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평화와 인권

제주4·3사건영상기록 평화와 인권 - 상영시간 14분
이 영상기록은 제주4·3사건 당시 미군 기록필름인 “제주도메이데이”와 사건 당시 기록사진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다만, 제주4·3사건의 이해를 돕기위해 일부 화면은 한국전쟁, 여순사건의 자료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해방, 집회, 반대, 입산, 토벌, 초토화, 집단학살, 절규

제주4·3사건영상기록 평화와 인권 - 김종환
나는 이 순간의 제주를 사랑한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섬의 사람들과 문화, 한라산을 보듬은 제주의 풍광들을 사랑한다.
여행객의 발길이 머무는 이 싱그러운 섬 제주에 살고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뒤에 감춰진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믿기지 않지만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폭포, 세계자연유산 일출봉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곳이 제주4·3사건당시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던 학살터라 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여러분이 첫발을 내딛는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수많은 제주도민들과 함께 희생되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제주공항 4·3유해발굴 현장에서 할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나는 지난역사를 왜 다시 들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교과서 속에만 있는 제주4·3사건이 나와는 무관한 역사로만 알았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것을 넘을 수 없다. <전쟁과 평화, 박명림>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한국을 통치하던 미군정은 강력한 진압작전을 펼쳤고, 4·3사건이 완전히 종식되는 1954년 9월까지 7년 7개월동안 3만여명에 이르는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인 1948년 11월부터 4개월 동안 군경토벌대에 의한 이른바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가 불탔고 무고한 사람들이 제주전지역에서 집단적으로 희생되는 참혹한 상황이 발생됐다.
제주도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공권력에 의한 전무후무한 희생을 몰고온 한국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정부에서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에 발생했던 3·1절 발포사건이 4·3으로 가는 도화선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날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시가행진에서 경찰의 오인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됐다.
이에 도민들은 총파업으로 저항했고, 이를 불순분자들의 소행으로 판단한 미군정은 경찰과 서북청년회를 파견하여 대량검거와 테러를 일삼으로 민심은 더욱 악화됐다. 당시 한반도는 남한만의 단독총선거를 통한 분단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결국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반된 민심과 50총선거 반대투쟁을 접목시켜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의 탄압중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촉구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김구 역시 남한만의 50단독총선거를 반대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하였다. 1948년에 치를 5·10단독총선거에서 도민들의 투표거부로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 2개 선거구가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었다. 그러자 미군정은 이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의 음모로 판단하게 된다. 결국 제주도에 대한 강경 토벌작전이 실시되어 도민들이 집단희생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대적인 강경토벌작전이 제주전역을 휩쓸게 된다. 10월 11일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대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이 발표됐다. 이때부터 군경토벌대는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생하기 시작했다.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진압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중산간 지대뿐만 아니라 해안마을의 속에 내려간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폭도라 지목당하는 것만으로도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총으로 죽이고 물에 빠트려 죽이고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생매장해 죽이고. 살인은 그처럼 손쉬웠고 생명의 무게는 휴지처럼 가벼웠다. 지옥은 하늘이 아닌 인간이 사는 지상세계에 있었다. 수많은 주검들은 바로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동족간의 학살은 이민족보다 더 잔인했다. 그러나 학살은 군경토벌대만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무장대들은 해안마을을 습격하여 경찰가족과 우익인사를 살해했다. 그 와중에 무고한 주민들도 상당수 희생되었다. 복수와 증오심. 복수는 복수를 낳았고 증오는 격한 충돌로 이어져 민간인들의 희생은 극에 달했다. 정부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인명피해를 2만5천명에서 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해자별로 비율은 토벌대 78.1%, 무장대 12.6%로 나타났다.특히 10세 이하 어린이와 61세이상 노인이 전체 희생자의 11.9%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의 희생도 21.3%에 이른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고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 그들이 다 죄인이었을까? 왜 죽였을까?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었을까?상대방을 악인이라 규정하면서 우리 스스로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버린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더할수없이 참혹한 희생을 치뤘음에도 4·3사건 이후 희생자 가족들은 연좌죄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활동을 제약받았다. 당시에 희생됐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족들에게까지 엄청난 상처가 되물림되었던 것이다.
1978년 강요받던 강요받던 침묵을 깨고 4·3을 소재로 쓴 한편의 소설이 나오며 제주4·3사건에 대한 논의에 물꼬가 트인다. 이후 1987년 민주화 운동과 함께 본격적인 진상규명운동이 시작된다.
그 결과 국민의 정부시절인 2000년 1월 12일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된다. 4·3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가 구성돼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작업이 진행되었고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공식 확정되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진상조사보고서의 결과를 토대로 10월 31일, 4·3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국가를 대표해 사과했다. “저는 위원회의 권유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써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의 과거사 관련 사과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이자 대한민국이 인권국가로 거듭남을 만방에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각명비에 세겨진 이름마다 말못할 사연이 숨어있는 곳. 제주시 봉계동 제주4·3평화공원이다. 이곳은 4·3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역사적 기록을 되새기고자 조성되었다.
매년 4월이면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위령제단과 추모광장을 중심으로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거행된다. 추모공원 뒤에는 행방불명되어 시신을 찾을 수 없는 3800여기의 표석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실 입구인 역사의 터널을 지나면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제주4·3을 상징하는 백기가 놓여있다. 1관에서 6관은 1945년 해방을 시작으로, 배경과 원인, 무장봉기 발발, 전개과정과 피해상황, 진상규명 과정을 전시와 아트워크등으로 보여준다. 특히 다랑쉬 특별전시관은 발견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제현하여 사실감을 더해준다. 제주4·3희생자 발굴유해 봉안관에는 발굴된 유해를 봉안함은 물론 유해발굴 현장을 복원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자 함은 어리석은 인간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평화와 인권의 성지에서 숨막히던 그날을 기억하며 되새겨야하는 이유이다.
제주4·3사건은 수많은 죽음과 아픔을 남기고 끝났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는 매년 치러지지만 진정 유족들의 마음은 치유된 것일까.
세계적인 냉전과 한반도 분단과정에서 일어난 4·3사건을 끝났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남북으로 나눠져있고 대립하고 있다. 4·3의 아픈 세월이 흐른뒤 사람들은 진정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마음에는 더욱 단단한 장벽이 세워진건 아닐까? 난, 과거를, 4·3사건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는 무관한 역사인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겠다. 4·3은 우리의 아픔으로, 우리 속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