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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우수상

아무도 몰랐던 그 약속

대구학산중학교 김하늘

맑고 맑은 하늘아래
노오란 유채꽃들이 만발한 오늘

할머니는
오늘도 그 약속을 지키러가십니다.

오늘은
한걸음 한걸음 가시는 길마다

보고싶었다는
땅의 간절함에
발목 붙잡히시고

그리웠다는
노오란 유채꽃들의 환한 미소에
눈길 사로잡히시고

잘 있었냐고, 나도왔다는
바다의 아우성에
그 익숙했던 목소리가 들리십니다.

63년 전
그 약속을
할머니는 그 곳은
아직 잊지않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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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우수상

그 날

전남여자고등학교 3학년 서지혜

그날, 시뻘건 꽃잎 날리는 하늘은 낮아서
짐승의 울음소리 닮은 그것은 먼 곳까지 닿지 않았다
돌아가는 잣대 속에서 숨죽이며 숨어들던 어둠
남모르게 피어나던 꽃은 아무도 모르게 져버렸다

그날, 밟히고 밝혀지는 새벽동안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사람은 셀 수도 없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소리는 축축한 땅 소리 머금을 뿐,

그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날카로운 잣대가 가르는 것은 도마뱀의 꼬리처럼
쉽게 떨어져 나갔다, 소리 없이
조각달은 멀뚱히 어둠 속에 숨어있었다

그날, 사람들은 썩은 나무처럼 바닥을 구르면서도
뻐끔거리며 숨을 쉬는 듯 땅 속에 머물렀다
버려진 탁란처럼 사람들은 둥지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을까, 온전하지 않는 몸으로 두들기던
축축한 땅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날, 사람들의 시야 속에 매달려 썩은 달은
오늘 다시 제주도를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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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우수상

희망을 품는 돌담

서귀포여자고등학교 2학년 현솔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뒤로 쭉 돌아가면
높디높은 돌담들이 버티고 서있다.

우리할머니집 돌담은 내키보다도 작은데
그 돌담은 내키를 훌쩍 넘겼다.

왜 이렇게 높게 만들었을까?
누가 이 돌담들을 다 만들었을까?

그 학교를 떠나 돌담이 잊혀질 때쯤,
그 곳에서 4.3성터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무장대의 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키보다 높은 돌성을 쌓았단다.

내키를 훌쩍넘는 높이보다 더 거대한
비극을 품었던 돌담은
이제 마을사람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마을의 새싹들을 지키고 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이 아닌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품고 있다.

더 이상 슬픔이 아닌 희망들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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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3주년 기념 전국청소년문예공모 시부문 우수상

시간을 건너다

전남여자고등학교 3학년 서아라

제주도 긴 터널 헤드라이트 불빛이
달을 밟고 흘러간다
하늘에는 달이 일렁거린다
할머니의 발끝에 도달이 실린다
무감각한 팽나무가지 바람을 힘겹게 버티고
뒤척이는 빈 상자 같은 멀리 불꺼진 집엔
할머니를 기다리는 이 아무도 없다

바람의 발자국 소리는 폐지처럼 가볍고
삐거덕거리는 수레는 순한 조랑말처럼
할머니의 뒤를 따른다
아니, 수레가 할머니를 끌고간다
벌써 4월이구만,
구름의 갈라진 입술 사이로 혼잣말처럼
흰 달빛이 꽃물처럼 번져나온다

제삿날 찾아가 본 남편의 무덤,
지난날 유채꽃밭에 가득 피어오르던 총성 소리
돌담 사이사이 흘러나온다
돌하르방처럼 남편 곁에 우두커니 서서 듣던
풀벌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잔인한 침묵만이 남아있다

난분분한 유채꽃들은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한라산처럼 등 굽은 그림자가 할머니를 따라가고
수면에 어룽지는 60년 전 그날이 오래오래 따라온다
할머니의 시간이 오래오래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