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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작품 속의 4․3

김동만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다큐멘터리 감독)

1. 프롤로그
2003년 10월 30일 노무현 대통령은 군경토벌대의 진압작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음을 인정하고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사과 했다. 이는 잘못된 역사에
대한 국가차원의 최초의 사과였다. 이보다 15일 앞선 10월 15일에는 정부차원의 4․3진상보
고서가 공식 채택되었다. 이러한 정부차원의 공식입장 표명으로 그동안 ‘4․3폭동’으로 규정
되었던 역사를 어느 정도 바로 잡게 되었다. 이는 지난 1987년부터 본격화된 4․3진상규명
운동의 결과였다.1)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자는 4․3진상규명 운동은 1989년에 이르러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와 맥을 같이하여 방송사를 중심으로 4․3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진상규명운동 17년 동안 단독 다큐멘터리만 약 30편이 제작되었고, 4․3영상증언
140여 편, 기타 여러 장르로 40여 편이 제작되었다.2) 단독 다큐멘터리는 중앙방송사 3편, 제
주지역 방송사 19편, 독립 다큐멘터리 8편이 제작되었다.3) 이들 4․3다큐멘터리는 진상규명
운동과 담론의 변화를 기준으로 나누면 1989년~ 1994, 1995~1999. 4, 1999. 5~2002. 200
3~현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4)

2. 4․3진상규명의 시기별 영상의 역할

1) 1989~1994 : 문제제기
1989년은 제주지역 진상규명운동의 주체들이 구체적으로 성립되던 시기였다. 1989년 최초

의 공식 4․3추모제가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리면서 제주4․3연구소가 창립됐고, 제민일보의
4․3연재가 시작 됐다. 이에 맞춰 제주도내 지역방송사에서도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
작하기 시작했다.

1989년 4월, 제주MBC는 <4․3기획1, 현대사의 큰 상처>라는 보도리포트 형식의 다큐멘

터리를 방송했다. 뒤이어 9월에는 KBS제주가 특집다큐멘터리 <영원한 아픔 4․3사건>을
방영했다. 이들 다큐멘터리들은 4․3의 숨겨진 아픔을 조심스럽게 드러냈고, 좌․우 대립이
라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음에 초점이 맞추었다. “어머니와 누
이, 지아비가 폭도의 죽창에, 또 토벌대의 총에 무참히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영원한 아픔

1) 

1960년  4‧19  혁명으로  이후에  제주도에서  대대적인  4․3진상규명운동이  전개되었으나  다음해  5‧16  군사 

쿠테타로  중단되었다.

2)  다큐멘터리외에도  메거진  프로그램의  하위프로그램(속칭‘꼭지’),  토론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3)  <표  4>  참조
4)  권기숙은  4․3TV다큐멘터리를  1989-1997:4․3이라는  사태,  1998-2002:대량학살과  상처,  2003-현재  :  진상규

명운동  투쟁으로  나눴다.  (권귀숙,  앞의논문,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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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는 이들 다큐멘터리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여전히
4․3을 ‘폭동’으로 표현하고 무장대를 ‘폭도’로 표현했다. 한편 중앙의 KBS에서도 <해방과
분단 : 제1편 제주도-4․3전후>(1989)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나 방영되지 못했다. 이데
올로기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뤘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한 소설가의 역사 진실 찾기 형식
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는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군경토벌대의 과잉진압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진일보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불방 처리되면서 KBS에서는 1998년까지 4․3다큐
멘터리가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이시기 TV 다큐멘터리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나라 방송의 실정과 이데올로기적 편견, 방송통제 등의 제약성 등으로 인해
일정정도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98년 이전까지 공중파 TV다큐
멘터리 영화는 4․3의 진실에 대한 실체적 접근보다는 객관성을 빌미로 양비론적 피해실태
만을 부각하거나 민감한 문제 비껴가기를 통해 외형만을 다루다 끝내버리는 아쉬움을 남겼
다.

1990년 이후 지역사회에서 ‘민중항쟁론’을 들고 나온 진보 지식인과 ‘공산폭동론’을 주장하

는 반공단체의 대립이 심해 졌다. 이로 인해 위령제가 2곳에서 치러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
도 했다. 그런 가운데 제주MBC는 1995년까지 7회에 걸쳐 매년 보도리포트 형식의 4․3다
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이데올로기 대립 극복과 국회차원의 4․3문제 해결을 촉구했다.5)

1994년에는 중앙방송으로는 처음으로 MBC가 시사매거진 2580에서 <이젠 말하리라>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다. 4․3으로 인한 상처와 후유증을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4․3의 비극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였다.

한편 이보다 앞서 1993년에는 제주4․3연구소와 제주문화운동협의회가 공동으로 다랑쉬굴

4․3희생자의 유골발굴과정과 처리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제작해 배포했다. 4․3다큐멘터리
중 최초의 독립다큐멘터리였다.

지난 91년 MBC에서 제작, 방영된 ‘여명의 눈동자’로 극영화로는 유일한 작품이다. 영화

자체의 선풍적 인기로 인해 제주4․3항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수많은 대중들에게 ‘제주
4․3항쟁’을 처음으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수많은 제주사람들
역시 그 영화를 보면서 4․3 항쟁 당시 처참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부모와 형제들을 떠올렸
다. 그 동안 가슴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분노와 설움을 영화를 빌어 몰래 눈물을 터트렸다.
비록 40회가 넘는 시리즈 중에 제주4․3항쟁에 대한 내용은 6편에 지나지 않지만 객관적 자
료를 바탕으로 4․3의 진실에 접근하려 한 극영화로서의 표현노력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민들은 나오지 맙서! 양민들은 나오지 맙서!' '민족을 나누는 50단독선거는 막아
사주'라고 외치는 항쟁참여자들의 소리를 통해 항쟁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을 뿐만 아
니라, 양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초토화작전을 계획한 미군정의 책임과 무차별적
인 집단학살을 자행했던 군경토벌대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반면 이데올로기
대립의 선명한 주인공들이 격정적인 삶 속에 제주4․3항쟁을 억지로 끼워 넣어 자칫 제주

5)  MBC

4․3기획  시리즈  7편을  제작  했다.    <현대사의  큰상처>(1989)    <묻힐수  없는  외침>(1990),  <

잃어버린

고향>(1991),<마지막증언>(1992), <이념의 대결을벗자>(1993), <4․3의 국회청원>(1994), < 다시찾는 역
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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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민중항쟁이 제주민중에 의한 항쟁이 아니라 외지의 사주에 의해 발발했거나 첨예한 사
상대립 속에 무력충돌이 일어난 것 마냥 비쳐질 허구가 존재함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될 크
나큰 결함을 가지고 있음은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2) 1995~1999. 4 : 진실 찾기
두 곳으로 나누어 치러지던 위령제가 1994년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1995년

부터는 화해의 무드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민간의 갈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진상규명운동으로서 국회특별법제정 촉구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였다.

제주도의회의 <4․3피해보고서의 발간>은 대량학살을 드러내는 증거자료가 되면서 본격

적인 대량학살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시기 4․3다큐멘터리들의 초점은 4․3은 과연 어떤
성격이고, 대량학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진실 찾기에 맞추어졌다. 다큐멘터리들은
4․3봉기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군경토벌대의 강경토벌 결과로 나타난 대량학살의 문제를
인권과 국가폭력 입장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시기는 독립다큐멘터리들의 진출이 두드러
졌다.

1995년에는 4․3을 민중항쟁으로 바라본 독립다큐멘터리 <잠들지 않는 함성 4․3항

쟁>(1995)이 만들어져 전국대학에 유포되었다. ‘잠들 수 없는 함성 4․3항쟁’은 제주사람들
의 정서를 통해 그동안 억눌리고, 은폐되어 말할 수 없었던 4․3의 원인과 성격, 피해의 참
혹성을 민중항쟁의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다. 뒷부분에 와서 무려 16분에 걸쳐 스크롤되는 1
만 5천명의 4․3희생자의 명단은 이 영화에서 압권이다. 뒤이어 제작된 <레드헌트>(1997)는
체험자의 인터뷰를 통해 대량학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 작품들은 4․3의 전국
화에 기여한 바 크다. <레드헌트>는 해외에까지 4․3을 알려나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말 <잠들지 않는 함성 4․3항쟁>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되고, 인권운동가 서준식씨가 <레드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되
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독립영화들은 공중파와는 달리 이데올로기 사슬을 과감히 끊고 영
화라는 장르 속에서 4․3을 민중항쟁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의 깊숙한 곳에서는 역
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살아있는 정신이 배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방송다큐멘터리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과 균형적 감각을 유지하지 못하는 부분
이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 4.3의 원인과 성격에 대한 진실보다는 미국과 군경토벌대의 대
량학살이라는 4․3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등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1988년에는 독립영화로 영상분석다큐멘터리 <제주도메이데이의 실체>가 만들어져 4.3의

미국책임론을 거론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침묵을 지키던 방송사에서도 <북촌사람들>(제주
MBC)이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99년에는 <인권보고서 다랑쉬 굴의 침묵>(제주MBC)이
제작되었다. 99년 9월에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팀에서 <제주 4․3>을 제작해
방송했다.6) 이들 TV 다큐멘터리들은 기존 이념의 문제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인권
유린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제기했고, 정부차원에서 해결을 촉구했다.

6) 

말할수  있다의  <제주4․3>은    ‘진실찾기’  시기를  넘어선  9월에  방송된  작품이자만  이시기에  촬영되었고 

전체적인  맥락이  ‘진실찾기’에  해당하므로  이시기에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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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99. 5~2002 : 은밀한 상처 드러내기
1999년 12월 1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

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본격적인 4․3사건 진상규명운동이 시작된 지 10여 년만의 결실이
었다. 이 시기를 본격적인 4․3해결의 물꼬를 튼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때 제작된 다큐멘터리들은 통사적 접근에서 놓치고 있던 보다 구체적이고 은밀한 상처

를 드러내는데 관심을 두었다. 이는 4․3의 문제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4․3의 후유증을 갖고 살아가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로
4․3의 문제를 현실화하고 있다.

<무명천 할머니>(1999), <레드헌트2>(1999), <잠들 수 없는 모정>(2000), <돌아오지 않

는 사람들>(2000), <일본으로 간 4․3영혼>(2001)들이 이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독립다큐멘터리 <무명천할머니>(1999)는 4․3 당시 총상으로 턱을 잃어버려 늘 무명천으

로 얼굴을 감싸고 살아가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잠들 수 없는 모정>은 4․3 당시 희생된
아들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104세의 할머니 이야기를 다뤘다.

<일본으로 간 4․3영혼> 역시 4․3으로 인해 조국을 등져야 했던 재일 제주인들의 아픔

을 오늘의 시각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행방불명된 수형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돌아오지 않
는 사람들>은 제주라는 공간을 벗어난 또 다른 4․3희생자들의 사연을 취재하고 있다. 4․
3의 상처를 보다 내밀하게 들어내 고 구체적인 실상을 통해 4․3의 문제를 보다 깊숙이 파
헤짐으로서 4․3진상규명에 한층 다가갔다고 볼수 있다.

4) 2003~2005 : 되돌아보기
정부차원의 공식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가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통과된 것은

7개월 후 대통령사과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진상규명운동이 이뤄낸 결실이었다.
2003년 4월의 다큐멘터리들은 모두 진상보고서가 채택되기까지의 진상규명운동의 역사를 되
돌아보는데 초점을 두었다. <순이삼촌 그리고 진상보고서>는 4․3 문제를 처음 제기한 현
기영의 소설 ‘순이삼촌(1978)’에서부터 다양한 장르를 통해 4․3진상규명운동을 전개해온 투
쟁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남은 과제에 대해 점검하고 있다. <4․3인권보고서, 55년만의 진
실>은 진상보고서가 담고 있는 내용을 통해 4․3이라는 역사가 공식적으로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를 점검하고 진상규명운동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 두 작품은 2003년 진상조
사보고서 채택이라는 시점에서 그간의 역사를 한번 매듭짓고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2005년~ 현재 동향
2005년은 4․3사건을 다룬 장편 독립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감독:김경률)의 탄생

과 더불어 4․3을 소재로 한 극영화 제작 움직임이 본격화된 해라 할 수 있다. 제주4․3을
소재로 한 영화는 1950~1960년대에 만들어진 반공영화가 몇 편이 고작이다. 4․3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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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미군정이 촬영한 최초의 4․3기록영화를 「제주도 메이데이(Cheju-do

May

Day)」, 白明鉉감독이 1953년에 제작한 4․3토벌영화 「한라산에 봄오다」, 1964년 
주한미국공보원 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영화 「한라산」 등이 있다. 물론 1992년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독립영화 「무명천 할머니」등의 수 십편의 다큐멘터리가 있기
는 하지만 논외로 치면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비록 독립영화이기는 하지만 몇 편
없는 극영화 중에서 최근에 만들어진 유일한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끝나지 않은 세월」은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시점에서 새로운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4․3을 다루었다는데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영화는 도내 코리아 극장, 대구평화영화제 등 도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상영되었다.

또한 과거사청산국회의원모임 주최로 국회시사실에서 상영되어 제주4․3의 아픔과 진실을
국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작품성과 기술적 측면에서는 자본과 기술 등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영화의 불모지에서
시도된 장편 독립 극영화라는 점, 영화 제작진과 배우를 제주현지에서 조달하고 도민들의
후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에서 제주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겠
다. 안타깝게도 제주4·3의 영화화에 혼신을 다했던 김경률 감독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뇌
출혈로 요절해 제주영화계에 슬픔을 던졌다.

「끝나지 않은 세월」제작과 함께 2005년은 4·3을 소재로 극 영화제작에 대한 논의가 본

격적으로 진행 되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한국감독협회 이사장 임원식 감독, 일본감독협회
이사장이자 영화 <피와뼈>의 양석일 감독, 동국대학교 감독 지망생 등 여러 사람들이 4․3
소재 극영화 제작 논의에 불을 지폈다. 2008년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에 재학중인 제주출
신 정종훈씨가 감독을 맡은 HD 장편극영화 「꽃비」도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제
주를 배경으로 4․3의 이후 세대인 학생들을 통해 4․3의 모순을 재현했다. .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상업영화로서 1백50억원이 투자되는 블록버스터 ‘한라산아’가

추진되었으나 투지회사의 발빼기로 무산되었다. 주)괸당엔터테인먼트와 삼일회계법인은 관
광과 역사를 접목한 세계적인 영화를 만들어 “ 시사회를 유엔 인권위에서 갖겠다”며 도민들
을 들뜨게 했으나 결국 물거품으로 끝나는 헤프닝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는 시대분위기에
편승하여 4․3이라는 소재를 역사적 진실 찾기나 예술적 승화보다는 얄팍한 상술로 활용하
겠다는 사기극 되버린듯하여 많은 예술인들을 씁쓸하게 하였다. 4․3을 소재로 한 영화화
에 대한 논의는 2005년말 다시 지펴지면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의삼촌’을 원작으로 하는 극
영화 ‘순의삼촌’을 제작 계획이 발표 된다. (사)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이면서 제주영상위원
회 부위원장인 임원식 감독이 영화제작 계획을 현실화하여 ‘저예산 예술영화’ 제작을 선언한
것이다. 제작사인 (주)비숀픽쳐스(대표 임원식)는 중산간 1만4200평에 9억원을 들여 '순이삼
촌 영화세트 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겠다고 발표 했다. 하지만 이마저 감독이 무책임
한 추진과 투자미흡으로 현재 까지

정지되면서 4.3영화논의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4․3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4․3의 진실을 전국과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으로 상업
성의 논리를 앞세워 제주 4․3의 정신을 훼손하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는 임원식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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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분

류   

          제          목 

형식     

  제작자 

  제작

  년도   

  문
  제
  제
  기

  일요리포트/  현대사의  큰상처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89

  영원한  아픔  4․3사건

  특집다큐 

  KBS제주/신현국
                    김기표

  1989

  분단과해방:  4․3사건  전후

  보도특집 

  KBS/전형태김기표

  1990

  일요리포트/  묻힐수  없는  외침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90

  일요리포트/  잃어버린  고향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91

  일요리포트/  마지막  증언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92

  일요리포트/  이념의  대결을벗자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93

  다랑쉬굴의  슬픈노래 

  독립영화 

  김동만 

  1993

  일요리포트/  4․3의  국회청원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94

  시사매거진2580/  이젠말하리라

  보도특집

  MBC/황헌

  1994

  진 
  실
  찾
  기

  일요리포트/  다시찾는  역사  4․3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1995

  잠들  수  없는  함성  4․3항쟁

  독립영화

  김동만 

  1995

  레드헌트

  독립영화

  하늬영상/조성봉

  1997

  북촌사람들 

  특집다큐 

  제주MBC/김건일 

  1998 

  제주도메이데이의  실체 

  독립영화

  김동만 

  1998

  4.3인권보고서-다랑쉬굴의  침묵 

  직접해설

  제주MBC/송창우

  1999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

  간접해설

  MBC/이채훈

  1999

  드
  러
  내
  기

  무명천  할머니

  독립영화

  4․3영상단/김동만 

  1999

  유언 

  독립영화

  4․3영상단/김동만 

  1999

  4.3증언-나는말한다. 

  연재물

  제주MBC/방영철외

  99-01 

  레드헌트2 

  독립영화

  하늬영상/조성봉 

  1999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특집다큐

  KBS  제주/김영훈

  2000

  잠들  수  없는  모정 

  특집다큐 

  제주MBC/김귀진

  2000

  4.3  남겨진의혹   

  특집다큐 

  제주MBC/송창우 

  2000

  대마도의  4.3위령제 

  독립영화

  김동만 

  2001

  평화와  상생의바람  4.3평화공원

  특집다큐 

  KBS  제주/김영훈

  2001

  일본으로간  4․3  영혼

  간접해설

  제주MBC/변창영

  2001

돌아 
보기

  4․3인권  보고서  55년만의  진실

  특집다큐 

  KBS  제주/김영훈

  2003

  순이삼촌,  그리고  진상보고서   

  보도특집 

  제주MBC/김건일

  2003

2005년 
이후      ~ 

  끝나지  않는  세월

독립영화 

  김경률 

  2005

  이땅에  그리움  있다 

독립영화 

  김동만 

  2007

  꽃비 

독립영화 

  동국대  /정종훈

  2008

  현의  합장묘(의로운  넋  동백꽃으로..) 

독립영화 

  김동만   

  2009

  송아지 

에니메이션

  박재동 

  2010

  동광마을  바람소리 

독립영화 

  김동만 

  2011

  *  2005년  이후  방송물  생략   

의삼촌」감독의 발표는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도민들은 여전히

4․3의 역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영화로 태어나길 고대한다.

4. 주요 4․3다큐멘터리 목록

< 표 > 4․3다큐멘터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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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4․3 영상 작품 해설

① <영원한 아픔 4․3사건>

<영원한 아픔 4․3사건>은 제주4․3사건을 좌우이데올로기 속의 희생양으로서 제주도민

을 다루고 있다. 즉 ‘군경토벌대’로 상징되는 우익진영과 ‘폭도’로 상징되는 좌익진영의 대립
을 축으로 ‘양민’으로 대표되는 희생자들이 양쪽으로부터 피해를 받아야 했던 억울함을 드러
내는 기록과 증언이다.

② <묻힐 수 없는 외침>

제주MBC의 <4․3기획2-묻힐 수 없는 외침>은 새롭게 정리되어야 할 역사적 과제로서

제주4․3의 현재 모습을 다루고 있다. 4․3의 현재 모습이라는 틀 속에서 “폭동”론을 주장
하는 사람들과 “항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간의 대립을 통해 합일점을 모색하고, 과거갈등
과 현재갈등의 축 속에서 4․3 당시의 희생자를 억울한 희생자로 규정, 좌우를 떠나서 역사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③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는 1992년 다랑쉬굴의 11구의 4․3희생자 발굴에서부터 정부와

북제주군청에 의해 화장되기까지를 시간적 흐름을 축으로 그들이 어떻게 희생되어 무엇 때
문에 죽었는지를 밝혀 가는 프로그램이다. 더불어 유해를 둘러싼 제주4․3연구소와 관청의
갈등을 보여준다.

④ <레드헌트>
독립다큐멘터리 레드헌트는 4․3의 원인과 발발, 5․10선거 반대, 초토화작전, 결말에 이

르는 시간적 흐름 속에서 미군과 군경토벌대, 서북청년단을 폭압자로 그리고 제주도민의 모
습을 희생자로 그리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드러내고자하는 것은 대량학살의 참혹성과 그
책임자를 규명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많은 희생자들의 증언과 집단학살의 피해사례를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⑤ <다랑쉬굴의 침묵>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게 과감히 말하자. 이제는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자.”

‘4·3인권보고서-다랑쉬굴의 침묵’은 1999년 제주MBC 문화방송의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다

큐멘터리로 인권적 측면에서 4·3을 바라보고 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나이든 노인들까지 참
혹하게 희생되었던 제주4․3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다. 다큐멘터
리는 4·3 생존자들은 목소리를 모아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속에 무
참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또 4·3당시 미군정이 촬영
한 ‘제주도 메이데이’를 통해 ‘코소보 사태’등을 주도하며 세계적인 인권국가를 자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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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미국의 책임도 지적하고 있다.

⑥ <이제는 말할 수 있다/제주4․3>의 제주도메이데이 영상자료 활용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MBC의 정규프로그램으로서 그간의 이데올로기적 금기나 사회

금기의 벽을 깨고 달라진 역사인식 속에서 묻혀진 역사와 사회현상을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
를 갖고 있다. 중앙방송사가 제주4․3을 특집으로 편성한 경우는 이 다큐멘터리가 유일하다.
이 다큐멘터리 역시 4․3의 대량학살의 문제를 인권과 국가폭력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4․3의 원인과 전개과정, 결말에 이르는 서사적 구조 속에서 대량학살의 1차적 책임이 국가
에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한 근거로 체험자의 증언과 당시 토벌책임자들의 증언, 미
군정자료와 각종의 문헌자료 등을 현장증거로 풍부히 제시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4․3
당시의 대량학살과 관련해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한다.

⑦ <무명천 할머니>
독립다큐멘터리로 <무명천 할머니>는 4․3 당시 영문을 알 수 없는 총격으로 턱을 잃어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삶과 몸짓 증언을 통해 제주4·3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
다. 이 다큐멘터리는 무명천 할머니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4․3의 아픔과 역사의 진실을 이
야기하고 있다.

⑧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제주KBS가 제작한<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4․3과 한국전쟁이라는 중첩된 역사 속에

서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4․3의 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4․
3 당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검거되어 육지형무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전
쟁이 발발하면서 흔적을 감춰버렸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들 수형인들이 어딘가에서 처형당
했을 것으로 가정해 그 가정을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해 입증하고 학살의 부당성을 고발하
고 있다.

⑨ <일본으로 간 4․3영혼>
제주MBC가 제작한 <일본으로 간 4․3영혼>은 제일 제주인들의 4․3 이야기다. 왜 그들

은 일본으로 떠나야 했으며,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억과 상처는 무엇인가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기억과 상처를 통해 4․3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
고 있다.

⑩ 독립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
독립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4․3당시 토벌대에 의해 형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형

민과 역시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처를 잃은 황가라는 두 노인
의 회상을 바탕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50여년 동안 4․3의 아픔을 가슴속에 응어리로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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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왔던 형민의 눈을 통해 4․3당시 학살의 참혹함과 가족 공동체의 모순을 화해로 풀어나가
고 있다. 더불어 아직도 가해자의 사죄가 없는 현실을 황가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어쩌면
아직도 가해자의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 당시의 아픔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점에서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고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6. 애필로그

영화의 전파력은 책이나 보고서보다 훨씬 강하다. 가깝게 광주항쟁만 보더라도 관련 영

화들이 주는 충격은 어떤 책이나 보고서에서 주는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주4․3사건
역시 역사적 진실규명과 그 실체를 알림에 있어 영화가 차지하는 몫은 자못 크다고 할 것이
다. 역사적 진실 찾기라는 측면에서 독립제작자와 방송제작자와의 역사적 진실의 반영은 상
호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방송사인 경우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조직의 관점, 시청자의
반응이 제작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독립제작자는 상대적으로 주변영향력으로부터 어느 정
도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4.3진상규명과정에서 독립 다큐멘터리와 방송 다큐멘터리
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두 주체의 다큐멘터리는 진상규명과정
에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서로 다른 의무와 역할로 활동했다기보다는 각각의 시기와 각각
의 방송, 각각의 위치에서 동일한 담론과 동일한 목소리로 경쟁하듯 상호 보완적으로 다큐
멘터리를 만들어왔다. 이 점은 4․3진상규명운동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정
부차원의 진상규명과 대통령사과를 이루어내는데 숨겨진 동력으로 작용했다.

최근 4․3극영화 제작에 대한 논의가 다시 조심스럽게 논의 되고 있다. 한국전쟁과 관련

해서는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최근의 “고지전”까지 다양한 극영화가 만들어
졌다. 제주4.3이 ‘한국현대사의 비중있는 역사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상업영
화인 4․3극영화가 1편 이상은 만들어져야하지 않겠는냐’는 의견이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