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학생4.3문예백일장
초등부 최우수상 ‘산문부문’
까마귀의 울음소리
교대부설초등학교
3학년 이유빈
“까악 까아악”
4·3평화공원에 오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 바로 까마귀의 울음소리다. 위패 봉안소
에서도 행불인표석 앞에서도 변병생모녀의 조각상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까마귀의 울
음소리. 절물에도 까마귀가 많지만 그 곳에 까마귀들의 울음소리와 이곳에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다르게 느껴진다.
절물 까마귀들은 소풍 나온 사람들의 도시락 먹는 모습을 보며 “배고파! 나도줘!” 하
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곳에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외롭고 슬프고 서럽게 들려온
다.
매해 오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그 울음소리가 내 망므을 후벼판다.
아마도 이곳이 4·3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 그
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1948년, 제주에 사람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무슨 죄가 있었을까?
제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죄가 되고, 군인과 경찰 가족이 없다는 것이 죄가되어 빨갱
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하필 그때 제주에 살았다는 것 밖에
는 없다. 그 죄로 학교 운동장에서 총에 맞아 죽고, 군인과 경찰을 피해 동굴에서 숨
어 살다가, 혹은 집에서 죽창에 찔려 불에 타 죽어간 사람들...
나는 작년 이곳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이야기 한마당 대회에서 대상인 ‘으뜸상’을
받았다.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신 가슴아픈 외증조 할머니의 이야기로 말이다.
외증조 할머니의 남편은 4·3때 육지에서 온 서북청년단에게 끌려가 죽창에 찔려 돌아
가셨다. 할머니는 어린 아들을 업고, 친정어머니와 산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얼마가지
못해 경찰들에 잡히고 말았다. 잡아온 사람들을 트럭에 태웠는데 트럭에 자리가 모자
라자 트럭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고 외증조 할머니의 눈앞
에서 친정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시신에 흙 한줌 뿌
리고 묻어드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주정
공장으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외증조할머니는 풀려 나셨지만 외증조 할머
니의 등에 업혀있던 어린아기는 그곳에서 죽고 말앗다고 한다. 할머니는 사랑하는 모
든 사람을 잃은 고통에 죽고 싶었지만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시집도 다시가고 아기
도 다시 낳았다. 할머니를 다시 일으킨 말은 ‘살암시믄 살아진다’는 말이였다. 모든
슬픔을 함께 겪고 함께 견뎌낸 사람들이 해준 말은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고 그때 태
어난 아기가 바로 우리 외할머니이시다.
이야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외증조 할머니의 산소로 찾아갔다.
대회날처럼 멋지게 발표도 하고 술도 따라 올리며 절도했다.
그곳에서도 까마귀 소리를 들었다. 그땐 마치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 하는 것 같았다.
난 그소리가 참 좋았다. 내년 이곳 4·3평화공원에 왔을 땐 정말 평화로운 까마귀 소
리로 들렸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와 같은 어린이들이 4·3에 대해 더 관심 갖고 더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이곳에 까마귀들에 울음소리가 외롭고 슬프고
서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