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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작전' 학살 희생자 발굴, 묻혔던 진실을 꺼내다
  • 작성자 : 4·3평화재단 작성일 : 2021-03-31 조회수 : 161

제주도제주43평화재단 가시리서 43유해발굴보고회

강군섭씨 제보로 유해 3구 빌견, 다른 1구 발굴 계속

43 당시 초토화작전으로 학살되고 암매장된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 3구가 발굴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331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소재 '우구리동산에서 43유해발굴보고회를 개최했다.

지난 2018년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이번 유해발굴에서는 유해 3구가 발굴됐다. 현장은 감귤원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사이를 따라 들어간 감귤원 한족 귀퉁이에 있었으며 4·3평화재단과 4·3연구소가 4·3희생자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7곳 가운데 가장 먼저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진 곳이다. 유해 3구는 모두 온전하지 않았으며 두개골 등 신체 일부만 발견됐다.

<유해발굴보고회에 앞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례 봉행>

유해발굴 제보자는 강군섭 할아버지(79표선면 가시리)로 어릴 때부터 현재 발굴지 인근에 43유해 4구가 묻혀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증언했다.

강 할아버지는 현장 설명에서 이 유해들이 일가족 7명이 몰살당한 이 마을 출신 강원길(당시 48), 김계화 여인(당시 32)과 그 아들 강홍구(당시 11)로 추정했다.

또 강 할아버지는 이들 희생자들이 초토화가 한창이던 19481221일 우구리동산 토굴과 움막에서 피신 생활을 하다 토벌대에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발굴유해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강군섭 할아버지>

강 할아버지의 제보로 43평화재단과 43연구소는 최근 조사 발굴을 추진했고 지난 322일에는 제주도, 43희생자유족회, 43평화재단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유해발굴 개토제를 진행했다. 이후 시굴 조사를 담당한 일영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유해가 발견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유해발굴보고회에 앞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례를 봉행했다. 제례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 오임종 4·3유족회장,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나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이후 진행된 보고회에서는 박근태 일영문화유산연구원장의 발굴 현황 설명, 이숭덕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교수의 유전자감식 설명, 강군섭 할아버지의 증언 등으로 진행됐다.

 

<발굴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근태 원장>

<추도사를 하고 있는 원희룡 도지사(왼쪽)와 좌남수 도의장>

박근태 일영문화유산연구원장은 "제보자가 주장한 토굴과 움막의 학살현장에서 200~300m 떨어진 곳이 유해 발견 지점"이라며 "어떻게 이곳으로 유해가 옮겨졌는지, 머리뼈 등 일부 유해만 옮겨졌는지, 다른 가족들의 유해는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굴조사단은 유해 4구가 묻혀 있다는 강 할아버지의 주장을 감안해 아직 찾지 못한 유해 1구 발굴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편 중산간 지역에 있는 가시리는 4·3 당시 주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당한 학살터로 알려진 곳이다.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이 본격화되던 194811월 중순경부터 19493월까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살상하는 과정에서 주민 421명이 희생당했다.