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 양현주 한라중학교 3학년.hwp
(대상)
붉은 응어리, 흐르는 물에 씻길 때까지
양현주
여기저기서 동네 사람들이 보였다. 앞집 밖거리 삼촌도, 막 밭일하다가 온 옆집 삼촌도, 그리고 저 멀리 술 마시면서 신나게 돌아댕기는 친구놈도 보였다. 참 대낮부터 뭔 술인지...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싱싱한 놈 몇 마리 잡혀서 부모님께 요리를 해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좋아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 탕을 해드릴까, 구워드릴까 고민을 했던, 언제나 늘 그래왔던 일상적인 하루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 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집에서 시작된 불은 마른 장작을 만난 듯 온 집으로 퍼져 마을을 삼켰다. 주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길은 온 주민으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나 역시 그들에게 밀려 집에서 점점 멀어졌다. 손에서 물고기를 놓쳤다. 파닥파닥 거리며 물을 달라 애원하는 듯한 고기는 내가 잡을 겨를도 없이 사람들의 발에 밟혀 처참히 죽어버렸다. 한참을 밀려나고 있었을까, 우리는 모두 북촌 초등학교로 몰리게 되었고 저 멀리서 총을 든 사람들이 집집마다 불을 지피며 오고 있었다.
모두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자신의 집에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눈에 힘이 풀린 듯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요즘 ‘빨갱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나돌아서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괜히 안 좋은 말이 오고 갔던 모양일까,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총을 든 사람들이 북촌 초등학교로 들어왔고, 그 뒤에는 그들의 대장이라도 되는 듯한 사람이 뒷짐을 쥐며 걸어왔다. 웅성웅성했던 소리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알 수 없는 정적만 흘렀다. 갑자기 그들은 다짜고짜 우리들에게 대열을 맞춰 나란히 서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호령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대열을 섰다 그러더니 그들은 한 대열씩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내가 선 대열은 학교에 남아있게 되었다.
갑자기 탕,이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그녀의 품 안에는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빨아도 빨아도 안 나오는 젖 때문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지만 탕,이라는 소리와 함께 그 울음소리는 날아가는 까마귀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우리들은 벌벌 떨었다. 너무 두려워서 풀썩 주저앉는 사람들과 엉엉 우는 아이들, 그리고 바지에 오줌을 싼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삶을 구걸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총을 든 사람들의 눈에는 인정이라곤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총구를 우리에게 겨냥하며 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탕, 탕,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쓰러졌다. 내 앞에 있던 긴 행렬은 벌서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나는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뒤에는 까까머리의 남학생이 울고 있었다. 부르르 떨고 있는 작고 힘 없는 어깨...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그 아이가, 살날이 더 많아야했던 그 아이가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글도 못 배워보고, 사회생활의 경험도 해보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곧 죽을 운명을 눈으로 확인해야 했던 그 녀석이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풀썩 내 앞사람이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총구가 내 머리에 겨냥되어 있었다. 이젠 끝이었다. 부모님을 만나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부모님, 어떠한 말도 못한 채, 그리고 어떠한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가게 되었습니다. 억울함이 치솟아 올라 온 몸을 휘감는 것만 같습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어째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너무 분하고, 너무 서럽습니다. 다만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먼저 죽을 이 아들놈을 몸 바쳐 키워주셨는데, 아무 것도 해드린 것 없는 이 아들놈은 부모님이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탕,
2010년 11월 20일, 북촌초등학교를 답사했던 나에게 마치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듯한 이야기이다. 무슨 이유 때문에 북촌초등학교가 답사장소가 되었는지도 모른 채 들어섰지만 나오는 발걸음은 엄숙하고 조심스러웠다. 북촌초등학교, 내가 밟았던 바로 그 땅은 400명의 북촌 주민들의 피로 붉게 스며든 곳이었다.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자 나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땅 위에 나뒹구는 나뭇잎도, 저기 멀리서 들려오는 멈추지 않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도 다 북촌 주민들의 억울함과 서러움 그리고 분함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주민들이 바로 내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내 귀에서 맴돌았다.
50년 동안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4․3사건... 아직도 어엿이 그 장소가 남아있는데, 평화의 섬 제주도의 그늘에는 그 날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들은 평화를 내세워 그들의 상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이어왔던 침묵과 금기, 그리고 왜곡의 역사를 우리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제주도의 학생들은 4․3사건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들른 후, 돌로 높게 쌓아 올린 방사탑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돌 하나하나에 담아 방사탑을 쌓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방사탑의 높이는 하늘에 기원하는 그들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10여 년 전 대한민국은 4․3사건을 인정하고 가족과 주민들에게 사죄를 했다. 하지만 그 것만으로 과거의 아픔이 다 용서되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 그 날의 진실을 알아주고 그들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많은 희생자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비록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피로 붉게 물든 그 날의 단단한 응어리는 서서히 녹아내려 언젠가는 깨끗한 물에 그 빛깔을 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