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사건일지/경과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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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 3. 1 제주민전 주최 제28주년 3·1절 기념식 개최. 응원경찰의 발포로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주민 6명 사망, 8명 중경상을 당하는 ‘3·1사건’ 발생
    • 3. 5 ‘제주도 3·1사건대책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투쟁위원회’ 결성
    • 3. 7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각 읍·면위원회에 ‘3·1사건 대책 투쟁에 대하여’ 지령서 하달
    • 3. 8 3·1사건 조사를 위해 미군정청·주조선미육군사령부 합동조사단(단장 카스티어 대령) 내도
    • 3.10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3·1사건에 항의하는 민·관 총파업 돌입. 13일까지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단체에서 파업에 가세
    • 3.12 경무부 최경진 차장, 제주파업 사태 언급하면서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
    • 3.14
      •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파업진상 조사차 내도. 포고문 발표
      • 우도 민청원들, 우도경찰관파견소 간판을 파괴하고 소각
      • 박경훈 제주도지사, 스타우드 제주도 군정장관에게 사직서 제출
    • 3.15
      • 전남경찰 122명, 전북경찰 100명 등 응원경찰 222명 제주도 도착
      • 조병옥 경무부장, 파업주모자들을 검거하라는 명령 하달
    • 3월중순 미군 CIC 제주사무소 설치
    • 3.16 제주경찰감찰청내에 본토 출신 경관들을 중심으로 특별수사과(과장 이호) 설치. 파업 직장의 간부급 연행하여 취조
    • 3.17 중문지서 응원경찰대,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군중에 발포해 주민 8명 부상
    • 3.18
      • 경기경찰 99명 제주도 도착. 응원경찰 총 421명으로 증가
      • 강인수 제주경찰감찰청장, “3·1사건으로 검속된 사람은 200명 가량”이라고 발표
    • 3.20
      • 조병옥 경무부장, 3·1사건 진상조사 담화에서 “제1구경찰서에서 발포한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도립병원 앞에서의 발포행위는 무사려한 행위로 인정한다”고 발표
      • 미군정보팀, “제주의 총파업에는 좌·우익이 공히 참가하고 있으며, 제주도민 70%가 좌익단체 동조자”라고 보고
    • 3.22 남로당, 전국적으로 24시간 파업인 ‘3·22 총파업’ 전개
    • 3.24 독직사건 관련 신우균 전 제주감찰청장에 대해 경무부 사문위원회에서 파면 결정
    • 3.26 교원들의 잇단 검거에 제주북교 학부모들 구속교원 석방 요구
    • 3.28 경무부, “파업선동자 전국에서 2,176명 검거, 제주는 230명”이라고 발표
    • 3.31 제주도 산업국장 임관호 등 제주도청 간부 10여 명 검속
    • 4. 1 조병옥 경무부장, 파업사건에 가담한 제주 경찰관 66명에 대해 징계파면했다고 발표
    • 4. 2 제주도 군정장관에 베로스 중령 부임
    • 4.10
      • 제주도지사에 전북출신 유해진 발령
      • 제주경찰감찰청, 파업 검속자는 500명에 이르며 이중 260명을 군정재판에 회부했다고 발표
    • 4.28
      • 응원경찰대의 교체병력으로 철도경찰 245명을 제주 경찰에 배속. 제주경찰 정원 500명으로 증원됨
      • 제9연대장 장창국 소령 명의로 제주신보에 “국방경비대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라고 표명한 「국방경비대 모병」광고 게재
    • 5. 6 제주검찰청, “경찰감찰청으로부터 송치된 3·1사건 피고는 328명”이라고 발표
    • 5. 7 응원경찰대 400여 명, 제주에서 철수
    • 5.21
      •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 제9연대장 장창국 후임으로 이치업 소령 취임
    • 5.23 3·1사건 관련 재판에 회부된 328명에 대한 공판 완결. 체형 52명, 집행유예 52명, 벌금형 56명, 나머지 168명은 기소유예 및 불기소 처분
    • 5.24 강동효 제1구경찰서장 수뢰사건으로 해임
    • 5.26 피의자 고문사건으로 한림지서장·차석 등 경찰관 2명 구속
    • 6. 1 경찰, 삐라살포 혐의로 제주읍내 중학생 20명 검속
    • 6. 2 제주여중 3학년생, 파시즘교육 반대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 6. 6 구좌면 종달리에서 민청 집회를 단속하던 경찰관 3명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한 세칭 ‘6·6사건’ 발생
    • 6.16 제주 경찰, “종달리 사건 수배자가 71명에 이른다”고 발표
    • 6.18 삐라를 붙인 혐의로 기소된 교원양성소·조천중학원 학생 10명에 체형 등 언도
    • 6.20 여러 마을 청년들, 삐라 살포혐의로 재판에 회부됨
    • 6.22 제주신보, ‘3·1사건 희생자 유가족 조위금’이 31만 7,118원에 이른다고 보도
    • 7월 제주도 민전(의장 현경호) 제주도에 단체등록, 재발족
    • 7. 3 삐라사건으로 집행유예 판결받은 학생이 퇴학처분을 당하자 제주농업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에 반발, 농성
    • 7.14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청장회의 참석 후 “제주도만은 좌우가 손을 잡고 나가도록 합작운동에 노력할 심산”이라 피력
    • 7.18 전 제주도지사 박경훈, 제주도 민전 의장에 추대
    • 7.19 근로인민당 당수 여운형 암살 당함
    • 7.28 제주도 군정장관 베로스 중령, “좌·우익의 정당을 물론하고 그 관계자가 관공리 직원으로 취직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라고 표명
    • 7월말 한림면 명월리에서 하곡수집을 거부하는 농민들과 우익청년 단체원간에 충돌
    • 8. 7
      • 제주에서 ‘미군을 축출하자’는 반미 삐라 나돎
      • 제주 CIC, “극우파 제주도지사는 좌익분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그의 암살을 요구하는 삐라가 여러 장 뿌려졌다”고 보고
    • 8. 8 안덕면 동광리에서 보리수매 독려차 마을을 방문했던 관리들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함
    • 8.12 미군정, ‘8·15폭동음모사건’과 관련해 좌파세력에 대한 대규모 검거작전 개시. 전국 검속자 1만 3,769명
    • 8.13 조천면 북촌리에서 경찰이 삐라를 붙이는 소년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발포해 주민 3명에 총상
    • 8.14 제주 경찰, ‘8·15폭동음모’와 관련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 전 제주도지사를 비롯, 도청 간부·사회인사 등 20여 명 체포
    • 8.17 ‘8·15폭동음모’와 관련 검속됐던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 등 석방
    • 8.19 제주도 전역에 곡물수집 반대 삐라 살포됨
    • 8.28 유해진 도지사, 사상문제를 이유로 이관석 학무과장 등 도 과장급 4명을 권고 사직시키는 것을 시발로 인사정비 착수
    • 8.31 하곡 전체수집률 67.6%, 제주도는 13.7% 불과
    • 9. 7 제주도 식량사무소장 박태훈, 자택에서 정체불명의 청년들로부터 테러 당함. 서청단원의 소행으로 밝혀짐
    • 9. 8 전 제주도 민전 의장 현경호 제주중 교장의 집을 감찰청 직원을 사칭한 청년이 습격. 제주 CIC의 조사 결과 서청 단원의 소행으로 밝혀짐
    • 9.17 제2차 미소공위 결렬. 미국, 한반도문제 UN에 상정
    • 9.21 22개의 우익청년단체가 통합, 대동청년단 발족
    • 9.27 제주경찰감찰청 수사과, 불온서류 발각됐다며 생필품영단 직원과 제주농업학교·제주중 교사 등 36명 검속
    • 10. 6 제주지법, 3·1절 집회를 주도했던 전 제주도 민전 의장 안세훈에 집행유예 선고
    • 10. 7 구좌면 행원리에서 대청 단원과 지방청년이 충돌. 대청원 5명과 지방청년 11명 체포
    • 10.18 경찰후원회(회장 홍순용) 결성
    • 10.19 제주 CIC, “당원확장 운동을 하던 대동청년단 단원들, 제주도 동쪽끝 마을에서 테러행위. CIC에서 조사중”이라고 보고
    • 10.21 독청·광청으로 양분된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단부 통합하기로 합의
    • 10.24 제주 CIC, “최근 대동청년단의 통합은 ‘우리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을 상부에 보고
    • 11. 2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발족
    • 11. 3
      • 딘 소장 제3대 주한미군 군정장관으로 취임
      •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사설단체의 불법 기부강요 행위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면서 경고문 발표
    • 11. 5 통행금지 시간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로 변경
    • 11.12 미군정청 특별감찰관 넬슨 중령, 제주도지사 유해진에 대한 특별감찰에 착수. 이 조사는 1948년 2월 28일까지 실시.
    • 11.14 UN총회, 한반도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안 통과
    • 11.18 제주 CIC, “서북청년회 지도자, 제주도에서 자금모금을 위한 광범위한 테러행위에 대해 경고를 받고 CIC에 사과했다”고 보고
    • 11.21 제주군정청 법무관 스티븐슨, 제주 CIC 대표 메리트, “유해진 지사가 우익집회를 제외한 어떤 집회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서를 특별감찰반에 제출
    • 11.25 서북청년회 제주도단장이 ‘제주도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말해 왔다고 제주 CIC가 상부에 보고
    • 11.26 딘 군정장관 제주도 시찰차 내도. 28일 귀경
    • 12. 3 베로스 중령 후임으로 맨스필드 중령이 제주도 군정장관으로 부임
    • 12. 7 제주 CIC, “경찰 당국이 제주도 경찰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상부에 보고
    • 12.26 제주도 추곡수매 실적 11%로 전국(84.5%)에서 가장 부진
1948년
    • 1. 8 UN한국임시위원단 서울 도착
    • 1월중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조직부 연락책 경찰에 검거. 조직책의 전향으로 남로당 제주도당의 조직 체계도가 노출됨
    • 1.22 제주 CIC, “제주경찰이 신촌리에서 열린 남로당 조천지부 불법회의장을 급습, 106명을 검거하고 폭동지령 문건 등을 압수했다”고 보고
    • 1.26 1월 22일 체포된 106명 외에 추가로 115명이 체포됨. 제주 CIC, “연행자 221명 중에서 63명을 방면했는데, 그들은 남로당 당원이었다”고 보고
    • 1.30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1·22 검거사건’과 관련 “경찰은 남로당에 가입한 자를 탄압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비합법적 행동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라고 발표
    • 2. 1 9연대장 이치업 중령 후임으로 부연대장 김익렬 소령 임명
    • 2. 7
      • 전국에 비상경계
      • 좌파세력,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전국적 총파업으로 몰고 간 ‘2·7투쟁’ 전개
    • 2. 8 조천면 함덕리에서 청년들이 도로차단 후 담을 치우려 하던 도청 자동차 운전사와 충돌. 긴급출동한 경찰이 청년 12명을 체포
    • 2. 9
      • 안덕면 사계리 청년들, 마을에서 술마시던 경찰관 2명을 집단구타
      • 저지지서, 청년들에 의해 피습당함
    • 2.10
      • 조병옥 경무부장, ‘2·7폭동’으로 전국적으로 39명이 사망했으며 8,479명이 검거됐다고 발표
      • 고산지서 경찰이 시위하던 군중에게 발포, 주민 1명 중상
    • 2.11 제주경찰, ‘2·7사건’여파로 제주에서 방화 1건, 테러 9건, 시위 19건이 발생했다고 발표. 3일 동안 290명 체포
    • 2.26 UN임시총회에서 “UN한국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하자”라는 미국안 채택
    • 2월말 남로당 제주도당 임원들의 ‘신촌회의’에서 강·온파의 논쟁 끝에 12대 7로 무장투쟁 방침이 결정됨
    • 3. 6 조천지서에서 취조를 받던 조천중학원생 김용철 고문치사
    • 3.10
      • 조천중학원 학생들과 주민들, 지서에 몰려가 고문치사 사건 항의 시위
      • 성산면 관내 청년 66명, 남로당을 탈퇴해 대동청년단에 가입한다는 성명 발표. 이후 남로당 탈퇴 성명 줄이음
    • 3.11 미군정청 특별감찰관 넬슨 중령, 제주도 지사 유해진에 대한 특별감찰보고서에서 유 지사 해임과 제주도 경찰행정에 대한 조사, 과밀 유치장 조사 등을 딘 장관에게 건의
    • 3.14 모슬포지서에서 대정면 영락리 청년 양은하 고문치사 사건 발생
    • 3.15 남로당 제주도상위에서 전남도당 오르그가 참석한 가운데 첫째 조직의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써, 둘째 단선·단정 반대 ‘구국투쟁’으로써 무장투쟁 결행 최종 결정
    • 3.20 애월면 새별오름에서 훈련 중이던 자위대원들과 애월지서 경찰·서청·대청단원간 충돌
    • 3.28
      • 이승만, 방한중인 미 육군성 드래퍼 차관에게 제주도를 미군기지로 제공할 의사 있음을 표명
      • 남로당 제주도당, 회합을 갖고 무장투쟁 개시일을 4월 3일로 결정
    • 3.29 한림면 금릉리에서 미군정을 비판하던 청년 박행구가 경찰과 서청에 잡혀 즉결처형됨
    • 3.30 전국 일원에서 5·10총선거 선거인 등록업무 개시
    • 4. 1 국회 선거위원회, 각도별 국회의원 수 발표. 전체 200명중 제주 3명 배정
    • 4. 3 제주도에서 무장봉기 발발. 350여 명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새벽 2시를 기해 제주 도내 12개 지서를 공격하고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 경찰 4명, 민간인 8명, 무장대 2명 사망
    • 4. 5
      • 미군정, 약 100명의 전남경찰을 응원대로 급파하고 제주경찰감찰청 내에 제주비상경비사령부 설치(사령관 김정호 경무부 공안국장)
      • 미군정, 제주도 도령(道令)공포해 제주 해상교통 차단하고 미군 함정 동원해 해안봉쇄
    • 4. 8
      • 미국, 주한미군을 48년 12월 말까지 철수키로 잠정 결정
      • 제주비상경비사령관 김정호, 무장대에 대한 소탕전을 전개한다는 포고문을 발표
    • 4.10 국립경찰전문학교 간부후보생 100명, 제주에 파견
    • 4.13 제9연대, 북제주지구 경비치안 확보차 제주읍에 특별부대 파견
    • 4.14
      • 최종 선거등록 결과 제주도는 127,752명 중 82,812명이 등록해 64.9%(전국 평균 91.7%)로 전국 최하위 기록
      • 조병옥 경무부장, 선무문 발표
    • 4.16
      • 딘 군정장관의 명령으로 남한 전역에 향보단 창설
      •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조병옥 경무부장의 특명으로 선무활동차 제주에 파견
    • 4.17 미군정, 맨스필드 중령을 통해 제9연대에게 경찰과 협조하여 진압작전에 참가하도록 명령
    • 4.18
      • 딘 군정장관, 맨스필드 중령에게 제주도 주둔 경비대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무장대 지도자와 교섭할 것을 지시
      • 무장대, 선거사무소 습격해 관련 서류 탈취
      • 유해진 도지사 외 32명을 위원으로 한 시국수습대책위원회 결성
    • 4.19 무장대, 조천면 신촌리 투표소 습격·방화
    • 4.20 미군정, 미고문관 드루스 대위와 부산 제5연대 소속 1개 대대를 제주도에 파견
    • 4.22
      • 제주비상경비사령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오후 8시부터 익일 오전 5시까지로 변경
      • 김익렬 9연대장, 무장대에게 평화협상을 요청하는 전단을 비행기로 살포
    • 4.24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한국 섬 폭동 발발 46명 사망’이라는 제목 아래 제주사태 첫 보도
    • 4.27
      • 제주에서 미 20연대장 브라운 대령, 24군단 작전참모부 슈 중령, 59군정중대장 맨스필드 중령 등이 회동해 대책회의 개최
      • 경비대 5연대와 미 20연대 정찰대를 동원한 수색작전 전개
    • 4.28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 진행. 72시간내 전투중지 등에 합의
    • 4.29
      • 딘 군정장관, 극비리에 제주도 방문
      • 슈 중령, “제주도에 있는 현재의 병력만으로도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충분”하다는 요지의 보고서 제출
      • 김정호 제주비상경비사령관, “오후 8시 이후 전도의 통행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사살해 버리는 강경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힘
    • 5. 1
      • 세칭 ‘오라리 방화사건’ 발생해 평화협상 파기
      • 무장대, 제주읍 도평리에서 선거관리위원장 살해
    • 5. 3
      • 미군 수뇌부, 경비대사령부에게 “무장대를 총공격하여 제주사건을 단시일 내에 해결하라”고 명령
      • 미국 뉴욕타임스지, 제주도 무장대가 ‘경찰무기 압수, 경찰·서청 처벌, 5·10선거 취소 확약’ 등 5개항의 항복조건을 제시했다고 보도
    • 5. 5
      • 제주읍 미군청청 회의실에서 딘 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조병옥 경무부장, 송호성 경비대사령관, 맨스필드 중령, 유해진 도지사,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등이 모여 이른바 ‘5·5 최고수뇌회의’ 개최
      • 무장대, 화북리 선거관리위원장과 내도리 구장 등을 살해
    • 5. 6 미군정, 김익렬 9연대장 해임, 신임 9연대장에 박진경 중령 임명
    • 5.10
      • 5·10선거 실시. 제주도 62.8%로 가장 낮은 투표율 기록. 북제주군 갑·을 2개 선거구는 과반수 미달로 선거무효됨
      • 무장대, 중문면 상예리 2구를 습격하여 대청단장 부부와 국민회 상예리 책임자를 납치 후 살해
    • 5.11 무장대, 제주읍 도두리에서 마을 선거관리위원장, 대동청년단장, 또는 그들의 가족들을 5월 19일까지 잇따라 납치해 살해
    • 5.12 미군정, 구축함 크레이그호를 제주도에 급파해 해안 봉쇄활동
    • 5.15 제11연대 수원에서 제주로 이동(연대장에 제9연대장인 박진경 중령 취임). 기존의 제9연대는 제11연대에 합편됨
    • 5.18
      • 국회선거위원회, 딘 군정장관에게 제주도의 북제주군 갑·을 양 선거구에 대하여 선거무효 선포를 할 것을 건의
      • 수도경찰청 최난수 경감이 인솔하는 특별수사대 제주도에 파견
    • 5.19 철도경찰 350명과 제6관구 및 제8관구 경찰관 100명 등 총 450명이 경무부 지령에 의하여 제주로 출발
    • 5.20
      • 미군정, 미6사단 예하 광주 주둔 제20연대장인 브라운 대령을 제주지구 미군사령관으로 파견
      • 경비대원 41명이 모슬포 부대에서 탈영
    • 5.21 미군정, 남제주군에서 오용국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발표
    • 5.22 탈영한 경비대원 41명 중 20명이 대정 부근에서 체포
    • 5. 25 남로당 기관지 「노력인민」, 제주도 사태에 대해 첫 보도
    • 5.26 딘 군정장관, 제주도 북제주군 갑·을 양 선거구의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6월 23일 재선거를 실시하겠다는 포고 발표
    • 5.28
      • 유해진 제주도지사가 경질되고 제주 출신의 임관호가 지사로 임명됨
      • 조병옥 경무부장, 치안상황 시찰차 제주도 방문
    • 5.31 제헌국회 개원. 이승만, 국회의장에 선출
    • 5월하순 통위부 고문관 로버츠 준장, 제주도 시찰
    • 6. 1 박진경 11연대장, 대령으로 진급
    • 6. 2 제주주둔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 “제주도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힘
    • 6.10 딘 군정장관, 6월 23일 시행하기로 한 북제주 갑·을 양구의 재선거를 무기연기한다는 행정명령 제22호를 발표
    • 6.11 제주경찰감찰청장 최천, 감독 불충분 등을 이유로 정직처분
    • 6.17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 출신의 김봉호 임명
    • 6.18 박진경 제11연대장 숙소에서 부하에 의해 피살. 딘 군정장관과 로버츠 준장, 제주에 내려와 현지 사정 조사한 뒤 박 연대장 시신 수습 후 귀경
    • 6.21 박진경 대령 후임으로 제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부임
    • 6.30 폭우로 인해 경비대의 작전 보류
    • 7. 1
      • 김봉호 제주경찰감찰청장, 경찰의 불법부정 근절 약속과 함께 귀순자는 양민으로 인정한다고 천명
      • 도내 여행증명제도 폐지·어획금지 해제
    • 7. 5 목포 ~ 제주간 정기연락선 여행증명제도 폐지
    • 7.10 철도경찰 100명 제주도에 파견
    • 7.15 제9연대를 제11연대에서 배속해제하여 재편성(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부연대장 서종철 대위)
    • 7.19 철도경찰 200명 제주도에 파견
    • 7.20 이승만, 국회에서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
    • 7.21 3여단의 2개 대대가 부산에서 제주도로 이동해 9연대에 배속
    • 7.22 제9연대 본부, 작전상 제주도 모슬포 대촌병사에서 제주읍으로 이동
    • 7.24 제11연대 제주도에서 경기도 수원으로 이동
    • 8. 5 9연대 미군 고문관, 정보 분야(S-2)에서 제주출신이 배제됐음을 보고
    • 8. 6 제1관구경찰청, 제1차 응원부대와 교대할 제2차 응원대 파견
    • 8.11 제주도 민보단 창설
    • 8.12 9연대 미군 고문관, 작전 분야(S-3)에서 제주출신이 배제됐음을 보고
    • 8.13 제주도 여행증명제 부활
    • 8.14 박대령 암살사건에 대한 고등군법회의. 문상길, 신상우, 손선호 배경용 4명에 대해 총살형, 양회천 무기, 강승규에 대해 5년 징역을 언도
    • 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공포
    • 8.20 8월 20일을 전후 응원경찰 800명 가량이 제주에 증파
    • 8.21 김달삼,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주석단 일원으로 선출
    • 8.24 이승만 대통령과 하지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 체결함으로써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계속 미군에 귀속
    • 8.25
      •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 ‘최대의 토벌전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내용이 포함된 포고문을 발표
      • 미군 제1보병연대 1개 소대, 제주 주둔 임무 교대
    • 8.26 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PMAG) 설치
    • 8.27 하지 주한미군사령관 이임하고 콜터 장군이 주한미군사령관에 임명
    • 8.29 응원경관대 800명 제주도에 도착
    • 8.31 경남 제7관구 경찰청, 제주도 응원부대 파견
    • 9. 8 제주읍 삼양리 거주 13살 소년, 삼양지서에서 고문치사
    • 9. 9 김일성을 수상으로, 박헌영·홍명희·김책을 부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선포
    • 9.19 소련, UN결의에 따라 북한 주둔군의 연말 철수방침 밝힘
    • 9.23 박진경 암살사건 관련 문상길·손선호 총살형 집행. 신상우·배경용은 총살형 집행 직전 특사로 감형
    • 9.27 일반사면령(대통령령 제6호) 공포
    • 10.1 정일권 경비대 총참모장과 김영철 해안경비대 참모장, 제주 시찰
    • 10.2 수도경찰청과 제8관구청 응원경찰대 제주도에 파견
    • 10.5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 출신 김봉호에 이어 평남 출신 홍순봉 임명
    • 10.8 이승만, 미군철수 연기를 요구
    • 10.9 로버츠 고문단장, 5여단 고문관 트리드웰 대위에게 제주도 작전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
    • 10.11 제주도경비사령부(사령관 김상겸 대령) 설치
    • 10.17 송요찬 9연대장, 제주 해안에서 5㎞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면서 이를 어길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 발표
    • 10.18
      • 제주해안 봉쇄
      • 여수주둔 제14연대 1개 대대 제주도에 증파명령
    • 10.19
      • 여수,순천 10·19사건 발생
      • 제주도경비사령관 김상겸 대령, 여수,순천 10·19사건 발생에 대한 문책으로 파면됨. 송요찬 9연대장, 제주도경비사령관 겸직
    • 10.23 무장대, 제주읍 삼양지서와 조천면 관내 조천지서·함덕지서를 일제히 공격
    • 10.24 무장대, 이덕구 명의로 정부에 선전포고. 토벌대에게 호소문 발표
    • 10.28
      • 9연대 장병 100명 가량이 남로당 프락치로서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연행당하는 사건 발생
      • 미군보고서, “은밀한 모병을 통해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제주에 파견했다”고 보고
      • 토벌대, 애월면 일대에 대한 대대적 토벌작전 결과 애월·대정 양 지부원 약 100명을 고성리 부근에서 완전 포위·격멸했다고 보고
    • 10월하순 채병덕 통위부 참모총장, 제주 시찰
    • 11. 1 무장대와 내통한 혐의로 일부 경찰이 체포되는 소위 ‘경찰 프락치 사건’ 발생
    • 11. 7
      • 토벌대, 구좌면 행원리 가옥 20여 채를 방화하고 주민 10여 명을 총살
      • 군경합동토벌대, 남원면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수망리·한남리를 급습해 피신하지 않은 노인과 어린이를 총살하고 가옥 대부분을 방화
      • 무장대, 서귀면 서귀리를 급습해 민가에 방화
    • 11. 8 로버츠 주한미군사고문단장, 주한미군사령관에게 “CIA는 훌륭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9연대장 송요찬 중령은 강력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
    • 11. 9 김두현 제주도 총무국장, 서북청년회 사무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
    • 11.13 토벌대, 애월면 하가리에서 가옥에 방화하고 남녀노소 25명을 집단총살 한 뒤, 소길리 원동마을에서 주민 50~60명을 집단총살하는 등 이 날을 기점으로 약 4개월간 중산간마을을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집단총살
    • 11.15 로버츠 고문단장, 주한미군사령관에게 CIA 활동의 우수함을 칭찬하고 “제주도 파견 한국군 3개 대대를 주로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충원시킬 계획”임을 보고
    • 11.17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령 제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 선포
    • 11.19 제주경찰감찰청, 제주도경찰국으로 개편
    • 11.20 국방부, 군 작전과 군기(軍機)를 보호하고 보도의 정확성을 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 관계 기사의 사전검열을 천명
    • 11.27 콜터 장군 “로버츠 군사고문단장 휘하에 있는 고문단들에 의해 만족할 만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한국군 야전부대에 배치돼 있다”고 밝힘
    • 11.28 무장대, 남원면 남원리와 위미리를 집중공격해 주민들을 집단살해하고 가옥에 방화
    • 11.30 법률 제9호로 국군조직법 공포
    • 12.1
      • 국가보안법 공포
      • 로버츠 고문단장, 국방부 참모총장에게 서신을 보내 계엄령을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
    • 12.3
      • 1차 계엄고등군법회의 개정.「수형인 명부」에는 12월 3일부터 12월 27일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민간인 871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기록됨
      • 무장대, 경찰지서 소재지인 구좌면 세화리를 대대적으로 습격해 주민 50명 가량을 살해하고 40가호 150채에 방화
      • 송요찬 9연대장, 미군임시군사고문단에 “11월 20일부터 27일 사이에 폭도 122명 생포, 576명 사살했다”고 보고
    • 12.6 송요찬 연대장, “미군 조종사 에릭슨 중위가 10월 10일부터 현재까지 정찰비행을 통해 반란을 진압하는데 훌륭한 지원을 했다”고 미 24군단장에게 추천서를 보냄
    • 12.12 유엔총회,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면서 미·소 양군의 조속한 철군을 요구
    • 12.13 서북청년회 단원 620명이 정식 경찰로 임용
    • 12.15
      • 국군조직법에 따라 통위부는 국방부로, 조선경비대를 대한민국 육군으로 개칭
      • 제9연대를 제5여단에서 해편하고 제2여단에 편입
      • 토벌대, 표선면 토산리 주민을 집합시킨 후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자와 일부 젊은 여자 등 150여 명을 표선국교로 끌고 가 감금했다가 12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집단총살
    • 12.16 제2연대 선발대, 제주에 도착
    • 12.17
      • 미 국무성, 1948년 12월말까지 주한미군을 철수키로 결정한 대한정책지침인 ‘NSC-8’에 대해 이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
      • 미군보고서, “최근 제9연대의 진압작전이 계속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그 이유는 수준 높은 작전을 전개하려는 욕망과 제2연대 성공자들의 훌륭한 업적에 부응하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보고
    • 12.18
      • 로버츠 고문단장, 이범석 국무총리와 채병덕 참모총장 등에게 서신을 보내 송요찬 연대장의 지휘력에 대해 거듭 칭찬하면서 이런 사실이 신문과 방송, 대통령 성명에 의해 크게 일반에 알릴 것을 권고
      • 토벌대, 여자 3명과 어린이가 포함된 구좌면 하도리·종달리 주민 10여 명이 숨어 있던 ‘다랑쉬굴’을 발견, 굴속으로 불을 지펴 질식사 시킴
    • 12.19
      • 9연대 선발대, 제주를 떠나 대전에 도착
      • 대동청년단·서북청년회 등이 통합해 대한청년단 결성
      • 서북청년회 단원 250명 제주 도착. 이중 25명은 경찰, 225명은 군인이 됨
    • 12.21
      • 채병덕 참모총장, 로버츠 고문단장의 12월 18일자 권고에 대해 “담화를 통해 송요찬의 활동을 소개할 것이고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하도록 추천할 것이며, 송요찬에게 훈장을 수여할 것”이라고 답신
      • 토벌대, 함덕리 대대본부에 자수해간 조천면 관내 주민 150명을 제주읍 속칭 ‘박성내’라는 냇가로 데려가 집단총살
    • 12.22
      • 대전에서 출발한 제2연대 1대대, 제주에 도착
      • 토벌대, 표선면 가시리에서 소개온 주민들 중 ‘도피자가족’ 76명을 속칭 ‘버들못’ 위쪽 밭에서 집단총살
    • 12.25 소련, 북한주둔 소련군을 완전 철수했다고 발표
    • 12.29 2연대(연대장 함병선), 9연대와 교체해 제주에 주둔
    • 12.30 국방부 보도과장, 기자회견을 통해 “폭도 진압을 일단락 지었으므로 수삼일 내로 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발언
    • 12.31 제주도지구 계엄령 해제
1949년
    • 1. 1 무장대, 제주읍 오등리에 위치한 2연대 3대대 주둔지를 공격. 교전 끝에 무장대원 10여 명 사망하고, 2연대 장병도 7명 전사
    • 1. 3
      • 무장대, 제주읍 삼양리, 남원면 하례리, 한림면 협재리를 기습해 주민 살해
      •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원들이 무장대로 위장하여 제주읍 도평리에 진입, 일부 주민들이 속지 않았음에도 이튿날까지 70명 가량을 총살
    • 1. 4
      • 함병선 2연대장, 계엄령의 지속적인 시행을 요구
      • 토벌대, 제주읍 화북리 곤을동 주민을 이틀에 걸쳐 집단총살
    • 1. 7 제2연대 본부를 농업학교로 이동
    • 1.12 무장대, 남원면 의귀리에 주둔해 있는 2연대 2중대를 습격했으나 패퇴. 군인들은 전투 직후 의귀국민학교에 수용했던 중산간마을 주민 80여 명을 집단총살
    • 1.13 무장대, 성읍리를 습격해 주민 38명을 살해하고 방화
    • 1.17 ‘북촌사건’ 발생. 토벌대, 마을 인근에서 군인들이 기습받은데 대한 보복으로 조천면 북촌리를 모두 불태우고 이튿날까지 주민 400명 가량을 집단총살
    • 1.18 제3구경찰서(모슬포)와 제4구경찰서(성산포) 설치
    • 1.20 2연대, 기존 2여단 소속에서 해편돼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변경
    • 1.21 이승만 대통령, 국무회의에서 제주와 전남지역의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유시
    • 1.22
      • 육군본부, 육군 항공사령부에게 비행기 2대를 1월 24일까지 제주도에 파견해 진압작전에 협조하라고 지시
      • 토벌대, 안덕면 동광리·상창리 주민 등 80여 명을 서귀포 정방폭포 부근에서 집단총살
    • 1.24 국무회의, 제주도에 국군 1개 대대를 증파하기로 의결
    • 1.25 한국군 소속 L-5 2대, 제주도에 파견
    • 1.28 이승만, 국무회의에서 “미 해군이 제주도에 기항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으며, 군 1개 대대와 경찰 1,000명을 증파하였으니 조속히 완정(完征)하라”고 지시
    • 1.31 육군본부, 유격전 전문부대인 6여단 산하 유격대대를 제주에 파견
    • 2. 4
      • 무장대, 99식 소총을 연대에 반납하기 위해 제주읍으로 가던 2연대 병력을 구좌면 김녕리 부근에서 습격하여 소총 150정을 탈취하고, 2연대 병사 15명과 경찰 1명을 사살
      • 제주읍 봉개지구(봉개·용강·회천리)에 대한 육해공군 합동작전 전개. 토벌대, 도망가는 주민들을 추격하여 수백명을 총살
    • 2. 5 공보처장 김동성 “1948년 11월 17일에 발효된 제주도의 비상사태는 한 달 전에 해제되었지만 그 효력에 대한 공식언급은 없었다”고 발표. 이에 대해 미군은 “비상사태를 한국인이나 미국인 모두 종종 계엄령이라 불러 왔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한국정부에 의해서는 계엄령이 선포된 적이 없다”고 논평
    • 2.12 관음사, 2연대 군인들에 의해 소각됨(이 밖에도 도내 15개소의 사찰이 토벌대의 방화로 전소됐으며, 3개소는 일부 소각됐고, 9개소의 사찰은 소개령 때 파옥당함. 또한 스님 16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됨. 한편 경찰 부친이 주지인 함덕리의 한 사찰은 무장대에 의해 피해를 입음)
    • 2.19 경찰특별부대(사령관 김태일 경무관) 505명 제주에 파견
    • 2.20 미군사고문단, “제주읍 도두리에서 민보단원들이 군경의 감독 아래 76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보고
    • 2.23
      • 검찰총장,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에 대해 관대하게 대하지 말고 강경조치하라는 공문 시달
      • 경찰서의 명칭 변경(제1구경찰서→제주경찰서, 제2구경찰서→서귀포경찰서, 제3구경찰서→모슬포경찰서, 제4구경찰서→성산포경찰서)
    • 2.27 제2연대, 제주읍 화북리에서 1948년 12월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39명에 대해 사형 집행
    • 3. 2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 참모장 함병선 2연대장) 설치
    • 3.10 이범석 총리·신성모 내무부장관, 제주도 시찰
    • 3.14 로버츠 준장, 주한미사절단에 보낸 문서에서 “제주도 작전에 미군 항공기 3대가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림
    • 3.21
      • 제주도의 재선거를 1949년 5월 10일 시행한다고 공포
      • 이범석 국무총리의 국방부장관 겸직을 면하고, 국방부장관에 신성모를 임명
    • 3.23 미 대통령, 주한미군 철수를 1949년 6월 말까지로 연기한 대한정책지침서 ‘NSC-8/2’ 승인
    • 4. 1 미군보고서, “9연대는 모든 저항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중산간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고, 1949년 3월까지 제주도 인명피해 15,000명이며, 게릴라들이 본토나 북한으로부터 병참지원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러한 보고를 증명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등 그간의 상황을 종합보고
    • 4. 5 해병대 창설
    • 4. 7 이승만 대통령 특명으로 신성모 국방장관과 이윤영 사회부장관이 제주도 방문
    • 4. 9
      • 이승만 대통령, 부인과 함께 제주도 방문
      • 제주도 재선거 유권자 및 입후보자 등록 마감
    • 4.14 신성모 국방장관, 제주도 시찰 후 귀임
    • 4.16 신성모 국방장관과 로버츠 군사고문단장이 회합을 갖고, 서북청년회 회원들을 제주도에서 철수시키기로 합의
    • 5.10 국회의원 재선거 실시. 홍순녕·양병직 당선
    • 5.15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해산.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구성된 2연대 3대대 철수
    • 5.18 김태일 비상경비사령관 이하 경찰 특별부대 귀경
    • 5.25 유격대대, 2연대에서 배속 해제돼 철수
    • 6. 1 제2연대장 함병선, 대령으로 진급
    • 6. 5 국민보도연맹 창립 선포대회
    • 6. 7 무장대 총사령 이덕구, 경찰에 의해 사살
    • 6.20 제2연대가 육군본부 직할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편입됨
    • 6.23 고등군법회의 개최. 「수형인 명부」에 6월 23일부터 7월 7일까지 총 10차례 개최돼 민간인 1,659명에 대해 ‘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 및 간첩죄’를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고 기록됨
    • 6.29 주한미군 철수 완료. 미군사고문단 500명 잔류
    • 7. 7 제2연대 2대대, 인천으로 철수(1대대만 잔류)
    • 7.15 독립 제1대대(부대장 김용주), 수원에서 제주도로 이동
    • 8.13 제2연대, 독립제1대대에 제주도지구 경비 일체를 인계 후 완전 철수
    • 8.20 제주지구위수사령부를 설치(제주주둔 부대장이 위수사령관이 됨)
    • 8.26 호국군을 예비군으로 개칭
    • 8.27 장경근 내무차관 제주도 순시
    • 9.14 목포형무소 탈옥사건 발생. 탈옥자 286명 사살 당함
    • 10.2 제주비행장 인근에서 ‘1949년 군법회의’ 결과 사형이 선고된 249명에 대한 총살형 집행해 암매장
    • 11.15 국민회 제주도지부장 김충희, 제주도지사에 임명
    • 11.24 계엄법 제정·공포
    • 11.27 치안국, 11월 27일 현재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향자 수가 제주에서 5,283명에 이른다고 발표
    • 12.20 제주도 재건부흥위원회(위원장 김충희 제주도지사) 조직
    • 12.27 독립 제1대대 제주에서 철수
    • 12.28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대령) 제주에 도착
1950년
    • 2.10 김충희 도지사, 국무총리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4․3사건으로 3만여 명의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가옥손실 4만여 동 등 피해액이 200여억원에 이른다고 보고.
    • 5.30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에서는 김인선, 강창용, 강경옥 당선
    • 6.25
      • 6·25전쟁 발발. 제주도 해병대사령관이 제주도지구 계엄사령관 겸임
      • 치안국장, 각 경찰국에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을 전화통신문으로 긴급 하달하여 전국 요시찰인 전원을 즉시 구속할 것을 지시
    • 6.29 치안국장, 제주도경찰국장에게 ‘불순분자 구속의 건’ 하달해 “보도연맹 및 기타 불순분자를 구속, 본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석방을 금한다”고 명령
    • 7. 6 제주지구 비상계엄사령관으로부터 ‘전 제주지구 예비검속자 명부 제출의 건’이 제주도경찰국장에게 하달
    • 7. 8 계엄법 제1조에 의하여 전남과 전북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 계엄을 선포.
    • 7.11 치안국장으로부터 ‘불순분자 검거의 건’이 제주도경찰국장에게 하달
    • 7.15 해병대 1개 대대, 제주항을 출항하여 군산항으로 이동
    • 7.16 제주도에 육군 제5훈련소 설치
    • 7.20 비상계엄 남한 전역으로 확대
    • 7.25 무장대가 중문면 하원리를 습격해 민가에 방화
    • 7.27 토벌대, 예비검속으로 제주읍 주정공장에 수감했던 사람들을 사라봉 앞 바다에 수장시킴
    • 7.29 서귀포경찰서 관내에 예비검속 됐던 수감자 150여 명이 끌려나가 바다에 수장됨
    • 8. 4
      • 대통령 긴급명령 제9호로 비상향토방위령 공포
      • 경찰 공문서(불순분자 검거의 건), 8월 4일 현재 제주 도내에서 820명이 예비검속돼 있다고 밝힘
      • 제주경찰서·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예비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항 앞바다에 수장됨
    • 8. 5
      • 모슬포 부대에서 해병대 신병 입영식 거행
      • 오현중학교 학생 423명이 학도병 지원
    • 8. 8 제주지검장, 법원장 등 도내 유력인사 16명이 ‘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는 혐의로 체포·구금
    • 8.19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비행장에서 총살된 후 암매장
    • 8.20 모슬포경찰서 관내 한림면·대정면·안덕면 예비검속자 344명 중 252명이 군에 송치돼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총살됨. 당국의 제지로 인해 6년만에야 시신을 수습한 대정면 희생자 유족들은 시신을 구분할 수 없어 적당히 유골을 맞춰 132기의 봉분을 만들고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라 칭함.
    • 8.30 김두찬 해병대 정보참모,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에게 예비검속자에 대한 총살 명령 및 집행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공문을 시달했으나, 문형순 서장은 ‘부당함으로 미이행(未履行)’이라며 거부
    • 8.31 제주도 해병대 일부 병력 철수
    • 9. 3 ‘제주도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 사건’ 피의자 석방
    • 9.14 제주도 사찰관계자 연석회의에서 예비검속자 중 개전의 가망이 있는 자를 석방하기로 결정
    • 9.15 인천상륙작전
    • 9.17 예비검속자 석방 시작됨
    • 10.10 제주도지구의 계엄 해제
    • 11.7 남한 전지역의 비상계엄을 해제. 제주도와 경남 및 경북 지역을 제외한 38도선 이남 전역에 경비계엄 선포
1951년 이후
  • 1951년

    • 1.22 육군 제1훈련소 대구에서 제주도로 이동
    • 4.24 제주 경찰, 1950년 10월 1일~1951년 4월 22일까지 7개월간 무장대 사살 56명, 무기노획 소총 11정, 수류탄 2발, 경찰 17명 사상(사망 15, 부상 2), 자위대 24명 사상(사망 11, 부상 11, 행방불명 2), 민간인 42명 사상(사망 1, 부상 3, 납치 38)등의 전과 발표
    • 5.10 제주도 육군 특무대 창설
    • 5.20 제주도에 온 피난민수 148,794명으로 집계
    • 5.28 정일권 육해공군 총사령관,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시찰
  • 1952년

    • 1. 7 육군훈련소장에 장도영 준장 임명
    • 1.25 대한청년단 특동대, 제주극장에서 발대식
    • 2. 6 미8군사령관 밴프리트, 제주도 시찰
    • 4. 1 제주 경찰, 치안국 작전지도반의 지도하에 4월 30일까지 30일간 예정으로 ‘제주도지구 잔비섬멸작전’을 전개
    • 5.16 육군 정보국, 제주도 무장대(사령관 김성규) 규모를 65명(무장 30, 비무장 35)으로 파악
    • 5.28 제주도의회 잔여 무장대 완멸책으로 귀순하면 생명은 보장한다는 요지의 하산권고문을 반포키로 가결
    • 7. 3 이승만 대통령 부처, 미8군사령관 밴프리트와 유재흥 중장 등과 제주도 육군 제1훈련소 시찰
    • 8. 9 제주지구위수사령관 겸 육군 제1훈련소장 장도영 이임
    • 8.14 제주지구위수사령관 겸 신임 육군 제1훈련소장에 오덕준 취임
    • 9.16 제주방송국에 무장대 5명이 침입하여 숙직 중인 방송과장 등 3명을 납치
    • 10.31 무장대, 서귀포발전소를 습격해 방화
    • 11. 1 제주도경찰국, 100전투경찰사령부 창설
    • 11.26 이승만 대통령, 국무회의에서 “경찰의 예비검속은 공표하지 말라”고 지시
    • 12.25 제주도지구 재산무장대의 완전섬멸을 위하여 경기·충남·경북에서 1개 중대씩 3개 중대의 경찰병력을 파견
  • 1953년

    • 1.25 육군본부, 무지개부대를 1월 20일 ~ 5월 27일까지 육군첩보부대(첩보부대장 이철희 대령)에 배속
    • 1.29 육군 특수부대인 무지개부대(소령 박창암) 86명이 제주도에 투입
    • 5. 1 무지개부대 작전 종료
    • 6.15
      • 치안명령 제84호에 의거 파견된 경기·충남·경북의 경찰 병력을 6월 15일 0시부로 배속 해제 원대복귀
      • 이응준 중장, 육군 제1훈련소 소장으로 임명
    • 7.11 미 극동사령부 부사령관 켄들, 제주도주둔 육군 제871부대를 사열
    • 10.13 경찰 100사령부 사령관 김원용 총경 이임. 후임에 한재길 경감
    • 11. 2 제주읍 도평리·노형리 주민, 북제주군과 경찰에 재건 복귀를 진정
    • 11. 7 1년여간 소개생활을 해오던 대정면 산이수동 주민들이 복귀·입주
    • 11.20 이경진 제주도경찰국장, 20일을 기해 도내 경찰주둔소 경비초소의 경찰병력을 철수한다고 발표
  • 1954년

    • 1.15 이경진 제주도경찰국장, 잔여무장대는 6명 뿐이라고 발표
    • 4. 1 한라산 부분 개방. 산간부락 입주 및 복귀 허용
    • 9.21 한라산 금족구역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