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최우수상
선인장
제주중앙여자중학교 3학년 강유나
생시로 피어났을까,
어느 메마른 이가 이토록
향기로운 봄날을 선뜻 꿔주고 떠났을까
지난밤 신신파스로 끙끙 앓던
무명천 할머니의 통증이
하나
둘
셋
노란 봉오리로 환생하였을지도 몰라.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최우수상
다시 한 번, 메이데이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고은별
울음이 지층으로 쌓인 땅 위
수풀을 흔들며 달려오는 바람에게서
뜨거운 불길을 본다
타오르는 노을은 그림자 진 발끝까지 적셔오고
붉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하늘 위로
그날의 스크린이 펼쳐진다
침묵을 지키던 바위와 나무들이
쪼개지고 갈라지며
시간 속에 묻어둔 울음을 꺼낸다
한 세기를 나이테에 담아놓은 떡갈나무
불길은 거친 나무껍질을 조각조각 뜯어먹고
묵직한 신음소리가 연기로 피어오른다
바위의 깊은 뼈가 조각조각 쪼개지면
온 땅이 흔들린다
갓난이를 업고 입가를 주먹으로 막은 여인의
무릎이 뚝 꺾인다
헐거운 포대기 틈새로 흘러내리는 아이
무너지는 것들은 모두 서러운 걸까
아이의 찢어지는 울음에도 불이 붙어 잿더미 흩날린다
팔십년 살아온 집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동자에서는
흐리게 비친 모든 세상이 붉게 울고 있다
하늘과 땅으로 걷잡을 수 없이 불이 옮겨 붙는다
흙과 자갈과 풀이 유언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
살아남은 한 줄기 바람이 비틀어진 필름을
온몸으로 돌아나온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처절한 메이데이를 듣는다
음모가 놓은 불씨와 한 편의 거짓을 위해
스러진 연미 마을
살육의 변명으로 더럽혀진 울음이 실은
그토록 서러웠다는 걸
바람은 아는 것일까
구천을 떠돌던 바람이
땅 위에 발끝을 내린다
내 곁에 선 바람의 목소리
내 몸 속을 지나가며 붉게 외친다
다시 한 번,
메이데이
*‘제주도의 메이데이’라는 제주 4·3항쟁 관련 무성 영화 필름 인용.
이 영화에서 미군은 연미마을 방화의 책임을 유격대에게 덮어씌움으로서 자신들의 강경 토벌 작전을 정당화 함.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최우수상
우리 동네
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김재연
도로 위 표지판에 적힌 화북 1동
할머니를 찾으러 갔었다
할머니 따라 곤을동 마을터까지 걸어갔다
돌계단 몇 개 올라가자
어젯밤 비를 담은 웅덩이 두 개가 있었다
경찰들은 사람들을 웅덩이로 밀어넣었다
이마를 조아리고 피를 쏟아내며
살려줍써 살려줍써, 소리쳤을 것이다
그들은 무너져가는 집들을 버리고 끌려갔다
총살 당한 그들은 아직 웅덩이에 고여있었다
사년 전 이미 발굴된 그들은
곤을동을 떠나지 못한 채 맴돌고 있었다
물이 골랑 빠지지 못허는 건
여기가 제주도라부난 겅 햄져
가족을 촛지 못헌 사람들이 땅 알로 저며들어강
막아부렀져, 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다
바람이 돌담들 사이로 들어갔다 나와선
방 창문으로 기어들어왔다
울부짖는 소리가 방바닥에 깔렸다
그들에게 웅덩이는 총알을 피하기엔 너무 좁았다
탈출할수록 더 빨리 죽을 수밖에 없는 감옥이었다
2012년 제13회 전국청소년 4·3 문예공모 시부문 최우수상
제주의 바람은 모두 섯알에서 넘어진다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서연
무릎 까진 바람이 기어서 도망가는 곳 있다
송악산 산비탈 길 떠도는
이명 같은 바람 줄기 따라 걷다보면
섯알 오름 학살터가 나온다
아픔을 묻고 허공이 쌓아 올린 봉분 두 개
길게 늘어진 산 그림자 속에서
나는 허공이 만든 봉분을 파헤쳐
그 앞에 묻힌 시간 앞에 마주선다
반 백년 전 그 언젠가
영원처럼 끝을 모르고 저물어가는 밤이 있었다
가슴에 겨눠지는 총구 앞에서
핏발 선 목청으로 가족들을 부르짖다 풀썩 주저앉는 사내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치던 소년
누군가의 아버지의 아버지였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축축한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힘 없이 앞으로 쓰러졌으리라
즈믄 밤, 가끔 풀숲 사이에서 환영처럼 들려오는 총성소리에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리고
자꾸만 고꾸라지는 영혼들
환영처럼 떠오르는 기억 앞에서
부은 바람도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만다
씻기지 않는 설움과 비명 소리가
패인 흙구덩이 속에 차오르고
그 곁에 문장 새긴 표지만 하나 남아 묵념하듯 서 있다
온통 침묵 뿐인 오후
빗물만 담고 있는 패인 웅덩이 앞에서
떠난 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제주 섯알 오름터에서 묵념하다 돌아가는 길
이제는 이명처럼 산간에 웅웅 떠도는 이야기
바람이 내 귀에 맴돌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