)을 대상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작품은 중학생에 비해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흐르는 경향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인식도 중요하지만 문학성을 생각한다면 그 역사를 어떻게 문학으로 형상화할 것인지 고심이 필요합니다. 결국 시는 예술입니다. 논리적 사유도 문학적 형상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소녀」(고은, 한국국제학교 9)는 음악성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안정적인 전개를 보이는 점이 장점이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주도 생각하면서 새로운 방식도 모색하면 더 좋겠습니다. 한편 정명」(김영석, 서귀포고 3)은 전형적인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미래의 4·3을 생각하는 고등학생의 의지가 돋보여 칭찬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바람, 사람」(김준,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 9), 암호를 풀다」(심정혁, 서귀포고 2)는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앞으로 이런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다 만 꽃」(강서원, 제주여고 ), 제사」(박찬흠, 한국국제학교 9), 이름 빼앗기지 마라」(이원경, 한국국제학교 9)는 4·3이라는 주제와도 잘 맞고, 슬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새로운 날을 향해 가는 모습이 녹아 있어서 우수상을 받을 만합니다. 우수상 수상작 중에서 파도」(최시언, 한국국제학교 9)는 비유를 통한 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거창한 표현보다 이렇게 작은 비유를 통해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다른 학생들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대상과 최우수상 두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 셋은 오랜 고심을 했습니다. 구멍」(이지우, 한국국제학교 9)은 현무암에 있는 구멍을 통해 4·3표현하는 면모가 수준급이어서 대상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이 이미지가 지난 수상작 중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 정도로 클리셰라서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비와 군화(최단, 한국국제학교 9)는 고등학생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작품입니다. 제재를 한 곳으로 모았다가 펴는 처리가 작품을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응모한 작품이 마치 이 시를 수정하기 전의 작품으로 보일 정도로 관념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시의 경우 작품 수를 두 편으로 하는 건 시 쓰기의 역량을 한 작품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 확인하기 위함인 점도 있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최단 학생은 스스로 불리함을 자초했습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진부함을 상쇄할 정도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점이 매우 감각적인 구멍을 대상으로 결정했다. 앞으로 계속 시를 쓴다면 이렇게 역사를 감각적으로 만드는 시를 계속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4·3문학으로 연결 되리라 믿습니다.

-심사위원 : 강방영, 김광렬, 현택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