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산 사람들 2
한울산 사람들 2
유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
다사함 김명식 울림글쓰미
4·3 민족 민중해방 항쟁-이어쓴 울림글(詩) 온 묶음 2
한울산 사람들 2
유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
초판 인쇄・2023년 12월 1일
초판 발행・2023년 12월 12일
지은이・김 명 식
발행처・제주4·3평화재단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봉개동 237-2) 제주4·3평화기념관 4층
전화・064.723.4350
팩스・064.723.4303
홈페이지・www.jeju43peace.or.kr
인쇄처・도서출판 각 Ltd.
출판등록・등록번호 제651-2016-000013호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6길 17, 2층
ISBN 979-11-93870-00-6 04810
979-11-88339-98-3 (세트)
비매품
5
머리말
제주섬 사람들, 그 분노의 눈물은 대지 위에 뿌려지고 섬사
람들의 더운 피는 척박한 땅을 적시고 거름이 되어 드디어는
콩과 보리, 메밀과 고구마를 자라게 했다.
바람 타는 제주섬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자연의 악조건에
붉은 가슴을 드러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섬은 힘센 자의
발 아래 가위 눌린 채 봄 갈 여름 없이 한냉한 겨울 바람에 맨
살 에이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침략자 몽고와 지배자 고려의
동맹세력은 제주 땅을 100년 가까이나 강간·강탈 했고, 조선
조의 지배집단은 가난한 섬사람들의 먹을 것을 갈취해 갔으며
제국-일본의 침략자들과 그에 영합한 친일 지배자들은 섬사람
들의 자유혼을 빼앗아 갔고, 삶의 터전마저 무너뜨리고 말았
다.
전후 제주 땅에 침략해 들어온 제국-U.S.A군병과 제국-
U.S.A에 영합한 이승만 독재집단은 제주 땅을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고 점령정책에 반대하는 제주도 양민들을 무참하게도
총으로, 칼로, 고문과 사격 연습으로 살해하고 농락했다. 제주
도는 피의 바다, 처형도가 되었고 한울산 허리 이 오름 저 오
름, 해변가 백사장에는 양민의 피와 해골로 무덤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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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깊어진다는 진실을 얻어내었다. 이 분노의 대지 위에 유채꽃으
로 피어나는 제주도 민중의 해방투쟁은 피가 거름이 되는 그
땅 위에서 열매 맺게 되리라.
이제 4·3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죽인 자는 누구였으며 죽
은 자는 누구였던가를. 그리고 죽이고 죽게 조종한 장본인은
도대체 누구였던가가 밝혀져야 한다. 1948년 4월 3일을 전후
해서 오늘 이 순간까지 작전 명령권은 누가 가지고 있으며 재
판도 없이 총살한 그 자는 누구였는가 등 모든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믿는 사회와 그러한 사람들은 인간에 대
한 반역임과 동시에 죄악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한데 어우러
져서 생동하는 푸르름과 꽃세상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유자
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역사는 어떠한가?
제국-일본과 USA가 이 땅을 침략·지배한 이래 지배정책에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이단시 해 왔고, 체포·감금·징역·사형
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전후사에 있어서 제국-U.S.A 점령군
통곡 없이는 밟고 갈 수 없는 이녘의 땅 제주도에는 분노, 분
노만이 파동치고 분노의 대지 위에는 4·3에 처형당한 혼들이
노오란 유채꽃 되어 4월마다 어김없이 피어나고, 대지 위에는
분노의 얼굴들이 어제도 오늘도 두 눈 부라리고 원수의 가슴을
겨냥하고 있다.
착취하는 자도 없고 착취 당하는 자도 없으며, 모든 침략의
짓거리를 거부해 온 한울산 사람들은 바람과 파도를 넘어 먹이
를 찾아서 어린 생명들을 곱게 곱게 키워냈고, 여·몽 동맹군의
침략을 분쇄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몸을 육탄으로 산화시켰으
며 봉건적 지배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봉기의 죽창이 되었고,
제국-일본 침략의 칼 아래서도 해방군의 선봉자로 일어섰다.
특히 전후사에 있어서 제국-U.S.A의 지배 물결을 제일 먼저 감
지한 제주 땅 그때 그 사람들은 8만의 목숨을 방벽으로 하여
제국-U.S.A의 극동군사 기지화 전략인 5·10 단독선거를 단호
히 무산시켜 제국-U.S.A의 침략을 막는 데 사상 최초의 민중
승리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었다.
이러한 4·3 민족민중 해방항쟁은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의 토
대가 되었으며 종국에는 역사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모범이 되
었다. 그리하여 민중의 해방은 싸움터에서 단련되며 확장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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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기(1945. 8~1948. 8)를 민족·민중 해방기로 승화시키려
고 했다.
해마다 처형도에 봄이 오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유채꽃들
은 이미 희생당한 형제·자매들의 피와 하얀 뼈로 엉킨 분노의
대지 위에서 해방의 노래를 부르며 일어서고 해방춤 덩싱덩실
춤추는 자들의 부활이다.
《한울산 사람들-유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는 제국-U.S.A
침략정책의 칼 아래 스러진 제주도 8만 민중의 피를 보라 하
네. 하얀 뼈들, 이름도 씌어져 있지 않은 흙무덤을 보라 하네.
하얀 뼈들, 이름도 씌어져 있지 않은 흙무덤을 보라 하네. 같은
날 같은 시에 드려지는 제사상 앞에서 터져 나오는 아낙네들의
가녀린 울음 소리를 들으라 하네. 어머니 찾아 길을 헤매는 아
이들과 죽은 어미 젖꼭지를 빠는 저 어린것들의 울부짖음을 들
으라 하네.
▶ 감사의 말씀
여기 《한울산 사람들-유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는 어디까
지나 분노의 대지에서 죽어 간 제주도 양민들의 노래가 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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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독재집단은 대구(1946. 10), 제주(1948. 4), 여수·순천
(1948. 10), 함평(1950년 말), 주천면(1950년 말), 거창(1951.
2), 부산(1950년 이후) 등 여러 지역에서 그리고 군민방위 사
건(1950. 6. 25 전후)과 보도연맹 사건(1950. 6. 25직후) 등에
서 수많은 이 땅의 무고한 양민의 목숨을 살해했다. 6·25 침략
등에서 수많은 이 땅의 무고한 양민의 목숨을 살해했다. 6·25
침략 전쟁에 의해서 직접 목숨을 잃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땅 위에서 자행된 모든 만행의 역사는 그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4·19를 전후해서 마산에서, 부산에서 살해당한 형제들
과 한일협정 반대투쟁시에 희생당한 이웃들 그리고 소위 인혁
당사건에서 희생당한 이 땅의 아들들, 최근의 부마 사태에서,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무참히 희생당한 이 땅의 수많은 형제·
자매들의 희생 앞에서 기어코 그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
여기 《한울산 사람들-유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는 제국-
U.S.A 점령군과 이승만 괴뢰 독재집단, 극우 테러집단의 살해
의 장치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고, 희생당한 제주도 민중들의
주체적 해방의 역사를 담아 보고자 애썼다. 《한울산 사람들-유
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는 당시 제주도의 모든 마을이 학살의
현장이 되었고 마을 주민들은 처형의 과녁이 되었으며 움직이
는 이웃 형제·자매들은 사격 연습의 표적이 되었던 제국-U.S.A
10
한다. 그리고 이 노래를 그들의 영전에 드리고자 한다. 여기에
이렇게 잘 다듬어진 모든 노래의 가락 가락은 각출판사 편집·
기획부 여러분의 노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렇게 유채
꽃 한 다발로 묶어 무고하게 죽어 간 제주도 양민들에게 헌화
할 수 있도록 심혈을 쏟아 주신 각출판사 모든 임직원 여러분
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분노의 대지에서 유채꽃으로 부활한 그분들의
노래가 자유의 함성이 되고 해방의 나팔소리가 될 때까지, 그
리하여 드디어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밭 갈고 고기
낚는 그 일들이 축제의 환희가 되는 그날까지 이 작은 사람의
질주도 멈춰서는 아니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3년 3월 1일
김명식
11
머리말 | 5
서시 | 15
제1부 짓밟힌 땅
몽고군 | 23
불란서 선교사 | 25
일본군 | 27
점령지에서 U.S.A군 | 28
사슬 | 32
전략 | 35
제2부 일어나는 억새풀
총소리 | 43
나비와 아이들 | 45
피난 | 47
일어서는 억새풀 | 57
이 땅에 살기 위하여 | 64
넋 부르기 | 72
제3부 새날을 위하여
너 있는 곳에 1 | 93
이 한 목숨 | 97
그날 | 99
억새풀은 피어날 걸세 | 103
목 차
13
12
한울산 ・ 27 | 153
한울산 ・ 28 | 155
한울산 ・ 29 | 157
한울산 ・ 30 | 158
한울산 ・ 31 | 160
한울산 ・ 32 | 161
한울산 ・ 33 | 162
한울산 ・ 34 | 163
한울산 ・ 35 | 166
한울산 ・ 36 | 168
한울산 ・ 37 | 170
한울산 ・ 38 | 172
한울산 ・ 39 | 174
한울산 ・ 40 | 177
한울산 ・ 41 | 181
한울산 ・ 42 | 183
한울산 ・ 43 | 187
한울산 ・ 44 | 189
한울산 ・ 45 | 191
한울산 ・ 46 | 193
한울산 ・ 47 | 195
한울산 ・ 48 | 196
한울산 ・ 49 | 198
한울산 ・ 50 | 200
한울산 ・ 51 | 203
한울산 ・ 52 | 209
한울산 사람들 | 105
제4부 한울산
한울산 ・ 1 | 117
한울산 ・ 2 | 118
한울산 ・ 3 | 119
한울산 ・ 4 | 120
한울산 ・ 5 | 121
한울산 ・ 6 | 122
한울산 ・ 7 | 123
한울산 ・ 8 | 124
한울산 ・ 9 | 125
한울산 ・ 10 | 126
한울산 ・ 11 | 128
한울산 ・ 12 | 129
한울산 ・ 13 | 131
한울산 ・ 14 | 132
한울산 ・ 15 | 133
한울산 ・ 16 | 134
한울산 ・ 17 | 135
한울산 ・ 18 | 136
한울산 ・ 19 | 137
한울산 ・ 20 | 138
한울산 ・ 21 | 139
한울산 ・ 22 | 140
한울산 ・ 23 | 141
한울산 ・ 24 | 145
한울산 ・ 25 | 147
한울산 ・ 26 | 152
15
서시
일장기가 내리기 전에도
일어섰다네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8월의 조국 하늘에 펄럭일 때에도
일어났다네
남로당
한민당
좌익계가 우익계가 섬 땅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도
일어섰고
제국의 검은 발이 들어오기 전에도
섬 땅
어르신네는
곡식들 털어 가는 도둑무리들을 향해
죽창을 들고
일어섰다네
17
칼 든 놈이 권좌에 올라 있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일어설 줄 알았다네
대대로 물려받은 수눌음 그 뜻대로
오순도순 살 줄도 알고
빼앗아 가는 무리와는
대항하여
일어설 줄 알았다네
우리네 어르신네들
우리들의 일어섬
억새풀의 일어섬에서
제주 땅──바람 타는 섬 땅에서
부활쯤은 기다릴 줄 알고 있었다네
화산도의 불
폭발시킬 수 있는
뜨거운 가슴쯤은 간직하고 있었다네
제주 바다──그 출렁임도
16
녀는 바다 낫을 들고
목동들은 풀 베는 낫을 들고
밭 가는 농부들은 호미와 괭이를 들고
먹을 양식 빼앗아 가는
탐관오리들을 향해
일제히 일어섰다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억새풀처럼 일어서서
생명 양식
빼앗아 가는
무리와 싸울 줄 알아
대대로
물려받은 삼무정신 그 뜻대로
부정한 것들에게 저항하면서
일본 U.S.A 제국 무리 침략해 와도
이승만이 박정희가
전두환이 노태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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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날 수 있었다네
4・3의 혁명으로
자주-자치-자립
주체자의 부활로
일어날 줄 아는 한울산의 정기를
간직하고 있었다네
억새풀이 일어서는 출렁임으로
18
품고 있었다네
한울산 허리 동굴 속에서
몸을 피할 줄도 알고 있었고
바닷속─물 속으로 잠수할 줄 아는
지혜와
숨죽이는 인내를 오래도록 체득했다네
일어서는 억새풀이 되어
밟히면 밟히는 대로
버히면 버히는 대로
내일도
또 내일도
새봄에는 기어이 피어나는
엉킨 뿌리로
살아온 의리쯤은 보듬고 있었다네
우리들의 의리는
두 번 해방되는 뜻을 따라서
화산도의 불꽃으로
제1부
짓밟힌 땅
23
몽고군
1273년 원종(元宗) 14년
함락당한 제주섬(島)엔
100여 년간
몽고군의 말발굽 소리 고여 있었네
말발굽에 짓밟혀 간
제주섬 사내란 사내들은
화살에 꽂혀 스러져 갔네
칼날에 베여 스러져 갔네
검은 화살 무딘 창검에
밤 가운데로 끌려간
제주섬 아낙이란 아낙네들
힘겨운 반항에도
상한 몸 그대로 스러져 갔네
밤
밤이었네
눌린 채로 스러져 갔네
고려군 몽고군
25
불란서 선교사
1901년 신축년 4월
불란서의 침략 야욕
성서 속에 숨겨 놓고
천주교 선교사 미끈한 얼굴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미끼를 삼아
관권 위에 군림하고
불란서 신부는 제주 목사 상투 위에 앉아서
치외법권 행사하며
구둣발을 신은 채로
사람 눕는 방바닥을 짓밟으며
소금쟁이 염전에 들어가서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고
소금 가마니를 짊어지고 가버렸다네
천주교 신도들은
봉세관에 영합하여
간에 붙고
쓸개에 붙어
세금 포탈 토지뺏기 여반장이요
성당 안에 형틀을 차려 놓고서
24
연합군의 말발굽 아래
말발굽 아래
스러져 갔네
27
일본군
3・1정신 울려 퍼져
탐라정기 한울산에
아흔아홉 골
백록담에
당 500에
절 500에
해방굿에 독립 만세(1925)
산지항에 노동깃발(1929)
동맹휴학 반제반봉(1931)
해방농민 죽창 들고(1931)
해녀투쟁 가난한 살림살이(1931)
한울산 사람들은
일본 칼에 찔려서
군홧발에 밟혀서
스러져 갔네
스러져 갔네
대동아 공영권 아래서
36년이나 죽어져 갔네
섬사람 질긴 목숨 박살이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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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주구 가렴주구
섬 땅 한울산 사람들 잡혀가고
형벌에 태형에
스러져 갔네 스러져 갔네
이조군 불란서군
합동작전에
무고한 한울산 사람들 형벌 받았네
마음 고운 제주섬 사람
배상금 물었다네
29
태워
없애야 한다”
이 말이 있기 훨씬 전에
제국-일본 병사가 이 땅을 떠나가기
훨씬 전부터
제국-U.S.A
U.S.A 양키
선교사─목사・신부─들의 손에는 바이블이 쥐어졌고
살해자의 살해를 용서하라고
착취자의 수탈을 사랑하라고
겁탈자의 음행을 감춰 두라고
가르치기를 시작했다네
제국-일본군이 이 땅을 떠나가기도
훨씬 전부터
장사꾼─기업가 회사원─들의 손에는 코카콜라가 쥐어졌고
U.S.A의 이익을 조선의 번영이라고
U.S.A의 발전을 조선의 근대화라고
가르치기를 시작했다네
28
점령지에서 U.S.A군
1945년 8월 15일
이날은 해방의 날이 아니란다.
제국-U.S.A 병사들
LST 군함에 몸을 담고
미지의 땅
제주섬에서
작전 명령을 기다린다
M1 소총과
수류탄
저장된 CIC의 정보분석에 따라
살해를 임무로 해온 U.S.A 병사들은
콩밭에서
도로변에서
조국의 딸들을 쓰러뜨렸다네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제주도 전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거기에 불을 놓아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31
작전 명령이라네
초토화
소개
성담쌓기
사상검증
통행금지
고립작전
바비큐작전이라네
불사르고, 죽이고, 약탈하는─삼광작전이라네
불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고, 굶겨 없애는─삼진작전이라네
무지개부대 비밀작전─유격전술, 육해상 침투, 공중낙하,
산악전술, 공작, 심리전, 도하전술, 전이, 태업, 생존훈련, 첩
보, 유격, 방첩, 반첩보, 반방첩(U.S.A軍에서 특수훈련을 받
은)이라네
“1. 작전 구역의 공비분자는 전원 사살하라
2. 공비의 거점인 부락 가옥을 전부 소각하라
3. 식량을 안전지대로 운반하라”는
작전 명령이라네
30
1945년 9월 29일, U.S.A군정청의 설치는
전후 제국-U.S.A가
제주도를 품에 품으려 한
침략 전쟁이 시작되는 날이라네
LST군함의 고동 소리는
U.S.A군의 상륙을 알리는
로버트(Willam L. Robert) 준장이 발하는
살해의 명령이라네
외로운 섬 바람 타는 섬
섬사람들에게 불어닥친 서양 바람은 흘러들어와
작전은 개시되었고
같은 얼굴 가진 자를
먼저 보내어
살해케 하는 작전명령이 내려졌다네
LST 군함의 고동소리는
일어서면 일어서는 대로
쓰러뜨리라는
33
U.S.A이다 U.S.A
제국-U.S.A라네
우리는 보아서 알고 있다네
월남에서
중동에서
저 멀리 니카라과
300만 양민 사는 작은 땅에서
콘트라(반군을 조종하는 자)는
U.S.A이다 U.S.A
제국-U.S.A라네
필리핀-바나나 섬나라에서도
대만에서도
양민의 혼을 빼앗고
맑은 정신 마비시키는 자는
U.S.A이다 U.S.A
제국-U.S.A라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다네
32
사슬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다네
누가 쏜 총탄에
쓰러졌느냐 하는 문제
누가 명령한 총탄에
쓰러졌느냐 하는 문제라네
4・3에 1948년 꽃 피는 봄날에
누가 명령한 총탄에
양민은
10만이나
쓰러졌는가
저들은
인공 때문이라고 인공 때문이라고
40년 오늘까지 우려먹고 있지만
그것은 40년 간의 속임수
40년 전 양민을 쏘라고 명령한 자는
누구인가
35
전략
제국-U.S.A여 !
보아다오 40년 전쟁을
허리 잘린 채 피 흘리며
버둥거리며
아우성치며
쓰러져 간
10만의 무덤을 보아다오
한울산 허리
잡초 억새풀 우거진
흙무덤
비명도 없는
고운 생명들의 이름을 기억해 다오
제국-U.S.A여!
보아다오
서문통 향교집 돌무지 소나무 버젓이
지켜보는
천막 속에서
아직 우리들의 법률도
34
그것은
총 쏘아라 죽여라고
명령해 온
U.S.A의 정체다 그 간악한 정체
제국-U.S.A의 사슬이라네
37
재판은 그러면
점령군의 군사재판에 의해서
제주도 양민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는가
그리고 서문통 향교집 돌무지 소나무 아래
그 천막 속에서
포승줄에 묶여 끌려갔던
사람들은 그대여
어디로 보냈는가
농업 학교에서도 고문은 계속됐고
음력 정월 그믐
수박색 옷을 입힌 채
화북 사형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그 사람들은
무슨 죄명에
구덩이에 고꾸라뜨렸던가
제국-U.S.A여
말해다오
36
헌법도 형법도 없었던 시대에
제국-U.S.A여! 말해 다오
벗이여,
어느 법률에 위반되어
어느 나라의 국법에 위반되어서
벗이여 그대는 명령했는가
체포하라고
아직은 우리 조국의 이름도 채
지어 두지 못한
1948.4.3
분명히 들어 주게나
연합군의 이름 하에
제국-U.S.A 군대는 이 땅
삼천리 강산을
직접 점령했다는 사실을
점령군의 법령으로
그러면
점령군의 법령으로
제주도 양민 – 10만의 목숨을
잘라 내었는가
39
버롱히 눈 떠 있는
지 남편의 시체를 움켜 안고
춘삼월
화북바다 바람 바른 곳에
무덤을 만들어 놓고
아이고 아이고
울어 낼 제
땅이 무섭고
하늘 무섭고
탕탕탕 쏘아대며
콩 볶듯이 쏘아 대는
총알도 실탄도 무섭고
식은 흙 몇 삽으로
버롱히 눈 떠 있는 지 남편을
땅에 묻어
땅을 밟고
하산하는 해 저물녘
인적 없는 동문통엔
고요만 깔려 있더라 하더라
38
벗이여 그대의 명령에 쓰러져 간
수박색 옷을 입고
마지막 유언도 허락되지 않았던
쓰러져 간 벗들을 위하여
U.S.A 점령군이여
그대가 우리의 이웃이라면
사형언도의 법문을 읽어 주게나
장례식이 치뤄진 것은
돌구멍으로
남편의 모습이라도 보려고
하루 해를 기다리던
아기 업은 아낙이
관덕정 돌담을 오르며
단 한 번만이라도
아기 아빠의 얼굴만이라도 보려고
애끓던
아기 업은 아낙이
아기 낳고 아흐레 만에
죽은 시체더미를 헤치며
40
남편은 살아 남는 친구에게
‘돔베에 오른 고기
칼맛 안 보겠느냐’
어느 날엔가
남편은 벌써 처형을 알고나 있었는가 보다고 하더라
제국-U.S.A여!
대답해 다오
점령군이여 증언해 다오
그대들이 내린 살해의 명령은
어떻게 심판 받아야 하는지를
제국-U.S.A여!
대답해다오
제2부
일어나는 억새풀
43
총소리
검은 개야 ! 하면 순경이 오는 것이고
노란 개야 ! 하면 군인이 오는 것이지
그들의 총구는
닭과 개를 향하여
불을 뿜었고
아무 집에나 마구 들어가서
밥을 시켜 먹었고
그들은
젊은 여인들을 붙들어다가
욕을 보였다네
총소리를 들으며 몸을 피하며
차라리 하루라도
들볶이지 않고 살다가
죽고저
산으로 가야 했다네
산으로 산으로
우리는 어린것들의 손을 끌어당기며
소나무 숲 속으로
45
나비와 아이들
4月 그믐께
나비는 총성에 놀라
날아다니다가
붉은 꽃잎에 앉아
생명수 꽃샘을 빨았다네
탕탕탕 터지는 총성에
나비는 다시 놀라
꽃샘을 떠나며
입술에 묻어난
붉은 피를 닦아 내며
식어져 가는 대지 위
어디에선가
익히 만났던
얼굴이
싸늘하게 쓰러진 채
피 흘리고 있는
어디에선가
익히 만났던
동네 아이들 얼굴이 눈 앞에 비춰 왔다네
애월면 광령리
44
달려 숨어 들어갔다네
거친 총소리가
멀지 않은 토벌대의 주둔지에서
들려 오고
실탄이 날아오고
수류탄이 터지고
우리는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네
우리는 밤을 무서워 했듯이
낮조차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네
47
피난
-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순경이 쏜 총탄에 맞아
버둥거리는
돼지가 토해 내는 피
피를 나는 처음 보았다네
피는 검붉었고
사지를 떨며
피 토하며
아무렇게나
지 몸을 던져 버리는
죽음의 순간을
그 순간을 나는 처음 보았다네
애월면 하귀리
미수동
골방에 숨은 할아버지가
난사한 총탄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소식도
나는 그곳에서 처음 들었다네
거리에는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46
소나무 밭
일본군이 파놓았다는 참호 옆에서
49
어머니는 산으로 산으로
산길을 타고
소나무밭 사잇길을 타고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네
어머니는 산으로 산으로
산길을 타고
소나무밭 사잇길을 타고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네
우리가 도착한 바위 아래
잔 소나무 들판
듬성듬성 참호가 파져 있는
임시 대피소에는
먼저 피신해 온 같은 마을 사람들
열대여섯 식구가 모여 앉아 있었다네
이곳까지는
잘 왔다
누구를 피해서 대낮에 도망쳐 온 것인지는
48
정오의 정적도
그 고요함이
두려움인 것을 나는
맨 처음으로 알았다네
어머니가 잡은 손에서
비처럼 흐르는 식은땀이
나의 팔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두 살 난 동생도 어머니의 등 속에서
난리를 알고 있는 듯
머리를 숨기고
어머니의 그렇게도 빠른 걸음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나는
처음 배웠다네
입 다문 어머니의 얼굴 표정은
이미
하관식이 끝난 후
정적 같았다네
51
호-이-호-이
긴 숨을 내쉬고
동네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해 본다
모두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배웠다네
모두가 모두에게
우리는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었다네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생명만
자기 생명만
헐떡헐떡
지키고 있었다네
태초로 정직한 순간이었다네
이때다
등에서 동생은 견디다 못해
50
아무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서 이곳으로
몸을 피해 왔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저 무서워서
살기 위해서라 할까
아래도 무섭고
위에도 무서워
피해 온 것이라네
어머니는 호-이
긴 숨을 내쉬고
자리를 잡는다
아직은 총성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총성이 있었던
후의 고요함 같은
순간순간이었다네
어머니는 다시 한 번
53
소나무 가지는 봄바람에
흐늘거리고
동생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진동한다
아우성치는
동네 사람들의 입은
살기와
공포와
허탈과
원망과
인간의 입은 참으로 정직한 종교이었다
어머니는
동생을 가슴에 품고
입을 막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으앙 으앙
운다 운다
52
큰소리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네
저년 보라!
저년-
우리 모두 죽이잰 하는 년
속솜허라
속솜허라
저년 보라!
여기저기에서 들려 오는
살겠다는 살아 보겠다는
항변은 너무도
정직하기만 했다네
저년 보라!
저년 ──
우리 모두 죽이잰 허염쪄
우리 모두 죽이잰 허염쪄
속솜라(조용하라)
속솜라(조용하라)
55
거리로 들어선다
고요를 밟는다
대문을 연다
저녁밥을 짓는다
우리들은 집으로 피난했고
동네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도 또 며칠이 지나도
내려왔다는 소식이 없었다
몇십 년이 지난
1970년 4月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느 동생이 우릴 살렸쪄
그러니까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잘 들을 줄 알아야 다
54
소리친다 진동한다
빗발치는 항변
속솜라 이년아
저년 보라!
우리 모두 죽이려 허염쪄
소리는 더욱 거세어 간다
살아나야 하겠다는
가장 정직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네
어머니는 살포시
자리를 뜬다
나의 손목을 잡고
길가로 나선다
글라 이젠 (할) 수 읏따
죽어도 집에 내려가게・・・・・
우리 세 식구는
당당히 대로를 따라
죽음의 계곡을 내린다
어머니는 이제
당당해졌다
57
일어서는 억새풀
너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가?
무엇 때문에 제국-U.S.A
살인귀들의 총마개가 되려 하는가?
오늘 네놈들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밝아 오는 조국의 아침 햇살을
쇠사슬에 묶어 둘 수는 없다네
일어서는 억새풀이 되어
아낙들도 일어섰다네
차라리
차라리 하루라도
들볶이지 않고 살다가
우리는
산으로
산으로
가야 했던 것이었다네
우리들의 일어섬은
56
아람샤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피난 시절
4月의 역사를
어린아이 우는 소리에서 만난 듯했다
어머니의 피난길은
마을로
집으로
내려오는
죽음의 계곡 처형길이었다네
59
육탄이었다네
무기라 할 것 있나
삭은 나뭇가지에
뾰족한 대막대기
그 외에는
허기진 몸뚱아리뿐이었다네
우리들이 일어섬은
총소리가 무서워
무서워서
총칼에 스러져 가는
이웃들 고운 생명 더 이상 버려둘 수 없어
강간당해 가는
아가씨들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하는
빼앗기는 일상과
살해 당하고
고문 당하고
매 맞고
끌려가는 남편과
아들
58
우리들의 무장단결은
제국-U.S.A의 음모
가능한 지역 남한에서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 입국
U.S.A의 한반도 침략을
거부함이요
일어서는 억새풀은
양과자를 먹지 말자
양담배를 피우지 말자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말자
바람 타는 섬 땅
일어서는 억새풀은
제국에 항변하면서
용병에 항거하면서
허기진 몸뚱아리로
제국-U.S.A의 총검 앞으로
제국의 용병 토벌대의 처형 앞으로
몸뚱아리 던졌던 것이라네
61
총으로 난사하고
칼질로 전신을 찔러 죽였다네
제주 땅은 이제
인정도 낭만도
꽃향기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숨을 죽이고
제주 바다 파도 소리마저
처형장의 음험함을 북돋아 주고 있었다네
우리는 4월에 다시 일어나는
청보리밭
푸르름까지도 우리들의 푸르름이라
주장할 수 없었다네
고독과 피로도
혼자서 달래야만 했다네
오늘도 저물어 가는구나
때 좋은 계절에
제국-U.S.A 용병이 쏘는 총탄에
쓰러져 간
동네 사람 시체 더미를 매만지며
60
그리고
동네 이웃들의 고운 삶을 지키기 위하여
일어섰던 것이네
우리는 밤도 무서웠다네
해 아래서도 떨고만 있어야 했다네
내 땅 위에서
우리는 거처할 곳을 빼앗기고
애인들 사랑할 은신처도 잃어버렸다네
거지 없는(수탈 당함이 없는 곳)
도둑 없는(착취함이 없는 곳)
대문 없는-맹수 없는-(침략함이 없는 곳)
제주 땅은 처형장이 되었다네
저들은
볼목리에서 정방폭포
정뜨르 비행장에서 사라봉 굴 속
일출봉 터진 목에서 모래판에서
부녀와 노인들을 포함한
주민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63
나의 작은 최후 방어라 믿고 싶다네
빨갱이라
폭도라
폭동이라고 색칠할 때마다
우리들의 일어섬은
밤도 무서웠고
낮도 무서웠다네
우리들의 일어섬은
이 땅에 살기 위하여
풀꽃으로 피어나고픈
곱게 피어나고픈 순정한 고집이었다네
62
하루를 보냈다네
배추꽃이 노랗게 피어나는 까닭은
우리 선조들의 살덩어리가
거름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믿으며
죽인 자는 웃고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어 가며 내지른
비명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디 작은 선인(善人)이 있다면
한울산 허리에서 피어나는 유채꽃을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할 것이라 믿는다
말하라,
백록이여!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여기에 나는
살해의 총구를 마주하고 있다네
우리들의 일어섬은
65
칼을 먼저 앞세우고
총을 먼저 앞세웠다 하겠는가
말하라 백록이여!
누가 우리에게
폭동과
반란의
전략을 가르쳐 준 일 있었던가
전술을 가르쳐 준 일 있었던가
우리들의 전통은
이 땅에 살아 남기 위해서
일어서는 습성밖에
동새벽에
억새풀처럼 일어서는
습성밖에
어둠 이기고
아침 해로 솟아나는
그 습성밖에
이 땅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제주 바다 파도를 헤치고
64
이 땅에 살기 위하여
- 무덤 앞에서
탕탕탕 쏘아대는
총소리에
나는 놀랐다네
이 땅에 살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네
우리가
이 땅에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적 앞에 맞서야 함은 분명한 일이라네
그 일을 우리가
함께한 것이라네
누가
우리더러
권좌를 노렸다 하겠는가
살코기를 탐했다 하겠는가
누가
우리더러
67
높은 곳에서 내린 지령에 따랐다
하겠는가
말하라 백록이여 !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감옥문이 있었던가
우리 스스로 가두어 놓던
철문이라도 있었던가
어디에
도둑을 잡는 법률이 있었던가
마소 뺏아 간 도적떼가 있었던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돌짝 밭에서 검질 메고
땔나무 하러
한울산 중턱에서
오름을 올라
제주 바다 바라보며
해질녘에
하산하여 등짐으로 땔감을
66
한울산 숲길을 따라
땅을 파고
풀뿌리를 캐어 내어
이른 봄에 씨 뿌리는
그래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보리, 조, 메밀
산나물 난지
콩이며 녹두
소량의 깨
두어 말 수수
그것으로 시께 허영 갈라 먹고
조상 앞에
절하면서
소분하고
고구마 파당
쩌어 함께 나눠 먹던
그 습성 이외에
누가 우리더러
당의 전략을 가르쳐 준 일이 있었던가
69
아니면
화전밭에 버섯 따는
화전민이 되어
보잘 것 없는
힘 한데 모아
사시사철
먹을 것 서로 나누며
살아 온
제주섬 한 식구가 되어 살아왔다네
말하라 백록이여!
우리가
흙무덤 흙덩이를 눌러 쓰고서
잔인한 세월 40년
갇혀 있는 까닭을 말하라
말하라!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우리가
살아 남기 위하여
이 땅에 살기 위하여
68
모아 들여
저녁이면 솔솔솔 솟아오르는
초가집 지붕으로
솟아나는
보리밥 짓는
연기 따라
우리들의 피곤을 띄어 보내곤
했던
그런 습성 이외에
누가 우리더러
도둑의 버릇 지녔다고 하겠는가
침략의 습성 품었다고 하겠는가
한울산 산맥 따라
오순도순
집을 짓고 일가친척
바닷바람 막아 내며
물고기를 잡아 먹는
낚시꾼이 되어
산에서 들에서 소마 먹이는
테우리(목동)가 되어
71
출렁이고 싶은
충동이었을 뿐
빨갱이도 말이 없고
흰둥이도 입 다물고
제국의 용병들도 두려워하는데
억새풀은
출렁이며 하염없이 살고지고 싶었던 것이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까닭은
일어서는 억새풀을
무고한 양민들의 피쯤은 달래야 하는
윤리쯤은 배우며 살아야 하는 이유 때문이라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70
일어선 그 일을
말하라, 백록이여!
너만은
알고 있지 않은가
눈비 바람에 요지부동
이슬 받아 몸을 씻고
신령님이라도 내려오셨을 그때에
너의 고운 마음
잘 기록해 둔
최후의 심판장이 되어
말하라, 백록이여!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우리들의 일어섬은
억새풀
한울산 허리에서
풀꽃으로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바람 타는 섬
출렁이는 파도와 함께
73
갈아, 갈아먹어야 해”
조천에 밤은 고요하고
한울산 영봉은 다 알면서도
아직은 얄궂게도 말이 없네
말하라, 백록이여!
우리가 일이서지 않고서야
그때 총칼에 죽은 영혼
불러 낼 수 있겠나
2
40년 세월 기만으로
제주의 피를 덮으려는 사람들이여!
기억해 주게
제국의 총칼에 쓰러진 몸
또 다시
죽이는 살해의 만행이 되고 있음을
기억해 주게
72
넋 부르기
1
아는 자는 무서워
입을 다물고 있네
좆도 모르는 자들만
겁대가리 없이
씨나락을 까고 있네
관제 지식인들은
항의 함성 그때
그 깃발을 붉게만 색칠하려 들고
딸자식 빼앗긴
어머니
동네 처녀 벗들 20명이 하룻밤 사이에
겁탈에 비명 소리 바들바들 떨던 목숨들 목격한
그때 그 사람들은
깊은 밤 자 일어나 앉아
이를 북북 갈고 있네
이불 속 혼잣말로
“찢어, 찢어 죽여야 해
75
3
다시 오는 세월에
우리들의 깃발은
빨간 색깔이 아니라
하얀 색깔도 아니라
아들 딸 낳고 키워 낸
어머니의 땅
땅-흙의 빛깔이어야 하네
그 다음 또 다시 오는 세월에
우리들은
우리들의 손자 손녀 그 녀석들에게
그 녀석들에게
자기 땅 떠나지 말고
곳곳이 서서
조랑말 뛰는 제주 벌판
출렁대는 제주 바다
그 생동함으로 일어서서
유채밭 그 물결로 그 노오란 빛깔로
74
제국은 40년
또 40년 전부터
그것을 노리고
45년을 금 그어
5・10 남한 단독선거를 정해 놓고
3・1과 4・3을 붉게 색칠하려고
이 땅 위 선량한 사람들더러
붉은색 좋아한다고 만들어내고 있지 않았는가
5・18 광주 학살이 화려 한 작전명령이듯이
우리는 백록담 그 연못가에서
사시장철
높푸른 하늘 청신한 신조 하나 지키며 살아온
시로미의 염초록 가슴을 상기해야 하네
눈비 바람 이슬에 닦여 온 인내쯤을 기억해야 하네
피멍 든 가슴 드러내 놓고
간간이 위로의 손길이라도
가슴 펼치고 기다리는
산기슭 마다에서 죽어 간
연찾고 멍든 넋을 먼저 불러내야 하네
77
없어져야 하네
그리고
4・3은 4・3대로
억새풀 일어섬으로 기록되어져야 하네
제주 바다 제주 바람
제주 바람
제주 사람
은
해방의 공간 논 밭 산 바다에서
즐겁게 일하는 자들로
다 풀린 넋
불러내어 넋 달래기에
40년 40년 40년
또, 40년을 기다릴 지라도
추모제는 곱게 올려져야 할 걸세
5
그리허면
76
넋을 불러 넋을 불러
부정한 무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나게 해야 하네
4・3에 쓰러진
혼령, 이름 지워진 사람들 모두
비명도 없는 한울산 무덤
흙무덤에 갇혀 있는 사람들 모두
4
그리고
탕탕탕 쏘아대고
쓰러져야 했던
시대는 사라져야 하네
양민의 땅
제주섬 제주 땅에는
살해의 근원
제국의 앞니빨도
독재의 살해 행위도
79
한풀이 넋풀이
추모제는 한 번 곱게 올려져야 할 걸세
6
우리는 마땅히
먼저 해놓아야 할 일들이 있는 걸세
한날 한시
죽어 간 머리 없는 무덤가에
먼저 가서 돌비석이라도 세워 놓고
비명이라도 몇 자 적어 내어야 할 걸세
“무죄한 양민을
죽인 자는
화 있을지어다
총을 쏘았던 자들은
화 있을지어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울음만
서럽게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78
우리는 백록담과 한울산 영봉에서 서로 만나
산새들 나무들 산에 사는
꿩이랑 노루 사슴 풀벌레들 억새풀 꽃이란 모든 꽃 함께 어
우러져
탕탕탕
탕탕탕
쏘아대던 살해의 모든 버릇
씻어내리고
씻어내리고
원한의 넋 달래기
풀지 못했던 40년 한의 매듭
한 올 한 올
풀어 풀어
살해의 이데올로기에 가둔 장벽
헐어 헐어 내면서
어승봉에 묻힌 혼령
별도봉에 묻힌 원혼
불러내어 불러내어서
덩기 덩기 덩덕궁
덩덩 덩덕궁
81
친지 형제
모두 모여 모두 모여
과녁이 되어
제국의 과녁이 되어
독재의 과녁이 되어
분단의 과녁이 되어
학정의 과녁이 되어
수탈의 과녁이 되어
착취의 과녁이 되어
성장의 과녁이 되어
발전의 과녁이 되어
처형의 과녁이 되어
죽은 우리 하르방
젊은 가슴을 뚫고 나간 실탄은
U.S.A제국의 실탄이었고
M1
칼빈
수류탄
총칼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80
여보게
우리는 마땅히
먼저 해놓아야 할 일들이 있는 걸세
한날 한시
제삿날에,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누구의 총칼에
누구의 명령에
죽어 갔는지 한 목숨 빼앗겼는지
그것이
먼저 규명되어져야 할 걸세
한날 한시
제삿날에
유세차로 시작되는 제문이라도
읽어져 내려가야 할 걸세
7
그래서 올망졸망 모여 앉은
사돈 팔촌
83
4・3은 오늘의 사건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 땅 위에서 자행되어 온
총부리 칼끝
빼앗아 가는 모든 짓거리
아부와 변명과 지랄과
창녀와 창부의 짓거리
땅 빼앗아 가는 흉계
양식 호텔 지어내어
지하수 빨아먹는 소리
한울산 중 허리 중문 땅 고산 땅 베어 가는 소리
서귀포에서 번지는 제국의 마취제 아편 독 퍼지는 소리
고관대작 호호정책
예수쟁이 히히술책
제주 앞바다에 구정물 버리는 소리
관광 제주 양갈보 왜갈보 달러정책 외화정책
골프장에서 가랑이 찢어지는 소리
숫처녀 아랫도리에서
생피 터지는 소리
육지로 도망치는 소리
한 자리 해보겠다 여당에도 삐죽
82
발사되었으며
찔러졌는지가
함성이 되어
외쳐질 게 아닌가
밝혀질 게 아닌가
여보게
그리 되면 그쯤 해두면
억새풀 손녀가 다시 일어설 게이고
그리 되면 그쯤 해두면
오늘도 날마다 빼앗아 가는 제국의 흉계
독재와 군부의
총부리와 칼끝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누구를 겨냥하여
무죄한 양민의 가슴을 겨냥하고 있는지가
분명히 밝혀질 것이 아닌가
그래서
4・3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85
꾀 빠른 놈 거룩한 놈들만 듬뿍 들어선
썩은 산이 다 되겠네
자유항에 쪽바리에 붙어 붙어
국제공항 U.S.A놈에 붙어 붙어
헐레벌떡 붙어먹고
기름진 배에 깔려도 찔끔찔끔 오줌 쌀 줄 아는
그런 놈들만이 사는 세상이 되어
제주 땅은 천국이라
도둑놈의 천국이라
제국놈의 천국이라
살해무기 핵무기에
활주로에 군용기에
바다마다 군함이 진을 치고
바람 타는 제주섬은
빼앗긴 땅이 되어
저주스런 땅이 되어
신음 신음 40년
시름 시름 40년
땅이 울고
바다가 울고
84
야당에도 삐죽 하는 소리
제주 문제 해결허겠다
간판 따기 박사논문 쓰겠다고
먹물 교수 지식강사
남의 글 베끼어 내는 소리
도둑 글 쓰는 소리
보도지침 충실 충실
허튼소리 찍어 대는
신문쟁이들 매끄러운 필기 소리
예수쟁이 복 비는 소리
땅 찢어지는 소리 산 무너지는 소리
꽃사슴에 수족관에 성한 몸 썩어 썩어
살 썩어 가는 소리
바다 썩어 가는 소리
산에 피어나는 들꽃들 시들어 가는 소리
나뭇잎 지는 소리
그래서 결국에는
제주섬 제주 땅에는
원주민은 다 쫓겨나고
돈부자 권세 부리는 자
87
그날
늙은 것들은 뒤를 이어 뒤를 이어
자주 깃발
자치 깃발
자립 깃발
앞세우고 우리가 우리 것 찾으러
가게 될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4・3을 우리가 산다는 것이라네
그리하여 우리가
축문이라도 외우게 될
그날을 위하여 같은 날 제삿날에
우리 식구 함께 모여
한 시에 한 자리에 같은 축문 외고
신성한 마음으로
출렁일 줄 알아야 할 걸세
그때 모두 잠에서 깨어나
일어설 걸세
일어설 걸세
비명도 없는 무덤에서
4・3에 죽은 넋들 모두
86
바람 산들 나무가 울고
드디어 제주 사람이 울고
또 울고
죽은 원한
빼앗긴 원한
더덕더덕 한이 딱지가 되어
죽은 제주 앙상한 뼈만
화석이 되어 화석이 되어
생명이란
생명
모조리 빼앗기겠네
.
.
.
그리하고 나서야
축문이라도 외어나 볼 수가 있지 않겠나
그리허면
축문 읽는 소리에 마음 고운 어린것들은
일어설 것 아닌가
고운 마음으로 일어서는
89
먹을 양식 장만허영
일어서는 억새풀은
풀꽃으로 피어나서
제주산 한울산을
들꽃으로 덮겠네
불꽃으로 피어나겠네
88
일어서게 되면
일어서게 되면 4・3은 다시 살아 살아
모든 악귀들은 부들부들
혼비백산 도망칠 게이고
바다에선
테우 작대기로
자갈밭에선 갱이로
산에서는
지게 작쉬로
철쟁이는 쇠뭉치로
돌쟁이는 돌마께로
버섯 따는 사람은
가시나무 막대기로
가시나무 작대기로
모든 악귀란 악귀들을
몰아내어 몰아내어
새 하늘에
새 땅 일구어
먹을 양식 장만허영
제3부
새날을 위하여
93
너 있는 곳에 1
너 있는 곳
거기에 즐거움 있는가
아름다운 만남이 있는가
시들어 가는 꽃들
이 강산의 어린 꽃들을
위한
조금 남겨 둔 애정이 있는가
동족의 포승에 묶여
칙칙 쓰러지며
끌려가는
저 어린 노동자들을
위한
한 숟갈 더운 밥 남겨둔 일 있는가
너 있는 곳
거기는 어떠한가
전장에 끌려가는
이 땅 위 어린것들에게
95
너 있는 곳
거기에
한 가닥 평화의 불빛이 있는가
억새풀 꽃 같은
출렁임 넘치고 있는가
상처 입은 가슴 드러내어
한의 노래
원한의 이야기
털어놓을 수 있는
한 치 땅 해방 공간이 있는가
거기에
억새풀 꽃 같은 향기 넘치고 있는가
남과 북 하나로 엉킨
억새풀 꽃 같은
만남이 있는가
높은 곳 바라지 않은
이름 한 점 탐내지 않은
거기에 자유의 휘날림이 있는가
너 있는 곳
거기에
94
너는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동족을 살해하라고
꾀고 있는가
36년 긴 어둠의 때에
황군에 지원하라고 하던 자들을
꾸짖던 그 입술
너는 어린것들에게
U.S.A을 섬기고
38선 남북으로 갈라 긋고
동족을 죽이라고 설교하고 있는가
아니 될 말이다
결코 아니 될 말이다
이 땅 위에서
누가 좌경이고 누가 우경인가
누가 좌경을 우리의 적이라 하고
누가 우경을 향해 총을 쏘아도 좋다고
명령하는가
97
이 한 목숨
모든 삶이
수단이요 도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좋다
빛이거라
어둠 밝히는 빛이거라
더러운 음모 도려낼
칼이거라
썩은 것 녹이는 불이거라
부정한 것들 까바수는 돌이거라
이빨이거라
이 한 생(生) 살기 위하여
큰 자유 열린 땅을 위하여
봄밭 갈아낼
쟁기이거라
침략의 사슬 끊어 낼 호미이거라
익은 곡식 거둬드릴
낫이거라
모든 삶이
96
아름다운 만남이 남아 있는가
남과 북 하나 될
통일된 땅이 있는가
99
그날
먼동이 트고
새벽 닭이 울면
우리가 떠나야 할
곳은
어디인가
솔직히 말해야 하며
떳떳하게 살아가기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곳은
사랑하는 이웃들
그리움 끌어안고
밤 새기를 안타까워하는
애인들이 기다리는 한 칸 방이어야 합니다
혁명의 근원
해방의 고향
먼동이 트고
새벽 닭이 울면
맨 먼저 떠나야 할 곳은
98
수단이요 도구인 바에야
살해의 무기
바숴 녹일 불덩어리이거라
적의 가슴 찌를 죽창이거라
예리한 칼이거라
불칼이거라
101
대지, 첫사랑의 한 칸 방이어야 합니다
먼동이 트고
새날이 밝아 오면
그날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슬펐던 땅
둘이서 만나서
밤 새기를 안타까워하는
애인들의 방
어둠을 이기는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방
둘이 하나 되어 일어서는
사랑의 방이어야 합니다
그날에,
우리가 남과 북 하나로 해서
슬펐던 이 땅 위에서
둘이 만나서
헤어졌던 세월
100
우리가 맨 처음 배우고
괴로워했던
첫사랑의 고향
어머니의 땅
대지여야 합니다
총탄이 터져 나갈 때
정당해야 함과 같이
똑같이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곳도
정당한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땅을 갈고
흙과 씨름하면서 씨를 뿌리고
하늘의 새들과
햇살 앞에서
모든 날들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랑의 포옹
103
억새풀은 피어날 걸세
남쪽 나라
피 묻은 자리 자리 마다에서
꽃이
피어날 걸세
피눈물 흘리던
엄마의 눈물 무덤에
파아랗게
풀꽃들이 돋아날 걸세
피멍 든 그 자리에서
웃음꽃 꽃봉오리
혁명으로 피어날 걸세
군홧발 지나간 자리
U.S.A-제국 칼빈 M1 총탄이
박혀 있는 그 자리에
그 자리에서
동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재잘거리며
놀고 곱게 피어나는
저 얼굴들은
102
그 땅 위에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서로 만나는
새로운 시작은
아름다운 창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05
한울산 사람들
- 나무와 들풀 산새와 냇물에 물어 보았더니
나는 피를 보았습니다
짤린 모가지도 보았습니다
무더기로 꼬꾸라진 시체를 보았습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손을 맞잡고
함께 쓰러져 있더이다
내가 바닷가엘 나아가 보았더니
조약돌은 조약돌마다
죽은 시체마냥 빗물에 씻겨 가고 있었습니다
한울산 허리
고사리 들판엘 올라갔더니
피 묻은 몸뚱아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사라봉 동굴 속엘 들어갔더니
제주 바다 파도 소리 듬뿍 들어와 있는
동굴 속에는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
그 아우성이 절규가 신음 소리가
쟁쟁히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104
혁명으로 화끈거릴 걸세
혁명은 피어나는 걸세
국방군이 묻혀 있는 돌비석 아래서도
아라리 오라리
갈라진 두 마을 성담 어귀에서도
억새풀 꽃은 다시
피어날 걸세
다시 피어나는 억새풀 꽃은
혁명으로 화끈거릴 걸세
제주 바다 출렁거림으로
생동하는 주인으로
바람 타는 섬
한울산만큼 떨쳐 일어설 걸세
다시 피어날 걸세
억새풀은
오늘도 내일도
바람에 휘일지라도
107
해골은 해골대로
해를 맞고 있었습니다
─천추를 두고 저주받을 패덕의 무리들은
역사의 휴양지와도 같은
낙원지를
선혈로 물들였고
핏물은 냇물을 이루고 있더이다
살인대와
숙청대장 놈들은
이곳에서
살인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죄없는 부인들마저 끌어다가
전신을 나체로 만들고
그들의 손발을 전주와 수목에 매어 달아
마치 짐승을 희롱하듯이
그들을 사격하고 있더이다
또
장검 돌격연습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더이다
106
볼목리와 서귀리 사이
서귀리와 토평리 사이
정방폭포
쌀오름
중학교 앞밭
선내, 베린 내, 사라봉 굴 속
주변오름, 가은이 마을, 정뜨르 비행장
한내, 올리소위, 전장내
터진 목
일출봉
조용한 아침의 나라
서귀포, 제주시, 성산리를 들어갔더니
모강지는 모강지대로
몸체는 몸체대로
팔은 팔 다리는 다리대로
선혈은 선혈대로
핏물은 핏물대로
뼈는 뼈대로
109
숯이 되어 버린 초가집들은
오래오래 함께 살아온 그 마을 집주인을 찾고 있더이다
내가 무덤엘 찾아갔더니
머리 짤린 몸체가 일어나서
내 목을 내라
내 목을 내라
손을 벌리고 있더이다
바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서풍이 몰고 간 자리에는
40년 침묵으로 숨 죽이며 살아왔다 하더이다
돌에게 물어 보았더니
산 돌이 되어
살아 있는 돌이 되어
다시 초가집 주춧돌이 되겠다 하더이다
내가 여인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남편
108
그렇게 연습해서는 실전에 옮겼고
부녀와 노인과 유년을 무고한 주민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총으로 난사하고
칼로써 전신을 찔러 죽이고 있더이다
피살된 시체는
산산조각이 나
그 떨어지는 살점
부서진 뼈마디가 폭포물 줄기와 함께 흘러내리고
폭포 속에서 일렁거리는 살덩어리는
물 밑바닥에서 언덕을 이루고
빨갛게 뿌려진 선지핏물은
시체와 함께 감돌면서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그 광경은
살벌한 처형장이었습니다
내가 불타 버린 한 마을로 들어섰더니
주춧돌만 즐번히 남아 있었고
111
처형도 산허리에 깊숙이 들어섰더니
제국의 얼굴은
깊숙이 숨어 있었고
그 땅 위에서
검은 개 노랑 개들이 거칠게 춤을 추고 있더이다
시체 보고 울지 말라 해도
까마귀는 휘휘
하늘을 날고
쓰러진 시체 위에서
눈망울을 쪼아대고 있더이다
시체 무덤,
눈물 무덤,
원한 무덤은
검은 작전에 의해서 형체 없이 메워지고 있더이다
제주섬
한울산
백록담
화산도를
110
우리 아들
우리 하르방
우리 할망
사랑하는 애인들을 빼앗아 갔다고
아이고 아이고
우리는 어떵 살라 하고
낫 들고 호미 들고
푸석진 땅을 찍으며
먼-산-한울산을
가리키며
가마니 거적에 둘둘 만
시체를 운반했다 하더이다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우리 순경 아저씨
우리 국군 아저씨는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어 보면서
무서운 표정 지으며
산으로 바다로 산산이
달아나 버리더이다
113
나무와 들풀과 산새와 냇물은
말하더이다
그리고 우리는─한울산 사람들은,
우리의 운명 개척하며 우리의 길 곧게 걸어가리라 하더이다
112
붉은 섬(Red Island)이라 하여
계획대로 총질을 칼질을
자행하고 있더이다
처형도를 만들어 가고 있더이다
제국-U.S.A는
내가 나무와 들풀
산새와 시냇물에게
물어 보았더니
처형도에서
살해된 자들의 후예들은 일어서리라고
나무는 동풍에 휘일지라도
들풀은 서풍에 짓밟힐지라도
산새는 실탄에 겨냥 될지라도
냇물은 탄약에 시련 당할지라도
나무로 집 짓고
들풀로 지붕을 이어
산새와 더불어 아침을 노래하고
냇물 마시며 자라서 이 땅의 후예들은
다시 일어서리라
제4부
한울산
117
한울산 ・ 1
젖가슴 밟고는 오를 수 없는 산
조상님네 숨결 소리 들으며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살아온
자들이
나무를 벗하고서야
풀잎을 안내자로 앞세우고서야
비로소
오를 수 있는 산
한울산
낫과 호미 벼리어 온 산
무기를 갈아 온 산
침략의 때에도
수탈의 때에도
119
한울산 ・ 3
동창을 열면
하늘의 섭리를 사철 나르며
하루의 기상을 알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운명선 가리켜 온 산
한울산
저녁 해 받으면
희망의 빛 발하는 산
지친 몸 쉬게 하는
피 묻어 온 땅
산
한울산
118
한울산 ・ 2
바람이 불면
구름이 날려 와
얼굴 가려도
천상으로 솟아나
바람 타는 섬사람들
영혼 지켜 주는 산
한울산
피난민의 안식처
121
한울산 ・ 5
우리가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 손으로 내지른 불에
타오르는 불기둥
뭉게뭉게 솟아나는 연기를 받아 내고
제국이 호령하는
소개 명령을 받고
우리가 우리 집
대숲에 불을 지를 때에도
우리의 약한 항거에
칼날을 세우게 하던 산
한울산
산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우리는 내일의 항전을
계획할 수 있었던 땅
120
한울산 ・ 4
총성이 요란해지고
우리들 사촌끼리
무딘 죽창을 깎아 세울 때에도
외할머니 품 안처럼
다소곳이 솟아나던 산
한울산
군경들의 호르락 소리
총격 소리 마을을 메울 때에도
우리를 품어 두던 산
한울산
우리들의 양식
평등하게 나눌 수 있었던 땅
123
한울산 ・ 7
부끄럼 한 점 없는 산
한울산
빈 몸으로 터덕거리며
오르던 산
거기에서 양식을 나를 줄 알고
얻은 양식 나누어 먹을 줄 아는
동지가 잉태되고
적은 누구이며
동지가 누구인지를
배우던 산
한울산
동지들이 고요히 눕고
풀이 되어 또 다시 일어서는
솟아나는 산
태고적 기류가
선과 악을 뒤덮고
생명 키워 온 산
한울산
122
한울산 ・ 6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파도결이 높아질
겨울날이면
먹이를 찾으러 떠난 동료들을 기다리며
늦저녁 별이 돋아날 때까지
우리들의 허기를 잊게 하고
드디어는
풀뿌리가 우리의 양식이 될 때에도
서로 나눔의 지혜를 가르쳐 온 산
한울산
새벽까지는
명령으로 지켜 깨어 있어야 하고
제국의 음모에
총검으로 달려든 원수는
시퍼렇게 처치돼야 하는 땅
125
한울산 ・ 9
진달래가 피어나고
메밀꽃이 피어나고
보리가 파랗게 일어나
바람 타며
자라나 우리들의 양식 키워 온 땅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잠녀들의 한숨을 담아 내고
먼저 가신 조상네의
제사상 차려 온
고사리 자라게 한 산
한울산
원수의 칼날 피하여
밤을 타고 발소리 죽이며
걸어가던
발자국 가득 파인 산
한울산
124
한울산 ・ 8
살기 위하여
살아 남기 위하여
오르던 산
남편의 시체를 찾고
무덤에 날흙 뿌리던 땅
한울산
원수의 심장에 칼을 꽂지 못했을지라도
남편의 피가 거름이 되고
남편의 살이 양식이 되고
풀이 되고
나무로 자라나
푸르름 솟아오르게 해온 땅
살기 위하여
원수의 총부리를 등 뒤로 하여
오르던 산
한울산
127
거름으로 하여
일어서는 억새풀이 솟아나는 땅
한울산
126
한울산 ・ 10
적들은 포위해 들어오고
몸 숨긴 자리 더욱 좁아져 올 때
더 이상은 배신할 수 없는
양심 떨리던 땅
한울산
어린것들을 숨기고
때 묻은 몸 먼저
과녁이 되던 곳
과녁이 되어
피 뿌리며
앞서간 동지의 길을 따르던 산
한울산
제국이 날려 보낸
기관총 건 헬리콥터가 날으며
무수한 반역의 삐라가 뿌려지고
반역의 찌꺼기를
129
한울산 ・ 12
눈이 내리고
온 천지가 새하얀 세상이 되었을 때
솔가지는 바람 타서
눈가루를 날리고
겨울 바다는 파도에 혼돈한데
우리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발길을 옮겼네
중산간 마을을 향해
아무런 인기척도
따슨 체온도 아직은 없는
눈 내리던 날
먼 데서 푸드득 날아오른
날짐승들도
총성에는 무서운지
아래로만 날으고
우리가 그려 온 이 땅에
새하얀 나라 꿈꾸며 살아온 산
128
한울산 ・ 11
우리더러 성담을 쌓아 올리라 할 때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누가 누구의 침략을 막아야 하고
누가 누구에게
총을 먼저 겨냥해야 하는가
서북청년단이 들어오고
경찰과
경비대가
총을 메고
호르락 소리 내지르며
우리 마을로 쳐들어 왔을 때
우리 손 모아 빌던 산
한울산
콩 볶듯이 총질은 멈추지 않고
몸을 피해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 멀어져 갈 때
우리 동지의 안전을 기도 드리던
산
한울산
131
한울산 ・ 13
총탄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이름 모를 형제를 업고
얼마를 당황했는지
마지막 숨소리를 듣기까지
빌고 다시 빌어 온 산
한울산
넋을 잃고 바라보던 산
안온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안아 주던
산
한울산
130
한울산에는
눈이 내리고・・・・・・
133
한울산 ・ 15
총을 겨누고 죽창을 메고서
살기 위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적을 겨냥하던 산
한울산
적을 쓰러뜨리고
우리가 쓰러지는 그때까지는
함께 양식을 나누던 산
한울산
격전지에서
적이 누구이며
동지가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 산
한울산
132
한울산 ・ 14
우리는 눈 덮인 산허리를 좁게 파고
따사로운 흙기운을 느끼며
한 구의 시체를
눈물 없이 묻고 난 후에야
긴 한숨을 내뿜던 산
한울산
우는 이도 없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가 골짜기로 돌아간 것은
저녁이었지
그때도 우리를 양팔로 감싸 주던 산
한울산
135
한울산 ・ 17
결정적 순간 순간마다
은혜롭게
가린 몸 숨길 수 있는 땅
훠이 훠이 긴 한숨 내쉴 수 있는
땅
한울산
멀리 서서 가깝게 포옹해 주는
산
한울산
마지막 순간
결단의 때를 예비해 둔 곳
한울산
그 결단의 때가 오면
미련도 남김없이 떠날 수 있는
산
한울산
134
한울산 ・ 16
양식은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그 양식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지
몇 날을 굶고 나면 우리는
모두가 모두에게 자유스럽고
평등해지며
총을 든 자 칼을 든 자들에게도
대포와 군함 전투기를 조종해 온
어떠한 이데올로기 전문가에게도
공평해지며
우리들의 한울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강림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땅
우리 모두가 평화로운 형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산
한울산
137
한울산 ・ 19
죽창에 찔린 아버지
젖먹이 아기를 감싸 안고
쓰러진 어머니가 묻혀 있는 산
서로가 원수 되어
맞총질하게 된 우리 모두가
종내는 돌아가야 할 곳
한울산
누구의 원격 조종에 의하여
동족은 살해되고
원격 조종자의 명령은
우리더러 과녁이 되라고
노예가 되라고
사철 음모가 만발해 온 곳
한울산
136
한울산 ・ 18
저 멀리서 들려 오는
비명 소리
산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씩 두 번씩은
자기를 살해해야 하는 산
창에 찔리고
총에 쓰러지는 비명 소리
무기를 들고 적 앞에 서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씩 두 번씩은
동지의 시체를 밟고 지나쳐야 하는 산
한울산
적군과 아군 사이에서 대치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쓰러져 죽어 간
같은 동네 같은 마을 형제의 얼굴쯤은
기억해야 하는 산
한울산
139
한울산 ・ 21
큰아들 작은 아들
큰딸을 데리고
총소리 들으며
총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산으로
살아 낸 시체
그을린 시체
창자 터진 몸
손발 꺾인 몸
돼지도 개도
밋밋이 쓰러진 산
벌겋게 타버린 돌담
짓밟힌 농토 위에는 잡초만 무성한 때
어머니께서 밤마다・・・・・・
오르시던 산
한울산
138
한울산 ・ 20
나란히 선 채로 쓰러지고
손 묶인 그대로 흙이 되어서
밭 가는 이들의 쟁기 가는 길을
보드랍게 예비해 놓은
피의 산
뼈의 산
한의 산
눈물 산
한울산
141
한울산 ・ 23
총소리가 들리면
밥상을 떠나야 한다
밭을 갈다가도
타작을 하다가도
서쪽에서 들리면
동쪽으로
동쪽에서 들리면
서쪽으로
몸을 피해야 하는 산
한울산
낮에는 아래쪽에서
총을 겨누면
아버지도 형님도 누나도 어머니도
죄가 없노라고
목숨만 살려 달라고
손을 비벼야 하는 산
밤에는 위쪽에서
총을 겨누면
140
한울산 ・ 22
송악산 토굴 속엔
시체들이 엉켜 있고
고림동 갯머리오름에서
임자 없는 무덤으로 흙이 되었고
까마귀왓
읍민회관 앞 밭에 묶여 서서
함께 쓰러진
이웃사촌
9촌 6촌
성님네들 힐긋힐긋
바라보던 산
한울산
143
밤을 새워야 하는 산
한울산
불에 타는 마을이 제 불길에 빛나는 산
한울산
산 아래 마을에서
운수 나쁘게
토벌대 군경에 발각된 사람은
반란군 게릴라 빨갱이로
즉결 처분되는 산
토벌대 군경은 배당된 공적을
세우기 위해
무고한 양민을
처형의 과녁으로 삼아 온 산
처형도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여도
142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삼촌도 고모도
가련한 눈빛으로
손을 비벼야 하는 산
밤에는 반동분자로
낮에는 역적 빨갱이로
피 흘려야 하는 산
한울산
푸른 제복 입은 군인들이 행렬을 짓고
긴 대빗자루에 불을 붙여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온 마을은 불길에 휩싸인다
사랑채도 별채도
외양간도 문간방도
불길에 휩싸인다
산으로 산으로
몸을 숨긴 어미와 애비는
어린것들을 품에 껴안고
145
한울산 ・ 24
1
거지 없고
도둑 없고
대문 없는 산
한울산
2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은 산
한울산
3
피 많고
시체 많고
눈물 많은 산
한울산
144
몸을 피해도
겨냥한 총구는 기어이
무고한 목숨 빼앗아 가던 산
한울산
147
한울산 ・ 25
- 봉개리 사람들
우리가 본 것은
학살 뿐
개 ・ 닭 ・ 돼지 ・ 소 ・ 말 ・ 사람 ・ 모두・・・・・・
우리가 만난 것은
죽창에 찔린 이웃 사람들뿐
명윤이 명옥이 명하
표길이 수영이 순이・・・・・・
우리가 놀란 것은
도망치는 동네 사람들 등 뒤에서
까닭없이 쏘아대는
경찰의 총
경비대의 총
서북청년단의 총
오만한 U.S.A 군병의 총뿐
총이란 총 모든 총
학살이란 학살 모든 학살도 삼킬 수 있는 산
한울산
146
4
기생 많고
투기 많고
수탈 많은 산
한울산
149
텅 빈 마을에 불을 지른 산
군경 합동 토벌대는
빨갱이 소탕작전을 펴고
동네 어귀에 내리는
따산 해 아래 모여 앉은 이웃들에게
총을 겨눈다
노랑개 검은 개 발톱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한울산 숲 속으로
몸을 피하면
등 뒤에서 사격이 개시되는 산
한울산
소각 마을 잿더미 위에는
집단으로 불에 탄 시체만이 널려 있고
살아 남기 위하여
배신까지도 삼켜야 하는 산
한울산
148
우리 땅을 우리 손으로
이 한마음 앞에
침략군이 떠나고
점령군이 상륙하고
침략군의 경찰화
단독정부 위한
선거인명부가 작성되는 산
젊은이들은
죽창을 만들고
무기는 무기로 입술 깨물며
한울산 사람이 되어
한울산 사람으로 죽어 가는 산
노랑 개
검은 개가 트럭을 타고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 사람들은
대나무 숲 속으로 몸을 숨긴다
군인들은
151
그들의 총구는
닭과 개를 향해 불을 뿜었고
그들은
젊은 여인들을 붙들어다가
욕을 보였고
그들에 대한 반항은
빨갱이로 되었지
생명을 보존하려면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 숨지 않으면 아니 되는 산
한울산
산, 산은 은신처이고
고향이고
다시 살아날 땅이었던 곳
한울산
150
한울산
아방 죽은 디 가서 죽어야겠다는 애정
해변에는 무서워서 못 가고
죽어도 어미・새끼 함께 죽어야겠다는
모정대로
굴이나 숲 속에서
무릎 맞대고
둘러 앉아 떨어 온 산
밤중에는 별빛 따라
마을로 내리고
산디* 씨를 지고 올라가
맷돌에 갈아 양식으로 삼아 온 산
한울산
모진 겨울 바람에 견딜 수 없어
산 아래로 내려온
이웃들은 재산자로 몰려
까닭없이 처형되는 산
*산디: 밭벼
153
한울산 ・ 27
- 교래리 사람들
사람만이 아니고
가축만이 아니고
집들만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죽음의 늪 속으로 빠져 버린
교래리
탕탕탕
총소리 터지고
불・불・불
처마에서 처마에서
타고 타고 타고
송씨네 할머니도 어머니도 누나도
김씨네 숙부도 큰 고모 작은고모도
고씨네 동생도 오빠도 아기도
12명이 되고 100명이 되고
하룻밤 한날 한시
타고 타고 불에 타고
하룻밤 한날 한시
152
한울산 ・ 26
- 도두리 사람들
무자년(戊子年)*의 모진 바람에
어디 있으랴
당하지 않은 부락
어머니와 누님 잃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구덩이에 포개진 시체더미에
열아홉 살 누님의 잘린 목
그대로였고
어느 날 버스에 실려 온
사람들
성담에 매달린 채 처형되었고
민보단 단원들은 낄낄대며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죽창질에
총칼질에
스러진 제주 넋들
다시 일어서야 할 산
한울산
*무자년: 1948.4.3. 제주 민족민중 해방항쟁의 해
155
한울산 ・ 28
- 명월리 사람들
세상사 잘 안다고 트집이 되어
죽어 간 사람들
명월리 사람들
애꿎은 사람들만 죽었다는
하동에서 서른아홉
중동에서 서른둘
상동에서 아흔아홉
밀고자도 살해자도
같은 땅에서 나서
같은 땅으로 돌아갈
죽은 시체 함께 장사 지낼
명월리 사람들
산사람들이라 하여
한울산 사람들이라 하여
몽땅 몽땅
처형했다네
미친 것들
154
벌겋게 타버린 산
한울산
157
한울산 ・ 29
- 하귀리 사람들
탕탕탕
뒤주 안에 숨었던
할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숨죽인 얼굴들
아기 업고
보따리 지고
오르고 또 오르던 산
한울산
생명 지켜 줄 곳으로 굳게
믿어 온 산
한울산
새끼 밴 돼지가
굶겠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시며
대문 닫는 삐걱임 소리
귀에 묻어 둔 채
오르고 또 오르던 산
한울산
156
서북청년단 군경 합동 총질에
미친 것들
U.S.A 병사의 작전 명령에
159
어머니가 밤낮으로
바라보는 산
한울산
거기엔 아들이 있고
남편의 온기가 뛰고 있다
158
한울산 ・ 30
- 엄쟁이* 사람들
자운당** 소나무 밭에는
밤에도 낮에도
피가 무릎까지 닿는
생피 냄새가 난다
한울산 영봉이 듬뿍 들어선
돌짝밭 모퉁이 모퉁이마다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고
학살의 총구와
개머리판으로의 구타와 린치는
하귀리까지
죽음 같은 아픔으로
바람 타고 날아온다
17,8세 아들들은
산으로 떠나고
아니면 처형길이다
어제도 오늘도
*엄쟁이: 구엄리, 신엄리, 중엄리
**자운당: 지역이름(구엄에서 애월 가는 사이)
161
한울산 ・ 32
- 도평리 사람들
명령에 따라
포위된 마을 사람들은
국민학교로 모이고
무릎을 꿇고
총소리가 터지고
사람들은 쓰러지고
예닐곱 명씩 묶인 채
외도지서 위 신작로 웃녘 밭
한 구덩이로 넘어뜨린다
사형의 법
학살의 총
살해의 칼
용서하지 않은 산
한울산
160
한울산 ・ 31
- 오도동 사람들
낮에는 복구사업에 동원
밤에는 성문 지키는 일에 동원
광평리에서도
월광리에서도
알 수 없는 총살
대를 끊는 총살
빗나간 총알을 원망하면서
살아온 산
한울산
육지놈 지서장이 독하고
산사람과 내통한다고
곤욕과 처형으로 이어진
밤과 낮
낮에도
밤에도
감히 오를 수 없는 산
한울산
163
한울산 ・ 34
- 오라리 사람들
해산의 고씨는
세상을 걱정했고
녹슬은 시대가 가고
새날을 열기 위해서는
피
피가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새날을 열기 위하여
고씨는 송씨에게 송씨는 강씨에게
강씨는 김씨에게 김씨는 박씨에게
피
피가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이씨에게 이씨는 부씨에게
피가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어우눌이 불타 버리자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입산
능하오름에 숨어서
등버세기굴에 숨어서
162
한울산 ・ 33
- 서우봉 낭떠러지
함덕 해변 하얀 모래밭은
뼈들의 색깔이다
서우봉 낭떠러지는 처형장
총소리가 그치면
첨벙 첨벙
떨어지는 시체 소리
물줄기는 시뻘겋게 타고
타는 해는
산을 삼키며 기울어져 가는 산
한울산
165
더운 피 흘리며 말하던 동무
쟁쟁히 가슴에 울리어 온다
동무야 잘 가거라, 원한의 길을”
164
한겨울을 보낸다
한울산 1천 미터 고지
능하오름 굴 속에서도
새날을 열기 위해서는
피
피가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씨가 현씨에게 현씨가 양씨에게
양씨가 양씨에게 현씨가 현씨에게
남자는 폭도로 죽고
여인들은 끌려만 갔네
오등동에 주둔 경비대 몰래
새날의 노래가 메아리치는 산
한울산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어라
깃발을 덮어 다오, 피에 젖은 깃발을
그 밑에 전사는 용감한 전사
167
해방의 작은 터 동굴은 함락되었고
대항하던 젊은이들은 살해
억수동 돌짝 길 위에는
20명 청년들이 싸늘하게 식어갔고
노란 개들이 지나가고
검은 개들의 호령이 끝나면
시집 갈 마을 처녀들
돌무더기 속에서 숨을 거둔다
억수동 바위 틈에선
동백꽃 무리
빠알갛게 피어나는
산
한울산
선흘리 사람들은
오른다 오른다
산으로 산으로
166
한울산 ・ 35
- 선흘리 사람들
동백 숲 펼친
붉은 가슴만으로 살아온 선흘리 사람들
신탁통치 반대
반대
소련군은 철수한다
U.S.A군도 철수하라
우리들은 반대한다
단독선거 단독정부
통일정부 왓샤 왓샤
양담배도 양과자도
피지 말라 사지 말라
선흘리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젊은 돌격대원들은 해방가를 부르고
어린이 노약자들은 두려움을 달랜다
마을 처녀들은 봉홧불을 지키고
조국의 새날을 노래 부른다
169
떠나가는 에미의 처형길로
따라 나선다
168
한울산 ・ 36
- 동복리 사람들
이름 모를 어린이들은
무덤도 없다
꽂이에 꿰인 채로
장정과 아낙네들은
선 채로 사살되었네
확인 사살은
의도대로다
대검에 찔린 108 시체가
12월 하늬바람에 빛 바래고
처형장으로 가는 에미를 따라 나선
어린 아이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가
산아 산아
한울산아
뼈 꺾인 마을 늙은이 몇이 나와
우는 아이 꾸겨 안고
171
산으로
산으로
한울산으로
170
한울산 ・ 37
- 조수리 사람들
싸이렌 소리가 나면
마을 사람들은
총 앞에서 과녁이 되고 만다
결혼을 이틀 앞두고
쓰러진 자들을 위해서는
결혼식에 장만한 음식으로
장례식에 온 동네 어른들의 허기를
달래야 한다
소개 명령을 받으면
3일 안으로
몸 숨길 거처지를 찾아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동네 어귀를 떠나면
집들은 불길에 휩싸인다
불길은 솟아나고
검정 연기는 산을 가린다
통곡 소리가 ‘유언’으로 엉키고 나면
방향 잃은 방향을 간다
173
나무와 조약돌
산
한울산뿐
내가 잘못 알고 대준 이름은
처형의 표적이 된다
172
한울산 ・ 38
- 감산리 사람들
토벌대는 마을 처녀를
겁탈하고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울음 터지기 전에
총을 쏜다
감산리 향사가 불에 타고
급하게 밥상을 차리라는
토벌군의 명령에는 이미
사형 선고가 포함되어 있었다
감산리에 내리는 공포는
언제나 모슬포에 주둔하고 있는
토벌대의 총구에서 시작된다
발포의 이유는
누구에게나
‘빨갱이’
지켜보고 있는 자는
하늘과 땅
175
선무공작이 시작되고
소개령이 풀리면서
성담은 높아지기 시작한다
우리를 분리하는 성담은
폭이 넓고
키가 높아만 가는데도
산
한울산은 성담 안에도
밖에도
넓게 깊게 높게 들어와서
하나 되라 하네
성담을 허물라 하네
총칼 죽창을 버리라 하네
제국-U.S.A의 음모를
지우라 하네
서북청년단의 죽창
이승만의 빨갱이몰이 정책을
버리라 하네
174
한울산 ・ 39
- 가시리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마을에는 저녁 햇살이
너무도 환하게 빛나고
산은 더욱 가깝게
한울산은,
363호의 집들이
불에 타고 재로 폭삭 내려앉은 날
산은 더욱 조용히 내리고
한울산은,
새벽부터 총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버들못’ 부근에서
쓰러져 가는 동포들은
밤도 자기 밤이 아니다
낮도 자기 낮이 아니다
한울산이여!
발하라 응징의 불길을
177
한울산 ・ 40
- 북촌리 사람들
1949년 음력 1월 17일
구좌면 세화리 주둔 제2연대
3대대 9중대의 학살작전은
함덕 해변 서우봉 기슭에서
노인들 사살에서부터 시작된다
2개 소대는 북촌리 주민을
국민학교 마당으로 집결시킨다
경비군은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한다
경비군은
학교 서쪽 밭 남쪽 밭에서
1차 2차 3차
무차별 총살
죄 없으니 죽어도 떳떳이 죽겠다며
제각기 산으로 사형장으로 떠나던
북촌리 사람들
총살된 사람들은 모두 400명은
500명은 아니 600명은 넘는다는
176
산
한울산은
우람하게 높이 솟아
총과 칼
제국의 음모를 버리라 하네
179
군인들의 구둣발 소리가
와당탕
들려오고
총소리가 가까이 오면
산으로 산으로
몸을 피하고
지붕에 불을 지르고
솟아나는 연기를 타고
목숨 끌고 집을 나오면
뛰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아 댄다
타는 연기
생명을 태우는 연기는
산
한울산을 가리고
불기둥이 사그라질 때까지
세상은 온통
쥐 죽은 듯한 죽음의 밤으로
고요를 지킨다
178
북촌리 사람들
300호에 남자가 4명쯤 남았다는
북촌리 사람들
이씨네는 며느리까지 6명
한씨네도
태식이네도
일곱 살짜리 딸 열다섯 짜리 딸
40대 부부도 할머니도 처조부모도
처부의 동생들도 다 잃어버린 오씨네도
죽은 자는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다시 살아나고
죽인 자는 충혼비로 흙이 되고 재가 된
북촌리 사람들 뼈 위에 버젓이 서 있는
천구백사십구년
살육의 현장
북촌 국민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데
총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181
한울산 ・ 41
- 토산리 사람들
글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토산리 사람들이
척박한 한울산 허리 조각 땅 일궈
보리 조 콩 산디 씨 뿌려
오순도순 살아온 순박한 농민들이
사상이 뭔지도 모른 채
한울산을 벗 삼아
아들 딸 키워
조상 섬기며 살아온
토산리 사람들이
음력 1948년 11월 12일
바닷가 마을로 소개하라 명령 받고
부산한 주민들을
향사에 집결시키고
18세 이상 40세까지 분리하여
포박한 채로
끌고 가더니
표선 백사장으로 끌고 가더니
광폭한 군인 한 사나이의 명령에 따라
총으로 폭살하고
180
아침이 되어서야
푸식 푸식 꺼지는
잿더미 위로
아침 해는
산
한울산을 끼고 솟아난다
산도 솟아
해와 산
제주 바다는
창조의 질서를 회복한다
183
한울산 ・ 42
- 신촌리 사람들
경찰댄가 그 사람 피쟁이
서북청년단인가 그 사람 백정한테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 채로
죽어 간
신촌리 사람들
우린 어떵허영 살랭
우린 어떵허영 살랭
동네 어귀를 차단하고
피할 길 먼저 포위하고
처형하고
구덩이에
서북청년단의 씨를 몸에 받아
낳아서라도 그 종자 죽여서
꼭 복수해야지 하는 마음 서린
신촌리 사람들
밤
182
창으로 도륙하네
스러진 시체가 157여 위
백사장은 피바다요
울음 소리 천지 진동
살아 남은 노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 잃은 과부
임신한 젊은 어머니, 강보에 싸인 어린이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집 없고
먹을 것 없는
폐허의 땅
타버린 집터 위에는 주춧돌만이 널려 있고
고요한 산
한울산만이 높게 솟아나는
한 많고 설움 많은 땅
토산리
그 사람들
185
먹을 거라도
곡식 같은 것 빨리 안 내주면
그냥 죽여 버리던 땅
산
한울산 신촌리
옛날에 잘못했으니까 죽었지
일이 있으니까 죽었지・・・・・・
조롱당하며 까닭없이 죽어간 사람들
신촌리 사람들
과부 심정 과부 안다
아이고 그래
살다 보면 살아진다
딸도 믿으면 살아진다
아들들도 믿으면 살아진다
이 아이들 있으면 살아진다
원통해도 어떵허느냐
위로하며 위로하며
달래 주며 달래 주며
184
돌짝밭에 늙은이고 젊은이고
기관총을 설치하고
단번에 죽여 버리려고
와장창 죽여 버리려고
이덕구네 각시도 아들도
아버지도 사촌 형도 모두 이곳에서
아침에 봤던 얼굴
저녁에는 다시 볼 수 없었던
산
한울산
잘난 사람 살아도
못난 것들은 다 죽어간 땅
산
한울산
신촌리 사람들
무남촌 사람들
서북청년 그놈들이
187
한울산 ・ 43
- 이쿠노구* 제주 사람들
먼 산
차마 돌아갈 수 없는 산
바람 소리에도
총성이 들리고
발자국 소리에도
죽창 끝이 다가오는 산
먼 길
어느 날 느닷없는 기별이
처형의 명령으로
두려운
차마 잊을 수 없는
그러면서도 끝내 오를 수 없는
산
한울산
일가친척 몰살에
배를 타고
바다로 뛰어들던 날
186
더불어 살아온 한 세상
산 ・ 산 ・ 산
한울산만이 알고 있는
한 맺힌 이 땅에 이 사람들
신촌리 사람들
189
한울산 ・ 44
- 관덕정(觀德停)
U.S.A 군정청을 내다보면서
피를 먹고
피에 찌든 집
삼다도 삼무도의 역사를 지키면서
4・3의 피에 놀라던
주춧돌 많은 처형도
화산 속으로 다듬어진 집
한울산을 머리에 쓰고 앉아서
4・3의 피를 먹고
피에 찌든 집
빠알갛게 피어나는
협죽도 꽃을 안고서도
4・3의 피 한 방울 막을 수 없었던 집
총살형으로 쓰러져 간
연약한 목숨 품을 수 없었던 집
구경거리가 되면서
좀먹어 가는 집
188
잊을 수 없는 산
차마 돌아갈 수 없는
산
한울산
*生野區. 猪飼野(이까이노)
191
한울산 ・ 45
- 표선 백사장
먼 곳에서 보아도
몸서리 쳐지는
백사장
부모 형제 이웃들이
참혹하게 처형 당한
피바다의 뼛가루
흰 모래알 모래알은
민속촌이 들어서고
해수욕장이 개설되어
발전된다고 해도
돈 많은 육지 것들 음탕의 찌꺼기를
씻어 낼 바다
표선 백사장
토산리 사람이라면
감히 갈 수 없는 넘볼 수 없는
부모 형제 이웃들 목숨 빼앗아 간
처형한
190
숨어서 기어이 목숨 지키려던
젊은 발걸음을 수색하던 자들에게
밤낮없이
방향 표식이 되어 주었던 집
우리들 젊은 동지들에게
한 번도 단 한 번도
편안한 잠자리가 되어 주지 못했던 집
더운 밥 서로 나누는 자리가 되어 주지 못한
빈 집, 허망하게 큰 집
돈과 카리 왕 노릇 하는 이 세상에
헌 것이 값나가는 골동품으로
칼날이 방향을 가리키는 표식품으로
서리 낀 날에도
피를 먹고
피에 찌든 집
관덕정
법원 앞에 우뚝 선
빈 집
193
한울산 ・ 46
- 정방폭포
폭포가 핏물이 되어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을 나른다
펑펑펑 쏟아 내는
폭포의 물줄기는
잔인한 마지막 확인 사살이다
둥둥둥 떠내려가는
시체들
건져 낼 용사 아무도 없는
텅─ 비인 산
한울산
학살의 피를 씻어 내던
폭포
정방이여
그대는 아는가
그때 그 사람들
그 이름들
제국의 칼에
192
학살에 떨며 내지른 비명 소리 잠겨 있는
하얀 모래밭
표선 백사장
195
한울산 ・ 47
- 함덕 해수욕장
파도 씻긴 해골들이
물결 타고
해변으로 올라오는 곳
피는 피대로 바닷물이 되고
살은 살대로 고깃밥이 되어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곳
지금은 육지 사람들 음욕의 너털웃음 소리로
가득 메워진
하얀 모래밭
함덕 해수욕장
194
총에 쓰러져 간
그때 그 사람들 그 이름 아는가
197
아침 햇살은
용서로만 가로 덮더이다
성산 일출봉에 해 뜨거든
이름 석 자 불러 주오
총칼에 스러져 간
애인들의 이름을
196
한울산 ・ 48
- 성산 일출봉
피로 물든 산은
아침 햇살에
가슴을 드러낸다
고운 가슴 풍만한 가슴이 아니다
싸늘하게
찢어진 가슴
총에 구멍 난 가슴
창에 찔리운 가슴
이 아침까지 끝내 가는 숨결 지켜 온
가슴은 고요하게
출렁거리고 있을 때에도
아침 햇살은
응징을 모르더이다
이른 새벽 연인들은
산을 오르고
한 뼘 반 삼베 조각으로
죽어 간 애인들의 뜬 눈 덮을 때에도
199
生野區(이쿠노구). 猪飼野(이카이노)생명을 팔아 넘기는 문이
되는
정뜨르 비행장
198
한울산 ・ 49
- 정뜨르 비행장*
제국의 총칼이 먼저 내리고
작전 명령이 처음 발해진 곳
거기는 해방의 젖줄을 급히
탐지하려는 정찰기가 먼저 내려온 곳
제국의 군화 소리 울려 퍼지면
처형의 씨를 뿌리고
형틀을 꿈꾸며
제국의 병사들이
산
한울산을 빨갛게 색칠하기 시작한 곳
정뜨르 비행장
침략이 시작되고
일체를 용서하고
마음 곧은
한울산의 자손들을 처형하던 곳
서북청년단 경찰이 들어오고
경비대가 들어와서
처형의 문이 되고
착취물을 나르는 문이되고
*현재 제주 국제공항
201
유언 3
“네놈들이 우리를
죽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혁명의 불길을
아무런 힘으로도 막지 못한다”
(박남섭의 마지막 말)
유언 4
“경찰의 폭행과
폭도 등살에 못살겠으니
차라리
산 속으로
아들과 남편을 찾아서
또는
하루라도 들볶이지 않고 살다가
죽고저
산으로 가야 하겠다”
(4・3 당시 어느 제주 아녀자의 말)
200
한울산 ・ 50
- 마지막 말 한마디
유언 1
“너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가?
무엇 때문에
U.S.A 살인귀들이 총마개로 되는가?
오늘 네놈들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밝아 오는 조국의
아침 햇살을
쇠사슬에 묶어 둘 수는
없다”
(문상길 중위와 3명의 공범 병사의 마지막 말)
유언 2
“돔베 위에 오른 고기
칼 맛 보지 않겠느냐”
(제주도 경찰서 무전기사 이○○씨의 마지막 말)
203
한울산 ・ 51
- 토산리 4・3 사건 실상기
역사의 흐름 속에 악몽에 시달리던 왜정 36년의 학정에서
벗어나 조국은 해방을 맞이했으나 민주・공산의 양대 사상전으
로 온 국민은 공포와 갈등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불안에
떨었고 국토는 분단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면서 남해 고도
인 제주도에는 몸서리쳐지는 4・3사건이 돌발하여 우리 고장
토산리에는 천추의 한을 남겼습니다.
우리 고장은 제주도 동남단에 위치한 촌락으로서 100여 가
구가 농업을 생업으로 하여 살고 있는데, 4・3사건 당시만 해도
국민학교 졸업생이 얼마 안 되었고 순박한 농민들이어서 사
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철부지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에서
보초를 서라면 서고, 북쪽에서 총소리나 고함소리가 나면 남
으로 뛰고, 남쪽에서 총소리가 나면 북쪽으로 뛰면서 동분서
주하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포에 떨면서 살고 죽는 것이
촌각에 달린 것 같은 순간순간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 마을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
우기 시작하여 서기 1948년 음력 11월 12일 중산촌(토산리)에
거주하는 이민은 바닷가에 위치한 토산2리로 전부 철거하라
는 명령에 의하여 일제히 이주를 시작하여 오막살이나 소 외
202
제문
아, 슬프도다. 하루 아침 이슬같이 사라진 여러 어르신님,
저 세상에 가신 지 어느새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비록 이제야
저 세상에 가서 여러 어르신님들의 그날의 비몽과 넋을 기리
며 글로 엮어 두고자 합니다.
비록 세월은 지났다 하지만 그때 그날만은 잊지 않고 명복
을 비오며, 저 세상에 가셔서도 영 혼으로서 저희들 후손의 앞
날을 밝게 인도해 주시고 부귀영화 하도록 이끌어 주시옵고
극락 세계에 가시도록 저희 후손들은 두 손 모아 영혼님 앞에
머리 숙여 비옵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 고이, 안녕히 잠드소
서! 원수에게는 천벌을, 선행자에게는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해주시 기를 기원합니다.
(1978년 5월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조수리 戊子年 희생자
유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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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 메말라 버린 노부모에게 모진 생명을 버리지 못하고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면, 강보에 싸인 어린 자식이나 손자에게
몸과 생애를 걸어, 70 노구에도 밭을 갈고 김을 매면서 끝없는
한숨을 쉬어야 했으니 이 기구한 운명을 걸고 죽는 순간까지
살아야 했던 우리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한이 죽은 자보
다 더 고되고 아픈 첫 번째 한이요, 하늘과 같은 남편을 뜻밖
에 잃고 뼈를 깎는 아픔 속에 노부모를 모시고 어린 자식을 뙤
약볕이 내리쬐는 밭머리에 누이고 김을 매면서 심장이 멈추
는 듯한 공포와 피를 토하는 아픔을 참아야 했던 우리 어머님
들의 삶이 두 번째 한이요, 재롱을 부리고 어리광이나 하며 학
교에 가고 뛰어놀며 정상적인 성장을 해야 할 10대 소년이 학
교나 놀이터 대신 소를 몰아 땀을 흘리고 몸과 마음을 떨면서
밭을 갈아야 하는 엄청난 고행의 농군이 되고 배움의 길을 잃
거나 정상 교육을 받지 못하여 전 생애의 울분을 참고 극복해
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 안고 있는 세 번째의 한이요, 어
느 땅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하듯이 청장년층이 없고 또 힘도
없어 생계가 막연하고 가난했으므로 주위에서의 질시와 수모
그리고 갖은 치욕을 한없이 받아왔던 것이 네 번째의 한이요,
현재 표선 백사장은 대규모의 제주 민속촌이 들어서고 해수
욕장이 개설되어 모든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고 흡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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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간 등 닥치는 대로 빌리고 빌려주고 해서 2개 부락이었던
토산 1・2리가 순식간에 1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세상을 원망하
고 한숨만 짓고 있었는데 서기 1948년 11월 14일 17시, 당시
표선에 주둔했던 제9연대와 부수 대원들이 부락에 들이닥쳐
리민들을 향사(리 사무소)에 집합 시키고 그중 18세 이상 40
세까지 분리하여 밧줄로 포박하고 표선 백사장으로 끌고 가
서 죄의 유무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광폭한 군인 한 사나이
의 명령에 따라 무참하게 총으로 폭살하고 창으로 도육(屠肉)
하였으니 표선 백사장은 피바다가 되고 진동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울리며 우리 고장의 비극을 알렸고, 우리 청장년 모두
의 죽음은 한에 한을 이으면서 영원히 삭일 수 없는 멍울로 남
았습니다.
이처럼 청장년이 모조리 몰살당한 이 고장의 참혹상과 가공
할 운명 속에서 죽음의 아픔보다 더한 아픔을 겪어야 했고 또
겪으면서 살아온 노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을 잃은 과
부, 유복자로부터 강보에 싸인 어린애 그리고 10세 미만의 어
린이 등 불쌍하고 가련한 생명들이 집 없고 먹을 것도 없다시
피 한 폐허의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어떻게 글로써
전부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잃고 한숨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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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한으로 연계시키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주도 4・3사건 발발 이후 근 반세기가 흘러서 정부도 수차
례 바뀌었고, ‘모조리 죽여라’하는 한 마디 명령으로 2백여 가
구에 157여 위의 운명을 죽음과 비탄의 소굴로 몰아넣어 직접
적으로 백 년의 한을, 간접적으로는 천년의 한을 남기게 한 광
폭한 군인도 이제는 지옥으로 갔겠지마는, 이 나라의 군인이
한 지역 사회를 죽음과 파멸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 사실이라
면 국가는 이제라도 제주도 4・3사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풀어 줄 것은 풀어주고 해서 최소한도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유족에게 위로와 보상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입니다.
또 우리 부락처럼 전도적으로도 집단 학살이라는 최상의 가
혹한 피해를 입은 지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제주도 4・3
사건은 부분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처지와 비슷하게 억울
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도민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정부 당국은 거도적으로 제주도 4・3
사건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여 정치적 인도적 양심과 법적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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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마는 우리 피해
자들은 그곳 백사장을 먼 곳에서만 보아도 몸서리가 쳐지고
우리 부모 형제가 참혹하게 갔던 곳으로 천륜의 아픔을 뼈저
리게 삼키면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다섯 번째의 한
이요, 젊은 한 세대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음 세대가 정상적으
로 이어지지를 않아 가문의 유지와 지역발전에도 인적자원이
크게 모자라는 것이 여섯 번째의 한입니다.
지금까지 집단 몰살당한 한의 일부분을 열거했을 뿐, 크고
작게 속속들이 쌓이고 서리었던 지난날의 괴로움과 오늘도 잔
재하고 있는 수많은 한을 어떻게 지면을 통해서 글로써 전부
기재할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꼭 밝히고 호소하고자 하
는 것은 표선 백사장에서 학살당하여 돌아가신 우리 선배 157
여 위께서는 사상을 알고 판단하여 주도할 만한 지적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순진하고 실질적으로 방화나 파괴행위를
하지 않은 너무나 무고한 양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법자라는 낙인을 찍고 후대의 전도(前
途)에까지 지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면 이것은 수없이 많은 한
을 안고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설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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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산 ・ 52
- 동지의 길
마을에서 마을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배고픔 달래며
학생들은 연락원이 되고
처녀들은 간호사가 되어
잡혀서 묶인 몸이 된 선생님들도
가설 수용소에서 다시 만나면
눈물 겨운 온정으로 단결된 몸이 되어
우리는 처형장으로 서로 떠나야 하고
우리는 철창으로 서로 떠나야 하고
우리는 원수로 서로 떠나야 한다
남쪽 산에서 북쪽 산으로
서쪽 길에서 동쪽 길가로
죽은 시체 찾으려고
할머니네는 묏자리를 더듬고
할아버지는 삽질을 해야 한다
젖먹이는 울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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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해 주시기를 몰살당한 유가족 연명
으로 강력히 호소합니다.
(1987년 여름・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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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을
달콤한 첫사랑의 순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승리를 설정하지 않았고
확장되는 해방사에
한 줌의 흙이 되기로 한다
한 줌의 흙이 되기로 한다
상부의 지령이 우리를
산으로 가게 하지 않았고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낮도 무섭고
밤도 무서운
이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무기를 선택한다
모든 총포를 거부하기 위하여
우리는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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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등에서 자는 아기와 함께
용서없이 밤길을 달려야 하고
아버지는 원수를 향해
예리한 무기 날쌔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밤배를 탈 줄 알아야 하고
쌓아 둔 양식을 얻기 위하여
부잣집 창고쯤은 더듬을 줄 알아야 한다
동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고문에 못 이겨
찢어지는 살덩이와
부러지는 뼈마디 사이에서
열두 번의 배신쯤은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가슴 아픈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내면서도
함께 울 수도 있어야 하며
함께 떠나든지
아니면 함께 살해되는 순간
212
선택한다
한울산을
우리들의 유일한 살림의 터
한울산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