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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대당실

서귀포여자고등학교 2학년 6반 김나연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어머니가 복희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소똥냄새를 품은 따뜻한 바람이 무너질 듯한 복희의 집을 스쳐 지나갔다. 복희는 따스한 햇빛과 포근한 엄마 품에서 시간이 멈춘 듯, 새삼 평안한 표정으로 쌕쌕 숨을 내쉬며 곤히 잠들고 있었다. 복희의 어머니는 복희가 사랑스러운 듯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순간, 언뜻 들리는 괴성에 복희의 어머니는 고개를 바짝 들고 그 괴성의 원인이 어딘지 몰라 눈만 꿈벅이고 있었다. 이윽고, 저 멀리 보이는 오름에서 새들이 펄떡이고 달아나는 모습에 불안한 감에 휩싸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고 푸른 하늘이 복희 어머니의 눈에는 잿빛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애써 복희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 한말이 떠오르는 것을 지우며 복희를 서둘리 깨웠다.

복희야, ᄈᆞᆯ리 인나라

무사마씸, 어디 감수꽈?

복희는 작은 눈을 비비며 잠긴 목소리로 어머니의 다급함을 무시하며 어머니의 품 속으로 더 들어갔다. 복희 어머니는 그 괴성은 더 가까이 오는 것이 느껴졌고, 어머니는 더 다급해졌다.

얼른 인나래도!

어머니의 등에서 포근히 자고 있던 복자도 어머니의 다그침 때문에 놀라 울기 시작했다. 복희 어머니는 물애기의 울음은 신경도 쓰지 않고, 포대기를 더 강하게 맬 뿐이었다. 복희는 멀뚱멀뚱 일어나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신발을 신고 눈을 꿈뻑이며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복희 어머니는 복희의 손을 잡고 집 밖에 뛰어나갔다. 계속 들리는 괴성의 발원지를 눈치 챈 마을 사람들은 온 동네를 휘저으며 빨리 도망치라면서 뛰어갔다. 잔잔한 마을에 흙먼지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마을은 부산스러워졌다.

도르라

복희는 어머니의 말에 그들과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 때 바로 복희의 귓가에 총음소리가 연달아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에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복희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군화소리와 날카로운 총소리는 더 가까워졌고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탕!

괴성이 가까이서 한 번 더 들리자 복희가 잡고있던 치맛자락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복희의 어머니는 서서히 뒤처지기 시작했다. 복희는 낑낑대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어머니의 다리는 복희의 마음과는 다르게 이제는 더 이상 못 나갈 것 만 같았다. 복희의 어머니는 피가 뚝뚝 흘리는 다리를 억지로 잡아 당기면서 돌담 뒤에 숨었다.

복자 돌앙 저거 오름까지 도르라. 곧 아벙이 데리러 갈테난 ᄈᆞᆯ리 가라게.

어머니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면서 복자를 건네었다. 돌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물애기는 여섯 살인 복희가 들기에는 힘들어보였지만 복희는 자연스럽게 복자를 안아들었다.

어멍은?

어멍은 호끔만 이시면 갈크라. 우리 똘 요망지난 조들지 않아도 되주?

나 혼자 안가젠. 어멍이랑 고치 가젠마심

복희가 고집을 부리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체 고집을 잘 부리는 아이여서 어머니가 져주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한 글자 내뱉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머니는 엄격한 목소리로 복희를 다그쳤다.

확확 가라게. 히여뜩한 년아

싫다게. 싫어. 싫단 말이야

그러자 복희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덜덜 떨면서 자기 목에 걸려있는 금목걸이를 풀어 복희에게 주었다. 복희는 계속 눈물을 훔치면서 엄마를 노려보았다. 복희도 이번에 어머니와 헤어지면 더 이상 못 본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줄테난 후딱 가라게. 안가민 다시 뺏을거이. 알겠주? 어멍은 되시난 ᄈᆞᆯ리 가

복희 어머니는 복희의 등을 떠밀어 보내려고 했다. 복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그때 바로 뒤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바로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둔탁한 군화를 신은 두 다리가 보였다. 그러고 두려움이 맺혀있는 복희의 두 눈동자를 위로 올리자 복희의 어머니를 죽인 그 놈의 눈동자 또한 복희를 향하고 있었다. 복희는 하나뿐인 자신의 어머니를 죽여 놓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뉘고 있는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복희는 차마 죄책감은커녕 냉기만 서려있는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복희는 다짐을 한 듯한 굳은 표정을 하고 원한에 차 있는 상태로 다시 뒤돌아 죽을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저 멀리 복희가 살던 동네에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울다 지쳐 곤히 잠든 복자는 독한 냄새에 잠에서 깨어나 다시 울기 시작했다. 복희의 오른쪽 신발 한 짝은 뛰느라 잃어버렸는지 피가 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는 온통 생채기 투성이었고, 자신의 몸집에 너무 큰 복자를 들고 뛰느라 다리에는 이미 감각이 사라졌다. 붉은 하늘에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은 복희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복희는 예전부터 이 오름을 아빠랑 자주 놀러와서 이미 자신만의 은신처가 있었다. 그 은신처까지 한 걸음 내밀 때마다 복희의 눈에는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힘들어서 감정이 메말랐던 복희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꺼억하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에 가려져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복희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이 오름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무서운 사람에게 총을 맞고 죽는 모습까지 떠올려지자 애써 도리질을 하며 생각을 하지 않으려했다. 드디어 복희의 은신처에 도착하였다. 이 은신처는 두세명 정도의 성인이 들어가기에 딱 적당한 땅굴이었다. 복희는 쓰러지듯이 땅굴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좁은 이 안에서 아버지랑 같이 놀던 추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울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차마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울음은 울음을 삼켜먹으면서 더 큰 울음이 되었다. 그 울음은 불안한 생각까지 다 옭아매면서 더 깊숙이 들어가기만 하였다. 복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같이 울었다. 복희는 편안하고 행복했던 자신의 삶이 이렇게 무참히도 짓밟힌 것이 왜인지도 모른 채로 그 어머니를 죽인 사내만을 떠올리며 원한에 가득 찬 눈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복희의 발바닥에 피가 고여 피딱지가 생기기 시작하고 고름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아픔은 복희에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울음을 멈추고 굶주린 배를 안으며 잠을 청하려 노력했지만 차마 잠이 오지 않았다. 낯설고 차가운 바람이 복희의 콧잔등을 생채기라도 내려는 듯이 날카롭게 지나가고 복자는 금목걸이와 복자를 부적처럼 꼬옥 안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불안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곧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복희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외치면서 집을 나간 지 어엿 한 달이 넘었다. 아버지가 떠난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그리워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우리 나라와 사랑스러운 복희를 위해 잠시 떠났다는 말 만 줄곧 해왔다. 그래서 복희는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마다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서 외로움을 떨쳐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복희가 따뜻한 온기 속으로 파고들 사람도 없고, 노래를 불러줄 사람조차 없다. 복희는 자신을 위로하는 듯이 메마른 입으로 엄마가 자주 불러주던 오돌또기를 부르면서 잠에 들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지고 복희도 다시 따뜻해진 온기에 눈을 떴다. 아침을 알리는 꾀꼬리는 복희를 들뜨게 하면서도 허망하게 하였다. 그래도 복희가 일어나려고 하자 다시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다리가 자기 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앙상한 다리를 주물러 보았지만 아무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어제 종일 복자를 업고 오름을 오르고 쪼그린 상태에서 잠에 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복희의 뒤척임에 복자가 깨었는지 복자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복희는 복자를 위해서라도 먹을 것을 찾아 나서야 했다. 자신은 그렇다 치지만 복자는 이제 겨우 돌이 지났고, 건강이 허약해서 집에 의원이 자주 들리기 일쑤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복자의 이마에 손을 대니 역시나 이미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 복희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아무리 의젓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도 이 상황에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일단 빨리 일어나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다. 다리를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치 복희에게 넌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은 복희는 온 힘을 다해 다리를 끌어 올렸고 은신처에서 겨우 벗어나 오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버지랑 오름을 다니면서 아버지가 간간히 말해주던 약초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비슷하게 생긴 풀들을 찾기 시작했다. 풀들을 헤치면서 30분정도가 지난 뒤, 아버지가 말해준 풀과 비슷한 풀을 찾았다. 여름에 피는 고운 하얀 꽃은 져버렸지만 풀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복희는 그 풀을 따서 씹어 삼켰다. 아주 맵고 씁쓸한 익숙한 맛이었다. 이 맛은 위로 들어가 복희 안에 잠재된 화를 더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혀가 얼얼하고 당장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감각적으로 이 풀이 맞다고 느낀 복희는 바로 복자에게 달려가 복자에게 먹이려고 했다. 이빨도 다 나지 않은 애기여서 그런지 풀을 먹이면 바로 뱉으려고만 했다. 그래도 복자의 열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계속 울다 지친 복자는 잠에 들고 복희도 입에 맵고 쓴맛이 맴 돌고 있는 채로 잠에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복희는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온 줄만 알았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는 많은 사람의 소리였고, 아버지의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아닌 둔탁한 소리였다. 순간 엄마와 마을사람들을 무참히 죽이던 군인이 떠올라 겁에 질려 땅굴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발자국 소리는 더 가까워 졌고, 복희는 그 둔탁한 소리가 역시 아버지가 아닌 군인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복희는 두 눈을 꼭 감고 빨리 그 소리들이 지나 가길 만을 원했다. 소리가 자신을 지나가는 것을 느끼자 살며시 두 눈을 뜬 복희는 자신을 뚫어지듯이 바라보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내의 얼굴은 밤새 복희가 이를 갈면서 떠올린 어머니를 죽인 놈이었다. 복희의 머리 속은 백지처럼 하얘졌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탕!탕!

복희는 그 아찔한 소리에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이제 끝임을 짐작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하다

그 사내는 작게 읊조리고 다른 군인들을 따라갔다.

누구 숨어있었냐?

다섯 살 정도 여자아이

잔인한 새끼

군인들이 저들끼리 여자아이를 죽인 것이 큰 일도 아닌 듯이 킥킥대면서 지나갔다. 군인들이 멀리 간 것을 느끼자 복희는 참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복희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그들이 복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같은 사람인데,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무참히 죽여 버리고 마을까지 불태우는 것인지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왜 자신을 두 번이나 살려준 이유도 또한 알지 못했다. 억울하였다. 차라리 어제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죽여버렸더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버린 이상 복희는 자신이 해야될 일을 찾아야만 했다. 복희는 자신의 굶주린 배와 복자의 펄펄 나는 열 때문에 더 조급해지기만 했다. 이 곳에서 살아있는지도 모를 아버지를 계속 기다릴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길 떠나 다른 마을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될지 결정을 해야됐다. 하지만 다른 마을도 복희가 살던 마을과 다름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차마 알지 복희는 알지 못하였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불안감을 무시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되나 고민을 계속 하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까 총소리를 들었다면 분명히 깨서 울고 있어야 할 복자가 아무 소리 없이 자고만 있는 것이다. 순간 복희는 두려웠다. 복자가 아무리 어려도 자신이 이제 기댈 사람은 복자밖에 없었고, 복자가 복희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복자가 태어나서 복희가족은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복희가족에게 복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복희는 서둘리 복자를 깨웠다.

아벙 곧 오난 ᄈᆞᆯ리 인나라,.

몸을 건들여 봐도, 뺨을 때려 봐도, 소리를 질러 봐도 복자는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에 잘 때 내던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인나라고!

복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복자까지 죽어버리면 이 세상에 남는 건 자신 하나 뿐이었다. 총에 맞아 자신에게 복자를 맞기면서 이 오름까지 오라는 엄마도, 자신을 살려준 그 사내도, 지금까지 자신들을 찾으러 오지 않는 아버지도, 모두 원망스러웠다. 복자를 계속 깨웠지만 복자는 깨어나기는커녕 복자의 손은 파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까 따온 풀을 억지로 입에 들여놨지만 복자는 뱉지도 삼키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복자도 어머니 곁으로 간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복희는 아찔해졌다. 복희의 시야가 흔들리고 햇빛 외에는 다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복희는 다시 잠에 깨서 일어났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따뜻한 햇빛만이 있었다. 어리둥절한 복희의 귀에 잔잔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너도 당실 연자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멀리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끌려 복희는 뛰어갔다. 지금이라도 가서 어머니에게 안기고 싶었다.

어멍.. 어멍.. 나 가고 있수다

복희의 곁에 따스한 햇빛이 감싸고 복희를 어루만졌다. 무거웠던 몸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다 떨어치는 듯이 가벼워졌다. 그러고 저 멀리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따라 여기로 오라고 손짓하는 빛을 향해 나비처럼 멀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