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No
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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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 41
2020. November.
Vol. 41
특별인터뷰_ 걸음과 거름
“4·3의 본질 탐색, 왜 중요한가”
특별논단
제주4·3, 전 인류의 기억으로
뉴스포커스
제10회 제주4·3평화포럼
C O N T E N T S 2020. November. Vol. 41
여는글
전국청소년 4·3문예공모 시부문 대상작
_ 이나희, 강선영
특별논단
제주4·3, 전 인류의 기억으로
_ 박찬식
특별인터뷰 _ 걸음과 거름
“4·3의 본질 탐색, 왜 중요한가”
고희범
_ 허호준
뉴스포커스 _ 제10회 제주4·3평화포럼
4·3 평화인권교육의 기억과 전승
_ 고은경
리뷰
_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자 제주의 아픔을 오페라로
_ 김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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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제주바-01019
등록일
2011년 3월 25일(계간 비매품)
발행일
2020년 11월 25일
발행처
제주4·3평화재단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
(봉개동 237-2) 제주4·3평화기념관 4층
TEL. 064.723.4373 / FAX. 064.723.4303
www.jeju43peace.or.kr
발행인
양조훈
편집인
고성철
편집담당
김영모
편집위원
강덕환, 좌용철, 이정원, 김가민, 조정희
디자인·인쇄 하나출판
4·3평화공원 위령탑 인근에 자리잡은 억새들이 올해 마지막
가을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_김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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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0
세대전승 4·3·2·1
“게임으로 배우는 제주4·3, 어때요?”
<언폴디드 : 동백이야기> 김회민·정재령
_ 송지은
기억과 기록 ④ 독일
독일의 역사를 위한 기억장치들
_ 조미영
4·3의 증언
“먹쿠실낭에 올랑 오라방 죽는 거 봐도 어멍안틴 못 안”
강순아(1937년생, 한림 명월, 봉개동 거주)
_ 조정희
뉴스현장 _ 4·3가족문화제
제주4·3, 가족의 힘으로 치유하다
_ 김영모
새로나온 책
주요참배객
재단뉴스
평화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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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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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4
숨비소리 - 4·3 수장학살 피해자들을 기리며
이젠 나와요
오래 있었잖아요
끝이 없는 그 바다에
그 찬 바다에
그 퍼런 바다에
그만 나와요
오래 있었잖아요
막막하게
적막하게
숨막히게
얼른 나와요
삼키려고 해도 삼킬 수 없던
뱉어내려 해도 뱉어낼 수 없던
그 새카만 바다에
오래 있었잖아요
그러니 어여 나와요
올라와선 눈을 뜨고 숨을 뱉어요
호-오-이 호-오-이
천-천히
아무도 모르던 그때의 그늘을
나조차 모르던 검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붉은 그날을
말할 수 없었던 시퍼런 나날을
다,
다,
뱉어내요
천-천히
천-천
히
호-오이
호-오
이
탐라중학교 3학년 이 나 희
여는글 _ 전국청소년 4·3문예공모 시부문 대상작
중등부
대상
5
4.3 and Peace
고해성사
봄마다 관덕정에 휘영청 걸려 우리 온몸을 감싸 안던 숨결이 총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
까지 70여 년이 걸렸다
오직 심연(深緣)을 아는 사람만이 심연(深緣)을 사랑할 수 있다 그대는 오래전 눈을 감기만 하면 떠
날 수 있는 바다로 향했고 감긴 그대의 눈 아래로 두 개의 바닷길이 나란히 흐른다 내가 사랑하던
그대 얼굴 표면에 아주 반짝거리면서, 해가 뜨자 지난 밤의 육체를 버리고 눈을 감는다 이 봄의 참
극을 기억하기 위해 그대의 밤을 알고 싶었다
그대 구전으로만 전해질 이름이여 내 동맥에는 기어코 그대의 눈물이 흐른다 아무도 그대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내 삶은 내내 장례다 우리는 팔뚝을 타고 뚝뚝 게걸스럽게 흘러내리던 핏물을 보며
흰 국화 대신 장례식에 쓰자는 다짐을 했고 동백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대는 필멸할 것이고 나는 필멸할 것들만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는 긴 생을 돌고 돌아 영영 끝나지 않을 것들과 반드시 기막힌 사랑을 나눈 후 내게로 와서 죽
을 것이다 그대는 다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어 이 밤을 영원히 서성거린다 나는 그대를 너무 그리워
해서 이 밤에 머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제히 동백이다
준비한 적 없는 발화처럼 문득 내 입을 빌려 튀어나오는 어떤 단어들, 불안한 숨을 온 몸에 가두고
진동하던 손가락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고서 매무새를 점검해야 만 겨우 가닿을 수 있는 겨우 철자
하나 삼킬 수 있는, 그대 역사를 전하기 위해서 그런 준비를 했었다 읽고 삼키기 위해서, 때때로 닿
지 못할 걸 알면서도 뛰쳐나가는 고백이 있다 나는 다만 성급하게 주워 담지 않고 기나긴 폐곡선을
그리도록 한다
그대 지은 시에 누군가 유작(遺作)이란 제목을 붙였고 내가 유작(有作)이라 고쳐두었다
그리하여 서늘한 봄이여 오지 않아도 좋다
코앞에 훌쩍 다가온 다정한 겨울로 발을 내디디며 나는 말했다
제주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강 선 영
고등부
대상
6
특별논단 _ 4·3과 유네스코기록유산 등재
세계기록유산의 개요
유네스코는 1992년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MOW)’ 사업을 설립했다. 이 사업
은 기록유산의 보존에 대한 위협과 이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세계 각국 기록유산의 접근성
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세계의 기록유
산은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
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보호하고, 기록유산
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며, 기록유산
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시
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1993년 사업 수행의 중
추 역할을 담당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가 처
음 개최되어 사업의 틀과 실행계획을 수립
하했다. 1995년 기록유산 이행 관련 가이
드라인(General Guideline to Safeguard
Documentary Heritage)이 유네스코 총회에서
처음 채택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기록유산 목
록 등재가 시작되었다.
제주4·3, 전 인류의 기억으로
-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현황과 과제
박 찬 식
4·3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사업 책임연구원
4.3 and Peace
7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기록물의 형태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소
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성과물은 심사를 거쳐 ‘인류의 기억’
으로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한편, 보존 및 접근성 향상에 필요
한 전문적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등재 기준이 2002년 개정되면서 문자기록뿐만 아니라 영상,
가상기록 등 디지털자료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기록매체와
기록방법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기록유산 등재 목록은 IAC 총회가 개최되는 2년마다 한 번씩
국가마다 2건 이내로 신규 기록유산 등재 신청서 접수를 받고
심사를 거쳐서 결정된다.
한국에서는 문화재청에서 사전 접수와 심사를 거쳐 2건을 선
정하여 IAC 총회에 제출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
재되기 위해서는 인류문화의 중요기록을 담고 있어야 하며,
진정성, 독창성(대체불가능성), 세계적 가치, 희귀성, 관리계
획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한다.
▲ 지난 2013년 광주에서 열린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우리나라의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을 비롯해 50여개국 84점의 기록유산에 대한 등재 여부를
심사했다.
8
4·3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가치
4·3기록물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
월 24일까지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전개된, 시
민 무장대와 국가 진압병력의 무력 충돌 과정에
서 수만 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사실과 이후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명예회복의 해결 과
정과 관련하여 기록되고 생산된 문건, 사진, 영
상, 유물 등의 자료를 총칭한다.
4·3기록물은 크게 사건이 일어난 당대 기록과
후대 기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당대 기록은 ‘냉전과 분단, 집단희생의 진실’을
담고 있는 국무회의록 등 정부 측 자료, 군인·
경찰 측 자료, 무장대 측 자료, 판결문·수형인
명부 등 행형자료, 미국·러시아·일본 등 외국
소장 자료, 사진·영상 자료, 유물 등이 대표적
이다.
후대 기록은 ‘정의와 평화·인권,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희생자 신고자료(국회 1,878
명, 도의회 14,343명, 4·3위원회 14,532명),
등재 연도
기록유산 명칭
1997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2001
<직지심체요철>, <승정원일기>
2007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조선왕조의 궤>
2009
<동의보감>
2011
<일성록>, <5·18민주화운동기록물>
2013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
2015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한국의 유교책판>
2017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세계의 기록유산은 인류 모두의 소유물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보존·보호
지금까지 128개국, 8개 기구에서 신청한 427
건이 등재되었다. 외국의 기록으로는 네덜란드
의 <동인도회사 기록물>, <안네 프랑크 일기>,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경>, 영국의 <노예기록
물>,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기록물>, 덴마크의
<안데르센 원고>, 콜롬비아의 <흑인과 노예 기
록물>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은 현재까지 16건이 등재되었다.
4.3 and Peace
9
각 단체의 진상규명운동 자료, 4·3위원회의 진
상조사 결과(진상조사보고서, 희생자 결정자
료, 백서 등), 수많은 증언 구술자료, 암매장 유
해발굴 자료, 합동위령제 등 화합 관련자료,
4·3관련 국제교류협력 자료, 민간자료(일기,
회고록, 수기, 취재기 등) 등을 제시할 수 있다.
4·3기록물은 세계적 냉전과 한반도 분단의 국
내외 정세 속에서 빚어진 거대한 국가폭력에 의
해 작은 섬 제주도 주민들이 집단 희생된 비극
을 극복하고, ‘진실, 평화, 화해, 상생’을 이루어
낸 사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과거사 해결과정의 모범적 사례로서, 남아
공의 ‘진실 화해 해법’을 넘어서는 ‘진실, 화해,
상생, 평화 지향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가공권력에 의한 주민 집
단희생 사건과 비교했을 때 기록물의 종류와 내
용이 매우 풍부하며, 1만5천여 명에 달하는 희
생자 관련 기록이 잘 남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4·3 해결 과
정에 주목하고 있다.
4·3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 과정
4·3기록물의 소장 주체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재 4·3평화재
단을 중심으로 국내외 문서기관, 민간 연구기
관, 유족회를 비롯한 4·3관련 단체 및 개인들
이 4·3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다.
4·3기록물의 본격적인 수집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3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진상규명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위
원회가 수집·정리한 주요 기록물은 12권의 자
료집으로 발간된 바 있다. 이후 2008년 4·3사
료관(현재의 제주4·3평화기념관)이 개관하고
4·3평화재단이 설립된 이후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되었다. 이들 자료는 현재 제주4·3평화기
념관 수장고와 아카이브실에 소장되어 있다.
4·3평화재단은 2017년 온라인 ‘제주4·3아카이
브’(http://www.43archives.or.kr/)를 개설·
운영함으로써 시민들에게 1만2천여 건의 4·3
기록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위와 같은 과정에서 2011년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지켜본 4·3평화
재단 측에서는 한국현대사의 유사 사례인 4·3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4·3재단은 세계기록유
산 등재 논의의 물꼬를 트는 전문가 초청 토론
회를 개최했다.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행정 당국
이 직접 나서서 의견 수렴 등 사업 구상을 거친
후 2018년부터 본격적인 등재 추진 사업을 시
작했다.
2019년부터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특별자치
도와 업무대행협약을 체결하여 4·3기록물의 유
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사업을 본격 추
진했다. 재단은 우선 기념관에 소장된 기록물
10
을 중심으로 등재 추진에 필요한 기록물을 선별
하고 총목록 작성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
을 수행했다. 4·3과 비슷한 국내외 유사 사례
들의 등재 신청서를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여 등
재신청서 작성의 참고자료를 확보했다. 12월에
는 얀 보스(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
원회 등재심사소위원회 위원장) 등 세계기록유
산 주요 전문가를 제주로 초청하여 국제심포지
엄을 개최함으로써, 등재 추진의 과정과 성과를
공유하고 4·3기록물 등재 추진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2020년 올해에는
지난 몇 년간의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등재 신
청 준비에 착수했다. 등재 신청서 초안을 작성
하고, 등재 신청 대상 기록물을 유형, 생산시기
별, 주요 키워드에 기준을 두고 분류 정리하는
작업을 수행 중에 있다. 또한 민간 소장 4·3기
록물 수집 캠페인을 추진 중이며, 4·3진상규명
운동의 주역 인사들에 대한 구술채록 영상 인터
뷰를 진행 중에 있다. 12월에는 4·3기록물 전
시회를 개최하여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 기록
물을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향후 전망과 과제
현재 세계기록유산의 신규 등재 신청은 제도 개
선 논의가 진행됨으로써 잠정 중단된 상태다.
지난 2015년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기록물>
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 이어 2017년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일
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신청하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사업이 정치에 이용되고 있다
며 등재 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유네
스코 분담금 지급을 미루기까지 했다. 유네스코
는 2018년 워킹그룹을 구성해 등재 제도 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2019년까지 완료 예정이던 제도 개선은 결국
해를 넘겼고, 올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정
이 더 지연되어 이르면 2021년 3월 중 제도개
선(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계획대로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의 승인을 거친
다면 빠르면 2021년 하반기에 등재신청이 재개
될 것으로 예상된다. 등재신청이 재개되면 한국
에서는 지난번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검
토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동학농민
혁명 기록물>과 <4·19혁명 기록물>의 등재신
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리고 기존의 심사-
등재 주기대로 2년 단위로 신청을 받는다면, 차
기 등재신청은 2023년에 이루어질 것이고, 국
내 공모는 2022년에 추진될 예정이다.
4·3기록물의 등재신청을 준비하던 제주특별자
치도와 4·3평화재단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의 중단을 오히려 4·3기록물 관리의
내실화에 주력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장
차 4·3기록물의 수집·관리 및 온·오프라인 공
개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체계 개편을 기획하
고 있다. 수많은 자료를 더욱 검색하기 쉬운 환
경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현재 온라인으로 운영
4.3 and Peace
11
중인 4·3아카이브를 개선하는 사업을 구상 중에 있으며, 오는 12월에
펼쳐질 ‘4·3기록물 전시회’를 경과하면서 장차 설립될 ‘4·3기록관(가
칭)’을 선제적이며 시범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물론 2년 뒤에 있을 국내 공모에 대비한 작업에 최우선적으로 주력할
것이며, 국내외 관련 기관과의 교류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4·3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4·3
의 보편적 가치를 인류와 함께 공유하고, 대한민국을 성숙한 인권국가
로 세계에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며, 냉전과 분단,
독재와 분열·대립을 극복하고, ‘진실과 평화·인권, 화해·상생’을 지향
한 4·3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음으로써 이념적 갈등의 해소와
4·3의 세계화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4·3당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 ▶
▲ 4·3당시 형무소 수형인들이 집으로 보낸 엽서
▼ 1960년 제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보고서」
12
인터뷰 _ 걸음과 거름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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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본질 탐색
왜 중요한가”
대담·정리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사진 김영모 재단 기념사업팀
4·3 해결을 위한 걸음과 거름
고희범 전 제주시장
고희범 전 시장은 1953년 제주 출생으로 1975년 CBS
에 입사해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1989년 제주4·3연구소 창립에 기여하고 이후
제주사회문제협의회 회장,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제주
4·3연구소 이사장, 4·3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2000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이 4·3특별법에
서명할 당시 청와대에 초청돼 현장을 지켜보기도 했
다. 2018년 8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제주시장을 지
냈다. 제1회 가톨릭 언론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
서로는 <이것이 제주다>, <길과 길> 등이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던 9월, 「4·3과 평화」가 고희범 전 시장을
만났다. <편집자주>
26
14
지난 9월 23일 오후 5시. ‘전 제주시장’ 고희범
선배를 만나러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자택을 방
문할 무렵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주변
의 밭과 하천 건너 바로 앞 사찰이 어우러져 반
쯤은 전원주택의 향기가 묻어났다. 현관문을 노
크하자 형수님이 나오셔서 맞았다. 애초 아담한
자택의 발코니에서 인터뷰를 계획했으나 취소
하지 않으면 안됐다. 필자는 <한겨레> 우산 아
래에서 17년이나 가까이 했으니, ‘시장’이라는
호칭보다는 ‘선배’라는 호칭이 편하다.
부부만 단출하게 사는 거실에는 손자들의 사진
으로 가득찼다. 거실 한편엔 아직 완성되지 않
은 손자의 책상이 놓여 있었다. 몇 분 뒤 고 선
배가 숨 가쁘게 들어섰다. 유수암리의 공방에서
손주의 책상을 짜다가 뒷정리를 하고 오느라 늦
었다며 반갑게 맞았다.
“요새도 목공일을 하시냐”는 멋쩍은 질문에 선
배는 “유수암리에 있는 공방에서 주말 이틀 동
안 3시간 정도씩 작업을 한다. 야단맞으면서 배
우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그는 신엄리에
거처를 정한 뒤 부지런히 목공을 배웠고, 제법
근사한 의자나 테이블을 만드는 ‘숨은 솜씨’를
SNS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손자한테서 주
문받은 대로 리프트업 테이블을 만들고 있다”는
말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듬뿍 배어났다. <한겨
레> 대표직을 끝으로 지난 2006년 언론계에서
물러난 뒤 정치인으로, 또 1년 10개월 동안 제
주 시장직을 수행했던 그는 편안함이 묻어난 미
소를 띠었다.
“인터뷰할 것이 뭐가 있다고 인터뷰를 하느냐”
며 손사래를 쳤지만, 대담은 대담인지라 지난 6
월 30일 제주시장직에서 물러난 뒤의 근황부터
물었다.
“그동안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도 읽고 목공작
업도 하면서 잘 쉬고 잘 놀고 있어요. 최근에
<2030 카이스트 미래경고>, <코로나0년 초회
복의 시작> 등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코로나0
년 …>에는 ‘포스트(post) 코로나’라는 말이 없어
요. ‘이제는 코로나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인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위드(with) 코로나’
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그 표현에 매우 공감했습
니다. 코로나 이전 시대로 회복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전제 아래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돌아가
서도 안된다는 주장이에요. 완전히 다른 세상으
로 가야 하는데 이는 회복이 아니라 초회복이어
야 한다는 겁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전망과
대안이 흥미로왔습니다.”
‘10년 후 한국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선배가 읽은 <2030 카이스트 미래
경고>는 한국사회의 위기를 분석하고, 이의 근
본 원인으로 ‘사회적 합의 부재’를 지적하며, 사
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서재 한
쪽 면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제주4·3평화재단 기관지의 대담인만큼 질문과
답변은 ‘4·3’에 집중됐다. 4·3을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부터 물었다.
4.3 and Peace
15
4.3 and Peac
“어릴 때부터 ‘이덕구’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하지
만 제대로 4·3을 고민하게 된 것은 1987년 서울에서 제주사회문제협의
회(이하 제사협) 활동을 할 때였어요. 그때는 기자 신분이었는데 제사협
회원들끼리 4·3을 이야기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으니 오래전부터 4·3진
상규명 활동했던 분들에 비하면 엄청 늦은 거죠.”
그는 <한겨레> 기자 시절 ‘발굴 한국현대사인물’ 연재물에 ‘이덕구’편을
취재해 썼다. 1990년 4월 6일 자 <한겨레>에 실린 ‘제주4·3 이끈 교사
출신 유격대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논쟁적인 인물을 역사의 전면
에 내세웠다.
필자는 당시 그와 함께 이덕구와 관련된 취재를 하면서 당시 이덕구를
직접 만난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가 피신했던 집을 취재하기도 했다.
4·3의 과제와 해결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는 고희범 전 시장과 허호준 기자(오른쪽)
16
<한겨레> 창간 초기 제주의 개발 바람이나 탑
동 매립지 문제 등을 다룰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 당시 결성된 제사협
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고향 생각만 할 게 아니
라 고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고 했어요. 제주의 지하수 문제나 개발 문제 등
제주 현안을 논의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4·3이 있었습니다. 4·3을 겪었던 유족들은 점점
연로하고 세상을 뜨고 있는 터에 그분들의 경험
과 증언을 남길 방안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일
었죠. 그래서 4·3연구소를 만들자는 결론에 도
달하게 된 겁니다. 제사협을 비롯해 뜻있는 사람
들이 4·3연구소를 만들고 진상규명 운동에 박차
를 가하기 시작했어요.”
제주4·3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지만,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4·3의 본
질연구’를 강조해왔다. 왜 본질인가.
“해방 당시 단독정부 수립 반대는 전국적으로 진
행된 움직임이었는데 왜 유독 제주도만에서 이
렇게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늘 있습니다. 그렇다면 ‘4·3의 본질은 무
엇인가’라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2000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이 4·3특별법에 서명할 당시 청와대에 초청된 모습(오른쪽에서 두 번째)
4.3 and Peace
17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변이 제대로 이뤄져야 4·3을 과거사 정리 차원에
서 역사 속으로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열린 제71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 쓰고 낭독한 ‘제주평화선언’으로 화제를 돌렸다. 도
올이 제주사람들은 “젊었기 때문에, 젊으니까 ‘정의’에 눈을 떴고 젊으
니까 나섰고 그래서 당한 거다”라고 밝힌 것이 너무 고마워 “제주도민
과 유족들을 향한 최고의 위로였다”며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자신의 평화에 대한 철학 전체를 담은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다고 전했
다. 도올은 당시 “4·3의 정신은 자주와 독립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주의 젊음은 비극 속에서 성장하면서 비극의 모든 성과를 수확했습
니다. 정의(正義)를 한라산 현무암 굴곡진 아름다움 속에 구현하여 왔습
니다. 제주는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제주는 탐라의 민중들이 창조하여 온
것입니다. 제주의 모험은 이어도의 꿈에서 시작하여 청춘의 열정과 비극
적 아름다움을 결합시켰습니다. 그 결합의 힘이 바로 삼다 삼무의 평화
의 감각입니다. 올해 추념식 때는 대통령께서 직접 4·3을 통일운동, 독
립운동으로 규정했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정작 그 본질적 연구가 충분하
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나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4·3의 본질
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말입니다.”
그에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겠다”며 “왜 4·3을 기억해야 하느냐”
고 물었다. 그건 내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될 때 첫째 이유가 4·3의 아픔을 화해와 상
생으로 극복하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실현해 왔다는 것이었죠. 4·3의 엄
청난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야 말로 전 세계에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고 생각해요. 아픈 역사,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세계 어디에서든
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사회에서도 재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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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요. 우리가 4·3의 진상을 진작에 밝히고 이야
기했으면, 5·18 광주학살이 일어났을까요? 당시
국가가 시민들에게 총질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것이 우리가 4·3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고 봅니
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4·3평화재단의 역할은 무엇
일까. 그는 “재단이 민간영역의 연구를 지원하
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단이 연구하는 방향과 제주4·3연구소가 연구
하는 방향은 다를 것입니다. 재단이 연구의 자유,
학문의 자유와 비슷한 취지로 연구 지원에 관심
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예로 4·3에 대한 미
국의 책임문제를 주제로 미국에서 세미나를 여
는 등 미국의 관심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
국에 흩어진 4·3 자료들을 수집해 추가 진상조
사에 반영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
각해요.”
제주시장직을 수행하면서 4·3 행사에는 꼭 참
석하려 했다는 그는 4·3에 대한 공무원의 인식
이 달라졌다는 것도 실감한다고 말했다.
“공직사회도 많이 변했어요. 과거에 비해 4·3에
대한 관심도 높고 모든 행사의 국민의례 순서에
서 묵념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4·3영령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정부의 4·3희생자추념식 행
사와 4월 3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한 것을 보
면서 4·3이 공적 영역에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많이 실감합니다.”
유족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했다.
“이제는 자신 있게 4·3을 대하고, 희생된 역사를
제대로 미래 세대에 알려줘야 한다. ‘우리 아버지
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죽여버려수다’는 게 아니
라 정확하게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
게, 왜 희생됐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추념식 때는 자녀, 손자의 손을 잡고 함께 추모
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끔 오랫동안 4·3 진상규명과 연구를 했던 이
들에게는 4·3과 관련한 일화들이 전해진다. 고
선배도 그런 일화를 갖고 있다.
“4·3특별법 제정, 그리고 <제주4·3사건 진상조
사보고서> 발간 등의 성과가 나오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 4·3위
령제에 참석해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도
민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난 뒤였던 것으로 기
억돼요. 꿈속에서 파란색 칠을 한 아주 넓은 수
영장이 있었고 물이 없는 수영장 바닥과 벽체를
수 없이 많은 사람 형체의 검은 그림자들이 가
득 붙어있는 거요. 나는 그 그림자들이 4·3영령
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여기 계시면 어떻게 합니
까? 이제 좋은 데로 가셔야지요.’라고 하면서 하
늘을 향해 두 팔을 비스듬히 들어 올렸더니 이
4.3 and Peace
19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거예요. 그리고 이 그림자들이 끝도 없이 공중으로
너울너울 올라가는 것을 보고 꿈에서 깼어요. 나는 꿈을 꾸고 나면 잊어
버리는데 지금까지도 너무 생생합니다.”
그는 <한겨레> 재직 시절 제주4·3특별법 제정 투쟁 과정에서 국회의원
과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막후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고 선배
에게 4·3과 관련해 한 말씀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야 뭐 4·3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위해 박수치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
까. 언젠가 4·3과 관련된 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어요. ‘아,
이 정도면 됐다. 이제는 4·3 동네를 떠나도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데 그 해 4·3희생자추념식에 갔다가 위령제단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소주
와 귤 몇 개를 놓고 자리를 옮겨가면서 대여섯 차례나 절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일가족이 몰살을 당한 유족이었죠. 눈물이 울컥 나면서 영령들
께 약속했지요. ‘떠나지 않겠습니다’고”
대담이 끝나 밖으로 나오자 어느덧 주변이 어두워지고, 비는 계속 내리
고 있었다.
지난 1월 제주시장으로서 북촌리4·3합동위령제에서 헌화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 제주시
뉴스포커스 _ 제주4·3평화포럼
그동안 4·3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를 고찰하는데 앞장선 제주4·3평
화포럼의 올해 주제는 ‘4·3 평화·인권교육의 기억과 전승’이다.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하고
올해로 열 번째를 맞이한 포럼은 지난 10월 30~31일 샬롬제주호텔에서 개최됐다.
<편집자주>
4·3 평화인권교육의 기억과 전승
고은경 재단 조사연구실
[제10회 제주4·3평화포럼]
4.3 and Peace
30일 오후 5시, ‘제주4·3항쟁과 역사 인식’을 주
제로 기조 강연에 나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병
욱 원장은 아직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을 가지고
4·3에 대한 역사 평가 문제를 논하기는 조심스
럽다”고 말했다.
교과서의 서술과 편찬에는 여러 물리적인 제약
은 물론 고려해야 할 다양한 조건들로 인해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평화포럼을 통해 “현재 4·3에 대한 역사 인식이
어떠한지 가늠해 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시간으로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31일 오전 10시. 둘째날은 총 3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1세션의 주제는 ‘역사 교과서와 4·3
교육’으로, 첫 번째 발표를 맡은 고동환 교수(한
국과학기술원)는 교육과정 집필 기준을 만들면
서 고민했던 내용과 현재까지 역사 교과서에 서
술된 “4·3의 관점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고동환 교수는 제주4·3은 정치·이념적 필요성
에 따라 편향적인 기억화가 강요되었던 대표적
인 사례로 볼 수 있으며, 4·3을 좌우대립의 현
상으로 볼 것인가. 민족 해방 이후의 통일민족을
수립하기 위해 단정 단선에 반대한 것으로 볼 것
인가?의 시각이 중요한 차이를 일으키고 있다”
고 강조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 김병윤 교사(인창고등학교)는 교
과서 집필에 직접 참여한 경험과 함께 ‘현재 교
과서 대부분이 서울·경기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어, 지역에서의 연구성과들이 교과서에 많이
반영되지 못하는 점’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성공적인 진실규명 운동사로 거듭난 제주4·3
의 역사가 재미와 흥미로 소비되는 역사로 흐르
지 않고 오늘날까지 걸어온 진상의 의미와 그 가
치에 대한 훼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 전했다. 특히 “일선 학교에서 실시하는 디지
털 교과서와 연계한 교육을 통해 실천적인 평화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1세션 마지막 발표자는 시민과 대중을 향한 역
사교육으로 유명한 스타 강사 최태성 소장(별별
한국사연구소)이었다. 그는 거듭 교육과정의 중
요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들어갈 제
주4·3사건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함을
제시했다. 최 소장은 “어쩌면 세대별로 현대사
를 바라보는 시각이 4·3을 통해 보일 수도 있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역사 왜곡과 디지털 오염
이라는 다음 단계를 고려하기 전에 세세한 내용
을 통해 단단하게 기본을 쌓아야 한다.”는 의견
을 전했다.
‘평화교육과 기억의 연대’를 주제로 한 포럼 2세
션은 전세계적인 측면에서 비슷한 제노사이드의
해외 사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북아일랜드 사례를 든 강순원 교수(한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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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고동환
4.3 and Peace
23
고동환
김병윤
최태성
강순원
“
현재 4·3에 대한
역사인식을 가늠해보고
과제를
모색하는 시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것
”
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일랜드 평화교
육이 왜 외국에서는 많이 알려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영화 등 미디어 문화 홍보가 그 이유일 수 있다
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사진, 전쟁벽화 등 예술을 활
용해 미학적 감수성에 호소, 분쟁기의 역사를 지속적
으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
금 공동의 기억에서 역사적 관점이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지 알게 하고, 이런 역사적 관점이 다른 지
역의 지역민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이해하게 하는 것
이야 말로 평화·인권교육이 이루려고 하는 가치”라
고 밝혔다.
임지현 교수(서강대학교)는 ‘국경을 넘는 기억의 연
대는 과연 가능한가. 그 기저에는 끊임없이 근대의
국민국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던졌다. 기억을 표상하는 방식은 장소나 사물에 따라
그 형상이 다를 수 있음을 설명하고 연구자와 예술인
들의 끊임없는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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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관해 연구하고 재창조를 통해 다양하게
기억을 형상화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며 “고통에 대한 기억의 상품화를
우려하고 자신만의 고통을 특권화시키는 기억의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3세션은 ‘평화·인권교육의 미래 전망’을 주제로
최호근 교수(고려대학교), 조정아 교사(일산동고
등학교), 이대훈 소장(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의 발표로 채워졌다.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에서 시작해서 그들의
폭력에 대한 위험성과 희생자들에 관한 기념의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는 말로 세션을 시작한
최호근 교수는 제주4·3을 겪고 평화의 섬으로
이야기되는 제주도가 평화에 대한 염원과 정체
성은 강하지만 그 실현을 제대로 이루지 못함을
강조했다. 평화와 인권, 비판적인 민주시민 등 함
께 공존할 수 있는 가치들을 가지고 평화가 품는
‘4·3역사기반 평화교육의 로드맵’을 구성하려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4·3의 교과서 전개 과정에 무엇을 봐야 할 것인
가’에 대한 물음을 한 조정아 교사는 인간의 행
위와 선택에 중점을 두었다. 또 “학생들을 위한
폭력과 갈등을 유발하는 타자상 제거를 위해 평
화가 없는 상태를 비판적으로 대하는 능력을 기
르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평화교육이 필요
하다”고 강조했다.
조정아 교사의 필요성에 답하듯이 마지막 세션
발표자 이대훈 소장(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은 ‘코로나19-기후위기 시대 평화교육의 방법’
을 제시했다. ‘역사교육과 평화교육과의 인과론’
을 들어 “사건을 과거로만 보지 않고 현재의 시
점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임지현
최호근
조정아
이대훈
4.3 and Peace
25
이대훈
냉전 시기에 만들어진 국가·국수주의적일 수
있는 안정적인 패러다임인 ‘힘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나와 타인과의 상호성에 대한 구조의 패
턴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세션이 끝나고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이 좌장으로 나선 종합토론에는 이신철 소
장(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정용숙 교수(중앙
대 학교), 강인아 교사(서귀포여고), 이지훤 교사
(흥산초)가 나섰다.
이번 포럼의 모든 참석자들은 진심으로 4·3의
진실규명에 앞장서고 교육과정에 4·3을 넣기 위
해 노력한 유족과 제주도민들 그리고 집필진의
소명의식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근 개정된 역사 교과서에 반영된 4·3을 가지
고 4·3에 대한 올바른 세대 전승의 지향점을 조
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제10회 4·3평화포럼
이었다.
나아가 평화·인권 교육을 통해 화해와 상생이
라는 4·3정신의 보편적 가치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간으로 그 가치를 높였다.
좌장으로 발언하는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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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_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자
제주의 아픔을 오페라로
[리뷰]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글 :
김태관 공연기획자·문화예술학 박사
사진 :
김기삼 사진작가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지난 11월 7~8일 제주아트센터에서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오페라가 끝난 후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제작진과 출연진들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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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서는 그
리스의 비극을 재현하기 위해 다프네라는 음악극이 공연되었
고 음악사에서는 이것을 오페라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한편
1948년 서울 시공관(명동예술극장)에서는 음악애호가였던 이
인선과 지휘자 임원식, 성악가 오현명, 김자경 등을 주축으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를 공연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오페라였다.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는 이제 70년을
넘기고 있지만, 한국전쟁 중에서도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부산
에서 오페라 춘향전을 공연하였다하니 우리나라 오페라의 역
사가 길지 않음에도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
소설 ‘순이삼촌’,
창작오페라로 제작 공연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을 상징하는 현기영의 소
설 <순이삼촌>이 창작오페라로 제작되어 제주아트센터에서 공
연되었다. <순이삼촌>은 1978년 발표된 현기영의 사실주의 중
편 소설이다. 제주4·3사건을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 4·3사건
자체를 언급할 수 없었던 시절에 발표되어 작가는 고문과 금서
조치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4·3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고 문화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작품은 제주시(아트센터)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제작한 창
작오페라다. 김수열 대본, 최정훈 작곡과 정인혁의 지휘로, 그
리고 각색과 연출 및 예술감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프라
노 강혜명으로 포지셔닝되었다. 또한 제주도립제주예술단, 제
주4·3평화합창단, 극단 등 제주의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고, 현
대무용단 및 도내외 정상의 성악가 총 190여명이 출연하여 대
형 작품으로 손색없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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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갈라콘서트를 성료한 상황이라 11월 실제 본공연은 수월할 거라 예상하였
으나, 원작에 충실하고자하는 연출자와 제작진의 의도는 매우 디테일하여 소설의 장
면과 그 내면을 무대위에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다보니 공연시간은 두시간반을 넘어섰
다. 오히려 두시간 이내의 오페라였다면 더욱 이상했으리라. 소설 순이삼촌이 갖는 무
게와 그 의미를 담아내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1949년 북촌 극도의 공포감과 순이삼촌의 아리아
오페라는 4막으로 구성되었고 제1막은 직장을 다니던 상수가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
기 위해 8년만에 고향 북촌의 제사집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친척들의 이야기속에
순이삼촌의 죽음을 듣게 되고 말다툼으로 번지면서 제사집은 반공과 이데올로기 이야
기로 확대된다. 1막은 오페라보다는 연극형식의 대화와 레시타티보로 시작하면서 대
중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관객들을 1949년 북촌으로 데리고 갔다.
2막 현기영의 실제 육성멘트는 극을 긴장감으로 치닫게 하였고, 이어 가장 치열하고
잔인하였던 북촌초등학교로 무대를 옮긴다. 학교로 모인 주민들을 다그치고 폭행하는
군인들의 무서운 기세는 관객을 공포감으로 몰아갔다. 물론 극중에 다이나믹한 무대
전환 및 출연진들의 동선이 복잡해지면서 음향과 대사 등이 일부 맞지 않는 현상이
북촌리 주민들을 학살하는 군인들(왼쪽)과 학살 속에서 살아남은 순이삼촌(강혜명 분)이 아들의 주검 앞에서 절규하고 있다.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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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와 장교의 포악함을 잘 표현한 중견
성악가 박경준과 제주출신의 청년 성악가 윤한성의 노래와 연기는 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3막에서는 이미 폐허가 된 북촌마을을 보며 느끼는 공허감, 어린시절 상수와 길수의
기억을 어린이 배우들의 연기, 웡이자랑의 아련한 느낌이 음악으로 잘 나타났다. 무엇
보다도 옴팡밭에서 죽음의 사자들을 연기한 무용단과 순이삼촌의 춤과 음악의 앙상블
은 본 공연에서 가장 임팩트했던 장면으로 순이삼촌 내면의 갈등과 점점 미쳐가는 자
신을 잘 표현하였다.
4막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순이삼촌의 아리아 ‘어진아’가 압권
이었다. 그야말로 이 오페라의 모든 음악의 백미로 곡 중간 순이삼촌의 레시타티브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보였다. 에필로그에서는 엔딩 합창곡인 ‘이름없는 이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북촌 옴팡밭의 비석을 무대위로 옮겨 놓으면서, 억울하게 죽어갔던 그 이
름 하나하나가 무대위 세트에서 구현되었다.
제주브랜드 문화상품 확장
오페라는 문학, 음악, 연극, 미술, 무용 등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는 종합예술로서 오케
스트라, 합창단, 무용단, 성악가 등 대규모 출연진과 제작진이 참여하는 최고도의 예술
장르이다. 예산 또한 만만치 않아 행정이나 기업의 후원이 없다면 시도조차 쉽지 않은
작업이다. 최초 프로젝트 설계 당시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과 당시 고희범
제주시장과 성악가 강혜명의 의기투합이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 또한 아마 불가능하
였을 것이다. 창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기에 그 어려움과 고통은 제작진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수백년 동안 이어온 명작오페라와는 기본부터가
다르기에 이 작업에 참여한 원작, 대본, 연출, 작곡, 지휘자, 출연진 등에 대한 격려와
칭찬은 부족함이 없어야한다. 이 작품이 한시적 공연이 아닌 제주를 찾는 천오백만 관
광객이 언제나 관람하고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 공연되어 제주의 아픈 역사와 평화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30
세대전승 4·3·2·1
“게임으로 배우는
제주4·3, 어때요?”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개발자
코스닷츠(COSDOTS) 김회민·정재령 디렉터
송지은 재단 기념사업팀
‘4·3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할 것인가?’를 스
스로 묻고 답을 찾는 사람들. 어떠한 원칙이나 기준, 짜여진 프
레임은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선, 소통의 전달 창구를 만
들어 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4·3을 알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 의
미를 부여한다.
기관지 <4·3과 평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세대전
승 4.3.2.1>을 기획했다. 첫 번째로 10대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을 소개한데 이어, 두번째 주인공은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담
은 게임을 개발하는 인디게임 스튜디오 코스닷츠(COSDOTS)의
<언폴디드> 개발자 김회민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정재령 아트디
렉터. 20대 청년들의 4·3 세대전승을 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31
4.3 and Peace
32
‘역사’의 뜻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나, 그 사실에 관한 기술’을 의미한다. ‘게임’이라
는 단어의 뜻은 ‘오락의 보편적인 형태’이다.
‘과거 사실에 관한 기술’을 ‘오락의 형태’로 풀어낸다?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이미 삼
국시대 영웅들의 전투를 다룬 게임이나, 세계대전 등의 사건을 주제로 만들어진 게임
들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오락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역
사적 사실을 알아간다.
이러한 게임의 서사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현대사의 비극이자 제주의 아픔인‘제주
4·3’을 다룬 게임이 탄생했다. 모바일 게임 ‘언폴디드: 참극’, ‘언폴디드: 오래된 상
처’, 그리고 2021년에 출시 예정인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이다.
(왼쪽)김회민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오른쪽)정재령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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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게임은 1948년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약 2달간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 살던 소년
동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당시 제주민들의 상황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
게 했다.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주4·3의 역사적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주목할만 하다. 특히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2020 글로벌 인디 게임
제작 경진대회(GIGDC)에서 일반부 제작 부문 동상과 특별상을 수상해 2관왕에도 올
랐다. 국내외 게이머들과 대중들에게 제주4·3의 역사를 알리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게임이 되기를 바란다.
1. <언폴디드> 시리즈와 개발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희 코스닷츠(COSDOTS)는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담은 게임을 만드는 인디 게임
스튜디오입니다. 저(김희민)는 대표이자 퍼즐·네러티브 기획, 프로그래밍을 담당하
고, 공동대표인 정재령씨가 아트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외 그래픽 파트를
담당하는 두 분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2018년부터 제주4·3을 소년 동주의 눈으로 바라본 2D 어드벤처 게임 <언폴
디드> 시리즈를 만들어 왔으며, 현재는 2021년 3월 온라인 스토어인 스팀(Steam)출
시를 목표로 3번째 게임 ‘언폴디드: 동백이야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2. <언폴디드>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8년 초에 대통령의 4·3 70주년 추념식 연설을 TV로 접하고 4·3에 대해 알게 되
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고 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는
데, 제주4·3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며칠 후, 우연히 서점에서 돌담이 그려진 책을 한 권 집었는데 소설 <순이 삼춘> 이
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비극을 게임으로 알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3. 2021년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인다고 하던데 전시리즈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언폴디드: 동백이야기’는 언폴디드 시리즈의 리메이크이자 결정판으로, 플랫폼을
PC로 옮겨 출시합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차이점은 그래픽입니다.
모바일로 출시했던 전작들이 간단한 라인 드로잉 풍의 그림이었다면 본작의 그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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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PC유저의 취향에 맞게 더욱 디테일해지고 다채로워졌습니다. 핸드드로잉 스타일
로 공들여 그려낸 배경과 캐릭터들이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고증입니다. 저희 게임에는 픽션과 실제 일어난 사건을 구분하기 위하여
‘역사 사전’ 코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주4·3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당시
제주의 풍습과 식생 등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 당시 제주민들과 외지에서 온 군
경토벌대들이 쓰던 언어를 고증한 ‘역사적 언어’ 기능이 있습니다. ‘역사적 언어’ 옵션
에서는 제주어와 외지에서 온 군경토벌대들의 지역 방언으로 대사가 표현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약 18개월이라는 개발 기간 동안 최
대한 많은 이야기, 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깊은 주제 의식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마을, 숲, 동굴, 절과 같은 다양한 배경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동주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4. 제주4·3을 주제로 게임을 만들겠다고 할 때 주변의 반응이나 평가는 어땠나요?
가족들도, 지인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돈도 되지 않는 일을 왜 하
느냐, 그렇게 민감한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어서 좋을 일이 뭐가 있느냐 하는 말들
이었죠. 그러나 그중에는 제주4·3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 좋은 게임을 만들어 당당히 제주4·3을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5. <언폴디드>시리즈의 목표는 무엇이며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희가 바라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목표는 제주4·3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
다. 해외에서 제주4·3의 인지도는 일부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제외하면
전무합니다. 특히나 저희 게임의 주 타겟인 20~40대 사이의 게이머들 중의 다수는
제주4·3은 커녕, 제주도라는 섬 자체에 대해서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
이 저희 게임을 접하고 조금이라도 제주도와 제주4·3의 역사에 대해 알아간다면, 조
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게임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독일어, 러시아어로도 출시됩니다. 두번째 목표는 지속 가능한
인디게임의 개발입니다. 많은 ‘인디’가 그렇듯이 ‘인디 게임’도 지속 가능성의 증명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생존하지 못하면 의미 있는 게임도 만들어 내지 못하니까요. 많
은 인디게임 개발사가 두 번째 게임을 만들지 못합니다. 돈이 안되거든요. 저희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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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이 잘 되어서 다음 게임을 낼 여력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게임을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새 베테랑이 되어있겠죠.
6. 마지막으로 <언폴디드>를 접해보지 못한 분들에게 하고 싶은말.
평소에 스팀 인디게임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또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좋아하는 분
이라면 저희 게임을 재미있게 하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12월 중 공개 체험판
을 출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게임에 관심이 있으
시다면, 저희 홈페이지(https://ko.cosdots.com/press)를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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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_ 기억과 기록
조미영 여행작가
독일의 역사를 위한 기억장치들
기억과 기록 4 독일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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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중심의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은 역사적 장소다. 1989년 11월 독일을 동서
로 나누던 장벽이 무너지고,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이 통합의 상징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무심하게 관광객들이 동서를 오고 간다. 바닥에 표식으로나마 남
아있는 장벽의 흔적들이 훗날 기억을 붙들어 맬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생각보다 기억
은 쉽게 지워지고 망각에 빠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장치를 만든
다. 그러나 남기고자 하는 것 대부분은 자랑할 만한 좋은 것들이다. 곳곳에 승리의 상
징물이 많은 이유다. 반면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는 지워버리고자 한다. 하지만 반성
없이 발전은 없다.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디디고 일어서는지가 중요하다.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비 2,711개에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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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문 광장을 지나면 ‘유럽의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위한 기
념비’가 있다. 매년 수천 만 명이 지나는 도시 중심부에 이 같은 공간
을 조성하였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들이 과거의 잘못을 어떻
게 접근하고 있는 가를 판가름하게 해 준다. 이 기념비는 과거 독일이
저지른 역사에 대한 반성과 반인륜적 학살을 경고하는 의미로 세워졌
다. 그러나 축구장 2배 크기에 세워진 2,711개의 비석에는 아무것도
지금은 관광객들을 맞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베를린 장벽
역사를 비판적으로
논쟁하고 의식하며
교훈을 얻어야
“
”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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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
새겨져 있지 않다. 무언가를 강제적으로 주입하기보다 스스로 보고 느끼길 원
하기 때문이다.
학살된 유럽 유태인을 위한 추모재단의 학술담당 아담 케르펠 프로니우스는 추
모비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세대는 전후와 관련해서 스스로 깨닫고 자기 자신과 그것과의 관계를
정의 내려야 합니다. 독일 민족 정체성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이 같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논쟁하고,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의식하고,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논쟁이 일어나고 그것이 얼버무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죠. 현재 독일의 정치상황에서 우리 역사의 일부가 어땠는지를 고려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때 돌아가신 분들은 만일 우리가 그것에
대해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냥 잊혀요.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내 개인의 역사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역사이고 문화적 유산입니다. 부정적이고 슬프긴
해도, 전통음식과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도시를 빠져나와 외곽의 아름다운 빌라지역을 지나면 그뤼네발트의 17번 선
로(Gleis 17 am grunewald)가 있다. 나치독일시절 화물열차 역이었던 곳이다.
1941년 10월 18일 유대인들은 이 곳으로 끌려와 수송기차에 탔다. 그들은 어
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끌려갔다. 첫 강제수송의 시작이었다. 독일철도
회사는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사죄하는 의미로 이
곳에 기념비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모전을 통해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설계는 아주 단순하고 소탈한
것으로 결정되었다. 언제 몇 명의 유대인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알 수 있는
글자를 주물로 새겨 철로로 놓았다. 역사적 장소를 배려하고 그들이 아는 역사
기록을 강철주물 속에 영원히 남기는데 중점을 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각
각의 수송열차에 대한 추모장소를 갖게 되었다.
철로 뒤에는 나무가 있다. 그것은 망각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무는 계속 자란
다. 숲이 철도를 덮듯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기억에서 잊혀 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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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하고 남기도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무엇인가가 자칫 잊혀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인 셈이다. 추모의 장소를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무심한 망각을 경
고하고 있다.
독일인들의 역사를 대하는 자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객관적인 접근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테러의 지형학 박물관’에서도 읽혀진다. 이곳은 나치친위대 본부로 2
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곳곳에서 행해지던 테러를 기획하고 지휘했던 곳이다. 악의 시
발점이 되었던 이곳에 독일인들은 과거를 돌아보는 전시관을 만들었다. 전시관의 주
게슈타포의 본부였던 곳에 세워진 테러의 지형학 박물관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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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내용은 나치 독일이 어떤 시스템을 통해 작동되었는지
에 초점을 맞춘다. 철학자와 시인의 나라인 독일이 어떻게
한순간에 독재국가로 전락할 수 있는지 자료를 통해 보여
준다. 최대한 감성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공을 들였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의 홍보담당자는 전시의 의미와 전달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장소는 전범자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장소입니다. 여
기서 저희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정보를 얻길 바랍니다.
이곳에 온 학생들이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사진들로 압도당
하거나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면 학생들은 더 이상
마음을 열 수 없을 것이고 오히려 닫힐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곳
전시에서는 어떤 음악도 듣지 못합니다. 저희가 보여주는
영화에서도 음악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깔리지 않습니다.
매우 객관적인 상태에 놓이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곳의
모든 것은 정보를 얻고 배우는 데에 중점을 둡니다.
이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방문객들은 어떻게 나치 독일의 시
스템이 작동되었는지, 누가 가해자, 즉 전범이며 누가 피해
자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방문객들은 그러한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위하여 항상 스스로 무엇
인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35㎞ 지점에 위치한 작센하우젠 수용
소는 나치 만행의 현장이다. 1936년 정치범 수용소로 만들
어진 후 1945년까지 무려 20여만 명이 감금되었던 장소로
나치 지배하의 가장 큰 수용소이다. 이 곳은 모든 강제수용
추모의 장소를 기억
하는 것 못지않게
무심한 망각을 경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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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관리본부로 동쪽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서쪽의 나츠바일러 수용소까지 이 곳
을 본보기로 삼았다. 이성을 잃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이곳에 와보면
알 수 있다. 수용자들을 감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연구하며 만들어냄은 물론 굶
주림과 질병, 생체실험, 학살 등으로 수 만명의 목숨을 빼앗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입
구에 적힌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구를 비웃듯 뜨거운 가마에서 한 줌
의 흙이 되고서야 비로소 해방이 될 수 있었다. 수용소 본관의 시계가 11시 5분에 멈
춰있다. 소련군이 점령하며 해방이 되었던 순간이다.
아스트리드 라이는 작센하우젠 수용소 박물관 부관장이며 전시 기록실의 책임자로 전
시계획과 연구프로젝트를 총괄한다. 그녀가 이 곳에서 강조하는 것은 진실을 정확하
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70만 명이 다녀가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무엇을 강
조할 것인가는 고민이었다. 과거에는 충격적인 사진과 형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이는 도리어 혐오를 통한 부담감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 보
고 느끼고 돌아가서 토론하는 계기를 만드는 현장으로 인류애를 향한 고민의 시발점
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에 그녀는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그들이 했던 대단한 일과 같은 역사에 관해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많은 나라들이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저희 독일 사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을씨년스런 모습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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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은 과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80년이 지났지만 용서받았
고 잊혀졌다고 말하기에는 짧은 시간입니다. 아직도 그 시절
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살아있고 앞으로도 ‘그것은 지나간 일
이야, 그건 이제 끝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
금은 더 이상 그 같은 범죄를 저지르진 않지만,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되게끔 책임을 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뤄져야 합니
다.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와 같이 많은 피해자들이 있는 국
가들은 여전히 큰 관심을 갖고 저희를 주의 깊게 지켜봅니다.
과거사와 관련된 유산들을 잘 간직하고, 그 기억을 잊지 않는
지 주시합니다. 그래서 많은 추모사업을 하였고 그 결과 통일
의 과정에서 주변 피해국들의 호의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봅니다.”
독일의 전 총리 빌리브란트(Willy Brandt)가 냉전시대의 종식을
위한 동서화해 정책을 추구하며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였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
르샤바의 희생당한 유대인을 위한 기념탑 앞에서 헌화 도중 무
릎 꿇던 그의 모습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눈이 내리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묵
념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사죄의 진정성을 보았다. 이
를 계기로 독일은 통일 독일을 향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
다. 이후 세계의 언론은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
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평을 내놓게 된다. 과거는 단순히 과
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변화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
의 과오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는 너무 과하거나 왜곡되게 역사를 바라보고 포장한다. 군더더
기 없이 역사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덧붙여
야 할 때이다.
그뤼네발트 17번 선로에
남겨진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탄
유대인들에 대한 기록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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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_ 4·3의 증언
열두 살 소녀는 어릴 때 돌아가신 큰오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땅에 닿을까 업어주고 바람에 불릴
까 안아주던 셋째 오빠, 소녀의 자랑이던 똑똑이 막내 오빠를 모두 열두 살 어린 가슴에 묻었다. 다섯
살에 처음 만난 둘째 오빠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까지 62년이 걸릴 줄이야. 살아 생이별은 생
초목의 불이라 했던가. “살암시난 살아지긴 했주만은, 나 혼자 너무 외로웠주….” 2020 한림 한수풀 해
원상생굿 현장에서 강순아 할머니를 만났다.
대담
·정리 조정희 재단 기념사업팀장
사진 김기삼 사진작가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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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
“먹쿠실낭에 올랑 오라방
죽는 거 봐도 어멍안틴 못 안”
강순아(1937년생, 한림 명월, 봉개동 거주)
열두 살에 4·3이 지나다
고향은 한림 명월 하동. 열두 살이었고 명월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같이
살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영보 오빠, 영아 오빠, 저 이렇게 다섯 식구였어
요. 우리 아버지가 3대 독자였는데 원래는 5남매를 낳았어요. 아들 넷에 딸 하
나. 큰오빠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둘째 오빠는 4·3 당시 일본에 살고
있었어요. 제가 막내인데 솔직히
‘왜 나를 낳았냐!’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모
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 외롭게 남겨둘 거면 차라리 낳지나 말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열두 살 어릴 때 4·3을 겪었지만, 죄 없는 사람들을 다 죽
여버린 사건이라는 건 확실히 알아요. 눈 앞에서 부모가 형제가 이웃 삼촌들이
죽는다는게 얼마나 무섭고 소름끼치게 겁나는 일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어요.
감저공출 절대 반대!
우리 동네 양OO이라는 삼촌이 있었어요. 키도 늘씬하고 멋진 분이었어요. 팔
에 완장을 차고 태극기를 들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오늘 3·1운동에서
감저공출 절대 반대! 보리공출 절대 반대! 할 거니까 꼭 참여해야 됩니다.” 했
어요. 저도 어머니 손을 잡고 한림국민학교 운동장에 갔다 왔어요. 그때는 공
출이 얼마나 심했는지, 부자 가난한 사람 할 거 없이 할당을 채우려면 다 굶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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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고구마 감저 썰어서 말려가지고 공출을 바치고 보리도 수확하면 다 바쳐야 했으니까, 공출이
제일 무서웠어요.
3·1운동에 갔다 오고 그해 여름. 하루는 영보 오빠, 영아 오빠하고 같이 우리 동네 외갓집에서 제사
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나는 영보 오빠의 손을 잡고, 영아 오빠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드릴
제사 음식을 들고 오는데, 골목마다 거리마다 하얗게 종이가 뿌려져 있는 거예요. “영아야, 저거 하나
만 주웡 집이 글라. 불 싼디 강 읽어보게.” 그때부터가 4·3사건이 시작이었어요. 밤마다 하얗게 삐라
가 뿌려지기 시작했어요.
친척도 무섭고, 형제간도 무서워
우리 고모님이 명월 동부락 진칩(家)으로 시집을 갔어요. 진칩에 머리도 똑똑하고 얼굴도 이쁘고 참
앵두같은 오빠들이 있었어요. 한림면사무소에 다니고 있던 진칩 세 사촌 형제가 우리 동네 올레에서
죽는 걸 봤어요. 태어나서 처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본 거예요. 열두 살에. 아이고, 얼마나 놀랬
는지, 무섭고 겁이나서 말도 안나와요.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면직원들을 반동이라고 무
조건 죽인 거예요.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랬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죠. 아무튼 세 사촌 형제
가 하루에 죽으니까 진칩에서는 얼마나 악이 나겠어요? 그러니 친척도 무섭고 형제간도 무서울 수
밖에.
“어머니!” 막내 오빠의 마지막 한마디
영아 오빠는 열여덟 살이었어요. 열여덟 살이면 아무 철도 모르는 나이잖아요. 공부만 하는 정말 똑
똑한 오빠였어요. 1948년 무자년 겨울은 무섭게도 추웠어요. 감기에 걸려서 집에 누워만 있으니까
답답했는지, 하루는 친한 친구인 영호 오빠네 집에 가서 놀다 온다고 나간 오빠가 저녁 9시가 넘어도
안 돌아와요. 그때는 밤 9시가 넘으면 무조건 총살이었거든요. 영호 오빠 어머니가 우리 5촌 고모님
시누이여서 우리하고는 사돈이 돼요. 그때는 하도 어려운 시절인데다, 사돈집 아이가 놀러 왔으니까
저녁이라도 먹여서 보낸다는 것이 통행금지 시간을 넘겨버린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3대 독자여서 그랬는지 자식들을 정말로 아까워했거든요. 만약에 아버지가 가
만히 계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예요. 밤 9시가 넘어도 막내 아들이 안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걱정이 돼서 오빠를 찾으러 나갔어요. “강 훈장님 왜 나오셨습니까?” “우리 영아가 감기 걸려서 누웠
다가 영호네 놀러갔는데, 통행금지가 넘어도 안 돌아와서 찾으러 나왔수다.” 보초 담당에게 솔직하게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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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한 거죠. 그리곤 아버지는 집으로 돌
아왔는데, 한참 만에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
려요. 우리 집 대문은 열 때마다 “팡!”하게 큰
소리가 났거든요. “어머니!” 영아 오빠 목소
리가 들려요. “왜 영아야?” 어머니가 방문을
여는데, 갑자기 오빠 뒤로 누가 따라 들어오
더니 오빠를 “팍!” 붙잡아가는 거예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먹쿠실낭에 꼭대기에서
오빠 죽음을 보다
우리 집 마당에 먹쿠실낭(멀구슬나무)이 하나
큰 게 있었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먹쿠실낭에
올라가서 노는 걸 좋아했어요. 아버지는 막내
딸이 나무에 오르기 쉽게 디딤돌도 만들어줬
어요. 우리 동네에서 한림국민학교가 한참이
지만, 햇볕이 쨍하게 비추는 날 먹쿠실낭에 올라가면 학교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이 체육하는 것도 다 보여요. 우리 영아 오빠 죽는 날에도 해가 얼
마나 쨍쨍했는지.
“오늘은 총살이 있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동네 어른들이 수군
수군하는 걸 들으며 조용히 먹쿠실낭에 올랐어요. 나무에 올라가서 보
니까, 한림국민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오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사람들 중
분명 우리 영아 오빠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왜 열 지어 서 있을까?’ 이
상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팡! 팡! 팡!’ 총소리가 들리더니 운동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쓰러지는 거예요. 총살이었어요. “족은 년아 떨어
진다. 순아야 내려와라. 다 끝났다. 그만 내려와라.” 어머니 목소리에 정
신을 차렸지만, 굳어버린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어요. 어머니에게 영아
서울 방직공장으로 떠나기 전 어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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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어요. 한림지서로 끌려갔던 영아
오빠는 그렇게 한림국민학교 마당에서 죽었어요.
시체로 돌아온 막내 오빠
영아 오빠가 죽던 날, 명월 중동에 우리 고모부 동생 한 분은 살아서 돌아왔어요. 우
리 동네 말 모르는 남자 어른한테 업혀 온 걸 보니, 얼굴도 몰라보겠더라고요. 얼마
나 두드려 맞았는지 얼굴이랑 온몸이 형편없이 부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살아왔잖아요. 죽을 것처럼 매를 맞아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져도 살았잖아요. 우
리 영아 오빠처럼 찍소리 한번 못해보고 시체로 돌아오진 않았잖아요. 그게 지금도
제일 억울해요. 지날수록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보상해준다,
죄를 없애준다 떠들어대지만, 열여덟 우리 오빠를 살려낼 수는 없잖아요. 워낙 무서
운 때라 영아 오빠 신체를 수습하러 여러 명이 갈 수도 없었어요. 아버지가 외삼촌과
함께 오빠 신체를 돌체에 메고 왔어요. 어머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죠. 올레로 뛰
서울 방직공장 시절 동료들과 함께. 맨 앞이 강순아 할머니
4.3 and Peace
49
4.3 and Peac
쳐나가 고자질쟁이 양OO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너죽고 나죽자” 이판
사판이었어요. 가녀린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오빠 시신은 여드랑밭이라고 우리 동네 밭 어염(곁)에 묻었는데, 언젠가
벌초를 하러 가보니까 큰 바람에 밭담이 무너지면서 밭 어염에 만들어
놓은 무덤을 덮쳐버린 거예요. 결국 무덤까지 잃어버렸어요.
6년 만에 찾은 셋째 오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온 동생을 막무가내로 붙잡아가서는 “산에 연락하
러 갔다 왔다!”며 죽여버리자, 영보 오빠는 겁이 나잖아요?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산으로 들로 숨어 다녔어요. 군인, 경찰들이 집을 다 불태
워버리자 금악, 상명, 명월 상동, 중동 마을 사람들이 우리 동네랑 옹포,
협재로 다 소까이 됐어요. 명월에서는 우리 하동만 불을 안태웠거든요.
우리 집이 세 칸 초가였는데 마루에는 이모님네 식구들, 작은 구들(방)
에는 우리 5촌 고모님네 식구들 그렇게 같이 살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영보 오빠도 선뜻 집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친척도, 형제도 믿지를 못할
만큼 무서운 때였으니까.
하루는 밤중에 창문으로 영보 오빠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자고있는
방에 몰래 들어왔어요. 어머니가 흰 헝겊을 찾아 주면서 “영보야, 대꼬
챙이 하나 주웡 이거 졸라멩 귀순허라. 내려와야 너가 살지 산에서 배고
프고 더 이상 살지를 못한다.” 사정을 했어요.
얼마 뒤, 영보 오빠가 나뭇가지에 흰 헝겊을 매달고서는 태극기 대신 손
에 들고 내려왔데요. 영보 오빠는 귀순해서 딱 스무날 만에 집으로 돌아
왔어요. 그리고 한동안은 도망가는 일도 잡혀가는 일도 없이 조용히 지
냈어요.
다음 해 여름. 음력 6월 며칠이었던 그 날만 지났으면 우리 영보 오빠는
살 수 있었는데 그놈의 강OO의 고자질 때문에 우리 오빠는 죽은 거예
요. 순경이 석방자를 잡으러 집으로 왔었는데 마침 영보 오빠는 여드랑
밭에 조 리러(일하러) 가고 없었어요.
어머니에게
영아 오빠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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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집에 없으니까 순경은 그냥
돌아가려는데 강OO이라는 놈이 순
경을 데리고 여드랑밭까지 찾아가서
는 오빠를 잡아간 거예요. 소식이 없
던 영보 오빠 신체는 6년 만에 모슬
포 섯알오름에서 찾았어요. 그때 같
이 돌아가신 분들하고 갯거리오름 곁
에 묻혀 있어요. 결혼하려고 색시도
다 구해다 놓고 있었는데 결국 결혼
도 못해보고 죽은 거죠.
서울 공장까지 쫓아온 형사
나이를 먹어갈수록 오빠들이 없으니
까 겁이 나더라고요. 누가 해코지 할
것도 같고. 솔직히 돈도 없고, 스무살 무렵 친구들하고 같이 서울 방직공
장으로 일을 하러 갔어요. 우리 아버지는 아들 넷을 아무도 품지 못한 자
신을 원망했던 것 같아요. 당신 복(福)이 애기를 태우지 않은 사람이라
고 생각했던 아버지. 막내딸마저 당신 품에 안았다가 잃어버릴 것 같았
는지, “ 저 가라. 고생해도 서울 강 좀 살당 돌아오라” 울면서 저를 보낸
거예요. 서울 방직공장 근처에 방을 빌어서 친구들하고 같이 지냈어요.
그런데 형사가 자꾸만 찾아오는 거예요. 우리 둘째 오빠가 일본에 있으
니까 사상에 걸려서 일본에 간 줄 알고 조사를 하는 거예요. 다섯 살에
얼굴 한번 본 오빠가 무슨 사상에 걸릴 게 있냐며 따져 봐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저도 겁날게 없었죠.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일본에 살고 있던
영범 오빠는 돌아가실 때 까지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심
장수술을 앞두고 막내 동생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제가
오빠를 만나러 일본에 다녀왔어요. 62년 만에 두 번째 만남이 결국 마지
막 만남이 된 거죠.
하나 남은
막내딸마저
당신품에 안았다가
잃어버릴까
‘혼저가라’ 던
아버지
“
”
2020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 ‘현장 증언’ 모습.
증언자 강순아 할머니, 사회 조정희 재단 기념사업팀장
4.3 and Peace
51
4.3 and Peac
아버지의 바게쓰
6년여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스물다섯, 남들보다 늦은
결혼이었죠. 자기 아이들을 품지 못하
고 아들 몫 사위 하나를 얻었으니, 우
리 아버지. 사위가 얼마나 아까웠겠어
요? 결혼하고 5년정도 지났을 무렵,
남편이 나력병(연주창)에 결렸어요. 지
금이야 치료가 쉽지만 그 시절에는 치
료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생이 심했죠.
갈치, 고등어, 돼지고기, 계란을 일절
입금(入禁)해야 했어요. 사위가 걱정된
아버지. 손수 한림 옹포에 내려가 자리(돔) 한 말을 사다가 젓갈을 만들어 이 빨간 바
게쓰에 담아서 가져온 거예요. 한림에서 봉아름까지. 그런 아버지 마음이 시려서, 차
마 바게쓰를 버릴 수가 없었어요.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낡고 색도 바래고 뚜껑도 잃어
버렸지만, 언제나 쌀을 담아두고서는 우리 아버지 보는 양, 그러고 있네요.
살아 생이별은 생초목의 불이요
아들 둘을 모두 잃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두 분 다 화(火病)로 살다가 돌아가셨어
요. 우리 어머니는 밭에서 검질(김)을 매다가도 애기들, 아들 생각이 나면 웃통을 탁!
벗어요. 그럼 나는 울면서 “아이고, 어머니 옷 입읍서. 남들 우습니다.” 어머니랑 부
둥켜안고 울면서 살아왔어요. 아무 죄 없이 아들 형제 생죽음을 했으니 부모 가슴에
얼마나 한으로 맺혔겠어요. “남편은 죽으면 나라의 대동이요, 살아 생이별은 생초목
의 불이요, 애기는 죽으면 어머니 가슴에 묻는다”고 안해요? 나도 결혼하고 첫 애기
를 잃어버린 상처가 있어요. 애기 때 놓쳐버렸지만, 첫 애기를 잃어버리고 나니까 그
제서야 어머니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생초목에 불이 붙는다 했을지. 갈
기갈기 심장이 찢어지고 마디마디 창자가 끊어지고 애가 타다 못해 재가 되어버린 그
마음을.
2020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 ‘현장 증언’ 모습.
증언자 강순아 할머니, 사회 조정희 재단 기념사업팀장
아직도 사용중인 아버지의 바게쓰
“4
·3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모든 유족들이 4
·3의 아픈 기억을 오늘만큼은 다 잊어버리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절기상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이후 다소 쌀쌀한 날씨, 4
·3의 기억을 대를 이어
공유하고 4
·3유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긴 자리가 훈훈함을 더했다.
지난 10월 24일 제주4
·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4·3 72주년 가족문화제’다.
제주4·3, 가족의 힘으로 치유하다
[뉴스현장] 4·3평화재단·제주민예총
10월 24일 72주년 4·3가족문화제
뉴스현장 _ 4·3가족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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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재단 기념사업팀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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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행사가 시작되기 2시간전, 4
·3유가족
들이 발열체크를 마치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4
·3을 직접 겪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들·딸, 손자·손녀의 손
을 잡고 위령광장에 모였다.
평소 추모분위기가 가득했던 위령광장
이 이날만큼은 4
·3으로 하나된 가족들
의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중에는 지난 2019년 4
·3희생자추념식
당시 1만여 명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
게 만들었던 사연의 주인공 김연옥 할머
니의 가족 3대와 4
·3후유장애인 오태순
할아버지의 가족 4대 등이 참여해 가족
문화제의 의미를 더했다.
제주4
·3평화재단이 주최하고 (사)제주
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이 주관한 제주
4
·3 72주년 가족문화제는 아픈 역사를
가족의 힘으로 치유하기 위해 마련된 첫
행사다. 그런 의미에서 ‘식구(食口)’라는
주제로 프로그램들이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
를 위해 4
·3어버이상을 수상한 어르신
4.3 and Peace
55
과 4
·3장학생 가족 등 100여명 관객만
초청돼 진행됐다. 위령광장에는 참가자
들이 가족별로 편안하게 관람하고 즐길
수 있도록 ‘거리두기 가족 텐트존’이 마
련됐으며 전문 사진작가가 가족사진을
촬영해주는 이벤트로 추억을 선사했다.
주요내빈으로는 양조훈 제주4
·3평화재
단 이사장,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
강철남 제주도의회 4
·3특위위원장, 김
춘보 4
·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 허
영선 4
·3연구소장, 강민철 제주도 4·3
지원과장 등이 참석했다.
양조훈 4
·3평화재단 이사장은 “오늘
500명, 1000명을 모시고 싶었는데 코
로나19의 제한으로 100명 밖에 모시지
못했다”며 “여러분 뒤에는 4
·3영령들을
만신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밝은 표정을 짓고 미소를 짓
는다면 영령들도 함께 기뻐하고 위안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 많은 박수와 많은
웃음을 나눠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식구란
56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을 말하며
4
·3유가족뿐만 아니라 제주도민 모두가 4·3이라는 역사 아
래 모두 가족이고 식구라는 의미를 담았다”며 “도민 모두가
다 같이 손을 잡고 4
·3의 진상규명과 4·3특별법 개정의 성
과가 있을때 까지 민예총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행사에 참여한 가족들의 가족 사진이 담긴 특별영상이
상영됐으며 4
·3어버이상을 수상한 변춘화 어르신의 딸 김
복희씨와 4
·3생존희생자 강순덕 어르신의 손녀 고유정 학
생이 편지낭송을 통해 4
·3당시 힘들게 살아온 어르신들에
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각각의 편지낭송은 관객들에게 뭉클
함을 안겼다. 변춘화 어르신은 사연을 듣고 있는 내내 눈물
을 흘리며 연신 눈가를 훔쳤고 강순덕 어르신은 행복한 웃
음을 지으며 기특한 어린 손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편지 낭송 이후엔 △가족 △제주 △4
·3을 주제로 한 ‘가족
퀴즈쇼’가 이어졌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조명섭과
십센치(10cm)가 무대에 올라 행사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
켰다.
한편 4
·3평화재단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따른 사회적 상
황을 감안, 행사장에 오지 못한 유족 및 도민들을 위해 유튜
브로 온라인 실시간 중계를 진행했다. 또 이번 첫 행사를 시
작으로 더 많은 4
·3유족들을 모실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56
편지 낭송
4.3 and Peace
57
■ 유족 김복희
변춘화 어머님께,
그동안 모진 세월속에서도 93년을 살아오신 어머님, 뱃속에서 제가 태어나지 않았던 4
·3당시, 남편과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님의 하나밖에 없었던 남동생은 군인으로 가서 태극기 하나만이 덜렁 돌아
왔습니다. 4
·3때 집은 불에 타 하나도 없어져버리고 외할머니와 어머니, 저 3대가 살 집은 작은 초가
집이여서 키가 큰 분은 굽어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어머님은 남
의 일, 농사일 안해본 것 없이 다하시다가 지인의 소개로 혼자 살아
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다른 남편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삼
남매를 낳았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일을 겪으신 어머님, 돌아가시는
날까지 요양원에 안보내고 제가 모실 생각입니다. 고생하신 어머니.
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남은 인생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유족 고유정
안녕하세요. 강순덕 할머니의 손녀 열여덟 살 고유정입니다. 어릴 때 제가 동화를 읽어달라고 떼를 쓰
면 할머니는 자신이 겪었던 4
·3을 동화처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여덟살 어린 나이에 4·3을 겪게 된
할머니. 할머니는 군인들이 죽인다는 소리에 가족들과 산으로 도망갔고 밥도 잘 못 먹었습니다. 그러다
총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뎌 내창 밑으로 떨어졌고 이때 왼쪽 머리, 팔, 다리를 다쳤지만 무서워서 크게
울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할머니를 발견하고 총으로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 장애를
앓고 사셨습니다. 저는 우리 할머니가 한쪽 손과 발을 사용하지 못해서 그 이유가 늘 궁금했지만 사실
을 알고 눈물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태어나서 이렇게 살라고 하면 절대 살지 않
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멀쩡한 손과 발을 가질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할머니 지금까지 고생많으셨어요. 앞으로 제가 할머
니의 손과 발이 돼드릴게요. 계절마다 이쁜 꽃이 피면 여행도 다니
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앞으로
평생을 즐겁게 살아가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58
삶과 미술속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사
람이 화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4·3과
미술에서 나오는 작품세계와 예술인
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제주출
신이다보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
든 받아들여야 하는 아픔, 가슴속 응
어리의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시도했
지만 그 깊이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때로는 자신의 세계관이 4·3의 실체
를 훼손하지 않았나 걱정해본다. 강요
배 화가의 <풍경의 깊이>는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인 그의 삶과 예술을 응
축한 산문집이다. 20대부터 45년간
각종 전시와 지면에 쓴 글과 인터뷰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을 고르고 대표작 130여점
을 실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화가의
작품도 눈을 뗄 수 없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등장
하는 제주의 자연과 진솔한 사유를 담은 글들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예술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자기 스
스로 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예술은 사회
에 꼭 기여해야 한다’라든가 이런 것보다도
오히려 자기 혼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확
새로나온 책
강요배 예술산문 「풍경의 깊이」 출간
4.3 and Peace
59
4.3 and Peac
인하고 그걸 제대로 한다면 그것만으로 충
분하다고 본다. 그것도 어렵다. 사람한테
는, 그런데 나를 알려면 나의 의식을 사로
잡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게 나에게
는 고향의 역사였다” (본문중에서)
자연과 역사, 민중이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그림
을 그려왔지만 강요배 화가에게 주어진 대표적
인 타이틀은 ‘4·3’이다.
강요배 화가는 1988년 ‘한겨레’ 신문 창간을 기
념해 현기영 소설가가 연재한 ‘바람타는 섬’에
함께할 그림을 그리면서 주목받았다. 그의 ‘제주
민중항쟁사’ 연작은 ‘동백꽃지다’(1991)를 낳았
고 이는 동백꽃이 4·3의 상징으로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강요배 화가는 책본문 ‘4·3순례기’에서 도내 잃
어버린 마을과 팽나무, 오름, 해변가, 분교 등
4·3의 직간접적인 배경이 된 장소와 학살터를
답사하고 새로운 의식으로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책에서 4·3에 대한 자신의 의식
을 넓혀주고 당시 살벌한 감시·검열의 분위기
속 4·3의 진실을 알리는 데 몸을 사리지 않는
4·3연구소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겼다.
“수개월에 걸쳐 유구를 수습한, 이 사업에
몸을 던져 참여한 연구원들의 착하고 고운
심성을 잊을 수 없다. 4·3이란 죽고 죽임의
사건일 뿐이던가? 그것은 그로부터 살아오
는 길, 즉 도(道)이기도 할 것이다” (본문중
에서)
책의 말미에는 ‘비상국가’, ‘망각기계’ 등의 개인
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풍경을 담아낸
노순택 사진가의 인터뷰를 담았다.
강요배 화가는 제주출생으로 서울대 미대를 졸
업했다. 1981년 ‘현실과 발언’ 동인에 참여하고
제주 4·3항쟁을 다룬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으
로 시대의 아픔을 그리면서 민중미술작가로 알
리기 시작했다. 1992년 제주로 귀향하고 난 후
제주의 자연 풍경에 내면을 담아낸 작품을 선보
이고 있다.
돌베개. 3만8000원.
60
동박새가 된 할머니
박상재·이유진
박상재·이유진 작가가 제주4·3의 진실을 알리
고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그림책 <동박새가 된 할
머니>를 펴냈다.
책은 출판사가 기획한 ‘사회치유 그림책 시리즈’
의 첫 번째 작품으로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
야만 하는 근현대사의 주요한 사회적 기억들을
소환해 함께 소통한다.
책에는 경찰을 몹시 싫어하는 영미네 왕할머니
순애가 등장한다. 손자가 경찰 시험에 합격했지
만 기뻐하기는 커녕 몸서리치는 순애 할머니, 열
살 때 발생한 4·3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이야기
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저자는 “순애 할머니의 트라우마는 우리 모두의
상처다. 그 깊은 상처가 하루 빨리 치유되기 바
라는 마음으로 이 동화를 썼다”고 설명했다.
도서출판 나한기획. 1만5000원.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산하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제주4·3을 항쟁의 시
각으로 바라본 이산하 시인이 신작 <생은 아물지
않는다>로 독자들과 만난다.
에세이 형식의 책에는 모두 111편이 실렸으며,
평범한 일상을 소개하면서 현실을 예리한 시선
으로 포착하고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드러냈다.
특히 대한민국 전체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세
월호 참사를 비롯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힘
없이 쓰러져 간 유대인들과 베트남전 등 전 세계
를 아우르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진단했다.
저자는 삶의 진실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삶이란
무엇인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가?”라는 질문들을 던진다. 개개인의 상처를 비
롯해 역사적 아픔과 시대의 상흔까지 어루만지
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도서출판 마음서재.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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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4.3 and Peace
61
4.3 and Peac
서천꽃밭에 계십니까
김관후
“빈 꽃상여 메고 저 멧부리 따라 일가친척 영이
별하고 산천벗님 영이별한 당신은 그 꽃밭에서
영원하십니까”
제주4·3을 주제로 오랫동안 시와 소설을 써온
김관후 작가가 시집 <서천꽃밭에 계십니까>로
독자들과 만났다. 책은 △애기물매화 △4월 3일
△조선은 미국의 적 △너븐숭의 꽃밭 △북으로
간 김달삼 등 5부로 구성됐으며 모두 84편의 시
가 수록됐다. 서천꽃밭은 제주도 무속 신화에 나
오며, 여기에 피는 꽃을 죽은 사람에게 뿌리면,
살살꽃은 살을, 뼈살꽃은 뼈를, 도환생꽃은 영혼
을 되살아나게 해준다고 한다. 작가의 아버지가
4·3당시 정뜨르비행장에서 희생된 아픔이 있는
만큼 시어와 시적표현들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도서출판 제주콤. 1만원
탄압이면 항쟁이다
주철희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주철희 역사학자. 그가 이번에는 역사연구서가 아
닌 소설 <탄압이면 항쟁이다>를 발간, 문학적으로
제주4·3을 조명한다.
책 제목은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와 제주공동체 살상을 거
부하기 위해 내걸었던 구호다.
이들의 뜻은 이후 여수·순천에서 제주도 진압을
거부한 군인들의 의지와 맥을 같이 한다.
소설은 ‘저승에서 온 노인들’과의 대화라는 설정
으로 흥미롭게 전개되며 3·1경찰 발포사건, 제주
4·3항쟁의 원인, 4·28평화협상, 오라리 방화사
건, 박진경 연대장 피살, 초토화작전 등 사건들을
퍼즐 맞추듯 끌어들인다.
도서출판 흐름출판사.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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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제주도의회 후반기 4·3특별위원회가 새로 구성됐다.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는 지난 10월
16일 제388회 임시회 회기 중 1차 회의에서 위원장에 강철남 의원, 부위원장에 김대진 의원을 각각 선
출했다. 4·3특위는 강민숙, 강철남, 김대진, 홍명환, 김희현, 송창권, 문경운, 오영희, 고태순, 김경미, 김
창식 의원 등 11명으로 구성됐다. 활동기간은 2021년 10월15일까지다.
다음날인 10월 17일 4·3특별위원회 위원들은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위령제단에서 4·3영령들을 추모
하고 4·3해결을 위한 각오를 다졌다. 강철남 위원장은 위패봉안실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특별법 개정
으로 좀 더 정의로운 제주를…”이라고 남겼다.
62
4·3특별위원회 위원장에 강철남,
부위원장에 김대진 의원 선출
위원 11명으로 특위 구성
…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참배
강덕환 재단 기관지 편집위원장
주요참배객
새로 구성된 4·3특별위원회 위원들이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참배하고 있다.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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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철남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의정활동 이전부터 4·3에 대한 관심과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4·3희생자다. 그리고 집단학살지인 다랑쉬굴의 참상을 세
상에 알린 분이 장인어른이다. 그런 까닭에 개인적으로도 4·3유족회
활동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였고, 가슴속에 응어리진 숙제 같은 것이
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유족을 위한 봉사활동이었고, 의정활동을 하기
전부터 4·3유족회 중부지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4·3유족
회와 4·3유족청년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현재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제주4·3의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시급한 것은 4·3특별법 개정이다. 공포 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유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기에
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 21대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4·3특별위원장으로서 그 어깨
가 무겁다. 올해 내에 개정될 수 있도록 국회 앞 1인 시위에도 나설 것이다. 그리고 생존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에 대한 복지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유족들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국립 트라우마센터로 격상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 4·3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4·3특위가 추진할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4·3특위는 총 5개분야에 9개 과제를 선정하였다. 첫째 4·3특별법 개정 활동을 위한 국회 활동강화
및 4·3특별법 개정 추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체계 마련이다. 둘째 생존희생자 및 유족의 복지확대
와 유족 협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는 T/F팀 구성, 셋째 4·3의 역사적 가치와 교훈 공유를 위한 전국
화· 세계화와 세계 각국 청년·대학생들과 연계한 4·3역사교육, 넷째 4·3의 자원화 제도정비, 다섯
째 4·3추가진상조사 보고서 발간에 따른 보고회 및 4·3의 올바른 역사 찾기(정명)이다.
⊙ 4·3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도의 조직개편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제주 세계평화의 섬은 4·3의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근거를 통하여 2005년 1월 27일 지정되
었다. 이를 통하여 제주평화연구원, 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평화포럼 등이 만들어지고 개최되었
다. 하지만 4·3지원과와 평화대외협력과가 분리되어 4·3지원과에서는 4·3관련 업무만 담당하고
있고, 평화대외협력과는 문화체육대외협력국 소관으로 평화업무와는 거리가 먼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실정을 감안하여 세계평화의 섬이 지향하고 있는 4·3의 교훈인 평화와 인권 영역과 평
화와 관련한 대외협력 기능이 강화된 부서 업무를 통합함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려고 한다. 이를 위해 토론회와 본격적인 조직개편 방안을 검토해보려고 한다.
강철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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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지도부
“4·3특별법 정기국회내 처리”
이낙연 당대표 등 4·3평화공원서 최고위원회의 개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지
도부가 4·3특별법을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에 속
도를 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
도부는 지난 11월 18일 제주4·3평화공원 교육
센터에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에 앞서
이들은 위령제단에서 제주4·3을 추모하고 영령
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이날 참배에는 이낙연 당대표를 비롯해 염태영·
신동근·박홍배·박성민 최고위원, 한정애 정책
위 의장, 유동수 정책위 수석부의장, 홍영표 참좋
은지방정부위원장, 오영훈 비서실장, 김영배 정무
실장, 송재호 도당위원장, 좌남수 도의회 의장 등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참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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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행했으며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의 안
내로 진행됐다.
이낙연 당대표는 위패봉안실·행방불명인 표석
등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4·3의 상처가 화해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민주당은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 온 제
주도의 동반자로 김대중 정부는 4·3특별법을 제
정해 진실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노무현 대통령
은 국가원수로서 국가의 잘못을 사과했다”며 “문
재인 정부 들어서는 군과 경찰도 과거 잘못을 사
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총리시절 제주에 와서 약속드렸
던 것처럼 제주도민 여러분께서 이제 됐다고 하
실 때까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 쏟겠다”며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의 정기국
회 회기 안 처리를 목표로 속도를 내겠다”고 약
속했다. 송재호 도당위원장은 ▲4·3특별법 개정
▲특별자치도 완성 ▲제주형 그린뉴딜 ▲제2공
항 등 현안을 언급하며 당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을 요청했다.
4·3의 상처가
화해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
이낙연 당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기국회 내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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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권 제주특별자치도 정무부지사
2020. 09. 01.
제주특별자치도지방경찰청 과장 일동
2020. 09. 18.
홍종완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2020. 10. 14.
주요 참배객
“4·3 영령들이시여, 편히 눈감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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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4·3 영령들이시여, 편히 눈감으소서”
전남순천시의원 일동
2020. 11. 05.
국무총리실 세월호지원단
2020. 11. 12.
제주특별자치도 신규공무원 일동
2020. 11. 05.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원지역회
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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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은 학생(월랑초 1학년) 장학금 30만원 기탁 (2020. 10. 16.)
(주)제우스(대표 김한상) 마스크 2,000장 기증 (2020. 9. 8.)
주요 기탁식
“4·3유족과 평화·인권을 위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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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행 제주특별자치도청지점(지점장 고종호) 1,000만원 기탁 (2020. 11. 23.)
한국가스기술공사 제주지사(지사장 국인철) 마스크 3,000장 기증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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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1
“4·3유족과 평화·인권을 위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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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유물, 한자리에 모으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4·3평화재단 민간소장 4·3기록물 400점 수집
제주4·3과 진상규명과정 당시의 생생한 기록 등 의미있는 유물들이 수집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9월부터 10월까
지 두 달간 ‘제주4·3 민간소장 기록물 수집’ 캠페인을 진행해 기록물과 유물 400
여점을 기증받았다. 캠페인은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위
해 마련된 것으로 4·3유족을 비롯해 지역사회 곳곳에서 동참했다. 지난 11월 4일
에는 사단법인 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이 4·3유물 100여점을 기증했다.
이중에는 4·3당시 잃어버린 마을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 칼과 목시물
제주민예총의 4·3기록물 기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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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굴에서 주민들이 사용한 것으
로 추정되는 등잔, 놋주걱, 고
무신, 항아리 등이 눈길을 끌고
있다.
목시물굴은 1948년 11월 토벌
대의 초토화작전에 의해 무고
한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동굴 밖으로 나오라는 토벌대
의 명령에 순순히 따른 이들이
총살당하거나 방화로 묵숨을
잃어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유
물들이다.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이번 기증을 계기로 각계에
흩어져 있는 소중한 4·3기록
물과 유물이 한 장소에 모이고
체계적인 관리와 연구·전시가
연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4·3이란 극란이 닥쳤는데 경찰관 2명이 와서
들에 가는 노인 농부 10명을 불법체포, 신산바닷가로 끌고 가서
7명을 총살하고 3명을 귀가시켰다.
그당시 서북청년한테 잡히면
성산포 절간 창고에 감금 후 총살했는데 나는 공포에 떨었다”
김두황 할아버지의 회고록 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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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생존수형인 김두황 할아버지(93)도 직접
작성한 회고록을 기증했다.
김 할아버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출
신으로 마을내 민보단의 서무 계원으로 활
동하던 1948년 11월 성산포경찰서로 끌려
갔다.
이후 변호사 없이 진행된 일반재판에서 내
란죄 등으로 징역년을 선고 받아 목포형무
소에 투옥된 뒤 1950년 2월 출소했다. 지
난 2019년 11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
해 제주4·3사건 관련 군사재판 생존 수형
인들과 함께 재심 청구에 나섰으며 지난
10월 8일 법원으로 부터 재심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지난 제주도 작전들은 일반적으로
미 사령부의 통제 아래 이뤄져 왔다.
그러나 현재 작전들은 한국인의 책임아래 있다.
현재의 모든 장비와 지원,
그리고 계획된 작전은 최소한의 미군 개입으로 적절한
지휘 계통을 통해서 한국인에 의해
조종돼야 한다고 여겨진다”
양조훈 이사장의 육필 원고 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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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제민일보 4·3취재반장과 4·3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양조훈 제주4·3평
화재단 이사장은 <4·3은 말한다> 육필원
고를 포함, 4·3 당시 사진, 진상규명운동
및 4·3위원회 활동 시기의 주요 기록물 등
250점을 재단에 기증했다. 4·3 이후 40여
년 동안 억압되어온 4·3의 진실을 규명하
기 위해 걸어온 생생한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이밖에도 1919년 조천3·1만세 운동을 주
도했으나 4·3의 광풍에 목숨을 잃고 2018
년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한백흥 선생의 초
대 함덕리장 임명장도 기증됐고, 희생자 전
군부의 아들인 전명종씨가 부친이 김천형
무소에서 보내온 엽서를 기탁하였다. 장일
홍씨는 고인이 된 부친 장석관씨가 소장하
고 있던 4·3 전후 사진 등을, 화가 고길천
은 제주4·3평화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귀
천’, ‘비설’ 설치 기록 사진을 기증하였다.
수집된 유물과 기록물 중 일부는 재단에
서 준비중인 4·3 아카이브 특별전에 전시
되며,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위한 자료로써 향후 전시·교
육·연구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NEWS
4·3 FOUNDATION
개소 7개월만에
제주형 치유공간으로 주목
가시적인 성과 거듭
4·3 and Peace
Vol. 41
4·3트라우마센터 누적 이용자 8000명 돌파 눈길
도내외 공동체 네트워크 최선, 세월호 유족과 연대
4·3트라우마 센터가 개소 7개월만에 누적 이용자 8,000명을 돌파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4·3트라우마센터 간판의 야간 조명. 어둠속에서도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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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4·3생존희생자와 유
족들의 치유를 위해 설립된 4·3트라우마센터(센
터장 정영은)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듭하고 있다.
제주4·3 뿐만 아니라 강정마을 주민 치유에 나
서고 세월호 유가족과의 연대를 더함으로써 제
주형 치유공간으로 자리잡았다.
4·3트라우마센터는 개소 7개월 만에(11월 5
일 기준) 이용자 등록 454명, 시설이용 내소자
8,805명을 기록했다. 센터는 그동안 주간·월간
단위의 정형적 치유프로그램 시스템 구축을 위
해 예술치유, 전문심리 프로그램, 4·3이야기마
당 프로그램 등을 요일별로 진행해 왔으며, 심리
상담과 물리, 도수치료를 일상적으로 실시했다.
이와 함께 강정마을 주민 치유에도 나서고 있다.
마을자치회 등 자생단체와의 신뢰 구축을 통해
지난 7월에는 강정마을 부인회 30여명을 대상으
로 긍정심리치유, 4·3유적지 기행, 숲치유 프로
그램을 진행해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 강정
마을 노인회원 대상 음악치유 프로그램도 진행
했다.
센터는 앞으로 피해자들의 공동체적 연대감을
조성하고 상담 및 치유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한
심리상담사 네트워크, 치유프로그램 전문가 네
트워크, 4·3단체 등 지역 공동체와의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국내외 교류 및 협력에도 최선을 다
할 예정이다.
세월호 유족들과의 간담회. 이날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7주기까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4·16진실버스’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제주도민들의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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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아울러 내소가 불가능한 희생자와 유족, 강정주
민, 원거리 내소자 등을 위한 방문치유 사례관리
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생존희생자 서모 할머
니(80·여)는 “부서진 몸과 멍든 마음을 치유해
주는 곳은 4·3트라우마센터다. 70여년의 한과
아픈 기억을 치유해 주는 곳이 있어 너무 감사하
고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4·3평화재단과 4·3
트라우마센터는 4·16세월호참사유족들과의 연
대도 돈독하게 쌓아가고 있다.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세월호제주기
억관(운영위원장 신동훈)은 지난 10월 12일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해 재단, 4·3희생자유족회(회
장 송승문), 4·3연구소(소장 허영선)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4·16진실버스’ 전국 순회일정 중 하나로 마련
됐으며 장동원씨(단원고 장◯◯의 아버지), 윤경
희씨(단원고 고 김◯◯의 어머니), 문종택씨(단원
고 고 문◯◯의 아버지) 등이 참석해 세월호 참
사 진실규명을 위해 70년의 아픔을 간직한 도민
들의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또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가족의 정신건강 관리 지원을 위한 안
산마음건강센터 건립을 앞두고 있는 만큼 4·3트
라우마센터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여기에는 인
권운동가 박래군씨, 문석연씨(단원고 양◯◯의
어머니), 강지은씨(단원고 고 지◯◯의 어머니)
등이 참여해 4·3트라우마센터의 프로그램과 시
설 등을 둘러보고 의견을 교류했다.
4·3트라우마센터 프로그램 중 이야기마당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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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한 사람의 삶에 투영된 4·3을 보다
‘4·3 생존자의 삶과 치유’ 프롤로그殿 ‘어디에도 없었던 당신의 이야기’
개막식에서 김인근 할머니(가운데)가 4·3당시 의지할 데 없었던 어머니와 자신을 표현한 조형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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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 인근아, 울지 말앙
어머니 말씀 잘 들엄시민 살아진다.
너만은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한창 뛰어놀아야 할 소녀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던 시대, 열세살 때 발
생한 4·3은 소녀의 가족과 친척을 빼앗았다. 그리고 당시 기억은 나
이가 들어서도 안 사라지며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을 괴롭혔다. 할머
니가 남긴 삐뚤빼뚤한 글씨와 그림들은 4·3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관
통하는 것, 그래서 더욱 눈을 뗄 수 없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0월 12일부터 11월 24일까지 4·3평화기
념관에서 ‘4·3 생존자의 삶과 치유’ 프롤로그殿 [어디에도 없었던 당
신의 이야기]를 열었다. 전시는 4·3을 개인의 삶이라는 미시적 관점
에서 집중 조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4·3생존희생
자의 삶과 치유 시리즈 첫 번째 전시다.
첫 전시의 주인공인 김인근 할머니(85)는 4·3당시 아버지, 작은아버
지, 언니 등 가족 5명이 학살되고 오빠와 조카 2명이 행방불명된 아
픔을 가지고 있다. 또 일곱발의 총상을 입고 살아난 어머니는 후유증
으로 고통받다가 돌아가셨다. 김인근 할머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
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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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2009년 김인근 할머니는 김유경 미술심리치료학 박사와 함께 본인이 겪은 4·3
이야기를 그림으로, 글로 기록한 책 <제주 4·3 생존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미술치
료>를 출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출판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그림과 출판 이후 작업한 그림까지
총 29점, 편지 10장의 원본이 공개됐다. 더불어 전시를 위해 추가로 작업한 어머
니와 소녀상 3점도 소개됐다. 오랫동안 4·3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 누군
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감정이 오롯이 남아있는 기록들이다.
이밖에도 4·3트라우마센터를 소개하는 ‘트라우마센터의 방’ 그리고 4·3희생자와
경험자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참여형 전시 ‘편지의 방’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편지의 방에 남겨진 편지들은 감수를 통해 도록에 실릴 예정이다.
개막식은 코로나19 감염 확산방지를 위해 참석 인원을 제한해 가운데 열렸고 김
4·3당시 어머니가 총상 입고 치료하고 있을 때 주민들이 몰래 갖다준 음식과 쪽지를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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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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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할머니의 자녀와 친척들이 동행해 개막을 축하했다.
한동안 눈물을 글썽였던 김인근 할머니는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시를 기획해준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며 “돌아가신 분들을 그리워하는 마
음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전시물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고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나 말고도 다른 분들의 아픔을 보듬는 전시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4·3특별법
개정안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생겨서 4·3유족들이 손자·손녀들과 더불어 기뻐하
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4·3평화재단은 코로나19로 인해 4·3평화기념관을 방문하지 못하는 관람객
들을 위해 홈페이지에서 전시 VR관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김인근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손가락 하트보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내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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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전국 청소년 4·3영어스피치대회는 제주4·3평화재단과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회장 유재건)이 지난해
에 이어 공동 주최하고, 한국유네스코협회 제주지회(회장 이선화)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올해 2회째를
맞고 있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확산, 4·3의 세계화 등을 지향하고 있으며 지난 9월 9일부터 10월 12
일까지 진행된 예선에는 전국 청소년 80명(중학생 49명, 고등학생 31명)이 참여했고 본선 진출자 20
명이 선정됐다. 본선 대회는 지난 11월 14일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개최됐다.
전국청소년, 4·3으로
“아이 캔 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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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평화와 인권의 가치 확산,
제주4·3의 세계화를 위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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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제주4·3평화재단과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은 지
난 11월 14일 4·3평화공원내 4·3평화교육센터
에서 제2회 전국청소년 4·3영어스피치 본선대
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유네스코협회
제주협회(회장 이선화)가 주관하고 교육부, 제주
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후원한 가
운데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사회적 거리두기 차
원에서 본선진출 학생과 가족 등으로 출입을 제
제2회 전국청소년 4·3영어스피치대회 본선 참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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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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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진행됐다. 이와 함께 행사장에 오지 못한
도내·외 관계자들을 위해 재단 유튜브 계정으
로 실시간 중계했다. 예선을 통과한 전국 청소년
20명(중학생 10명, 고등학생 10명)은 이날 각각
연단에 올라 4·3의 진실과 교훈, 인류평화, 인권
신장을 주제로 영어경연을 펼쳤다. 이중 전예준
학생(중등부)이 ‘평화의 2048년 4·3을 꿈꾸며’로
대상(교육부장관상, 부상 100만원)을 수상했다.
특히 전예준 학생은 지난해 열린 첫 본선대회에
서 우수상을 받은 바 있으며, 올해 더욱 기량을
갈고 닦아 대상을 차지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전예준 학생은 “긴장을 많이 했는데 큰 상을 주
셔서 감사하다”며 “지난해 첫 대회에서의 경험
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과거형으로만 보는 시선
이 대부분인데 저는 이것을 미래형의 과제로서
부각시키고 싶었다. 앞으로도 개인 유튜브 계정
등을 활용해 제주4·3이 지향하는 가치를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최우수상(제주특별자치도지사상, 부상 50
만원)에는 임상혁(고등부)·이영현(증등부) 학생
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수상자들은 다음과 같다.
수상자 명단
▲대상 △전예준(한라중)
▲최우수상 △임상혁(경기·하성고) △이영현(서울·대원국제중)
▲우수상 △정영인(세종·도담고) △조성빈(경기·청심국제고) △김준범(제주중) △노혜민(대구·정화중)
▲장려상 △김연수(KIS Jeju Campus) △이유정(BranksomeHall Asia) △태희성(BranksomeHall Asia)
△한윤희(NLCS JEJU) △고지운(서귀중앙여중) △김민서(한라중)
△이채윤(BranksomeHall Asia) △최윤서(BranksomeHall Asia)
▲입선 △박승원(제주제일고) △박찬혁(NLCS JEJU) △양선모(제주제일고) △이예린(울산·청량중)
△이해인(탐라중)
대상 수상자 전예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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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4·3희생자 특별재심 사유 인정
수정안 제시 눈길
법무부, 4·3기관·단체 간담회 후 한달만에 추진
법무부가 11월 25일 국회에서 논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검사의 직
권재심을 가능하게 하는 수정법률안을 제시했다. 추미애 장관이 지난 10월 제
주를 방문하고 한달만에 이뤄진 후속조치로 유족들과 4·3기관·단체의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다.
법무부가 제시한 수정안은 제주4·3사건 희생자의 특별재심사유를 인정하고 제
주지법에 관할권을 부여, 검사가 일괄적으로 직권재심 청구를 할 수 있는 법률
적 토대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당초 법무부는 지난 10월 29일 4·3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제주지
역 4·3기관·단체 대표들에게 4·3특별법 개정과 4·3군법회의 수형자에 대한
명예회복에 대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법무부에서는 강성국 법무실장, 이상갑 인권국장, 정지영 법무과장, 이규진·조
두현 정책보좌관 등이, 4·3기관·단체에서는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춘보 제주4·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 임문철 4·3중앙위원회 위원, 홍성수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 이규배 4·3연구소 이사장, 허영선 4·3연구소 소장,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 등이 참석했다.
제주스마일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이날 간담회에도 참석
할 예정이었지만 긴급하게 국회에 출석할 사정이 생겨 불참했다.
간담회에서는 ▲4·3특별법 개정을 통한 군법회의 수형자의 명예회복 방안 ▲
4·3군법회의 불법성 여부 ▲군법회의 재심청구 진행현황 등에 대한 의견을 교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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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특히 4·3기관·단체 대표들은 1999년 추미애 의원이 수형인명부 발굴로 촉발
된 4·3군법회의의 불법성을 언급했고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4·3군법회의를
무효화하는 방안이나 4·3특별법 개정안에 일괄 재심이 가능한 조항을 만드는
방안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강성국 법무실장을 비롯한 법무부 간부들은 “군법
회의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아픔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이미 정치·사
회적으로 4·3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여론이 모아졌고 이번에 제기한 4·3단체
의 의견을 토대로 적극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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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제주지역 대학생들이 4·3의 진실을 알리는 중요
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4·3특별법 개정 등
현안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대국립대학육성사업단
(단장 이동철 기획처장)은 지난 11월 6일 4·3평
화공원에서 ‘思와 삶, 그리고 하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지난해 9월 재단과 제주대가 업무협
약을 맺은 후 이뤄진 첫 공동 사업으로 코로나
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
에서 참여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해 운영됐다.
이날 대학생들은 ▲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실
및 평화공원 관람(강사: 박경훈 전 제주문화예
술재단 이사장) ▲4·3전문가 특강(강사: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참가자 소감 발표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4·3의 역사적 진실과 화
해·상생의 가치를 공유했다. 4·3문화예술운동
에 천착해오고 4·3평화기념관 조성 당시 전시
기획팀장을 맡았던 박경훈 전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4·3의 정명과 미래세대의 역할을 언급
했다. 박경훈 전 이사장은 기념관내 백비 앞에서
“민주화와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광주5·18,
지역 대학생 제주4·3으로 한마음, 현안 공유
제주4·3평화재단·제주대, 4·3평화공원서 ‘思와 삶, 그리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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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동학농민운동 등과 달리 탄압에 저항하기 위한
제주4·3은 ‘사건’에 머물러있다.”며 “백비에 어
떤 이름이 쓰이게 될 지는 기성세대가 될 여러분
들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전문가 특강에서 4·3진실규명
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주문하며 ▲분단
의 실체 재조명 ▲평화·인권의 소중함 ▲화해와
통일 메신저를 설명한 후 과거사 해결의 모범 사
례로서의 4·3을 피력했다.
참가 학생들은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종이
동백꽃을 헌화하고 행방불명인 표석, 각명비 등
을 둘러보며 4·3영령들을 추모했다.
안혜정 학생(행정학과 4)은 “4·3의 정명이 필요
하다는데 공감하고, 관련 법률 개정에 반영되길
바란다.”며 “4·3을 죽음으로만 기억하지 않고
추모와 기념 행사 등을 통해 이러한 비극이 되풀
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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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아이들의 손에서 핀 평화의 꽃
제주4·3평화재단, 찾아가는 4·3어린이체험관
11월 13일까지 초등학교 8곳·263명 대상 진행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
화되는 가운데 4·3평화재단의 ‘찾아가는 4·3어
린이체험관-현장교육’이 초등학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지난 10월 6
일부터 11월 13일까지 도내 초등학교(1~4학년)
8곳을 직접 방문하고 모두 263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4·3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찾아가는 4·3어린이체험관’은 코로나19로 4·3
어린이체험관을 방문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
해 사전 신청을 받아 소속 학교에서 4·3을 체험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별이 된 아이들아’ 샌드아트 영상
시청 ▲‘두홍이의 일기’ 함께 읽기 ▲4·3교육콘
텐츠 체험(동백꽃 목걸이
‧스크래치 보드 엽서‧흔
들리는 까마귀
‧스티커 방사탑 만들기) 등으로 구
성됐다. 지난 10월 20일 봉개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에서는 4·3에 대한 어
린이들의 높은 관심이 확인됐다.
70여년전 아무런 죄도 없이 희생당해 하늘의 별
이 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함께 한 뒤 자신들이
직접 만든 동백꽃 목걸이에 ‘그동안 힘들었을텐
데 아프지 말고 잘 살아’ ‘하늘나라 친구들아, 잘
지내고 행복해’ 등의 손글씨를 남겼다.
담당교사들도 현장교육에 만족감을 나타내며 코
로나19가 장기화되는 사회속에서 프로그램 확대
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정주 교사는 “어려운 역사를 어린이눈높이에
맞춰 진행되다보니 4·3을 이해하기에 좋은 시간
이었고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소수인원 교
육에도 적절해 내년에도 추진되길 바란다”고 밝
혔다. 한편 4·3평화재단은 지난 6월부터 도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찾아가
는 4·3어린이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6월에는
도내 30곳을 방문해 2,8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체험교구재를 제공했고 7월에는 도내 26곳, 도
외 34곳에 체험 교구재를 우편발송했다.
재단 홈페이지에는 관련 체험활동과 후기 등이
잇따르고 있으며, 이같은 호응에 힘입어 4·3평
화재단은 지난 8월부터 도내 현장교육을 병행해
모두 138명의 초등학생들에게 제주4·3을 통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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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찾아가는 4·3어린이 체험관이 봉개초에서 진행된 가운데 학생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동백꽃 목걸이를 보여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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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시민들과 함께한
제주4·3 바로알기
4·3평화재단 11월 2~6일 제13기 시민4·3아카데미
코로나19로 위축된 사회 분위기속에서도 제주4·3에 대한 시민
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영화, 미술, 영상, 문학, 제주 굿 등 다양
한 장르의 강의들로 구성된 시민4·3 아카데미를 통해 제주4·3
의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4·3 현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
를 마련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1월 2일부터 6일까지 4·3평화교육
센터에서 제13기 시민4·3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당초 9월부터 1
주에 1번 진행하는 강의일정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를 거듭하기도 했다.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고 방
역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당초 수강인원 80명에서 50명으로 제
한하여 진행했고 재단 유튜브 채널과 채널4·3(운영자 양정환 영
화감독)을 통해 생중계했다.
첫날에는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로 제주4·3을 널리 알
리고 한국영화역사상 최초의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
은 오멸 감독이 강단에 섰다.
오멸 감독의 ‘지슬’은 1948년 제주도민들이 ‘해안선 5km 밖 모
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의 소개령을 듣고 피난
길에 오르면서 겪은 고통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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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추운 겨울속 감독·배우·스텝 전원이 중산간, 동굴 등을 넘나들며 촬영한 만큼 에피소드도
상당할 터, 그에 앞서 오멸 감독은 4·3영화인 ‘끝나지 않은 세월’을 제작하고 개인적으로 절
친했던 고 김경률 감독과의 추억을 되짚었다.
오멸 감독은 과거 제주땅만큼 척박한 도내 영화산업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김경률 감독의 삶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도 우여곡절 속에서 제작한 ‘지슬’에 ‘끝나지 않은
세월2’를 붙임으로써 김 감독의 의지를 이었다고 설명했다.
오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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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촬영장 설명도 주목을 이끌었다. 밤샘 작업과 추
위도 매서웠지만 거친 동굴을 포복자세로 기어
가면서 강행한 촬영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오
멸 감독은 “몇일을 반복촬영하고 동굴 밖을 나
왔을 때 제작진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며 “암흑
속에서, 침묵속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그 시간이
4·3 당시 도민들에게도 마찬가지아니었을까. 그
간절함이라고 하는 게…”라고 회상했다.
둘째날에는 4·3민중미술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박경훈 화가가 제주4·3과 예술에 대해 강의했
다. 박 화가는 4·3의 진상규명과 유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4·3미술의 지향하는 바와 예술가
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또 자신의 작품 ‘통
곡’, ‘토민’에서는 제주도민의 아픔을 그려내면서
4·3이후에도 시대적 상황에 굴복하지 않은 민중
성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김동만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는 ‘미디
어에 담은 제주4·3’을 주제로 청중들과 만났다.
김 교수는 “영상은 역사의 타임캡슐이고 영상콘
텐츠는 역사의 재구성”이라며 “영상의 전파력은
책이나 보고서보다 훨씬 강하다”고 강조했다. 이
어 “영상콘텐츠 제작은 역사인식의 발전을 주도
하고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의미있는 과정이
자 예술활동”이라고 피력했다.
<모든 것의 처음, 신화> 저자인 한진오 작가는
4·3해원상생굿을 통해 4·3을 기억하고 치유하
는 과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굿이라는 제주의 주
술적 세계관이 4·3진상규명을 이끄는 데 일조했
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는 “4·3이 정명을 찾을 때라야 상생을
논할 수 있다”며 “4·3 80주년에는 4·3이 정명
을 얻고 통일의 초석이 놓여 비로소 명실상부한
‘해원상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
민 아카데미의 마지막을 담당한 김수열 시인은
박경훈
오멸
한진오
김동만
김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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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아이히만의
변명을 언급하며 악의 평범성을 경계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또 망각과 침묵을 강요당하던 제주
4·3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역할이 컸던 문학의
힘을 <순이삼촌>, <한라산> 등을 예로 들며 이해
를 도왔다.
전체 수강이 끝난 후 수강생들은 이번 시민4·3
아카데미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4·3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까’ 항목에는 수강
생의 90%가 ‘매우 그렇다’를 선택했고 ‘전체적
으로 강사선정이 잘 되었습니까’ 항목에는 ‘매
우 잘됨’이 71%, ‘전체적인 교육과정 편성’에는
‘매우 잘함’이 65%, ‘교재내용의 도움 여부’에는
‘매우 도움됨’이 68%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본
아카데미 시설 및 운영과 연수진행 담당자의 친
절도도 각각 높게 나왔다.
김수열
■ 4·3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강의였습니다.
■ 코로나 여파속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 4·3아카데미, 대체적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
지고 준비한 점 감사합니다.
■ 분야별로 나눠 시각의 다양성을 제시받아 교육 다양성의 노출이 좋았습니다.
■ 다음 교육시에는 시내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했으면 합니다. 그간 고생했습니다.
■ 내년에는 시기를 조금 앞당겨 했으면 합니다.
■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인데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아카데
미 강좌를 들으면서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4·3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 제주사람이면서도 부족했던 4·3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
주4·3과 예술을 주제로 한 4·3미술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미디어의 영향력을 느꼈습니다. 다랑쉬굴의 모습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 초등교사입니다. 4·3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자료를 많이 보급해주셨으면
합니다.
■ 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읽는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은 수강생들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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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4·3 FOUNDATION
제2회 4·3과 평화 영상공모전 입상작 선정
대상 ‘무덤에서 온 메시지’ 등 17편
제주4·3평화재단은 제2회 ‘4·3과 평화’ 영상공
모전 심사결과 접수작 63편중 17편을 입상작으
로 선정했다. 올해 응모작은 지난해 첫 공모전에
접수된 27편보다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스마트
폰 촬영부터 각종 영상제작 특수 장비를 활용한
실사촬영까지 다양한 방법이 활용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위원 김건일·김동만·양원홍)들은
“구성적인 측면의 경우 4·3의 역사에 대해 정보
를 제공하는 나열식 구성에서 벗어나 소재를 구
체적으로 정해 스토리를 개발했다”며 “제작을
마무리하는 단계인 편집적인 측면에서도 주제와
소재, 구성, 영상미를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시킨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대상 수상팀에게는 상장과 부상 300만원이 수여
되며, 4·3평화재단은 앞으로 입상작품을 홈페이
지 등에 게시해 4·3의 교훈을 확산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선양하는데 활용할 예정이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 대상 △무덤에서 온 메시지(요세프 압둘잘릴
요세프 알 아칼리, 오세진, 좌안정)
▲ 최우수상 △뉴스타임 – 4·3의 현장으로!(박
지원, 이준혁) △꽃이 피지 않는 나무(김하늘, 박
예진)
▲ 우수상 △동백꽃과 평화 – 제주 4·3을 기억
합니다(배유미) △평화를 찾는 기록 4·3(김석찬)
△만약(If it was…)(홍석곤) △섬에 살던 이들(권
경환, 김광수)
▲ 장려상 △제주의 또 다른 계절(서영원) △4·3
길을 걷다(강성찬) △그날, 제주를 듣다(최영은,
문지애, 정해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희생자
들의 아픈 역사(김소영, 류예빈) △이름을 새겨
주세요(김민선, 방지수, 신현아, 이소슬) △제주
4·3 여행(이지영) △기억의 산책(고명애, 최군한,
최효은) △성산일출봉에 얽힌 슬픈 이야기, 4·3
사건!(김호용, 염기쁨) △방구석 역사 나들이 <제
주4·3항쟁편>(남궁선, 박서현, 박연수, 이지은)
△그 해, 다시 봄(박재혁, 송해림, 임현재, 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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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Vol. 41
청소년의 시선으로 표현한
제주4·3 눈길
제21회 전국청소년 4·3문예공모 입상자 발표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1월 3일 ‘제21회 전
국청소년 4·3문예공모‘ 입상자 선정 결과를 발
표했다. 공모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
치도교육청의 후원으로 지난 3월 11일부터 9월
29일까지 시·산문·만화 부문이 진행됐다.
국내 중·고등학교(대안학교, 학교 밖 청소년 포
함) 217곳에서 699명이 참여해 모두 1,167편이
응모됐으며, 각 부문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62편을 입상작으로 선정했다.
부문별 대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시 △이나희(탐라중3) ‘숨비소리’
▲시 △강선영(제주외고2) ‘고해성사’
▲산문 △고주연(제주여중2) ‘500원’
▲산문 △정재민(경기 동화고2) ‘뺨때리기’
▲만화 △김승희(한국국제학교6) ‘숨바꼭질’
▲산문 △윤서빈(제주여고2) ‘감(感)’
심사위원단은 시 부문 심사의 경우 응모편수가
지난해 비해 증가해 4·3에 대한 사전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고 4·3이 청소년에게 세대전승이 되
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산문 부문에서는 어
려운 4·3의 소재를 탄탄한 구성으로 이끌고 참
신한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했
으며 만화 부문에서는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어
전환점애 다다른 4·3의 이야기에 걸맞는 작품들
이 눈길을 끌었다고 밝혔다. 대상(도지사상)에는
부상 50만원(중등)과 100만원(고등), 최우수상
(교육감상)에는 부상 30만원(중등)과 50만원(고
등), 우수상 및 장려상에도 제주4·3평화재단 이
사장상과 상금이 제공됐다. 4·3평화재단은 수상
작품을 모은 작품집을 발간해 전국 도서관 및 학
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한편 올해 공모는 지난해
333명이 535편을 응모한 결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참여학교도 지난해 53곳에서 올해
213곳으로 4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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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우체통
한림 한수풀 해원 상생굿-
열여덟번째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숨죽인 시절, 공포는 엄동의 한기처럼...”(이종형 ‘각명비’중)
제주도가 주최하고 (사)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
형)이 주관한 4·3 72주년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지난 10월 31일 오
전 10시부터 제주시 한림읍주민자치센터 주차장
에서 펼쳐졌다. 이번 행사는 한림리를 중심으로
대림리 ‘붕근굴'과 동명리 ‘신겡이서들', '묵은 오
일장' 등 과거 한수풀이라 불리던 학살터에서 희
생된 200여 명의 영개(영가)를 한자리에 모셔 위
무하고 해원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4·3 당시 한림리는 국방경비대 9연대와 2연대,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등이 주둔해 있었던 토벌
대의 근거지였다. 2019년 발간된 <제주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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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에 따르면 4·3당시 거주지 기준 한림면 4·3희생자는 총 1,037명으로 이는 제
주읍(4,119명), 조천면(1,940명), 애월면(1,555명) 다음으로 많은 희생 규모였다.
‘제주큰굿보존회’(회장 서순실)는 학살터에서 소리치며 혼을 불러내 풍장을 따라 모셔오는 ‘초혼풍장’
을 시작으로 시왕맞이 초감제를 집전했고, 4·3 당시 12살이었던 강순아(1937년생, 명월리 하동 출생)
할머니는 현장에서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과 가족의 피해를 증언했다.
4·3 당시 5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강순아 할머니는 “4·3으로 인해 오빠들을 잃고 홀로 살아왔다”며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4·3의 억울함을 모른다”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어 이종형 시인은 ‘각명비’ 시로, 최상돈 가수는 ‘그리운 옛 님-한수풀 바람(願)’ 노래로, 사단법인 마
로는 풍물과 ‘순지오름 꽃놀이’ 퍼포먼스로 원혼을 위무했고, 저승길을 닦아 영혼을 맞아들여 저승길
로 보내는 제차 ‘서천꽃밭 질치기’를 끝으로 산자와 죽은자를 함께 위로하는 해원상생굿이 마무리 됐
다. 한편, 2002년 다랑쉬굴에서 시작된 해원상생굿은 죽은 자만을 위한 제례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와
살아가야 하는 터전을 함께 치유하는 ‘생명의 굿’이며 ‘상생의 굿’이다. 민중적이고, 예술적이며, 비공식
적인 의례의 현장 위령제로 4·3학살터에서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100
평화우체통
제주도·4·3연구소 제15회 제주포럼의 4·3세션 진행
11월 6일 롯데호텔 제주에서 김동춘 교수 ‘한국전쟁 70년과 4·3
…’ 주제발표
제15회 제주포럼의 4·3세션이 오는 6
일 오전 11시10분 롯데호텔 제주에서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 주최, 제주4·3연구소
(이사장 이규배·소장 허영선) 주관으
로 마련된 이번 4·3세션에서는 ‘한국
전쟁 70년과 4·3 - 평화를 위한 접근’
이라는 주제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사회융합자율학부)가 발표했다. 토론
자로는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과 박
찬식 제주4·3연구소 이사가 참여했고, 좌장은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다.
김동춘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반도의 오랜
전쟁, 즉 분단과 냉전은 아직 한반도가 탈식민주
의, 탈냉전 프로젝트의 일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말했다.
김 교수는 “한반도의 오랜 전쟁, 즉 분단과 냉전
은 아직 한반도가 탈식민주의, 탈냉전 프로젝트
의 일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며 “일제 강점기와 8.15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가 겪어온 과정이 20세기 세계사를 응축 집약하
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가 이 모든 누적적이고 중첩된 역사적 지층
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작업 없이는 완수되기 어
려울 것”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6·25 한국전
쟁 70년, 그리고 그 전사인 제주 4·3 사건을 바
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영선 제주4·3
연구소 소장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의 산물
인 제주4·3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유례없이 참
혹한 희생을 가져온 비극적 사건”이라며 “특히
올해는 한반도 분단 75주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 해로, 냉전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 맥락
속에서 전사인 4·3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번 제주4·3 세션
을 마련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이번 포럼
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일반인 참관이 제한됐고,
전 세션이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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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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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재단·4·3희생자유족회·4·3연구소 등
전국 124개 기관·단체로 구성된 <제주4·3특별
법 개정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 11월 12
일 국회 앞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촉구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4·3특별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며 “4·3특
별법 개정은 4·3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추
가 진상조사와 완전한 명예회복을 통해 과거사
를 정의롭게 청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강조
했다.
이어 정치권에 대해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분
위기는 이미 무르익었고 제주도민은 물론 국민
적 공감대도 형성됐다”며 “이제는 문재인 정부
와 여야가 4·3특별법 개정이라는 약속을 실천으
로 옮겨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정부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국회는
책임 있는 자세로 4·3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사해야 한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올해
안에 반드시 4·3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달
라”고 호소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부터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
는 무기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전국 124개 단체, 4·3특별법 개정 쟁취 위한 투쟁 선포
공동행동, 국회 앞에서 전개·릴레이 1인 시위도
4.3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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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우체통
불교계도 4·3특별법 개정안에 힘 모으다
한국 불교계 대표 스님들 10월 20일 4·3희생자 위령재 봉행
한국 불교계 대표 스님들이 제
주4·3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강
조했다. (사)한국불교종단협의
회(회장 원행스님·이하 종단협)
는 지난 10월 20일 4·3평화공
원 위령광장에서 제주4·3희생
자 추모 위령재를 봉행했다.
위령재에는 한국불교종단협의
회 회장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과 대한
불교천태종 총무원장인 문덕스
님(종단협 수석부회장), 대한불
교진각종 통리원장인 회성스님(종단협 차석부회
장),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인 호명스님(종단
협 부회장), 불교총지종 통리원장인 인선스님(종
단협 부회장) 등 부회장단을 비롯해 한국불교 대
표 스님 50여명과 강승철 제주도 문화체육대외
협력국장, 김희현 제주도의원, 양조훈 제주4·3
평화재단 이사장, 김춘보 4·3희생자유족회 상임
부회장, 허영선 4·3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특히 불교계를 대표하는 지도자 스님들이 처음
으로 봉행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4·3당시 억울하
게 희생된 도민들과 스님 16명의 극락왕생을 발
원했다. 또 4·3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치유에
대한 국회의 특별법 개정안 통과도 촉구했다.
원행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70여년 전 제주는
냉전시대 이념의 갈퀴가 할퀸 폭력으로 3만명에
달하는 원혼이 검붉은 토양을 덮은 비극의 현장
이며 불교계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며 “4·3특
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불교계 역시 힘을 보태
겠다”고 밝혔다. 이어 참석자들은 양조훈 4·3평
화재단 이사장의 안내로 위패봉안실, 행방불명
인 표석, 봉안관 등을 둘러보며 제주4·3의 역사
와 아픔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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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김두황 등 일반재판 수형인 포함…12월 7일 선고 공판
억울한 옥살이 4·3수형인 8명 재심 개시 결정
72년전 4·3당시 불법 군법회의로 억울하게 옥살
이했던 구순의 4·3수형인에 대한 재심이 개시됐
다. 지난해 1월 공소기각 선고됐던 4·3수형인들
의 1차 재심에 이은 두번째 재심이며 검찰이 재
심을 청구한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구형하면서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10월 8일 법원 201호
법정에서 4·3수형인들이 제기한 재심청구를 수
용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결정된 수형인
들 8명중 7명은 군사재판, 김두황 할아버지(92) 1
명은 일반재판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번 재심은
이들이 지난해 10월 22일 재심 청구한지 1년만
에 결정된 것으로 김두황 활아버지처럼 일반재판
을 통한 재심사례는 처음이다. 군사재판 수형인은
김묘생 할머니, 김영숙 할머니(90), 김정추 할머니
(89), 송순희 할머니(95), 장병식 할아버지(90) 등
이다. 변연옥 할머니(91)와 송석진 할아버지(93)
는 재심 결정을 보지 못하고 지난 3월과 7월 각
각 숨졌다. 이후 제주지법 형사2부 심리로 11월
16일 열린 4·3수형인 재심 결심 재판에서 검찰
은 수형인 전원 8명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4·3의 여러 이념적 논란을 떠나 해방 이후 혼란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도민들의 아픔은 누구도
부정 못 한다”며 “늦었지만, 상처와 눈물로 버텨
온 지난 아픔이 치유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선
고 공판은 올해 12월 7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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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우체통
성산읍 4·3희생자위령제가 11월 5일 고성리 터
진목에서 열렸다.
위령제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
적 거리두기로 예년에 비해 적은 규모로 진행됐
으며 희생자 유족과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
석했다. 이날 위령제는 국민의례, 주제사, 추도
사, 헌화 및 분향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순호 성산읍 4·3희생자유족회장은 “원혼들
의 소망은 일출의 햇살처럼 인권이 살아있고 평
화로운 사회”라며 “후손들이 어렵게 가고 있는
4·3의 길을 위해 빛을 밝혀주시고 쓰러지지 않
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밝혔다.
한편 성산읍 4·3희생자 위령제는 1948년 겨울
부터 이듬해까지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군인들
에 의해 터진목에서 학살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
해 열리고 있다.
성산읍 4·3희생자위령제 11월 5일 봉행
71주년 현의합장묘 위령제 10월 10일 봉행
제71주년 현의합장묘 위령제가 10월 10일 서귀
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 4·3위령공원에
서 봉행됐다.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는 4·3당시
의귀초등학교에 주둔했던 군인들에게 집단학살
당한 80여명의 주민들이 묻힌 곳이다. 학교 동녘
밭에 흙만 대충 덮인 채 방치되었던 시신들은 ‘현
의합장묘 옛터’에 매장되었다가 지난 2003년 9월
20일 현 위치에 안장됐다. 유족들은 1964년 삼
묘동친회를 조직해 봉분을 단장하고 산담을 쌓아
해마다 벌초와 제례를 봉행했다. 1983년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를 담아 현의합장묘
묘비를 세웠으며, 유족회 명칭도 ‘현의합장묘 4·3
유족회’로 변경했다. 2003년 이후 매년 음력 8월
24일에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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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and Peace
4·3평화재단 창립 12주년 기념 워크숍 개최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11월 16일 창
립 12주년 기념 워크숍을 가졌다.
이날 워크숍은 재단 임직원을 비롯해
4·3희생자유족회(회장 송승문), 제주4·3
연구소(이사장 이규배, 소장 허영선) 임
직원들과 함께한 행사로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다
랑쉬오름을 등반하고 4·3당시 군경토벌
대에 의해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다랑쉬굴 4·3유
적지를 답사했다. 이어 유적지 환경정비도 진행
했다. 특히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과 김은희
4·3연구소 연구실장은 30주년을 맞이하는 다랑
쉬굴 유해 발견의 역사와 미래 세대의 역할을 강
조했다.
선흘리 4·3희생자위렁제 11월 15일 봉행
선흘리 4·3희생자위렁제가 11월 15
일 선흘리 반못에 위치한 위령비앞에
서 열렸다.
1948년 4·3이 몰고 온 무차별적인
학살 광풍을 피해 도틀굴, 목시물굴,
밴뱅듸굴 등으로 은신했던 선흘리 주
민 216명은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했
고, 살아남은 이들도 여태껏 고통 속
에 지내야만 했다.
이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해 위령비가 건립됐다.
위령비 왼쪽에는 선흘리 희생자 명단을 적어놓은
비가, 오른쪽에는 김관후 시인의 ‘선흘곶에 우는
새’라는 시비가 세워졌다. 위령비 제막식 이후 선
흘리와 선흘리 4·3희생자유족회는 매년 11월 15
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