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문서대상 - 우혜진 청심국제고등학교 3학년-4월의 제주를 기억하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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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제주를 기억하라!

청심국제고등학교 3학년1반

우혜진

나는 호주에 있는 학교에서 2년간을 보냈다. 입학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막 적응해갈 무렵 갑자기 닥친 교내 역사 발표 대회는 당시의 나에게 큰 시련이었다. 그 해의 주제는 우리 역사의 상처였는데 영어로 간단한 일상대화 정도만 가능했던 나에게는 영어 발표의 어려움뿐만이 아니라 주제에서 주어진 우리의 조건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소외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물론 몇몇의 미국이나 영국 출신 친구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호주의 역사만이 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주 친구들 사이에서 명백히 흐르던 세련되고 현대적인 미국팝문화에 은근한 동경과, 호주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가진 어머니의 나라 영국에 대한 존경 속에서 한국에서 온 검은머리 소녀는 점점 위축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마당에 나는 원인 모를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리며 우리 역사에 관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아직도 내가 남한사람인지 북한사람인지 헷갈려 하던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고심 끝에 내가 정한 주제는 분단국가, 한국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넓고 모호한 주제의 어려움에 범위를 조금씩 좁혀 가던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제주 4.3 사건이었다. ‘6.25 전쟁에 대한 방대한 양의 글을 대충 읽어나가 던 중 이름만으로는 절대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도 없던 이 사건을 우연히도 클릭해 본 것으로 모든 것이 시작됐다. 그 후 내 눈에 드러난 분노, 슬픔과 가슴 쓰린 억울함, 이에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짙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믿을 수 없던 사실을 너무나도 잔인하게 묘사하고 있던 그날의 회고록. 지금에 비해 많이 어렸었던 내가 참으로도 자랑스러워했던 자유와 정의로운 마음과 무궁한 영광이 함께하는나의 조국이 이런 음습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찾고, 또 찾고, 울고 또 울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자료를 읽어 나가며 나는 그들의 분노와 설움,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의 무심함에 함께 아파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툰 솜씨로 완성된 대본을 나는 언제 어디에나 들고 다니며 중얼거리곤 했다. 그리고 그 글씨들이 완성되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갈수록 4월 3일의 제주 또한 나의 가슴에 더욱 아프게 새겨져 왔다. 때로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때로는 무딘 방망이가 되어, 마치 지독한 무지 속에서 평화롭기만 했던 나의 삶을 규탄하듯이.

반 앞에서 발표를 하는 날, 땀까지 흐르는 손에는 이미 문장부호 하나하나까지 죄다 외워버려 이미 꼬깃꼬깃해진 대본이 들려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는 동안 미국에서 온 어떤 아이는 과거 미국의 노예제도를 발표하며 남북전쟁을 통한 불합리한 제도의 폐지로 끝을 맺어 많은 아이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비록 잔인한 전쟁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은 조국에서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내용의 발표를 하고난 그 아이의 얼굴은 우월감과 자랑스러움으로 빛이 났다. 반면 나는 더욱 심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에 비해 나의 주제는 처음도, 끝도, 지금까지도, 그저 속을 뒤틀고 마음을 먹먹하게 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강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약한 다수를 향해 겨냥된 무기들, 그리고 그 앞에서 낙엽처럼 아스러져갔던 그들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제대로 된 명분도 실리도 없었던, 우리가 현재의 자유를 기다리며 인내해야만 한 좌절과 비극의 역사. 피를 나눈 동족들에 의해 아름다운 섬이 피로 물들었던 그 때를 한 번 더 기억해내려는 내가 과연 잘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도 문득 들었다.

머릿속을 스스로 어지럽히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그저 마음만이라도 전하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발표를 했다. 영어로 잘 알아듣기 어려운 내 발음과 그보다 이해하기 어려웠을, 그들과는 모든 게 너무도 다른,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 한국이라는 나라사람들 조차도 외면했었던 지금은 너무도 아름다운 섬의 어느 잔인했던 하루. 그저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비록 그들의 역사만큼 거대하고, 화려하고, 당당하진 않았을 지라도,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현재의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싸우다 희생당하였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의 피 위에서 편안히 살아가는 죄 많은 후손이라 비록 사뭇 다른 역사를 가진 그들처럼 힘차게 역사를 읊을 수는 없을 지라도, 그럼에도 한편에서 우리가 당당해질 수 있는 이유 또한 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국은, 제주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이라는 나라만의 역사가 아닌 모든 인류의 역사이며, 그러므로 인종을 초월하여 모여 있는 우리들 또한 이 순간 이 푸른 대지 밑에 피를 흘리고 잠이든 누군가에게 감사해야만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왜 하필 이토록 아픈 주제를 정하여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던 것일까.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되새기는 말이었던 것 같다. 덧없는 물질주의적 가치들에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를 되돌아보며 하는 후회와 번민의 말. 삼국지 위인들의 일화에 매료되고, 링컨의 연설문에 감동하던 사이 내 안에서 잊혀져있던 이름 모를 제주의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속죄였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나의 수많은 고민들이 무색하게도 그저 낯선 이방인들이라고 생각했던 그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다른 발표들 때에는 어수선하기만 하던 아이들이 내가 보여줬던 제주 4.3 사건의 증언 자료 영상을 보며 숨죽이던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해 4월 실종된 아들을 아직도 애타게 찾고 있는, 너무 나이가 들어 말을 잇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의 간절한 목소리만이 적막 속에서 들렸다. 어설픈 영어 자막을 따라가며 어둠속에서 반짝였던 눈들, 난 그 반짝임이 눈물이었다는 것을 불이 켜지고 나서야 알았다. 까맣게 탄 얼굴 위의 주름에,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던 입술에, 그럼에도 그날의 분노와 슬픔에 치켜 뜬 두 눈에, 우리 모두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 함께 울었다. 내가 그들에게 친숙하지 않았을 만큼 그들도 낯설었을 먼 나라 한국의 작지만 아름다운 섬의 비극적인 어느 봄날의 기억. 우리는 함께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마치 어둠에서 빛으로 갑자기 나온 사람이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떼듯이, 그렇게 숨을 죽이고 조용히 말이다.

벌써 고3인 나는 참 바쁘게도 내 십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왔다.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시간에 쫓겨 뒤돌아 볼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어린 나의 삶을 사는 방식은 많이 미숙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죽기보다도 힘들고, 빠듯한 시험 일정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것만 해도 많이 버겁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세상은 참 방향을 잃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가끔 정말로 지친 하루의 끝에서 내 자신이 망망대해를 떠있는 힘없는 부표처럼 느껴질 때마다 마음속 깊이 새겨둔 제주를 꺼내보곤 한다. 너무나도 우연히 만나, 너무나도 큰 존재가 되어버린 그 사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이었을 그들이 차가운 총칼 앞에서 무너졌을 그 날을 기억하며 다시 내가 누리는 평화의 감사함과 미안함에 마음이 먹먹해 진다.

2012년의 제주는 금은보화보다 귀중한 자연을 가진 세계인의 안식처이다. 그리고 그 어느 곳 보다도 찬란한 아름다움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아름다운 섬의 돌담 사이사이에는 그날의 상처 입은 영혼들이 숨 쉬고 있다. 그 곳에서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우리들을 이제는 그들이 꿋꿋이 지켜주고 있다. 남은 가족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했던 누구누구 아빠, 너무나도 아이들을 품에 안아보고 싶어 했던 누구누구 엄마, 부모님의 무릎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웠을 누구누구 아들딸의 이루지 못한 꿈이 모여 제주의 돌담길은 현재에도 그렇게 길게 뻗어나가고 있다.

어느 날 집에 놀러온 사촌동생이 내가 호주 학교에 다닐 당시 모아두었던 학습 자료들을 보다 Jeju 4.3' 이라고 쓰인 파일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물어왔다. 아직 어려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그날의 제주를 알지 못하는 사촌동생이었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다시 한 번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그 때 그날 호주에서의 아이들이 흘렸던 눈물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한 번 각성을 시작했다. 우리에겐 너무도 중요한, 외면해서도, 잊어서도 안 될 그날 그 사람들. 4월의 제주를 생각하며 사촌동생을 앞에 두고 나는 말을 이었다. 이렇게, 천천히, 우리 모두는 그들과의 닿지 못했던 인연을 조금이나마 이어갈 것이다. 그들이 소망했던 좀 더 밝은 내일로 함께 손잡고 나아가면서 말이다. 다시 한 번 그들을 가슴에 묻으며 말해 본다. 4월의 제주를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