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산 사람들 3
한울산 사람들 3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다사함 김명식 울림글쓰미
4·3 민족 민중해방 항쟁-이어쓴 울림글(詩) 온 묶음 3
한울산 사람들 3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초판 인쇄・2023년 12월 1일
초판 발행・2023년 12월 12일
지은이・김 명 식
발행처・제주4·3평화재단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봉개동 237-2) 제주4·3평화기념관 4층
전화・064.723.4350
팩스・064.723.4303
홈페이지・www.jeju43peace.or.kr
인쇄처・도서출판 각 Ltd.
출판등록・등록번호 제651-2016-000013호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6길 17, 2층
ISBN 979-11-93870-01-3 04810
979-11-88339-98-3 (세트)
비매품
5
머리말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이 한 몸 거름이 되어 평화의 나라
새날을 위하여
꽃으로 피어나기를
우리네 가난한 이웃들 모두에게
따뜻한 밥으로
열매 맺을 수 있게 되기를
따뜻한 몸, 흙이 되는 그 날까지는
산이 되려니
바다가 되려니
섬이 되려니
외로움 짙은 해 질 무렵에는
어스름 별을 보리라…
치밀한 제국의 음모는 또 다른
식민지를 짓는 시간을 노렸다
큰 놈에 붙어사는 기생성 사대주의자들은
같은 마을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을 벗들을
7
재판도 없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일
재판장 검사장…
헌법과 육법 전서 앞에서
육탄이 되어 육탄이 되어
이름도 남김없이 사그라지는 일…
오랫동안 연구된 제국 훈련 앞에서
십자군의 사냥술 가운데서
인디안들 학살술 앞에서
제3세계 동족끼리 싸우게 하는
용병술 그 가운데서…
새날을 위하여
그리운 나라를 지키려고…
나 여기까지 왔음을…
여기까지 나 살아 있음을…
1991. 2. 18
다사함 두 손 모음(대전 형무소 독방에서)
6
죽이는 제국의 하수인이 된 지 오래이다
나 예서 맨몸의 나무로…
이 땅을 이 섬을 이 바다 이 산 이 오
이 골짜기 이 냇창을 이 풀나무 이 동굴과
덩굴 숲 지키는 너럭바위가 되는 일
구럼비가 되고, 아흔아홉 골이 되고,
부도가 되고 장승이 되고,
나 예서 배움터가 되는 그 일인 것을
길바닥에서 맨발이 되는
마을 어구에서 끌려가는
학교운동장에서 총살 당하는
마을 한가운데서 불길에 타버리는
발목에
먹돌 묶인 채로
바닷물 속으로 던져지는 숨막힘으로,
11
1 ・ 한울산-풀잎 하나인 듯이
파르르
키 작은 풀잎
풀잎 하나 파르르
바람에
목은 목대로
비틀린다
잎은 잎대로
꾸겨진다
파르르 키 작은 풀잎
풀잎 하나 파르르
칼날에
총질에
물매화
꽃잎 하나
파르르
투벅 투벅 군화 발자욱
밤 밤
창호지 지게문 떨린다
13
총구멍 앞에서
기절한 어머니
싸늘하게 식어가고
모릅니다
모릅니다
살려줍서
살려줍서
손 비비는 누님의 머리칼 위엔
거친 사나이 손자욱
짙게 묻어난다
파르르 떨고만 있는
풀잎
풀잎 하나
군화발에 뭉게어진 채
푸릇한 칡줄기
가느다랗게
마당 위로 흘러 내리고
마당에서 마지막 남은
생명들도 스러져 내린다
12
손 들엇!
밤 순경이 명령 내리면
벌써 순서대로
포승은 준비되고
샅샅이 뒤지고 나면
서북청년단들
먼저
아들을 내놓으라 한다
자정으로 기울어 지는 밤
밤
귀신들도 범접할 수 없다던
한울산 허리
이름없는 마을
불 꺼진 초가 창문마다
너희는 죄인이다라는
채살의 판결물이
창문마다
찬바람을 일으킨다
15
이 마을에
아침에 보였던 사람
저녁이면 안 보이곡
저녁에 만난 사람
아침에는 안 보이곡
밤엔 산이 무섭곡
낮엔 경관 무섭곡
다들 나와 다들 나와
위쪽 밭으로
다들 나와 다들 나와
모여라 모여라
살려 줄 거라 살려 주고 말고
새벽밥
못 먹어도
이렇게 화닥화닥
모여왔는디
14
정막
죽임이었다
메밀꽃 피어나고
조상 숨결 일렁이는
돌짝밭에서
피를 지우며 허기진 배를
달래던 따슨 손길 묻어난
비탈밭에서
소를 먹여 밭을 갈고
말을 길러 밭을 밟고
이랴 이랴
럴럴 럴럴
얼러디야
상사로다
가난허고 설흔 자손
오손 도손 살아오던
17
북선 사람
군인지
경찰인지
우리는 몰라 우리는 몰라
머리 띠 두른 군인들
U.S.A제 군복 입은 군인들
M1에 착검하고
아, 무서워서 제대로 볼 수도 없어
머리 숙여
숨을 죽여
난 북에서 왔어-예 북에서 왔수다
난 산에서 왔어-예 산에서 왔수다
우리같은 무식쟁이
땅에서 낳아 땅으로 꺼져가는
그 길 밖에 그 길 밖에 모르는
우리같은 무식쟁이
16
아 저거 봅서
기관총 걸어놓고
빠드드득 빠드드득
파르르 풀잎 하나
여린 풀 쓰러지듯
여린 풀 쓰러지듯
쓰러진 데 쓰러지곡
쓰러진 데 쓰러지곡
또
쓰러진 데 쓰러지곡
처음엔 산에서 왔다고
산사람이라고
처음엔 북에서 왔다고
북선 사람이라고
우리는 몰라 우리는 몰라
산사람인지
19
잔잔히 숨소리가 눕는다
파르르 풀잎 하나
떨어져 쌓인다
줄 지어 눕는다
남자들은 뒷결박에
여자들은 가슴 풀린 채
한 줄로 나란히
땅바닥에
파르르 파르르
풀잎은
떨어져 쌓인다
저 위에 소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위에 기관총을 걸어 놓고
빠드드 빠드드
쏘아 대었지
군인도 서청도 경찰도 총질도
산사람도
18
북조선이 어디에 붙었는지
뭘 알아 뭘 알아
우리같은 무식쟁이
저들끼리 하는 소리
저들끼리 9연대라
서울말씨 육지말씨
저들끼리 9연대라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총으로
와작작 와작작
쏘아 대고 쏘아 대고
더 죽여 줍서
더 죽여 줍서
신음소리
저주소리
21
막지키기 무섭고
부락전소 무섭고
초토작전 무섭고
군정명령 군정재판
징역
사형
수장
암장
이런 사태가 난 거예요
조용했던 한울산 허리
하늘 품고
바다 품고
아들 낳고
딸을 낳고
오순도순 사는 마을에
사태가 난 거예요
U.S.A놈의 실험이래요
초토작전 명령이래요
20
없었던
사태 전에는 그런 죽임
기관총도
U.S.A군도 고문관도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없었던
이 마을에 우리 마을에
사태가 난 거예요
사태가 난 거예요
학살이 자행된 거예요
집단학살이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사람 죽이는
사태가 난 거예요
계엄령이 무섭고
전략촌이 무섭고
소개령이 무섭고
축성쌓기 무섭고
23
목숨 부지
목숨 부지
찾아 찾아
먹을 거 찾아
입을 거 찾아
손가락 하나 없는
불쌍한 웃뜨르 것들
헛간에서
부엌에서
목숨 부지
찾아 나섰지
파르르 키 작은 풀잎
하나 하나
파르르 시린 저녁별처럼
떨어져 내린다
여린 풀잎 하나
담장 하나 넘을 수 없는
꺾인 몸으로
22
전략기지 구축이래요
총을 쏘아대는 거예요
기관총을 쏘아대는 거예요
빠드드 빠드드
우리는 산을 내려
한울산을 뒤에 두고
절뚝 쩔뚝
하산을 하는데
눈물도 나오지 않더군요
짐승처럼 길을 찾아
움집을 찾아
하귀로 엄쟁이로
애월로 성안으로
우리 마을 불 붙여 부난
먹을 거 없어
입을 거 없어
어딜 가면 좋을꼬
25
2 ・ 제국의 칼 아래
빨갱이 사냥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머리 위로 하늘엔
헬리콥타가 날고
발 앞으로 지상에는
총 든 병사들
불 타는 제주섬을
사진에 박기 위해
산사람들 소행으로
선전하기 위해
5월 1일 노동절
제주도민 민심을 조작하기 위해
동아일보 기자들
앞세운다
윌리엄 딘이란 놈은
극비에 암행으로
음침한 밤길을 타고
제주도로 제주도로
기어들 온다
1948년 4월 19일에
24
땅을 덮었지
마당을 덮었지
밤마다 낮에도
겨울 추위로 엄습해 들어오는
칼끝
총구
아, 나는 어린 동생 젖동냥하면서
아, 나는 질긴 목숨 험하게 살았어요
27
U.S.A-군정장관
U.S.A-병사들 앞에서
파르르
소리없이 피어나던
작은 풀잎은
바람 타고
불바람 타고
파닥파닥
불에 타며
오므라든다
산
한울산은
음모도 사랑하고
적들의 죄
스스로 자인할 그때까지는
산
한울산은
기다릴 줄 안다
26
불 타는 제주도는
점령군의 작전이고
작전은 순조롭게
우는 여인도 확보되었고
웃을 수 있으리만큼이나
여유가 생겨
관을 짜는 연극도
연출되었지
5.1 오라리 방화는
이렇게 해서
한 집 두 집
빨갱이로 집목된 집부터
산사람네 그 집부터
처마로부터
검정 연기
뭉게뭉게
타오르더니
그래도 웃을 수 있는
29
팔락 팔락
눕지요
파르르 떨며
작은 풀잎으로
때리는 검은 손이 도리어
휴식이 필요할 때까지
우린 감각 정지될 때까지
매를 맞아야
들것에 실린 채
취조실을 나선다
파르르 떨리는
작은 풀잎
산,
한울산에 눕는다
계곡을 따라,
산허리를 타던 동네 어른들
몰라야 한다
절대로 모르는 사람들로
28
하산하면서
오랏줄에 묶인 몸
하나
비틀 비틀
하산하면서
총탄에 쓰러진 어머니는
곱게
기도라도 하는 듯이
조용히
부끄럼 하나도 없이
길 한가운데서
부끄럼없이
무릎 꺽인 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하산하면서
무서운 줄 모르고
가자면 가야 하는
섬사람들 외로운 행로
총을 쏘으면
31
아침도 저녁도
잠잠해지면
그 순간부터는 두려움이 아니라
오랏줄에 묶인 채
들어오는 산송장들과 만나면서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얼굴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안도의 긴 숨을 내쉰다
남편의 소식 먼저 묻기도 전에
배고픔 서로 위로하느라
각자는 자기 방식대로
손톱 사이에 묻어난
튼 살을 뜯고
웃음과 음모가
잔잔히 사그라들 지경이 되면
육신을 탐하는
경찰 경비대 서청들
30
죽을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검은 계곡에서
생명줄도 찾을 수 없고
배신의 기회도 찾을 수 없는
단지 사냥감으로 남을 수밖에
시간도 장소도
사람들도 모두 이방인으로
남게 되고
린치가 잠시 멈추고
다시 임시수용 감옥문을 나서면
그 순간
석방은 우리들에게
처형이었습니다
하나 둘 이제 얼굴 아는
사람들도
석방
석방
33
그것들은 오히려
사치였습니더
오히려 살아남은
목숨 그냥 놓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감사해야 하는
우리는
분노
저항
그런 것은 우리들에게
사치였습니더
인간이기를 잊어버린
생명였을 뿐입니더
그래서 습성대로
우리는
저들더러
사랑한다고도 했고
애비를 에미를
남편을 동생을
32
거친 난동쯤은
거뜬히
눈 감아 넘길 줄 알아야 한다
강간을 죄라고
고발할 수 있는
세상은 우리들에겐
사치였습니더
일흔 번씩이나
강간 당해도
예 예
예 예
절대적 유일신 앞에서
스무 번도 더 우리는
옷을 벗어야만 했습니더
스스로
스스로
무서움도 부끄러움도
반항도 저주까지도
35
식민지의 역사
반역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이 땅 우리들의 역사는
다 진실이 아닙니다요
우리 어머니 무덤은
사실대로 말씀 드리자면
빈 무덤이고
사망 신고조차 모두가 모두가
학살 뒤에 기록된
면서기의 손가락 끝에서
또 한번 사살당한 것이고
무덤까지도 아직은 진실이 아닙니다요
호적 초본도 등본도
아직은 아직까지는
다 진실이 아닙니다요
34
죽이고 또 죽인
그들
그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들의 당당한 남편이 되고
절대 주인이 되고
뱃속으로
종자를 뿌린
애기 아빠가 됐습니더
하늘에는 헬리콥타가 날고
어깨에 총을 멘 군경들이
차츰 차츰
거리로 들어와 포위망을 치고
동아일보 기자나리께선
기자수첩에
계획된 전황을 기록하고
U.S.A군정 장관은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하고
음모와 웃음 곱게 포장한
37
경비대 경찰도
서북청년단도
진실인 냥 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퍼렇게 살아있다는 것만큼은
참으로 진실입니다
그래서
칼의 역사가 흐르면서
여인들에게 진실이 많은가 봐요
바람많고
돌 많고
여자 많은
섬나라에는
눈물 많고
피 많고
시체 많은
섬사람들에게는
파르르 키 작은 풀잎
36
하산하면서
파르르 떨리는
우리는
작은 풀잎
풀잎 하나로
경비대 경찰
서북청년단
거침없이 쳐들어 오는
거구의 U.S.A놈들
저들의 손아귀 아래서
휴지처럼 꾸겨져 가는
우리는
작은 풀잎
파프르 떨리는
풀잎였습니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조작된 U.S.A의 일급 전략이
차라리
진실이겠고
39
허기진 몸 쓰러지면서
아이를 낳던
기어코 낳아 일어서든
아프리카 여인이 기억나는군요
죽음의 순간
여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죽으면 또 낳고
죽으면 또 낳고
우리는 혀를 깨물었습니다요
죽이면 또 낳고
죽이면 또 낳고
새 생명 낳는 게 진실이고
살아남는 게 진실이니까요
보십시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저 피 묻은 자들의 입놀림을
38
하나
파르르
떨고만 있었습니다요
원수의 씨를 받아
뱃속에서 키워 키워서
원수를 갚겠다던
그 여인도 가고
죽창 들고
총검 앞으로 당당히 달리던
고씨 어른도 가고
여지껏 내가 알기로는
총칼들고
호령하던
서슬퍼런
사람들이
살아살아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은 힘센 자의 편인가봐요
41
살아서
살아서
살아남아야 진실은 밝혀지겠지요
살아야
진실은 밝혀지는 것이지요
40
하산하면서
파르르
꾸겨지면서
핏방울로 살아
살점으로 살아
뼈가루로 살아
살아야
살아야
진실은 밝혀진다고
혀 깨물며
혀 깨물며
저녁 해 붉은 빛깔로
맹세했습니다요
경비대 경찰 서북청년단
육중한 U.S.A병사의 비계덩어리
아래서
식민의 땅에서
갈기갈기 찢긴 몸 일으켜
살아서
43
3 ・ 어머니의 산
먼 산 한울산
바라보기만 해도
어멍 생각 남싱게
아방 생각 남싱게
오랏줄에 뒷손 결박
허리 휘인 어르신네
힛득힛득 뒤돌아보시며
저벅저벅 뒤돌아보시며
느, 나, 몰르크냐
나, 창기 아방이라게
경해도, 나 몰르크냐
손 비비며 애원해도
하늘도 모른다고
땅도 산새들도 모른다고
창기허고 어깨 끼고 노닐던
뽀오얀 얼굴들
한울산을 바라보면
눈보라 치던 한겨울 어느 날
45
세월
양철지붕 창고 임시감옥 속에서
아아
비명소리도 아무도 모르는
아아 신음소리도
아무도 모르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지어 놓은
양철지붕 창고 임시감옥 속에서
느, 나 몰르크냐
나, 창기 아방이라게
창기 아방, 나, 나,
쪽바리 법망에 걸려 36년
이제는 코쟁이 전략망에 걸려
총칼질 하는 저자들도
같은 동족이련만…
느, 나 몰르크냐
나, 창기 아방이라게
44
골방에서 터지는
환한 웃음소리
귀에 쟁쟁히 들려 오고
한울산
바라보면
살아남기 위하여
지금도
그들은 산비탈 타고 있는데
느, 나, 몰르크냐
나, 창기 아방이라게
함께 웃던 얼굴이면서
바로 그 얼굴이면서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섬사람들
묶인 까닭 묶는 까닭
알 수 없는
대단한 한 마디 들을 수 없는
하늘 가린
47
무의식적으로
구원의 기도 손비비며
한없이 한없이 빌고
빌었지
나를 알아주고
우리들
섬사람들
이렇게 묶인 까닭을
알아줄
신령님을 찾으며
신을 찾으며
큰 돌 앞에 앉아
큰 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산
한울산 영봉 향해
파르르
떨리는
풀잎 하나로
46
반응도 없이
대답도 없이
처형의 도구
제국의 용병
성한 목숨 잡아 가는 채살이 되어
기관총과도 같이
잔인하기만한
창기 친구도
동네 젊은이들도
제국의 도구가 되어
모른 척 한다
모른 척 한다
역사를
이웃을
우리들의 애정을
곤죽처럼 풀어진 몸
땅바닥에 부려놓고
풀잎보다 더 가벼운
상처난 영혼
49
신음소리로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가 되고
하늘님이 되는
1948년 늦은 가을밤부터
1949년 늦은 봄 아침까지
나, 모르크냐
나, 모,르,크,냐 어허-
아무도 몰라 주는
허허한
제주섬 한울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낙엽처럼
흐른다
법망에 걸린 채 흐른다
포승에 묶인 채 흐른다
고자질
손가락질
눈빛깔
손놀림
48
살려 줍서게
살려 줍서게
U.S.A님 조선님 서북청년단이시여
경비대 순경님
끄나풀이시여
살려줍서 살려줍서
제발 한번만 용서해 줍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죽이면 죽이는 대로
꾸겨진 풀잎 하나
사각한 육신은
찢긴 살점은, 살점 그대로
긁힌 상처는, 상처 그대로
방바닥 어둠 속에서
신음소리로
절규 소리로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고
51
총칼질
가슴 찌르기
배 찌르기에
흐르고 흐르고
하염없이 흐르고
밤이었다
밤이었다
차라리 적군에 포로가 되어
총구 앞에 서기는
쉽고 당당한 일
차라리 적군의 표적이 되어
탕탕탕
쓰러지는 거야
조국을 위해
거룩한 거름이 되는 것이야
무서울 것 같지 않을
산
한울산
반역의 역사 속으로
50
입술놀림
소슬바람결 따라 흐른다
파르르 풀잎 하나
사각 사각 부서지는
산
한울산
가을, 늦가을 풀잎 하나
마른 풀잎 하나
흐른다
침묵으로 흐른다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는 서로 마주 서서
적군이 되고
이웃끼리 과녁이 되고
이름 석자
얼굴 모습
기억할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죽창질
53
수녀도 스님도
목탁도 성서도
우리에겐 없는
텅 빈 방안에
마을 사람도 없고
신음소리만
신음 속에서 우리는
숨 죽인 우리는
신음 속에서 만나고
살아있음 확인하는
가는 숨소리만으로
구원이 되고
예수가 되는
석가가 되는
하늘이 되는
신음 속에서
아, 신음 속에서
드디어 우리가 하나가 되어
52
자꾸만 자꾸만
흘러가는
우리들 앞에는
명령만 있고
헬리콥타
기관총
L4
L5
M1
카빈총만 있고
고자질 손가락질
서북청년단 빨갱이 사냥만 있고
경비대의 군화
경찰대
포승만 있고
우리에겐 하나님도
예수도 석가모니도
목사도 신부도
55
함께 구원자가 되는
그래서 우리는
U.S.A도 떠나 보내고
경비대도 경찰관들도
서북청년단들 모두 떠나 보낸 후
캄캄한 한밤중에
묶인 채
꺾인 허리 일으켜
서로 일으켜 세워
산을 바라본다
한울산을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가고
이 땅 하나되고
54
새 하늘을 만들어 가고
예수와 석가를 새로 잉태하고
결국 하나님을 탄생시키는
어어 신음하면서
다시 산,
한울산으로
꺾인 몸 가볍게
파르르 풀잎 하나
마른 잎으로
어어 신음하면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스며들어가는
구원의 함성
어어 우리들의 신음소리가
결국 우리들의 구원자가 되어 준
마지막 풀잎 하나
여린 풀잎
묶인 채 함께 스러지는
신음 속에서
57
4 ・ 한울산사람들
짙은 어둠 산자락에 드리우면
언듯 언듯 보이는
얼굴이 있어
소리없이 눈물 흘렸다
우리도 한번쯤
우리 맘껏 살아 보려고
우리는
산
한울산으로 들어갔지
도망쳐 산으로 들어가기도 했지
아방 어멍 보고파서
산에 들어오기도 했지
남편 얼굴 보고 파서
한두 번만이라도 만나봐야 하기에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산으로 들어왔던 것이지
미운 세상에서
56
독립된 주인 땅에 살기 위하여
우리는
싸운 것이주
산
어머니의 산
한울산에서
59
작전을 짜본 전사들에게만
작은 승리일지라도
해방의 영토에
자유의 깃발 펄럭이는 것이지
돌진 돌진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자들에게만
동지의 뜨건 가슴이 보이고
마지막 남은 보리밥
한 덩어리
반으로 뚝 잘라
나누어 먹을 줄 알게 되는 게지
이맘때쯤
짚새기 한 켤래가 가장 귀하고
썩어 문드러져 내리는
발가락을
스스로 잘라낼 때
이맘 때 쯤
온천지
58
미운 자들 아무도 아니 보이는
서러운 사람들끼리
흐느끼는 울음이야
계곡을 메운다지만
악독한 세상에서
악한 것들 아무도 들어서지 않은
빼앗긴 사람들꺼정
빼앗긴 것 찾아야 하겠기에
우리는
죽창을 들었지
창, 죽창을 든 자에게만
적은 보이고
원수의 작전이 보이는 것이지
총, 총을 겨눌 줄 아는 자에게만
침략군은 보이고
살해의 음모 선명히
보이는 것이지
61
소리도 없이
마지막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얼어붙은 육신
동지들이 쓰러질 이맘때쯤이면
우리들이 예배할 신들은
새벽
동 터오는 새벽녘까지는
결코 일어 나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두려움에 묻혀
도망할 수만은 없다
눈 덮인 동지의 시체를
아무도 모르게
언 땅에 묻혀야 했지
산울림이 멀리에서
쓍 하고
몸서리치고 나면
아직도 목숨 살아남은
동지들은
60
산꼭대기 나뭇가지
온천지
하얗게 눈 덮인 세상에는
발자국 하나도
남겨서는 아니되는
이맘때쯤
몸에 걸친 젖은 옷에
불을 붙여도
가슴이 녹지 않은
이맘때쯤
우리가 예배할 신들도
자취를 감추고
우리들이 예배할
신들은
귀신들은
하느님께옵서는
예수도 석가도
깊은 잠에 취하셨는지
63
자기 이름 크게 부르고
박수갈채
우레같은 박수갈채 받는 일이야
그 사람들이 할 일이지만
이맘때쯤
동지도 없고
죽창도 없는
나를 보호할
나뭇가지 하나없는
이 지경에서
이 땅을 지킨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래요
씨 뿌리던 이웃들이 그랬고
고기잡이 이웃들이
험한 뱃길 혼자 저어 왔듯이
참 슬픈 일이다
이 산
한울산을 지킨다는 것은
62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보급대원들이 앉았던
빈자리에서
아스라이 사그라지는
체온을 느낀다
참 슬픈 일이다
조국을 지킨다는 게
조국을 해방시키고
독립 땅에서
마음껏 활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참 슬픈 일이다
지도자라고
자칭하던 자들이
다 떠나버리고
자기 땅을
섬나라를
높은 자리에서
65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다시 나의 가슴팍
나의 가슴 땅 위에서
새날 마중할 수 있다면
우리들에겐 최고의 승리랍니다
동지를 위하여
우리는 모두 의사가 되고
어떤 때는
우리들의 양식을 위해
소를 말을 산 새를 잡고
씨 뿌리는 자가 되었다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양식을 모으기 위한
보급대원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전사가 되고
환자가 되었다가도
어느결엔가
추수꾼으로 일어서야 한다
반란꾼이 되어
64
다 그런 것이겠지만
포위해 들어오는
적군들 바라보며
찢긴 양팔 들 수밖에 없는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은 실패했다
일찍 머리 떨구고
역사책도
그렇게 기록하겠지만
우리는 고요한 이 한 길로
이렇게 싸웠습니다요
다시 내 땅으로 돌아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겠다는 희망은
최고의 승리랍니다
내 땅에서
내 땅 지키다
거기서 죽고 다시 그 곳으로
67
쓰러뜨리고
쓰러지기도
포로가 되어 고문에 못 이겨
죽기도
물속으로 맷돌 매인 운명
수장되기도 하고
슬픈 일입니다
U.S.A군정 재판장에서
단 한 번
판결이 내려지면
차례로 차례로
팔락이는 풀잎이 되어
묶여가는
조선의 어린 혼들
슬픈 일입니다
그래도 최후까지
우리는
66
감옥 문을 바수어야 한다
가끔은 정조준하여
몰려오는
U.S.A군의 명령에 충실해 온
조선 사람 동족의 가슴을 겨냥
슬프게도
동족의 피 뿌려야 한다
때로는
우리들의 조상 땅 지키기 위하여
밀정을 처치해야 합니다
U.S.A제 총을 메고
U.S.A제 군복을 입고
U.S.A제 철모를 쓰고
M1 소총 앞세우고
우리를 향해 겨냥해 오는
적군의 무리를 향해
여지없이 용서없이
우리도 총을 쏘아야 합니다
69
용병들이 포탄알을
집어 넣는 것처럼 말이지
그러면 제국-U.S.A는
조선의 용병들에게
잘 싸웠다고
훈장을 내릴 것이고
참 슬픈 일이지
제국의 음모 읽을 수 없는
이 땅의…주의자들
이 땅의…애국자들
우리는 동 터오는 아침까지는
시체처럼
조용해야 하고
해 맑은 낮이 무서워
몸 숨길 어둠을 빌곤 했지
섬 땅 이웃들은
낮도 무서웠던
밤도 무서웠던
68
조선의 피 붉게 타내기 위해
조국의 해방
조국의 독립
단선을 반대하고
단정을 거부하며
인민을
동무를
한 핏줄로 어깨 걸었습니다요
그러나 그러나
U.S.A놈의 지시대로
조선사람 죽이려고
조선놈이 악을 쓰는
조선의 역사는 슬픈 일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지
일제 암흑의 밤길에서처럼
사우디 에집트
터어키 시리아
필리핀 대만에서처럼
71
씨보리 망태 걸머지고
4월 보리밭을
그리며 그리며
미친년 도망치듯
밤도 낮과 같이
낮도 밤과 같이
이 골짝 저 골짝
휘휘 달리고 달리고
게다가 지나가는
동포를 무서워 해야 했고
아니면 총부리 겨냥하고
쏘을 수도 아니 쏘을 수도 없는
우리는
미친놈이 되기도 하고
자유시민이 되어
이웃과 이웃 함께
활보하기 꿈꾸며
가슴 타는 세월
1948년
70
낮도 밤도 빼앗겼던
해도 없고 달도 없는
세월 견뎌야만 했지
아니 아니다
섬 땅 이웃들은
어둠의 공포
대낮의 만행
이겨내기 위하여
산
한울산의 침묵
조용히 조용히
읽어 왔던 것이지
그래서 하산을
결정할 때
선택하기 힘겨운
산이 되고
흙이 되고
밥그릇을 훔치기도 했고
73
텅텅 빈 제주섬
텅텅 빈 한울산
보리밭에도
조밭에도
이제는 여인들 여린 발길도
농사꾼의 낫질도
호미질도 끊기고
제주 바다엔
뱃길도
불빛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1948년
1949년
작은 땅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차츰 차츰
발길을 산으로
산으로
72
1949년
지킬 수 있어야만 했지
한울산 허리마다
넘치는 눈발
노루도 놀라 날뛰었고
산새들도 가슴 조이며
총성에 숨 죽인
생명이란 모든 생명은
밤과 낮을
빼앗기고
작은 땅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고
아군은 어디에 서 있으며
적군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차츰 배우게 되면서
전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75
쏘아대는 총소리 피해서
뛰어 뛰어
선 자리 살펴보니
한울산인 거라
앉아보니 동굴이요
살펴보니 어른 아기
할망 하르방
무서우니 뛰었고
무서우니 죽창 든 거여
빵갱이가 뭔지
우리는
저것들이 빨갱이엔 허난
아, 저것이 빨갱이인가보다
총구멍 앞에서 서 보면 알지
고문대 위에 묶여보면 알지
동네 아는 사람 이름 대라
이름 대면 죽이곡
이름 대면 죽이곡
그때부터 세상 돌아가는 꼴
74
차라리
우리는 고향길로
한울산으로 뛰어 갔던 게지
저 산은 우리네 할망이고
저 오름은 우리네 하르방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저 산으로
급할 때
머리 숨길 곳 찾아가듯
급해서 산으로
마구 뛰어 갔던 것이지
머리 숨기러
목숨 건지러
안온한 곳이 산인거여
원수도 없고
코쟁이도 없는
안온한 곳이 한울산이여
하늘 가린 나무와 나무
77
차츰 차츰 우리는
알게 된 게지
U.S.A의 정책
점령이라는 귀신
경비대가 무엇이며
경찰들이 무엇인지
왜 서북청년들이
갑자기 우리 동네로
들어 왔는지
우리는
알게 된 거지
기관총 걸어 놓고
빠드드드 쏘아대면
죽어가다 죽어가다
살아나서
뛰고 뛰고
앉아보고
서서보고
76
알게 된 거지
이름대면 아니 된다는 것
동네 사람 이름 대면
아니 된다는 것 알게 된 거지
이런 세상 보았다
이름 절대 아니 대면 죽이곡
이름 절대 아니 대면 죽이곡
총살 해불곡
총살 해불곡
우리는 일어선 거여
어깨 걸고 일어선 거여
총소리 나면
총소리 난 곳 향해 싸우곡
칼소리 나면
칼소리 난 곳 향해 싸우곡
우리는 차츰 차츰
원수가 누구이며
U.S.A놈은
왜 이 땅에 왔는지
79
함께 일어서고
이웃 동네 청년들이
함께 머리를 짜고
사람들은 하나 둘 모이게 되고
우리는 죽창들고 동굴을 지키고
총소리 무서워서
항쟁을 배웠지
사람들은 하나 둘
우리가 우리를 지키는
사랑을 배웠지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동지가 되고
우리는 우리에게
전사가 되고
격전지에서 우리는
무거운 무기가 되었지
아, 아, 살기 위해서
78
아, 한울산 허리에서
피 흐르는
몸둥어리
이것이 내 몸인 것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그때사 이것이
아픔인지를 느끼게 되고
왼팔이 잘려진 것도
그때사 알게 되고
제국의 역사
영합의 음모
우리는 배우게 되지
어찌 할거나
살기 위하여
드디어 살기 위해서라는
새로운 의식이 움 돋아 나고
똑같은 동네
똑같은 얼굴
이웃 동네 어른들이
81
누구인지를
U.S.A놈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를
알게 되었지
아, 우리는
U.S.A놈은 이 땅에서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게 되었지
서북청년 대동청년
향보단 민보단…
저자들의 의무와 역할을
제주섬 우리들의 삶터에서
궁극적으로
살아있는 생명
살고자 하는 목숨
빼앗아 가는
80
우리는 산으로 모이고
하나된 조국길에
독립된 조국길에
아, 아, 살기 위하여
우리는
한울의 전사가 된다
아, 아, 제주도 빨치산
아, 살기 위하여
우리는
몸을 피하면서
도망치면서
몇 번이던가
총부리의 겨냥과 마주치면서
아, 우리는
이승만 조병옥의 영합을
알게 되었고
뒤에서 사주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초토화작전 집행자가
83
누구인지를
구별하게 되엇지
총부리를 보고
창끝을 보고
우리는 매국과 애국을
분별하게 되었고
학살의 현장 포승줄 묶는
손놀림과
저들의 말소리
침 뱉는 주둥이 혀끝과
입술
손가락에 묻어난
살기 등등한 살해의 칼끝을 보고
배우게 되었지
교과서는 어떤 자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82
검은 손
검은 짓
알게 되었지
아,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저들은 이 땅 위에서
주인이 결코 아니며
용서 될
동포가 아님을 알게 되었지
빨갱이가 무엇인지
검둥이가 무엇인지
모르던 우리가
애국이 무엇인지
매국이 무엇인지
외세에 사주받아
동포를 죽이는 자들과
민족을 구하러
목숨 걸고 싸우는 자들이
85
도살장에서
소피와 양피가 다르듯이
색깔 그 냄새가 다르듯이
우리는 한울산 골짜기
계곡에서 동굴 속에서
화약 냄새와
탄환의 음파가
우리들의 목숨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
우리는 알았지
외세에 사주받고
총질 칼질 자행하는 놈들을
구별할 수 있었고
민족의 독립
해방과 평화
하나된 조국 얻고자
밤길 따라 산을 타는
형제들
84
기름 뿌려 내 부모 내 아내
내 누이 내 아이들을
총 쏘아 죽인 후
기름 뿌려 내 이웃 내 동무
내 아우 내 권속
불 태우는
저들의 짓거리가
국화꽃으로
포장되어 아름다운
교과서를
알게 되었지
그래서 우리는
외세의 U.S.A의 음모를
알게 되었고
M1이 U.S.A제 살상 무기이고
L4 L5가 발하는 굉음이
학살의 음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87
화사하게 피어나고자
아, 우리는
산으로 산으로
한울산 전사가 되었던 게지
산,
한울산은 우리의 하늘이고
우리는 산지기 되어
밤 이슬 받으며
잎새에 이는 총성을 달래며
산,
한울산 저녁 자락에 걸린
서녘 해를 곱게 모시며
밤,
밤을 마중하며
동지를 마중하며
우리는 가시 열매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애무와 따순 손길 다듬어 냈지
86
침략의 사슬 끊어 버리고자
해방의 영토 지켜내고자
혹한 몰아치는 겨울산
한울산에서
동상으로 썩은 다리 절뚝이면서
동료 이웃 배고픔 달래 보려고
배고파서 쓰러진 전사
가슴에 품고
철쭉꽃 진달래꽃 피어나듯이
새날에 피어나는 봄날
바라보면서
혹한 몰아치는 겨울산
한울산에서
우리는
팡팡팡 쏟아지는 눈사태
겨울산에서
나무뿌리 캐어보려
산을 탓던 게지
새날 새봄에
철쭉꽃 진달래로 피어나듯이
89
세상사 영리한 사람들 모두
섬 땅 떠나가 버리고
산자락에 매달린
저녁 해마냥
남은 자들 이웃끼리
따순 가슴 부여 앉고
한울산
산을 지켰습니다요
88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 식은 가슴도
품고 다녔지
아, 우리는 산사람
한솥밥 나누기 애타게 그리운
오손 도손 한 마을에 함께 모여
잃어버린 얼굴들
텅 빈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입술 깨물던 날
몇 날 이었나
우리들의 윤리는 오직
하루라도 더 오래
목숨 부지하는 일
그래요
우리들에게
지배하는 자도 없고
높은 자리 탐하는 자
아무도 없는 그런 나라
원했던 것이지요
91
5 ・ 이 몸이 죽어서 (1)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탄압은 점점 거칠어져 가고
영문 모른 동네 어른들이
속속
체포
구속
어디론가
사라져가고
저런 불쌍한 사람들
다 들 산으로 들어가는디
양심적으로 나는
가야 한다고
새벽을 나섰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1949년 1월 10일(음력 12월 6일)
93
몇 푼 만들어서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으라
너희들만이라도 살아나면
억울하게 죽은 부모 가슴
만세계에 알려야 한다
제발, 너희들만이라도
살아남앙
이 사실을 만세계에 알려야 한다
그때 나는 15살
막내가 9살
부모님 죽고 나서
기쁜 일 하나 없어
우리는 산으로 들어갔던 거지
우리는 산사람 되었던 거지
큰 오빠 작은 오빠
큰 누님 작은 누님
우리는 합심으로
92
아버님 따라 어머님도
그 길 먼 먼 길
한 방의 총성에
바람처럼 자취 감추셨지
이름 부른 사람 나오시오
서른 명 중 제일 먼저
가야 할 그 길을 예비하셨지요
아는 얼굴 아는 이름
동기간 피붙이까지
나는 모릅니다
나는 모릅니다
어머님은
젯밥 한 그릇
아버님께 올리시고
사망 기일 어머님 말씀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너도 모르니
밭이라도 팔 수 있으면
95
죄도 없고 혐의도 없는
우리네 청결한 몸
보드랍게 안아 주었지
밤 늦은 산속에서
청아한 별자리 따라
우리는
평화한 세상 질서
다시 배우며
죽었다는 소식 그렇게도
고맙게 들리던
밤 늦은 산속에서
한울산은 우리에게
무한한 해방지였고
한울산은 우리에게
거침없는 자유지였지
석방은
곧 학살이 되던 그때
허겁지겁 우리는
94
산을 지켰고
마을로 들어오는
검은 개
노랑 개
서북청년
매국놈들
총소리 들으면서
군화 발자욱 찾으면서
산
한울산을 지켰지
소개작전
집은 불에 타고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빼앗긴 후
늦저녁 어둠을 타고
우리는 고요하게
손에 손을 잡기 시작
산
한울산은
97
산
우리는 앞서 가신
전사의 길 그 길 따라서
조심 조심
산으로 올라
산으로 올라
보리밭도 잠잠히 말이 없고
머리 숙인 보리 이삭
뒤에 두고
호곡 호곡 산을 향해
모래 구덩이에서 숨 거두신
어르신네 꺼져가는 숨소리
뒤에 두고
산으로 올라
산으로 올라
허연 수염 휘날리며
헐떡이며
헐떡이며
96
차를 탔고
손가락 가르키는 방향 따라서
바닷가 이름 모를
깊은 구렁에서
하나 둘 손목에
발목에
돌을 매달고
두세 시간 배질하고
첨벙첨벙
고기밥 다 되었던 게지
깊은 바다 흰 물결 타고
죽은 영혼 밤마다
살아 나오고
호이 호이
지친 영혼
산으로 오르곡
산으로 오르곡
한울산은 눈물의 산
죽은 영혼도 살아나는
99
치를 떨며
죽은 할범 저승길 따라
아이고
아이고
울며 울며
산으로
산으로
느 뼈 나 뼈 구분없이
죽어간 사람들
한울산 산자락
한울산 해 질 녘
가슴에 품고
죽어간 사람들
고운 행로 따르고자
느 뼈 나 뼈 구분없이
죽어간 사람들
좋은 세상 열어 내려
발길 따라
마음 따라
98
동네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이 청년들 살려 주면
책임지고
책임지고
착한 백성 만들겠소
어르신네 가슴 타는 간청
응답없이 허허 사라지고
총대 쳐들어
그려냐고 중얼터니
당장 그 자리에서
동네 할아버지를
총살허니
해도 캄캄 세상도 고요
지근 지근 밟아 밟아
만세 만세 부르면서
환호하는 살인마를 지켜보며
치를 떨며
101
한울산은 우리에게
해방길이 되더이다
가자 가자
산으로 가자
죽창 깎던 손을 털고
일어서는
주민들
동무 따라
산길 따라
들꽃 세상 해방 세상
우리 이 길 함께 가자
산으로
산으로
너는 나를 몰라도
나는 너를 안다네
너가 동네 어른 수십 명을
죽이고도
어찌 잘 될 수 있느냐
100
산으로
산으로
곱게 곱게 피는
한울산의 고운 꽃들
고은 노래 불러 주는
한울산의 고운 새들
꽃들도 새들도
여기 저기
죽은 넋을 위해
친구 이름 부르면서
동지 이름 외치면서
고운 노래
짙은 향기
산 가득 섬 가득
불러 퍼져나더니
나무숲 사이사이
팔방으로 열려진 길
산
103
단선 반대
단정 반대
U.S.A놈들 물러 가라
소련놈도 물러 가라
발바닥에 불이 펄펄
가슴마다 터지는 함성
마을이 무너지듯
거리가 솟아나듯
왓샤 왓샤
완전 통일 완전 독립
단선 반대
단정 반대
U.S.A놈들 물러가라
소련놈도 물러가라
아, 아,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102
두고 두고 심판하며 살아갈
한울산의 모진 백성
죽으면 여기서 죽지
자기 집을 버려두고
어디로 간단 말고
산은 우리들의 집
한울산은
산은
정다운 우리들의 고향
하나 둘 이렇게 모여들어
무리가 되고
아,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왓샤 왓샤
완전 통일 완전 독립
105
불현듯 출렁이는
어머님 품 안 그리워 왔지
어머님 얼굴 보고파 졌지
아, 아, 제주도 빨치산
사람들은 서러우면
서러운 이웃끼리
이웃이 된다지요
사람들은 피신한 그곳에서
전사가 되고
전사는
적 앞에서
승리를 계획한다지요
하늘에는 전투기가 범람하고
제주 바다 사면 근해에는
전투함정들 포위해 들어오고
한 발짝 한 발짝
조여드는
104
산
한울산은
점점 우리에게로
가까이 밀려오고
산 그림자 아래
또렷한 두 눈동자
동지의 깃발
제주 바다 흰 물결에
수정처럼 빛난다
숲은 점점 더 깊어 깊어
물매화 피어나는
가을이 물들어 오면
우리는
신고 있는 피 묻은 신발에
맨 먼저 눈빛이 가고
입고 있는 여름 옷이
더욱 가볍게 느껴져
더욱 작아지는 육신
양팔로 감싸 보면
107
부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연락병이 되고
산을 타고 마을을 돌아
대나무 가지 끝에
깃발을 펴서
동지의 운명 지켜 주었지
좁혀드는 포위망 앞에서
포위망 앞에서
106
경비대의 포위망
경찰대의 학살극
테러단의 린치들
제국의 잔인한 음모 앞에서
우리는
우리 지킬 무장이 필요했던 거예요
조직이 요구되고
해방의 전략 전술
장두의 용맹이 요구됐지요
다시 격전지에서
한 발짝 한 발짝
포위망은 좁혀 들어오고
역사공부
과학공부
하고 싶지만
죽창을 부르고 있었지요
열일곱 젊은 손을
동지의 뜨건 가슴
109
6 ・ 이 몸이 죽어서 (2)
그렇게 해야
나라를 찾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눈이 펄펄 내리는
소나무 숲속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부푼 가슴자락
맨몸으로
받아낸
그녀는
웃는 얼굴 당당한 가슴으로
만세 만세
세 번째 큰 함성으로
산
한울산을 품는다
큰 산이 된다
111
경무부장 조병옥이라고 했주
사태가 나 몇 달이 지난 후
피쟁이 그 놈이
제주도 사람 모두 빨갱이라고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라고 했지
난 양천동에서 내려 왔는디
밤에
잠자는 집에
그냥 불 붙여 부난
그 뿐이었주…
우리 신안동도
함덕에 주둔해 있던
군인덜이
그냥 불 붙여 부렀주
동짓달 음력 초사흘(1949)
그 날 하루에 70명 이상 죽었지
지서에서 밭 두어 개 넘어
110
경비대 경찰대는 서북청년대
제국의 용병들은
죽은 시체에서
살점을 도려
살점 총검 칼 끝에 꿰어 달고
마을 돌면서
마을 돌면서
이게 그년의 XX다
외치며 희롱하며
살육제를 벌렸지
아이고 아이고
빼앗고 약탈하고
안 주면 빨갱이
더 내라고 총칼질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조 누구라고…아
113
낄낄 웃으며
와다탁탁 와다탁탁
지팡이 끄는 노인들
어린애 업은 부인들
초라한 얼굴들
눈 덮인 하얀 밭에
끌어 내고서
와다탁탁 와다탁탁
선 체로 죽였지
산으로 간 사람
물 건너 간 사람
아들도 서방도 없는 사람들
왜
젊은 사람 없느냐고
죽이곡
오돌 오돌 떨며 떨며
겨울 흙 뒤집어 쓴 채로
봄꽃들 다시 피어나도
112
바닷 절 거세인 날
봄 난지꽃 한창 피어난
봄 밭에서
총 팡팡
한 줄로 세워놓고
쏘아 버렸주
17세부터 60세 이상
남자란 모든 남자는
민보단으로 엮어 내어
같은 동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
피 토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저 놈들 잘 보았다가
죄를 짓지 말라고
손가락질 하며
115
총으로 팡
죽창으로 푹
기름 뿌려 태우곡
남자 여자 한데 묶어
기관총으로 빠드득
움막 속에 사람 여덜
움막 속에 사람 열명
왜 그리도 추운지
두 사람씩 두 사람씩
스무 시간 섰을 거라
길마다 보초 서곡
목마다 경비 서곡
해 지고 어스름 밤이 되면
꼼짝없이 앉아 있지
집 밖을 바라보면
거친 총소리에
개들조차 꼬리를 내리고
움직이는 사람들
114
시체는 일어나지 못한 채
자수허라 자복허라
자수허라 자복허라
저들 손에 들어가면
때리다가 죽여 죽여
어디론가 차에 실어가다
죽이곡
그게 아마도
우리가 소개헌 날이
10월 21일(음력 1948년) 쯤이난
한 달쯤 지난 때일거우다
자수허라 자복허라
경찰대들 경비대들
자수허면 죽여불곡
안 허여도 죽여불곡
저들 눈에 발견되면
한 차에 실어다가
117
애초부터 경찰이
잘못했주
암 잘 못했고 말고
이렇게 해서 일어난 거라
4・3사태란 게 말여
왓샤 왓샤
서모봉 원당봉에 불이 오르고
영장오름 위로 불이 오르고
왓샤 왓샤
저 불 보라 저 불 보라
아이들도 어른들도
봉화불 바라보면
무서움보다
무릎 세워 죽창을 들고
봉화불 오르니
동네마다
길짐승조차 시대를 아는지
긴장된 자세로
116
그냥 쏘아 죽였지
연락하러 간다고
통비하러 간다고
젊은 이들 말 들어 보면
희망에 찬 얼굴들
태양처럼 빛난 얼굴
참으로 똑똑했지
말도 참 잘했고
일도 참 잘했어
우리는 그들만 바라보면
밥 안 먹어도
힘이 솟고
배가 불고
이렇게
집구석만 지키면 되겠느냐
동네 어른들은
남몰래 산을 탓지
다들 일어난 거라
119
몸 숨겨 살아남은
살아남은 자들은
산
한울산으로 모여 들었지
죽어서 죽어서만
돌아올 수 있는
산
한울산
죽어서
흙이 되고서야
꽃 피울 수 있는
산
한울산
오라 오라
내려 오라
선무공작 사탕발림
오라 오라
118
한울산 향해 돌진 자세가 되고
경비대 경찰대 서북청년단도
자취 감추곡
새날이 밝아
제국의 시대가 오면
가련한 자들 잡아다가
린치 테러
행패를 부린다
왓샤 왓샤
총알은 쏜 자의 의도대로
무고한 자들의 목숨을 빼앗고
U.S.A군정 물러가라
이승만 물러가라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여러분의 아들 딸
우리가 하는 일을 도와 주십시오
경찰은 사정없이 총을 쏘아대고
121
뼈는 뼈대로
땅이 되고 물이 되고
물줄기 따라
졸졸졸 샘으로 흘러 나와
갈한 목 축이곡
바당으로 흘러 흘러
바다고기 밥이 되곡
스리스리
동해 서해 남해로 태평양으로
자유롭게 헤엄치며
온갖 형태 온갖 모양으로
살아나는
죽어서 죽어서
죽어서야 살아나는
우리는
산
한울산이 된다
일이 이렇게 된거라
큰일났다
120
자수공작 속임수로
오라 오라
자수공작 대살공작
죽어서 죽어서만
기름이 되고
이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산
한울산
그래서 우리는
배고파 죽는 길로 가곡
얼어서 죽는 길로 가곡
총 맞아 죽는 길로 가곡
고문 테러
수장 생매장
살점 도려 창 끝에 전시허곡
사지 뜯어 낭가지에 걸어놓곡
살은 살대로 피는 피대로
123
하얀 쌀밥 한 사발
검은 미역국 한 그릇
모락 모락
피어나는 더운 김으로
살아났지
향꽃 피어나는
젯상 앞에서
살아남은 자들 헉헉
눈물 마른 신음소리로
하산은
결정 되었지
보릿가루 한웅큼 나누며
죽창 세우던 어른들
기억 속에서
안다는 사실을 지워내고서
모두들
산에서
한울산
산에서
122
그냥 이렇게 있다강
다 죽는다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손을 잡고
산을 내리는 것이라
귀순도 항복도 항쟁도
전투도 아닌
우리는 떳떳하게 죽어서
죽어서만
하산이 가능했지
상여소리도 없이
거적에 싸인
총에 맞은 시체
싸늘한 시체로
시체로만
우리는 산을 내리고
젯상 위에서
125
영원히 먹을 양식 장만된
산
한울산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고
제국의 시험장에서
고문실에서
아는 대로
내가 아는 모든 이름들은
학살의 대상이 된다
처형장에서
깃발도 펄럭 거리지 않은
전투장에서
전선은
내 가슴팍이고
내 마음이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싸워야 할
최후의 결투장은
124
내려와
쓴 술잔 기울인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살아남은 자들끼리
죽어서 죽어서만
내려올 수 있는
산
한울산
아랫 마을에서
누구얏 손 들엇
당당하게 손 들어 올리곤
학살이 결정된
그 때쯤이면
산은 우리들의 무덤이 된다
산
한울산은 우리들 모두 품어 줄
안온한
어머님 가슴이 된다
127
사타구니 아래서
우리는
서로
마지막 숨결 고르고
마지막 숨결 고르고
육신은 썩어 문드러지고
허리와 엉덩이
다리와 양팔은
핏덩어리 범벅이 된다
산을 내려 산을 내려
우리가 아는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
나무와 풀과 꽃들과
보리와 조와 꽁팥과
산디와 나락
우리가 아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
지식은 고자질이 되고
학살장에서
126
내가 지금까지
듣고
보고
기억하고
알고 있는 지식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난 후
그래도 걸어서 스스로 걸어서
처형의 구덩이를
스스로 파면서
반항없이 죽을 수 있는
산
한울산
산을 내려
산을 내려
우리가 들어선
감방 안에는
벌써 600여 명쯤
한꺼번에 담겨져 있고
129
내가 아는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
아는 지식은 고자질이 되고 만다
허허
처형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우러져
죽음의 고리 이루는 인연
내가 아는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
아는 지식은
살해가 된다
학살
그 표적이 된다
128
서로 어우러져
죽음의 고리 이루는 인연이
되고
문명도 문화도
지식도
이웃도
종교도
학교도
동네도
하늘도 바다도
사랑도
어멍도
아방도
친구도 동무도
내가 아는 모든 지식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은
죄목이 되고
131
7 ・ 이 몸이 죽어서 (3)
선생님들을 막 잡아가…
어떤 선생님은
수업 중에
그게
그러니까 1947년이라
우리는 알 수 없는 노릇인데
학교에 가 보면
선생이 있어야
수업을 할 수 있을 거 아니라
우리는 책보를 들고
주루주루
지서로 몰려갔지
우리 선생님 내놓아라
우리 선생님 돌려달라
돌멩이를 던지며…
학생회장이 잡혀가고
133
노랑 개들
U.S.A놈들
서청단들
모두가 모두가
원수로 우리 갈 길 가로막는
원수로 잔악함을 배우고
우리는 선생님네 체온이며
쟁쟁히 가르쳐 주던
그 말씀이
더욱 옳게 들리고
그래 그래
맞아 맞어
말씀따라 선생님네 행로따라
산이 산으로
보이기 시작했지
우리는 우리들 가슴 속에서
차차로 또렷하게
나의 껍데기가 벗겨 나가고
132
용철이는 죽은 거라
고문 린치로
학생들 리민들 함께 모여
우리는
용철이를 리민장으로
묻어 놓고
우리들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죽창과 죽창과
무수한 죽창을 품고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가
맞아 죽을 것을
깨닫고
무서움은 무서움을 몰아내고
검은 개들
135
아, 산이 산으로 높게 보이고
제국의 음모가 음모로
제국의 실험이 실험으로
아, 눈이
우리들의 눈이
눈의 기능을 다하게 되고
손과
발바닥이
자기 기능을 다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해 아래서 또렷하게
드러나더니…
벌써 전단이 우리네 작은 손에
쥐어져 있고
팔뚝 센 이웃들에겐
창끝 예리한
죽창이 벌써 드려 있었지
검은 개를 검은 개로 보면서
134
밤부터 아침까지는
새로운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되기 시작했지
이제는 산이 산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노랑 개가 노랑 개로
검은 개가 검은 개로
U.S.A가 U.S.A로
산이 산으로
나무가 나무로
인간이 인간으로
이웃이 이웃으로
적이 적으로
동지가 동지로
아, 이제는
산이
한울산이 한울산으로
보이기 시작했지
137
낮에는 실한 양식 나누어 먹고
길 묻고
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됐지
보리밥이 균등하게 나눠지고
좁쌀이 우리들에게 풍요한
양식이 될 때
나라 위해 싸운다는 믿음 하나 뿐
높은 자로 명령자도 다시는 없는
우리가 우리 땅 지키는
길라잡이 되고
산
한울산
전사가 되었지
우리는 내가 스스로 밥을 짓고
우리는 내가 스스로 양식을 장만하고
우리는 내가 스스로 먼저 일어나
밤을 지키는
136
노랑 개를 노랑 개로 보면서
우리는 어느 결엔가
산
한울산
밤 산길을 달리고 있었지
우리는
어승생을 오르고
구상나무 숲
정찰기 탐지 가려줄
구상나무 숲 아래
밤 이슬 가릴 천막을 쳤지
누더기 옷이 자랑스럽고
눈비 가릴 모자도
바람 막을 귀마개도
짜낼 줄 아는
직조공이 되기도 했지
우리는 모두 착한 이웃이 되어
밤에는 고운 숨결 빌어 주었지
139
우리는 내가 스스로 주인 되고자
일어선 거주
다른 거 아무것도 어서…
좌다
우다
공산이다
자본이다
주의…주의…
이런 것은 해 본 일이 어서
다만 우리는
민족해방이 우선이다
민족해방으로만 했주
김○학 선생이 죽고…
이○구 선생도 죽고…
한○○ 선생도 죽고…
김○환 선생도 죽고…
윤○○ 선생도 죽고…
138
이웃 지키는
우리는 내가 스스로
내 땅의 주인 되고
산
한울산 지키는
산지기가 되었지
나를 죽이려는 원수와 싸우다 보니
대항의 지혜 배우다 보니
우리는 우리에게
모두 튼튼한 주인이 되고
산
한울산 지키는
전사가 되었지
오직 민족이다
조선민족 우선하여
민족해방 우선하여
오직 해방이다
141
우리는 나 스스로
산으로 산으로
살 길을 찾아
산
한울산으로
살 길을 찾아 나섰지
친구여! 같이 가세
아우여! 망을 보세
누이야! 쌀을 지고
어머님! 조심하세요
우리는 스스로 내가
우리네 살 길 찾아 나섰고
전선을 만들며
전선을 만들며
검은 개를 검은 개로
노랑 개를 노랑 개로
환히 보면서
조용한 산 길에서
계곡을 타고
140
현○유 선생도 죽고…
죽어서
죽어서만 살아나는
주인이 되어
우리는 모두 나 스스로
죽임길 밟고
일어선 거주
캄캄한 밤
밭고랑을 넘고
한울산 허리로
마을과 마을 사이로
부락과 부락 사이로
우리는 내 스스로
보급로를 탔고
노랑 개를 노랑 개로 바라보면서
검은 개를 검은 개로 바라보면서
감시망 뚫고
겨냥을 피해
143
우리는 내가 스스로
제국의 음모를 음모를 환히…
제국의 굴레를 굴레로 환히…
보게 되었지
음모에 놀아나는 놈을 놀아나는 놈으로
굴레에 씌어진 놈을 굴레에 씌어진 놈으로
할로 할로 하는 것들
예스 예스 하는 것들
저들의 행로
저들의 총과 칼
그 방향을 알게 되었던 게지
우리는 내가 스스로
내 땅의 숨소리와
내 산의 신음소리
똑똑히 알게 된 거지
주인은 주인의 길을 가야 하나니
나그네는 나그네의 길을 가야 하나니
죽어서 죽어서
142
협곡을 지나
저들의 겨냥 피해 피해서
해방의 조국 땅
하나된 영토를
지켜 지켰지
우리는 내가 스스로
단선반대 단정반대
벽보를 붙이기 시작했고
단선반대 단정반대
제국의 음모 부셔 나갔지
U.S.A란 나라는 조선이란 나라를
그냥 놓아둘 나라가 아니예요
U.S.A는 조선을 결코 그냥
놓아 두지를 아니할 거예요
U.S.A가 표면에 나섰든
그렇지 아니하든 간에
U.S.A는 조선을
그냥 놓아 두지를 아니할 거예요…
145
8 ・ 전사의 길
- 살림살이
몰살이다 다 죽인다
경찰이다 경비대다
서북청년단이다
저들에게 잡히면
한꺼번에 다 죽는다
그냥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그냥 죽기
바라지 않았지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몸 숨기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간 거지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선택할 겨를도 없이
144
죽어서만 내려오던 길
산길
한울산길 그 길 따라서
내려오던 그 발자욱들
발길을 돌려
발길을 돌려
오르고 오르고
한울산 상봉으로
다시 오르고
숲속에서 밤을 새우면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고 오르고
한울산 상봉으로
다시 오르고
147
중국사람 이웃들도
무서워서 무서워서
그렇게
사람들 인산인해
피해가는 발길따라
함께 오르고
성한 목숨 살리는 곳
산
한울산
성한 목숨 숨겨주는 곳
산
한울산
겨울산 그곳에서
우리는
식은 밥 한덩어리
나누어 먹는
사랑을 다시 배우게 되고
찰조밥처럼
146
총탄은
무차별
우리의 행로 겨냥했고
산으로 걸으면
산으로 간다고
팡팡
바다로 가면
바다로 간다
팡팡
바람에 이는 풀잎의
바스락거림만으로도
몰살
무서워서 무서워서
산속으로 산속으로
올라간 거주
중국사람 이웃들도
산속으로 산속으로
몸을 피했지
149
막대기를 세우고
죽창을 깎고
풀잎에 의지하며
무엇이든 손에 쥘 것 있어야
조금은 안심되는
우리는 제주도 지키는
젊은 자위대
우리는
아이들 울음소리에도
가슴 조이며
무너지는 하늘을
일으켜 세우려고
손 비비며
밤하늘 받들고 가는
제주도 빨치산
칼끝보다 더 예리한
우리 아기 울음소리
멎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하루는 조밥으로
148
찰지게 뭉쳐야
살아 남게 되는
지혜를 다시 배우고
우리는 자위대
전사가 되었지
우리를 지키려
어린아기 잠재울
동굴을 찾고
늙은이들 기댈 곳
움집을 지어
우리들은 자위대
전사가 되어
동굴을 지킨다
움집을 지킨다
초롱 초롱 별빛 고운
밤하늘 아래
뱃머리 한 방향으로
새벽을 지켰지
151
빨치산 우리는
밤이 지나고 밤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서
산
한울산
고향 땅 산사람으로
모습이 정착되고
발가락 튀어 나온 짚신도
때국 전 겉옷도
점점점 가벼워 온다
빨치산 우리는
조국을 위해
새 사람으로 탄생되고
저들 앞에서
벌벌 떨던 우리가
스스로 무서움 떨쳐 버리고
경찰대 경비대를 향해
U.S.A군정 정문 앞으로
서청단 소굴 앞으로
150
하루는 소금국으로
밥 짓는 연기도 죽여야 했지
이야기 소리도 죽여야 했지
가녀린 숨결도 죽여야 했지
조국의 해방은
식은 손 잡아주는
따슨 손길에서 시작되고
뛰는 가슴 더운 심장 열어주는
조국의 통일은
작은 믿음에서 퍼져 가고
아기 울음소리
곱게 들을 수 있을 그때에
조국의 자유는
대양처럼 넓어진다
조국의 해방은
무서울 것 없는
조국 땅에서
힘찬 깃발로 펄럭일 것이다
153
백기 든 하산객이 되기도 하고
지친 몸에
고여있는 햇살 줍다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따르고
빨치산 우리는
밥을 먹은 그만큼씩
조국땅 지키기로
마음 다지며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하나
둘
동지의 빈자리가 생겨나고
무릎 쏴 자세를 취하던
U.S.A군도
경찰도
동지의 빈자리 메울 수 없는
152
돌진 돌진
당당하게 기를 세웠지
제국의 화력은 산을 애우고
조국의 해방은
먹구름으로 휩싸여 간다
5・10 선거 타도 승리
작은 승리는
제국의 표적이 되고
빨치산 우리는
점 점 점
붉은색 산폭도로 둔갑이 되고
경찰 서청 경비대의
과녁이 된다
교전이 시작되고
죽고 죽이고
같은 동포 총부리는
희생만 강요
산을 오르던 발길은
155
그땐 무겁기만 했주
밤에는 폭도들이 왕 죽이곡
낮에는 경찰덜이 왕 죽이곡
어디 숨을 수가 있어야지
밤에 본 사람 뒷날 없곡
낮에 본 사람 밤에 없곡
우리 민간 양민만
막 죽어난 거지…
빨치산 우리들은
우리를 지키려고
우리를 지키려고
산
한울산을 오르고
하산
한울산을 내리고
해 아래 따순 길
동지의 길 따라
별 아래 정든 길
154
빨치산 우리는
나는 너의 자리에서
너는 나의 자리에서
몸과 마음 하나되어
불 타는 마을 지켜야 한다
불 붙인 음모 부셔야 한다
젊은 아낙네덜 봐지믄
서방 내놔라 두들겨 패곡
40 넘은 어머니 봐지믄
아들 내놔라 두들겨 패곡
너 성씨가 뭐냐고
취조하던 손가락은
두이 자를 쓰고
두이가 아니라
오얏리라 허면
아무거나 쓰면 어때
하면서
두들겨 패곡…
157
조용한 숨소리로
산
한울산을 덮었지
해가 해로 무섭지 않고
달이 달로 무섭지 않은
평화 세상 살아 보려고
오늘은
어머님
몸 성히 잘 지내라는
마지막 부탁
가슴에 안고
오늘은 어머님
산
한울산을 내립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른다고 해야 하고
내가 한 일까지도
배가 고프면
156
애인의 길 따라
밤도 무섭고 낮도 무서운
산으로 산으로
오른 길
그 길 따라
다시
한울산을 내리면
기다리는 표적은
우리들을 향해
밤짐승처럼
사납게 웅크려 앉아 있고
우리가 거꾸로 걸어
발자국을 바꾸고
동지의 길
아련히 눈길을 덮을 때
숨막히는 가슴 안고
우리는
159
무덤 높이 한 치라도 돋우기 위해
눈 덮인 날흙덩이 긁어 보으고
시린 손 잊은 채
동지들 걸어 온 길
잠잠히 더듬어 간다
산
한울산은
싸늘한 시체 품고
봄까지는 잠잠히 침묵하다가
진한 색깔
연분홍 진달래꽃 빛깔로
4월로 부활하고
피어나서는
동지의 가슴팍
붉게 태울 걸
우리는 다시 동지의
꽃길 따라
158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정직한 사람으로 내려 앉는다
배부른 자들의 음모
유희는
자기 자신을 풍요에 덮고
타인을 공격할
음모를
유희를
더 포장할 뿐
그래서 우리는
동지의 가던 그 길 이어 이어서
적탄에 쓰러진
동지의 피 묻은 깃발 앞으로
구멍 뚫린 동지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하여
무덤에
흙 한 웅큼 쌓기 위하여
161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맡은 바 임무를 수행키 위해
다시 격전지에서
상한 무릎 일으켜 세운다
상한 무릎
일으켜 세운다
160
불로 타는
저녁놀
가슴으로 타내며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무덤 하나
뒤에 두고
돌아서서 눈물 뿌리며
우리는
약해지지 않으려고
내가 묻힐 날흙 무덤
만들며
만들며
흙 묻은 옷을 털어내며
한 발짝 또 한 발짝
어승생을 내리며
더 높은 산으로
동지의 길 따라 따라서
163
9 ・ 밥값을 위하여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밥을 축내지 않기 위하여
야구 방망이로 때렸지
여자들에겐
막 지지곡
막…울거든…
농업학교에서도
아니 다른 곳이 이서서…
늙은이들 아이들
집 없어
살 곳 정하지 못해서
산에 올라간 사람 따로
자수헌 사람 따로
무장했던 사람 따로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그때
여기서도 팡
165
바위를 지키며
계곡을 지키며
산
한울산 지켜낼 사명 다하여
골짜기를 뛰고
계곡을 지키며
나머지 식량을 지켜 내었지
쥐들도 제 욕심대로는
식량을 축내지 않았고
산
한울산의 윤리는
공평하게 나눠지는
배고픔도 함께 나누는
새 질서를 구축해 냈지
집중 토벌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스스로
동지의 길 따라
나머지 형제들을 위해
164
저기서도 팡
팡팡팡
우리는 스스로 침묵 속에서
하여간
단결해야 산다
우리는 스스로
전열을 짓고
새미오름 지켜야 했지
살아있는 이웃들 지켜 내려면
먼저 가신 동지들
깊은 지혜
요구되었고
코 밑까지 쌓인 눈길을 더듬어
관음사 진지를 지켜 내려면
우리는
식량 한 톨
축내지 말아야 한다는
각자의 의미대로
167
식량은 우리들 스스로 우리를
지켜주는
토성이고
하늘이고
신령님이고
식량은 아, 식량은
우리들 스스로 우리를 지켜주는
전사의 무기
식량은 산을 넘고
계곡을 넘어
숲을 넘어
장벽을 넘어
분단의 음모
초토화 작전을 넘어
경찰대 경비대 폭력단을 넘어
동지들의 무덤
나의 살던 마을
부락
166
마지막 남겨 두었던
좁쌀 한 알도
적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밥을 지켰지
침략 막았지
식량은 우리들의 하늘이고
윤리의 척도이며
사랑의 강령
식량은 애정의 토대이고
해방의 출발
식량은 한 알의 씨알로
썩어져서 다시
큰 생명 잉태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식량은 저들의 양식이며
동지들의 양식
169
저들의 작전을 분쇄했지
초토화 작전 이겨낼
지혜를 다시 세우고
끝까지 동지 사랑 이 한 길로
서로가 서로에게 하늘이 됐지
우리는 하루의 밥값을
모두 값기 위해
우리는
지는 꽃 앞에서도
피는 꽃 앞에서도
지는 꽃은 이별이어서 울고
피는 꽃은 환희이어서 울고
울고 울었지
아이 밴 여자
시아지방
할망 하르방
168
관공서를 넘어
U.S.A 군정청 창틀을 넘어
도지사 도청 군청 군수의
앉은 자리를 넘어
우리들 해방길 인도하는
식량은
우리네 구원자
어르신네 어린 것들
병약한 자
절망한 자
일으켜 세울
어머니 아린 가슴
일으켜 세울
식량은
우리들의 구원자
우리는 밥그릇 축내지 아니 하려고
남보다 한 발짝 먼저
저들의 음모를 교란했지
171
이러허면 이리 죽이곡
저리허면 저리 죽이곡
이리 죽곡
저리 죽곡
우리는 스스로
제 밥값 잘 하려고
제국의 음모 앞에서
뭉치면 산다고
내를 건너
들을 넘어
산으로 산으로
밤길 따라
마을 부락
이 동네, 저 동네
이 골짝, 저 골짝
조국의 양식 지키려고
우리는 스스로
산
170
우는 아기들
과녁이 되어
과녁이 되어
난사의 저들의 총격
막기 위하여
왜 안 내려 갔느냐
무서워서…
아래 가면 경찰이 죽여불곡
산에는 습격이 무섭고…
저 지서 앞에서
죽이는 거여 마구
따따따
몬딱 죽여 분거주
경찰덜이
가마니 덮어라
흙 덮어라
지긋 지긋 허여…
173
살 속으로
핏속으로
분단을 막으려고
단선 단정 막아내려고
깃발 들고 일어선 거지
죽창 들고 일어선 거지
4월에도
5월에도
1948년
4월에도
5월에도
1949년
봄 산허리마다 피어나는
분홍의 진달래 피어나듯
분장할 겨를 없이
맨몸으로 피어난
무장도 없이
172
한울산을 지키며
산다
부대오름 민오름 지키며
동굴을 지키며
큰 바위를 지키며
계곡을 지키며
조국의 양식 지키려고
조국의 밥
하늘 높이
모시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밥값만이라도 정당하게
치르기 위하여
부서져 내리는 산사태처럼
침몰하는 선박과도 같이
산 속으로
바다 속으로
175
1948년
4월에도
5월에도
1949년
174
빈 가슴으로
깃발 들고 일어선 거지
죽창 들고 일어선 거지
밥값 지 밥값 다 치르려고
빈 마을 지키며
산
한울산을 지키며
동지들을 지키며
늙은이를 지키며
젊은이를 지키며
젖먹이를 지키며
어머니의 산
대지를
지키며
일어선 거지 깃발 들고
일어선 거지 죽창 들고
4월에도
5월에도
177
10 ・ 단선반대 단정반대
자기 땅에서
가장 슬픈 이웃들
막다른 길목에서
제국의 작전에 굴복할소냐
자수하라는
자폭하라는
점령의 음모에 굴복할소냐
마음 슬픈 풀잎들
파르르
산새들도 가슴 떨며
거친 숨소리
길게 울어낸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며 슬픈 동지들
우리는
손에 든 죽창을
저주한 일 없다
179
아, 파르르 떨리는
작은 풀잎
풀잎은
우주의 비밀을 이야기 해주고
풀잎 앞에서
우리는
빳빳하게
작은 풀잎으로 선다
우리는 스스로
산
한울산 허리를 탄다
지금은 온전히
밤
밤일지라도
곱은다리 외로운 그 마을엔
사태 전 아마도 한 80호쯤 되었주
그때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지
178
누님 잃은 오라비는
바람에도 휘날리지 않은
누님의 옷고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다
어미 잃은 장자는
어머님 마지막 안부의 말씀
귓가에 쟁쟁히
마지막까지
어머님 말씀 지키기 위해
깃발 내릴 수 없다
애비 산으로 떠나며
남겨둔 말씀
우리 손으로
지켜야 헌다…
쟁쟁히 살아있는
애비의 선언
계곡을 울린다
산천을 울린다
181
단선반대 단정반대
U.S.A놈은 물러가라!
친일분자 처단하자!
한울의 후예들이여!
곡식은 땅을 파서
숨겨야 하오!
물허벅 등에 진 채
산으로 산으로
경찰 경비대 서청은
무차별 총을 쏘아
무고한 양민을
죽인다
산으로 산으로
몸 숨기러 가는 사람
들에서 들에서
곡식 예비하는 사람
무차별 총을 쏘아
180
그때사
그 놈들 마음대로
잡아당 죽여불 때난
뛰지 않을 수가 없지
뛰는 중에
팡 허면 죽고
팡 허면 죽고
경찰놈들 서청놈들
남편 내놔라
아들 내놔라
이러한 상황에서
왓샤 왓샤
하늘 하늘엔 전단
산 산에는 봉화
왓샤 왓샤
거리 거리엔 인파
183
내 조국 떳떳이
떠받들기 위해
산에서
들에서
죽기를 자주 배우며
똑똑한 사람들은
산에서
들에서
죽고 죽고
또 죽어가는데
선거함이
이 동네로 실려 들어왔지
해변 사람 선거반대
산으로 산으로
작전을 펴고
단선반대
단정반대
산으로 산으로
182
죽인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힘겨운 자립을 배우고
군정 장관 딘이란 놈은
생피를 빨아먹을 냥으로
향보단을 조직하고
분단선거
U.S.A선거
조국을 갈라 놓고
U.S.A에 붙고
제국에 붙은
저들은
마구잡이
제주 양민
겨냥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185
단선 거부 단정반대
이거야말로
가난없이 평등세상
살기 좋은 평화세상
온다는 뜻 아닌가
단선반대 단정반대
왓샤 왓샤
우리는 큰 뜻대로
산
한울산으로
길을 떠났지
노인네 보면 아들 내놔라
여인들 보면 서방 내놔라
경찰놈들
군인놈들
서청놈들
검문 체포 포박하고서
음침한 지하에서
184
마을마다 선거반대
외면을 하고
향사집서 투표하라 명령 내려도
산으로 산으로
몸을 피해
투표를 거부하고
투표는 매국이다
투표는 매국이다
순경조차 투표함을
싣고
빈 손으로
돌아가야 했지
투표는 망국이요
거부는 흥국이라
187
싶어도
그 놈들이 하도 귀찮게 굴어대니
이디 저디
숨어 다니게 된거주
우리도 선거 도장 찍지 않으려고
죽지 않고
살아 남으려고
목숨만은 건져 보려고
이디 저디 숨어 숨어
몸 숨기러
동굴을 찾았지
무서워서 무서워서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죽을 수 없어서
살아난 거주
집 안에도 굴을 파고
186
매 맞아 몰매 맞아
죽고 죽었지
함덕지서 조천지서
이 지서 저 지서에서
무척 많이 죽었지
엉덩이가 다 문드러지곡
무릎 안쪽 장작 끼워
무릎 위에 고문 경찰
지근지근 밟아 밟아서
병신이 다 되는 거지
아, 다 죽게 되는 게지
저 밴뱅디굴로
피난가 숨어 있는
사람들도
다 살해되었지
마을 안에서 살고
189
전사의 길 따르고자
산
한울산을 오르고
팡팡팡
쏘아대는
토벌대의 난사를 뚫고
생피는 터지고
샘물처럼 맑은
누이의 살결은
잔잔한 파도가 되어
살포시 눕는다
대지 위로
거센 사랑이 된다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미련없이
산
산으로 떠나던
누이의
188
산 속에도 굴을 파고
밭에도 들에도
큰 돌 아래에도
굴을 파고
밤마다 뿌려지는
눈빛처럼
빛나던
전단은
꽃잎처럼 마당을 뒤덮고
잔잔한 숨결로
살아 일어서는
단선반대 단정반대
하나될 조국을 위한
전사의 깃발은
핏빛으로
펄럭이고 있었지
오빠 잃은 누이도
오빠가 가고자 했던
191
산에 붙어도 죽이곡
안 붙어도 죽이곡
우리 마을은 다 토벌대 손에
죽었주
가만있자
산에서 내려왕 죽인 데는
없었어…
우리 고모님은
허벅에 물질언 오당
군인덜이 길을 물어서
허겁지겁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던 거지
그때 군인들이
자기들을 반대헌다 허여
얼굴을
팡팡
총으로
190
부픈 가슴 밭에서
피어나는
하얀 광목 손수건
함덕국민학교
교정
9연대가 주던하던
교정에는
야욕에 굶주린
서북청년단
이리떼가
하늘을 거역했지
조국의 딸들을
범했지
인민덜을 못살게 굴었주
몇 백명은 됐을 건디
9연대 다음엔
7연대가
193
죽여 불곡
들꽃 세상 고운 세상
바라보멍
악한 것들 U.S.A놈들
칼춤 추는 경찰놈들
총질 허는 경비대들
고문 허는 서청놈들
대항허면
빨갱이다
동조자다
고무찬양
소지탐독
이 핑계 저 핑계로
칼로 베곡
팡팡 쏘아
테러 린치
죽이곡 죽이곡
또 죽이곡
192
팡팡
동팔이 아버지는
무서워 무서워서
솔가지 덤이 속에 숨었는디
솔잎눌에 불붙여 부난
불에 타서 그만…
저기 살던 애기 밴 어멍
아이 둘 데리곡
숨어 있다가 들키난
애기 밴 어멍
팡팡
쏘아 부렀주
그 아이덜이라도
살려 줄 거 아니…
무서워 무서워서
숨어도
195
죽은 줄로 간주허고
날을 잡아
제사허니
가슴만 허수
마음만 답답
산에서 활동했냐
고문 끝에
고문에 못 이겨
했다허면
죽여 불곡
안 했다허면
육지 감옥
토벌대의 칼날 피해
산으로 강 산사람 되곡
물 건너 강
죽은 듯이 숨 죽이곡
194
대흘 와흘
와산 선흘
차에 싣고 어디론가
연설 들어라허영
들으러 가면
다시 오지 못하곡
데려다가 굴을 파니
팡팡 총 맞추왕
다 죽여 불곡
동국민학교 교정에
손 묶인 채
발 묶인 채
바당에 강 던졌는지
어느 땅 속에 묻었는지
하 지금도
소식 감감
기별 감감
197
11 ・ 새날을 위하여
우리가 스스로
산
한울산을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혼으로
삶의 터전으로
우리의 꿈으로
깨닫지 못 했을 때
우리는 숨으려고만 했지
우리는
도망치려고만 했지
피신하면서 피신하면서
땅 아래로
빌고
하늘 향해
빌고
얼마나 정성 기울였던가
196
새날 밝아오는
그날만을 지키고자
이 산 저 산
산 마을엔
산사람도 뜸해지곡
불칼 앞에
퍼들퍼들
생지옥에 불바다로
산
한울산은 불에 탄다
탄다 탄다
불에 탄다
산
한울산은
한울산
은
.
.
.
199
합일 뒤에 내리는
해방을
배우게 된다
아, 뼈들로 뭉쳐진 산
한울산
살점으로 다져진 산
한울산
조상들의 아우성
도망의 밤길
양식을 찾아 찾아
헤매이던 산
한울산
쓰러져 간 동지들의
발자취
격전과
패배
승리와 환호
가득 넘치는 산
198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산
한울산
우리의 산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산은 집이 되고
산은 방패 우리의
방패가 되고
산은 우리의 하늘
산은 우리의 양식
산속으로 산속으로
스며들면서
우리는 물이 되고
물줄기가 되고
드디어 우리는
산과의 안온한
합일
201
한울산은
우리의 요람
승리의 전략
전술이 자라고
승리의 전사들
용맹으로 솟아나는
산
산
한울산
아침 햇살로 피어나는
전사들의 깃발로
솟아나는 산
한울산
우리는
산
한울산을 품고
가슴에 품고
품으면서
200
한울산
깃발 우뚝
온천지 펄럭이는 산
한울산
우리는 스스로
산
한울산에 깊숙이
잠기면서
넓은 가슴
깊은
마음
다시 배우며
우리는 숲길따라 계곡따라
물샘이 있고
양식이 자라
산을 키우고
우리를 키우는
산
203
단정반대
조금씩 조금씩
조국의 해방 깃발
산 위로
산 위로
우뚝 세워 놓았지
수기동 고평동에
불을 놓아
집을 태우고
대흥리에 불을 놓아
군인덜이
온 마을에 불을 지르고
10월 열하루 날
10월 스무 날에
우리는
보초를 서고
밤낮없이
방화 학살
202
포근한 사랑 키워내고
드넓은 해방 펼쳐내고
우리는 스스로
솟아나는 산 정기 따라
육탄으로 피어나는
꽃길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전사가 되어
제국의 음모
포위망 뚫고
투표함을 깨부수고
투표장을 해체시켜
제국의 칼
제국의 총
꺾으면서
우리는 스스로
단선반대
205
어떻게 합니까…
조국의 경찰
조국의 군인
어디에 있는지…
40세 이하는
산 아래로 내려가면
다 죽는다는
동네 어르신네 말씀
굳게 지키며
우리는
산으로
산으로
올랐지
해방은 우리들에게
가까이 왐져
해방은 가까웠져
우리는
204
막아야 했지
군인들이 들어오면
노랑 개 왐져
경찰들이 들어오면
검은 개 왐져
우리는
발소리 죽이며
온 동네 한 바퀴 경계를 하고
굴에 숨고
돌담어귀 밭고랑에 숨고
소나무 숲에 숨고
동그란 눈동자는
적을 향한다
여기도 무섭곡
저기도 무섭곡
목숨은 붙어 있어야 하는데…
207
산으로
산으로
무서움도 잊어버리고
허기진
날
밤낮 없이
쓰라림도 이겨낸거요
우리는
산에서
산에서
살기로 작정한 게고
동 터오는 새벽마다
아침 해를 부여 안고서
해방 세상
해방 세상
느껴가면서
우리는
산
206
가까운 해방을 그리워하며
쌀 서 말
숯 한 가마니
준비하고서
좁쌀 한 말
간장 한 되
간데기 하나
밥사발 두 개
국그릇 두 개
준비하고서
가까운 해방 그 날
그리워하면서
산으로
산으로
우리는
해방길 예비하려고
해방된 조국 새날
준비하려고
209
살과 피 함께 쏟아내는
합일이고
해방은
어머님 품 속같은
안온함이지
우리는 스스로
길가에서 계곡에서
고운 피
한울산의 피
샘물을 마시고
정한수 한사발로
먼저 가신 동지 위해
빌고 빌었지
단선반대 단정반대
조국해방 통일정부
빌고 빌었지
우리는 스스로
208
한울산은 우리들의
집
하늘이 되었고
삶터 되었지
병든 이들에겐
약초를
상처난 이들에겐
따슨 입김을
외로운 이들에겐
위로의 손길
밤도 없이 낮도 없이
우리는
산사람이 되어
산
한울산의 숨결
함께 호흡했지
해방은 합일이고
깊숙이 함께 묻히는
211
외로운 혼이 되곤 했지
경비대 경찰대
제국의 작전명령은
산
한울산
우리들의 거처를
포위해 들어오고
그때도 산
한울산은
도망을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들에게
1948년 음력 동짓달
자수하라
해 놓고서
조천 사람
와흘 사람
160명
국민학교 마당에서
210
우리를 지켜야 했고
비 오고 눈 나리는
그날
그밤
에도
살해의 총소리에
우리네 가슴은
철렁 뛰었지
경비대 경찰대
제국의 겨냥에
우리네 가슴은
과녁이 되었지
산천초목
우리네 생명은
밤낮으로
산산이 무서져 내리고
우리는 스스로
조국의 해방길에
슬픔 먹은
213
마다 할 수 없는
새날 위해
걸어 가는 전사의 길
흙이 되기로
거름 되기로
1949년 음력 2월부터
우리 마을에는
돌성을 쌓기 시작
전략촌에 붙잡힌 몸
나는
1948년 음력 11월 21일
제삿밥 40그릇 그 중 하나로
산
한울산
흙이 되었지
모락 모락
솟아나는 김이 되었지…
와흘 선흘
212
한날 한시
잡아다가
학살했다지
뭐 다 조천 사람덜이주
조천 함덕 신촌 북촌
전부 조천면 관내 사람덜인디
젊은 사람덜이라
마흔 안팍 남자덜
몬딱 죽여 부렀주…
경헌디
서너 차에 싣고 갔는디
두 차 정도는 죽은 거라
한 차는 육지로
보냈다는 말이 있어…
우리는 스스로
의심 없이
산으로 갔지
215
하, 그날만을 손꼽으면서
우리는 스스로
등짐 무거운 줄 잊어 버리고
가끔은
담모롱이에 지친 몸
부리고
제주 바다
하얀 물결
넘실대는 용솟음 배우곤 했지
제주 바다 몸놀림에
나도
신바람 타고
산으로
산으로
동지들의 무건 발길
뒤따르면서
새날 향해
사뿐 사뿐
밤길 걸었지
214
동백꽃 붉게 피어나던
우리 마을엔
김○봉씨 거친 길
따라 따라서
붉게 피어난
동백 가슴 마냥
피면 지곡
피면 지곡
새 봄에 피어날
곧은 가지로
우리 하늘 떠받쳤지
산을
한울산을
지켰던 게지
산으로 산으로
먹을 것을 올려 보내면서
훤히 터진
해방길이 하늘까지 열린 듯
새날 밝아 올 것만 같은
217
새날을 열자
손을 모았지
서로 잡은 손
손에서
서서히 따슨 온기
모여지며
동지여!
안전을 빈다
산에서
한울산 천지만지
해방 땅에서
우리는 스스로
안전을 빈다
기시네 오름 위로
불이 오르면
우리는 빠른 걸음
조심 조심
216
U.S.A놈들 물러가야
해방된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새날이 밝아
해방의 영토에서 살게 될 것을
우선제비
웃밤애기
알밤애기
검은오름
오르내리며
제주 바다 넘실넘실
해방춤 추곡
산바람 싸늘하게 불어 오면은
우리는 스스로
숨어 있는 동네 사람
안전을 빌고
아지트 경계 지역에서
경비대 경찰대의 총구를 보며
살아서 살아나서
우리 함께 우리 세상
219
좁쌀 한 알에도
하늘의 무게 싣고
숟갈 올렸지
살얼음판 걸어가듯
별빛 아래서도
산으로
떠난 얼굴 새겨 두면서
샛바람에
떠는 잎새
풀잎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죄진 듯이 두려운 듯이
떠나버린 사람들
빈 자리 메워내면서
식은 잠자리 데워내면서
전방도 후방도 없는
고향 땅에서
우리는 스스로
저들이 겨냥
218
대나무 돋은 가지
하늘 향해
세우고
한 집 한 집
오늘도 무사하길
빌고
또 빈다
굴 속에서 불도 땔 수가 없고
눈자뱅이는 팡팡 쏟아 지는디
그래도 얼언 죽은 사람은 어서
식은 마음 녹이며 녹여보려고
추워도 추워도
춥다하지 못했지…
쌀이며
짚신이며
우리는 먼저 산에 든 사람
생각하면서
보리밥 한 알
221
내려가야지 하는
용서 받을 길 없는
우리들의 처지
1948년 늦가을
1949년 이른 봄까지
U.S.A…
점령의 1차적인 목표
지배의 성 구축할
제국의 음모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산
산이 되었지
해방의 산
독립의 산
산
한울산이 되었지
220
감시의 총구 피해야 했지
봄밭에서 일찍 피어난
들나물 노오란 꽃가슴을
응시하면서
눈물이 먼저 나고
들나물 국이라도
양껏 먹을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면서
가슴 뛰는
초조함으로
산
한울산을
지켜보았지
흰구름 뒤덮인
한울산에
부슬 부슬 봄비
내릴라 치면
백기라도 들고서
223
전사의 산이 되었지
산 앞에서도
산 속에서도
아직은
울 수만은 없는
1948년 늦가을
1949년 이른 봄
저들의 총구는
8만의 가슴을 겨냥했지
저들의 칼질은
8만의 산을 만들어 냈고
산
한울산에 작은 산으로
켜져가고
밤에도 낮에도
222
큰 산 작은 산
큰 오름 작은 오름
큰 무덤 작은 무덤
큰 묘지
작은 묘지
우리가 여태껏
묘지를 무덤이라고 했고
산이라고도 해 온
그 산
어머니산
아버지산
우리는 스스로
결국
산에서 낳아
산에서 살다가
산으로 떠나가는
산
한울산이 되었지
225
하르방산
아기산
어멍산
삼촌산이여
큰 아들 산이여
손 휘저으며
내려오라
내려오라
고함치는 그 까닭을
아직은
그 까닭을
잘 모를 거야
잘 모르고 말고…
우리를 스스로
피는 꽃
아름답다
노래하지 못 했다
224
산에서 죽어져
산에서 놀다가
산에서 일하다
산이 되고 말면
산
한울산은
하늘 높이 싱싱히 자라나
아무도 모를 거야
산
한울산 꼭대기에
무심코 올랐을 때
할머니도
하르방도
야단치시며
내려오라
내려오라
손 휘젖는 그 까닭을
할머니산
227
침략이 되고
환희가 되겠지만
여기서 팡
저기서 팡
저 소리
저들의 발자욱 소리
가까이 오면
손 비비며 살려줍서
손 비비며 용서빌고
세상 죄를 걸머지고
먼저 떠나야 하는
이 동네 저 동네
동기간네
여기서 팡
저기서 팡
총소리 가까이 오면
밟힌 풀잎이 되어
바스러지고 만다
226
조국 땅에서
모든 총소리가 멎고
모든 감시망이 걷혀
제국의 음모도
지배의 칼날도
씻은 듯이 맑게 걷히는
칼이 녹아 보습이 되고
칼이 녹아 쟁기가 되는
그날을 먼저
빌고 빌었다
여기서 팡
저기서 팡
저들이야
쓰러지는 동포가 상금이 되고
숨 거두는 그 순간이 승진이 되고
저들이야
지배망이 넒어지면
웃음이 되고
점령이 되고
229
아버지
어머니
젊은이
늙은이
생명이란 모든 생명은
즐번히
대지를 등지고
이쪽을 향해
저쪽을 향해
아무렇게나
뒹굴고
뒹굴고
어머니
여인들
저마다
각자가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산
산을 부여안고
한울산 자락
228
여기서 팡
저기서 팡
총소리 가까이 오면
이 집 저 집
집집마다 울음이었지
이렇게 하여
이 동네 저 동네
동네마다
작은 산은 솟아 오르고
작은 산이 모여 모여
벌겋게 피어나는
피
피
피는 산을 메운다
한울산을
이 집 저 집
작은 산은 솟아 오르고
벌집이 되어버린
231
우리들의, 해방은
조국의 신성한 해방은
산으로 돌아가는,
모든 크고 작은 모든 산들과
함께
피어나는 것
함께
산이 되는 그 때에
우리들의 해방은
우뚝 솟아나는 것
230
모시고 있고
작은 하늘
제주 하늘
모시고 누워
산
한울산
큰 산 작은 산이 되고서
여기서 팡
저기서 팡
우리들의 새날은
저들의 총소리에서
밝아 오고
산이 되는 우리가 스스로
산이 되는
산
한울산으로 향해가는
그 발걸음에서
233
12 ・ 고른 세상 만들고자
산디* 나록**
모멀 감저
콩이며 팥이며
여름 보리 가을 차조
녹두에다 수수 심곡
아이들은 무락무락
감저 크듯
물외 크듯
봄 배추 가을 무우
미역새 뜯어
아침 장국
홀홀 마시멍
미역 따앙
소라 잡앙
*산디 : 밭벼
**나록 : 논벼
235
어허 그게 무자년
그러니까
무자년 음력 11월 스무날
아침이며 저녁이며
한낮에도
왈깍 왈깍 들어 와서
불을 놓곡
총을 팡팡
소개하라고
아래로 내려 가라고
서쪽에서 애월부텀
시작해서
제주읍 조천 거쳐
마을 집들
조근 조근
불에 타고
총은 팡팡
선인동에 상동 하동
234
옥돔 낚앙
자리 떠당
감저 쩌엉
.
.
.
오손 도손
살고 지고
애월하귀부텀 시작해서
좋은 시상 엮어가멍
아방 어멍
섬기면서
좋은 나라 가꿔가멍
거지 없곡
도둑 없곡
대문 없는
참 시상을 일궈 가멍
237
아방 어멍 아들 다섯
이 총에 팡팡
저 총에 팡팡
씨 멸족
허남섭도 총에 맞안
쓰러지고
선흘 간이학교
글 읽는 소리
잠잠해지고
발길 뜸해진
거리에는
토끼풀만 씨앗을 날리고
팔이 상한 민들레
노오랗게 피고 있었지
부녀자들 발길
새벽부터 무섭고
평등 세상 참 세상 맹글려고
차별 없는
236
잿덤에 자취 잃고
산으로 올라
바당으로 내려
어느 쪽이 살길인지
살길 찾아
바당으로
산으로
한울산에
마을마다 불길 솟고
거리마다
총은 팡팡
산으로 오를까
바당으로 내릴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중간한 곳에서
이 총에 팡팡
저 총에 팡팡
239
친일반역 타도하자
옆에 있던 사람 다시
보면
없어지곡
아는 얼굴 다시 보면
그 자리 없는
그때에
우리는 스스로
밤을 타서
고른 세상 이야기하곡
저녁밥을 고루 나눠
음복을 하면
세상은 풍요롭게
해방이 되곡
원수도 적군도 없는
새 세상되지
없는 사람 있는 사람 있는 세상에서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없는 세상으로
238
평화 세상
만들어 보려고
우리는 스스로
제 손으로 제 발로
밤길을 타
새벽산
한울산을 올라 올랐지
김해 김씨 김창희네
몬딱 죽어 불곡
고른 세상 만들려고
고른 세상 만들려고
산에선 산사람들
아래선 조용조용
고른 세상 만들고자
외쳐 외쳤지
U.S.A놈들 물러가라
241
검은 개
노랑 개
U.S.A놈
서청 놈
몰아내고
평등 세상
꿈을 꾸며
우리는
산
한울산을
올라 올랐지
20세 젊은 세상
나라에 바쳐
흙이 되고
산이 되고
우리 한을 풀어줍서
우리 한을 풀어줍서
고른 세상 요구하며
240
평등하게 사는 세상
고르게 쌀밥 먹으멍 사는 세상
만들어 내고자
산으로 산으로
한울산 굽은 허리에서
고른 세상
온 몸으로 익히며
꿈결에도
형제 사랑
종교보다 고운 실천
생길 발했지
우리는 스스로
산을 오르고
산
한울산은
우리들에게
평화의 집이 되었지
평등 세상 되기도 하지
243
고른 세상 웃음 세상
바라고 바라고
바라건만
열다섯 살 이상 남자들은
매일 매일
잡혀 가곡
우리는 스스로
밤배 타고 바다 건너
어디론가 몸을 숨겨
피신했다가
다시 모여 다시 모여
고른 세상 만들고자
밤에는 의견 교환
낮에는 동태 파악
노랑 개 검은 개
U.S.A놈들 지배 음모
포승줄을
파악하고
242
우리는 스스로
산
한울산을
올라 올랐지
강제 공출 반대하여
전봇대에 담벼락에
전단을 붙이고
8・13 경찰 발포에 항의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여 일어들나고
검은 개가 사람 죽였져
하얀 수건 머리띠하고
와 와 와와
호미 들고
물호미에 물빗창 들고
와 와 와와
검은 개를 생포하라
245
옴팡밭에
오백 혼령
한꺼번에 저승으로
허허한 마을에는
총성만 자욱했지
손가락질 눈짓으로
하나 하나
재판 허니
아이고 조캐 아이고 조캐
우리집 아이가 자네 친구 아니던가
산에 가서 산에 가서
고른 세상 꿈꾸면서
손가락질 눈짓으로
하나 하나
재판하니
이런 시상 뒤엎고자
피 멈추게 하는
이 어둔 세상을
244
골갱이로 검질 메당
물때 맞춰
물질하며
총소리에 겁이 나서
우리에게 총질허는
검은 개 노랑 개
우리 사람 아니라고
고른 세상 만들어 가는
우리들은
저들에게 등을 돌려
산
한울산으로
올라 올라
1948년 음력 섣달 열여드레
음력 섣달 열아흐레
어르신네 열다섯 사람
한꺼번에 죽여불곡
오후 2시
247
검은 개
노랑 개
사람이 아니주
정말 사람이 아닌 것이주
짐생보다 더한 이빨
생사람을 먹고 먹고
산
한울산으로 오른 사람들
정 나누며 고른 세상 살고픈
산사람들
서서히 우리는 스스로
무, 기,를 들기 시작
죽이고 죽이는
제국의 음모
검은 개는 포위
노랑 개는 총질
기어코 막아 보려고
피신에 피신에
246
불 밝히고자
산
한울산으로
올라갔지
한울산엔 한울산엔
동기간들 오들 오들
검은 세상에서
몸을 피해
고른 세상 빌고 빌어
1949년 1월 1일
함덕 유지 고자질에
북촌 사람
한 칼에 총 한 방에
피식 피식
쓰러지곡
고자질도 고자질이요
그 날에 총질 칼질
난타하는
249
꺾인 허리 곧추 세우며
우리는 스스로
꺾인 무릎
다시 일으켜 세웠지
죽이고 죽이고
잡아가고 잡아가고
팡팡팡
쏘아대는 총구 앞에서
맨 주먹에 의지할 곳
왕대나무 곧은 의지 따라
낫으로 깎은 죽창
고른 세상 만들고자
무릎 펴고 일어섰지
해 아래 모든 생명
아름다운 것
오, 고귀한 것
무차별 총격 앞에
어린 생명들
248
산을 오르고
서서히 우리는 스스로
고른 세상 세우고
이웃 동네 지키고자
아는 얼굴
부등켜 안고
대나무를 자르기 시작
대나무엔 마디가 있고
결이 있으며
거기엔
바른 삶 숨결이 있어
대나무를 자르면서
우리는 스스로
창끝 예리한 정의를
배우기 시작
왕대나무 손에 넣고
예리한 창끝 앞에
251
고른 세상 가꿔 내고
오손 도손
살고 지고 살고 지고
죽창 깎는 어린 손들
조상님의 말씀따라
거지 없고
도둑 없고
대문 없는
고른 세상 지어 내고자
우리는 스스로
산
한울산으로
올라 올랐지
왕대나무 죽창 들고
산
한울산을 오른다
어둠을 가른다
250
지키기 위해
무차별 총격 앞에
착한 생명들
보호하기 위해
아름다운 생명
산
들판
나무와 들꽃
성한 생명
키워내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산
한울산으로
올라 올랐지
칼 든 자 물러서고
총 맨 자 총을 풀고
화평의 땅
일궈 내어
253
저 혼자서
어느 계곡에서
우리는
싸늘한 시체
이름 알 수 없는
고향 사람들을
땅에
날땅에 묻고
하산 하면서
몹시도 그리운
어머니
보고파지면
하산길 발 멈추고
제주바다
망망한 수평선 위로
이어도 산하
이어도 산하
긴 긴 한숨 띄어 보냈지
252
분단이 되기 전 벌써
우리는
분단의 멍에를 지고
보이지도 않은
제국의 굴레에 씌어
서러움 같기도 하고
버려짐 같기도 하고
고독함에
쓸쓸함에
하나된 조국 아침 밝혀 낼
까치소리 듣고자
꺼칠한 왕대나무 죽창을 들고
산
한울산을
오른다
오른다
동무야 잘 가거라
쓰린 가슴 누르며
어느 밤길에는
255
오늘을 잘 견디시오면
내일은
튼튼한 애비 모습
꼭 닮은
얼굴하고
당당하게 나서리이다
우리는 스스로
숨 죽이고
용병 앞에서
대포
포위망 앞에서
무기도 되지 않은
왕대나무 죽창 들고
경계선도 없는
전선에서
백두산 한울산
한 전선으로 이어 가면서
하나될 조국 땅
어둠 깔린 전선을
254
따끈하게 찐 고구마
작은 손에 쥐어 주시던
어머님 손길
부여 안고서
소리없는 통곡에
가슴 터지고
움츨대는 어깨로
균형을 잡고
어머님 오늘도
어머님께 큰절 올리나니
어머님…
보고파서 보고파서
못 견디시오면
한울산 허리에 피어난
물매화를 지켜 보세요
어머님…
257
병든 채로
타서 죽었지
거리에서 들판에서
움직이면
총탄에 죽고
산사람들 지지한다
그런 것이지
뭐 다른 것
까닭 있었나…
몬딱 나오렌 허영
앞에 앉은 사람부터
마구잡이
끌어내엉
앉은 채로 쏘아 불곡
뒤에 섰던 사람들은
차에 실려
어디론가…
256
지켜야 합니다
김완배도 산에 묻히고
총칼 앞에서
할 일은 오직 하나
지상의 명령따라
총구 앞에서
눕는 것이지
보리밭 위에서도
돌담어구 사잇길에서도
경찰대 경비대는 마을을 돌고
빈 마을 아무데도
머리 둘 곳
집 한 채도
찾지 못하고
머리 둘 곳
조각 땅도 찾지 못했지
병든 자는
259
9촌도
죽여 죽여
우리들의 원수
우리들의 적군
보이지 않은
제국의 음모
잘 알면서
잘 알면서
몸에 닿는 아픔 때문에
아픔 때문에
눈에 보이는 동족 향해
분노만 발했지
증오만 더했지
왕대나무 죽창들고
밤길
하산의 밤길
경비대로
경찰대로
258
애기 업은 사람
애기 손 잡은 사람
저기 저 밭에서
총질허연
죽였주…
죽은 어멍 위에 엎어정
질강 질강
젖 빨던 아이
피 묻은 얼굴
남은 사람 함덕지서로 와-
남은 사람 조천지서로 와-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니다가
죽여 죽여
산에 붙었다고
6촌도
261
아니지
서청도 아니지
대청도 아니지
우리들의 원수는
우리들의 적군은
제국의 살해이고
우리들의 적군은
제국의 음모이고
분단의 전략이고
제국의 이익이고
보잘 것 없는
편안이고
영달이고
편의이고
명예이고
출세이고
진급이고
승진이고
260
매국노의 가슴을
겨냥해
산을 내렸지
죽이면 죽일수록
죽으면 죽을수록
환호할
만세 부를
제국의 음모
뻔히 알면서
미련한 동족 살상
분노의 파도
산을
마을을
메워 메웠지
우리들의 원수는 경찰이
아니지
우리들의 적군은 군인이
263
옴질대는 참으로 작디 작은
그 사탕 맛
우리들의 원수는
적군은
사탕 맛
작디 작은
탐욕이다
탐욕이다
눈망울이 뒤집어졌고
가슴은
살기에 넘쳐
귀와 코
머리와
영혼은
죽임이 노예가 되었다
사나운 승냥이로
우리들의 원수는
그 적군은
같은 피
262
우리들의 원수는
철전지 원수는
우리들의 적군은
그 적군은
탐욕이고 원죄이고
남보다 밥 한 숟가락
더 처먹겠다는
작은 영웅 심리이고
그래서
수 없이 수 없이
제국의 원격 조종에 따라
원수들은 총을 쏘았고
원수들은
칼을 휘둘렀다
경찰대의 손에선
경비대의 손가락
서청
대청
그 입안에서
265
회교주의
불교주의
유교주의
민족주의
국수주의
권위주의
이기주의
탐미주의
미식주의
여성주의
관념주의
실존주의
이성주의
과학주의……
주의…
주의 위에서
사용되는
총탄은
실탄은
264
같은 혼
같은 얼굴
동포가 된다
우리들의 원수는
우리들의 적군은
다른 사람보다
밥
밥
한 숟가락 더 처먹겠다는
욕심
우리들의 원수는
적군은
자본주의 위에서
용병들 대갈통 위에서
어쩌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교조주의
기독주의
267
하산하면서
사람 사는 세상
하, 사람 사는 세상
한 사람의 목숨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걸고
왕대나무 죽창을 들고
무릎 펴
일어선 것이지
한 사람의 목숨 위하여
우리는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신성한 무기
우리들의
무기
맨손
266
칼은 죽창은 활은
핵무기는 미사일은
전투기는 군함은
전파는 무전은
송신은…
우리들의 원수다
적이다
모든 살해의 무기는 적이다
적이다
적
적
적
이
다
.
.
.
우리는 스스로
269
빈 상자로 만들고
그 길 따라
우리는
앞을 다투어
마을 사람끼리 어깨 걸고
산
한울산을
오르고
1948 늦가을부터
1949 초봄까지
초토화작전 앞에서
우리는
방어의 전선을 짜고
집단 학살 앞에서
한줌 흙
고운 땅이 되기 위하여
죽창 끝 예리하게
밤을 지켰지
268
맨발
맨가슴
빈 가슴 가슴 하나만으로
빈 발
빈 손
청청한 머리 하나로
예리한 이성 하나로
산을 오른
손
발
그 손 그 발로
우리는
다시 격전지에서
산을 내리고
마을로 달려
반역의 경찰 지서를
습격하고
5・10 선거 투표함을
271
13 ・ 한울산 풀꽃 하나
함덕까지 살앙 가도
거기서
뽑아 내영
다 죽여 불곡
우리 집도 그날
제삿날 밥 그릇만 6개
그 다음날 7개
아이구…말이 안 되주
전기 고문도 허곡…
그 이는 아예 죽어 나수다
죽어…
발바닥 손바닥
죽어라고 때리면
어린 아기처럼 기어 나오곡
기어 나오곡
강아지처럼
270
그토록 바라던
하나된 조국 산하
산
한울산을
오르내릴 때
이 한 목숨 이슬같이
땅에 부렸지
고른 세상 만들고자
오르고
또 오르고 산
한울산을
내리고
또 내리고
산
한울산
273
석방 후에도
산으로 갔지…
우리는 스스로
옥문을 나와
빈 들 같은 산
산에서
한울산에서
별에게
빌었지
고귀한 평화 호소도
들어줄 사람 없는
빈 들에서
제국의 음모는
우리를 향한 겨냥뿐이고
과녁만 찾고
살해뿐
학살뿐
제국의 음모는
272
이 눈으로 한 번 봤지
두 번은 못 봅니다
기어 나오지도 못 허곡
제주 경찰서에서
석달 동안
이송되어
목포 형무소에서
말 맙서
취조 과정에서 죽이곡 허곡
여자도 많았지
환자도 많았고…
또 내가 목포 형무소에서
만난
이 달군씨
그 이는
275
알아야 해요
제국의 전략
남과 북 갈라놓을
분단 전략쯤은
U.S.A군 트럭 위에서
양코베기
노랑머리
U.S.A군들이
짐승에게 던져주던 버릇대로
아이들에게 마구
부서진 양과자를
마구 던지고
낄낄대며 웃음 웃는
그 광경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치를 떨었다
M1 맨 어깨 위에는
학살의 장단 소리
274
산
한울산
빈 들에는
아직은
우리가 원해 온
평화의 만남 같은 것
용서 같은 것 결코 없었지
알아야 해요
제국의 음모를
화평없는
전쟁만 있고
주인없는
노예만 요구하는
제국의 음모쯤
알아야 해요
알아야 해요
제국의 칼날쯤은
277
우리는 스스로
역사에 승리하기 위하여
이웃 형제
사람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의 미학 배운대로
조상들의 따슨 손길 따라
제국의 전략을 뚫고서
우리는 스스로
산
한울산과 함께 호흡하면서
저녁놀
붉게 나는
까닭을
새로 배우며
생명의 미학 배운대로
조상들의 따슨 분배
지켜 나가며
276
울려 퍼지고
긴 가랑이 사이로
토해내는
야욕
야욕은 살해의 가늠쇠
야욕은
우리네 가슴을
할퀴게 될 것이고
질겅 질겅 씹어대는
송곳 이빨은
생살을 물어 뜯을 것이고
인디언 물어 뜯던 습성대로
학살의 윤리는
조선 사람들을
동물처럼 사냥할 것이다
조선의 형제들을
조선의 남자와 여자들을
제국의 전략을 뚫고서
279
한울산을 내렸지
모슬포 9연대
오라리 2연대
경비대 포위망 뚫고
군사 기지 전략 기지
음모와 전략을 뚫고
우리는 스스로
한울산에 피어날
봄마다 피어날
조국의 꽃
꽃이 되었지
철쭉으로
진달래로
봄마다 피어날
조국의 꽃
꽃이 되었지
동지의 깃발 앞으로
피 묻은 동지의 깃발 앞으로
278
유엔 결의 195호
한국 임시위원단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제국의 전략을 뚫고서
동네를 지키고
경비대
경찰대
용병들의 총자루
까부셔댔지
우리는 지서를 향해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하나 하나 쓰러지는
동지의 시체를 넘어
제국의 전략을 뚫고
서서히 오르던
산길로
산
281
혼을 타고
혼을 타고
파래
콩잎
보리겨
밀주시
먹다 먹다 똥구멍 막혀
죽어간 어린것들
혼을 타고서
윗밤애기
알밤애기
밤애기 똥 오르내리며
마을 지키고
산을 지키고
사람
형제 자매
누이를 지키다 죽은
혼을 타고서
280
우리는
바른 역사 살기 위하여
제국의 전략을 뚫고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해방의 전선
이 골짝 저 골짝
산마루에서
대창 들고
흙이 되었지
산이 되었지
서모봉에서 죽은
열 처녀 떠도는 혼령
혼을 타고서
복개기
톨
쑥
들풀을 뜯어 먹으며
283
아니 잡히려고
적의 흉계
교란하려고
고무신
만월표 운동화로
뒷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생명 지키기
위해
동지가 누구이며
동지 아닌 자 누구인지
가리기 위하여
우리는 결코
인간의 가슴 먼저 겨냥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함이고
작은 생명
소중함 깨닫기 위함이고
우리들의 큰 생명
282
물장오리 협곡 타고
제국의 음모
전략을 뚫고
적은 누구이며
원수는
누구인지
해 아래 분명해진
1948년 늦가을에서
1949년 이른 봄까지
우리는
전선을 지키는
한울의
전사가
되었지
살해의 음모 뚫고서
죽임의 전략 뚫고서
285
저승길에 꽃길을 펴고
텁텁한 산길 따라
보초를 섰지
노랑 개
검은 개
쏘아대는 총격을 피해
마지막 남은 생명
지키기 위해
산을 지키고
하늘 지키고
이 한 목숨 죽어서 땅이
되려고
산이 되려고
보드라운 흙 한 줌
손에 쥐고서
진혼가를 부르며
날땅을 파고
황토빛 무덤을 만든다
284
지키기 위함이고
아침부터 밤까지는
타는 태양 아래서
쓰러진 동지의 시체를
지킨다
꽃길 따라 웃음 한 번
펴보지 못 한
이제는 가버린
동지
저승에서라도
한껏 놀다
일어나라고
첫 닭 우는 새벽녘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를 베고
서러운 길
인생길을 슬퍼하면서
우리는 젊은 것
287
무지게 부대가 포위해 들어오고
빗발치는
총탄이
쏟아지면서
말 없이 쓰러지는 어르신네며
배고파서 스러지는 동지들이며
백기 들고 내려가라 명령하던
웃어른들이며
산
한울산
낡흙을 부둥켜 안고
마지막
총탄을 받아 내었지
아스라이 피어나던
고산의 산꽃 피어날
그 계곡에서
우리는
286
조용한 발걸음
돌아오는 어르신네
얼싸 안고는
오늘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조국 전선 지켰느냐
묻기도 전에
눈빛보고
동지 소식
서로 나누며
어머니
아버지
누이동생
따슨 체온 다시 느끼며
숨소리 고요하게 밤을 지킨다
총총히 빛나던 별을 보면서
우리는
마지막 남은 길 다듬어 갔지
289
우리는 말여
U.S.A놈들이
철천지 원수지
그놈들이
이 땅에 안 들어 왔으면
우리는 말이여
남이다 북이다
싸우지도 않을 게고
U.S.A놈들이 철천지 원수지
좌다 우다
언제
우리에게
좌가 있고 우가 있는가
이렇게 가당
나라 갈라지겠어
나라
갈라지고 말고
싸워야 해 싸워야
288
제국의 전략을 뚫고
산
한울산
지키며
쓰러진
풀꽃
아스라이 눕는다
산
한울산
풀꽃 하나
하나
하
나
가
쟁쟁히 들려오는
풀꽃의
노래
290
U.S.A놈들 몰아 내야지
소련놈도…
몰아 내어야 하고말고
암 몰아 내어야지
U.S.A놈도
소련놈도
몰아 내어야 해
몰아
내어
야
해
.
.
.
(1991.2.18. 다사함 김명식)
* 또 하나의 눈빛
- 오순도순 살림살이 한 모퉁이에서
293
1.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은,
셀 수 없이 많은, 간첩들이
갇혀 있었던
대전 형무소 안에서,
간첩 아닌, 결코, 아닌, 간첩들이
날마다, 날마다,
그 어떤, 좋지 못한, 숨결 같은
내음이 감돌았고,
재일 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묶여 온 사람들,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우도 고정 간첩단 사건으로,
막걸리 간첩으로도…
0.7평, 감방에 30명도 넘게
셀 수도 없이 포개어 처넣고,
날마다, 날마다, 전향 공작을 한다고 하는,
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그 당시에는,
295
온 하늘에, 온 땅에, 온 목숨 위에…서려 있었음은…
오랜, 오랜, 때와 철이 바뀌면, 거의 다
무죄(죄 없음, 혐의 없음 등등)로 풀려 났지만,
고문당한 아픔, 병이 들었음,
오랜 갇힘, 그 애 아픔, 한 맺힘,
게다가, 집안 사람들이 얻어 맞은 빨갱이 딱지
…그 누가, 씻어주는가. 풀어주는가. 갇혔던
세월(때와 철). 도대체, 그 누가…돌려줄 수
있겠는가…게다가…간첩으로 조작해 낸…
조작인들에게는…참으로, 참으로, 모르겠는 일이다.
위와 같은, 바로, 그때, 그곳에서, 나에게
오로지 법률적으로 주어진 ‘항소, 또는, 상고 이유서’
쓸 수 있는 절차-기회가 있다. 나는 그 기회를
이용했다. 그때, 어설프게 쓴 글이 바로
“4・3 민족민중 해방항쟁
『한울산 사람들-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이다.
바로 그때부터 시(詩-나는 뜻도 모르고, 어찌해서,
294
그 북을, 빨갱이를…) 이롭게 했다는,
「제주민중항쟁」이라는 책이 북을 이롭게-이적
표현물 제작 배포했다는, 국아보안법에 걸렸다고
해서…
감옥살이-독방에 처넣어진 채로,
고문 후유증인지…모르지만,
겨울이면 고도롬-성에 진 방에서
혈압이 높아서, 춥고, 춥고,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한기-추운 느낌(시멘트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으로,
밤낮 없이, 밤낮 없이…지내야 했지,
그것도, 아픔이겠지만…
소위 (조작된) 인혁당에 연루되어 장기수(여덟 사람은,
판결 여덟 시간만에 사형 집행 당했다…)로,
징역살이 하는, 그 사람들도 갇혀 있었다(전주 감옥소
에도…갇혀 있었고…)
그저, 날마다, 억울함이 온 감옥소는, 말할 것도 없고,
297
2. 하나된 아사달-빛겨레 사람들
이제, 여기, 이 세상 새녘 자그마치
바닷가로 뾰족 나온…반도에까지…
어찌 어찌
깃들면서도, 하나된 아사달-빛겨레
사람들,
오순도순, 수눌음 두레두레 살아온,
그 사람들
이제, 여기, 빛겨레 반도에서
제국-U.S.A에 못 이겨, 다시…
반쪽으로 나눠졌구나.
노쪽은-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하고
마쪽은-대한민국이라 하고,
또, 웃음 나오게 하는 짓거리는
제국-U.S.A가 작게 크게(세계에서 제일 넒은)
군사기지를 만들어 진을 치고 있으니, 남쪽에…평택에…
무슨 놈의 나라인지도, 무슨 꼴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땅이-이 반도가 뉘 땅인데
296
한자로 시((詩)를 쓰다니)를 우리말로 「울림글」이라고
하기로 했고, 詩人(시인)을 「울림글쓰미」라고 했던 것이다.
울림글쓰미(다사함)이 쓴, 울림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그러나, 한 묶음의 책으로는 출판하지
못했던 가운데, 또 한 차례…이 참에는, 원고 뭉치는
잃어버린 채…또 숫한 해를 보내게
된 것이지요. 어느 해였던가…이 책 저책
찾다가, 읽다가…겉표지도 찢어져 나가버린
원고 뭉치를 찾게 되었고, 그 원고가 바로
항소이유서인 「이 한 목숨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인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마땅치 못함
때문에, 오늘까지…살려내어야, 살여내어야
하면서도…허허…
숫한 때(시간, 여해, 세월만), 철만 보낸 셈이지…
이제, 여기까지…
299
얼 빠지지 않게
뜻 세워야 하니
넋 나가지 못하게…
밑 빠진 년은 년이 아니고…
좆 빠진 놈은 놈이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의 사람들은
스스로 잊어버렸는지,
세뇌되어 제 나라 꼴조차도 보이질 않는지…
아사달 빛나라
빛겨레 사람들임을…
온누리 꽃나라
빛겨레 사람들임을…
스스로 제 길을 가야 하는
스스로 제 몫을 제 값을 다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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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U.S.A가, UN-온누리 제편들끼리
반도, F 38도선 노녘으로
마녘으로 갈라 놓고서…
전쟁 놀이를 하고 있으며.
마녘에 비치된 U.S,A 군병이 무려…
30,000명이라 하는 짓거리인지는…
때만 되면, 전쟁 놀이를 하면서
마녘에 사는 사람들 속내를 떠보려는
것인지, 방위비도 분담하라고 하면서
놈의 나라에 쳐들어 와서, 침략, 점령하는
그 꼴이, 사뭇, 웃음이 나오는 바이니…
이 땅의 정치꾼들 대통령 장관 총리…
재판사, 검사들, 경찰대장들, 군사 전문가
별 단 장군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